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책을 읽었다. 이중섭의 소 그림이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이 아니라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는 그림에 사로잡혔다.  

 

  

  <돌아오지 않는 강>, 1954년 당시 인기를 끈 영화에서 그림들의 제목을 따왔단다. 

 

'돌아오지 않는 강'은 흔히 말하는 세월이 아니겠는가.
그가 원산을 떠나올때 건넜던 강을 다시 돌아가지 못했듯
우리는 이미 강을 건너가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창문밖에 광주리를 이고 오는 여인이
그가 기다리는 여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었을까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그녀도 그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눈이 쌓이고 꽃이 휘날리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그녀는 오지 않고
그는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동안
그의 얼굴은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 가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을까? 아니면 더 멀리 바다를 건너갔던 아내를 생각했던 것일까? 기다림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살림살이가 궁핍해지자 엄마는 돈을 벌러 나가셨다.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시면서부터 엄마가 언제 돌아오실까에 대한 생각으로 조바심을 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해가 저무는 것 같으면 엄마가 오실때가 조금이라도 지나면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불안으로 나를 자꾸만 두렵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림을 보며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엄마를 기다리던 나의 모습이 창턱에 기대어 앉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입속의 검은 잎>,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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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8-24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중섭과 기형도~~~~~ 그림과 시가 잘 어울리네요.
유년의 윗목처럼...

꿈꾸는섬 2011-08-24 22:51   좋아요 0 | URL
그림을 보다가 제 유년시절이 생각났어요. 제 유년시절을 생각나게 했던 시가 기형도의 <엄마걱정>이었구요. 그림 속 인물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그 생각에 자꾸 그림을 들여다보았네요.

아이리시스 2011-08-2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뭐예요, 저 육감적인 영화 포스터는. 시가 좋아요. 가을이 오려나 봐요. 저 뭐더라 백석 시인의 [여승]을 완전 좋아하거든요. 느낌이 비슷해요.

백 석 -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주제는 좀 다르지만 언젠가 영화로 만들고 싶은 얘기라고 오랫동안 생각했거든요. 그림이 물컹거려요. 꿈섬님, 수요일이에요. 뭐하실 계획이세요?^^

꿈꾸는섬 2011-08-24 22:52   좋아요 0 | URL
백석의 <여승>도 참 좋지요.
수요일 오후에 논술 수업하고 왔어요.^^

마녀고양이 2011-08-2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림, 오늘 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걸까요? ^^
우리...... 무언가 이쁜 것을 기다려요, 아주 이쁜거~

꿈꾸는섬 2011-08-24 22:52   좋아요 0 | URL
아주 이쁜 것이 와주었다면 좋았을텐데......갑자기 우울한 밤이 되었어요.ㅜㅜ

노이에자이트 2011-08-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릴린 몬로와 로버트 미첨의 저 유명한 영화에서 제목을 땄군요.조용필 노래에도 돌아오지 않는 강이 있습니다만...

꿈꾸는섬 2011-08-24 22:53   좋아요 0 | URL
조용필 노래에도 <돌아오지 않는 강>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