사랑에 관한 소설을 읽는 일은 즐겁다.
물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는 슬프다.
그래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일이 좋다.
나는 감히 진정한 사랑 운운할 자신이 없다.
여러번의 연애를 해봤고, 지금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지만 여전히 진정한 사랑을 잘 알지 못하겠다.
한 눈에 반했던 한 남자와 오랫동안 연애를 해왔지만, 결국 그 사람과 헤어져야하는 선택을 했던 사람이 진정한 사랑에 대해 얘기할 자격이 있겠는가 말이다.
인간 존재는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 우연의 힘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우연히 어떤 때에 어떤 장소에 있게 되었다가 그 우연이 그 사람의 존재를 통째로 바꿀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라는 우연한 리듬에 묶인 포로다.– 58쪽
우연한 자리에서 알게 된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 될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처음 그 남자를 보았을 때의 그 느낌에 사로잡혔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귀고 있던 남자에 대한 의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사귀던 남자와 결혼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연히 그 남자는 나와의 약속을 펑크내고, 나보다는 늘 자신이 먼저였고, 늘 다른 약속들에 바빴고, 늘 나와의 일은 뒷전이었다. 너무 오래 사귄 탓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더 많이 좋아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나는 늘 기다렸고, 그 기다림에 지쳤었다. 그리고 헤어지자고 말했다. 입버릇처럼.
사랑할때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면 '연인에게서 느끼는 스트레스나 두려움을 남에게 털어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64쪽
난 누구에게도 그 사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지 못했다. 아니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별의 고통이 얼마나 가슴아프고 힘겨운지를 이야기하고 다녔다. 난 가끔 그가 나와의 이야기를 가까운 이들에게 하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냥 온전히 우리 두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었다면 그리고 나를 좀 기다려주었으면 어땠을까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픔을 감당하기 힘들었을거고, 참을 수 없었을거다.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삶에 나도 지쳤다. 아버지가 될 기회를 잃어버리면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427쪽
남편은 그 남자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 남자는 남편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난 두 사람 사이를 오고 갈만큼의 베짱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 남편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이건 순전히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다) 생각이 들때는 그 사람이 가끔 생각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다.
언젠가 완도에 후배 부친상이 있어 갔다가 한 남자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남자를 그렇게 비참하게 차버리고 무슨 낯으로 이곳에 얼굴을 들고 왔냐고. 그날 난 엄청나게 취했다.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다시는 그들의 공간에 가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었다. 그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완도터미널로 가서 첫차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고속버스를 타고 계속 가는 일은 쉽지 않았고, 영산포에 내려 터미널 의자에 앉아 지금의 남편을 기다렸다. 그때 그가 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더 많이 비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고 나를 위해 늘 열려 있는 남편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남편과 나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우린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바라보고, 함께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남편과 내가 첫눈에 반했던 그 우연의 순간을 우리는 선택했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한 집에 살고 있다.
토마스는 페트라가 자신을 속여왔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고, 그에 분노했고, 그랬기 때문에 진실을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도 그 순간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페트라를 보내고 토마스는 그 누구도 더 이상은 사랑하지 못했지만 난 요새 하림의 노래처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슬프고 아픈 상처로 남았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또 우리가 살 수 있는 힘이 될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