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보통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고 좋다고 평가한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요즘은 김애란의 <두근 두근 내인생>이 인기 폭발이라 얼른 읽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내 손길은 전석순의 <철수 사용 설명서>로 향했다.
198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작가는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전의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장편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이 흔하지 않지만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면 그 믿음은 더욱 견고하다. 그리고 그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다.
새로운 작가가 선보인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읽는 일은 정말이지 롤러코스터를 탈때만큼의 흥분과 신남 그리고 즐거움이 함께하는 일인 것 같다.
특이한 제목 <철수 사용 설명서>,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철수 사용 설명서'이다.
스물 아홉 청년 철수의 인생이 어느 날 돌이켜보니 불량인 것도 같고 고장난 것도 같아 쓰기 시작한 사용 설명서. 철수에 대한 Q&A, A/S까지 마련되어 있다. 취업모드, 학습모드, 연애모드, 가족모드의 사용하기와 관리하기의 설치방법, 전원공급, 청소방법 등 상세하다. 거기에 덧붙여 주의 사항까지 꼼꼼하게 만들어진 사용 설명서라고 하겠다.
일종의 스물 아홉 청년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제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는 아직도 덜 자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고, 변변한 애인도 없다. 연인관계로 발전하려고해도 긴장하면 나나타는 손등의 오선지와 열때문에 모든 것이 쉽지가 않다. 주변의 또래들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모두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은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불량은 아닐까? 고장난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즐겁고 신나고 재미나게 이 책을 읽긴 했지만 씁쓸하고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건, 돈을 주고 산 가전제품에 비유되고 있으니 말이다. 냉장고에게 빨래를 하라고 시킬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의 적나라함이라고 해야겠다. 인간을 사물화하여 상세한 사용설명서를 붙인다는 사실만큼 슬픈 현실을 대표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한가 말이다.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를 떠나서 제품의 고장이나 불량으로 인간을 취급하게 만든 지금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하겠다.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것들을 모두 다 똑같이 잘 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하기를 강요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철수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한다. 또 사용중 불편한 사항을 고객센터로 연락바란다고 한다.
|
|
|
|
다리미를 아무리 수리해 봐야 음악은 들을 수 없고, 라디오도 빨래를 할 수는 없다. 차라리 오디오와 세탁기를 사는 편이 모두에게 훨씬 낫다. 철수는 엄마에게 나 말고 누나에게 기대를 하든지, 아니면 공부 기능을 갖춘 아이를 새로 낯아 보는 게 어떠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철수는 엄마에게 제품 보증기간이 훨씬 지나서 환불도, 반품도 할 수 없는 물건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떄도 그 정도의 상활 감지 센서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으니까.(p.53)
|
|
|
|
|
다리미로 음악을 듣고 라디오로도 빨래를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다리미는 옷을 다려야하는 것이고 빨래는 세탁기로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대체 인간을 한가지만 수행할 수 있는 전자제품 취급을 하다니 이럴 순 없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인간이라고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
|
|
|
ㅡ어젯밤 지켜 줘서 고마워.
오류가 아니라 기능을 만들어 준 건가. 철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그녀의 문자를 보며 의미를 곱씹고 있는데, 그새 문자 한 통이 또 들어왔다.
ㅡ나 말고 평생 지켜 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나.
별점은 계속 깎여 나가고 있었다.(p.122~123)
|
|
|
|
|
철수의 별점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매겨진다. 그가 유용하게 쓰였는가 아닌가에 의해 그의 기능이 최상일 수도 최악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싶은 일은
|
|
|
|
철수는 조금 더 자 두려고 눈을 감다가 문득 깨닫는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쓸 수 있는 사람도, 그걸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사람도 결국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p.221) |
|
|
|
|
철수는 안다.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말이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형식의 기발한 소설은 정말이지 매력 그 자체이다. 앞으로 전석순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새로 나오게 된다면 기대하며 찾아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