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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받아 들고 처음엔 난감했다. 무려 500쪽이 넘어가는 책을 읽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고, 성지순례라는 고정관념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읽어보니 단순히 알고 있던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이미지만이 아니라 스페인이 품고 있던 시간과 공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평생을 스페인을 드나들며 살고 싶다고 한다. 스페인을 사랑하는 이유는 스페인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마을에 훼손되지 않은 성지와 교회당을 둘러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작가의 여행은 단순히 보고 듣고 느끼는 차원의 여행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방대한 서사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현재에 발이 묶여 있다. 무수히 많으 창들이 그려진 그림 앞을 지나간다.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이 벽 하나를 몽땅 차지 했는데도 끝이 안 보인다. 이게루엘라 전투를 묘사한 그림이다. 말도 병사와 똑같은 색깔로 그려졌다. (중략) 나는 마치 군대를 사열하는 지휘관처럼 그 앞을 뚜벅뚜벅 지나서 사람들을 따라 왕좌실로 들어간다. 다른 삶들은 다시 자리를 옮기지만 나는 잠시 서서 왕좌를 바라본다. 그저 작은 의자일 뿐이다. 페리페는 거기 앉아서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바라보며너 자기가 한번도 가 본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가 볼일이 없을 머나먼 영토를 생각했을 것이다.(206쪽)  
   
   
    나는 다가서는 길이 가로막힌 세기와 순간을 그대로 지나친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단단히 잠가 둔 세계가 어떤 곳인지 한번 맛이나 보라는 것인지 지도, 책, 편지 따위를 추려서 유리 진열장에 넣어 둔 곳이 있다. 날개가 다 해어진 파란 새 한 마리가 찢어진 깃발을 부리에 물고 리오 틴토 강 위로 날아간다. '1730년: 아카풀코 항구 설계'에는 산 디에고 정착민과 주둔군의 현황도 담겨 있다. 지도에는 항구의 수심도 나와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1730년 아카풀코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안다. 그러나 지도의 시간은 1730년에서 멎었으므로 그 다음의 수심은 모른다. (260쪽)  
   

한적한 마을을 둘러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작가의 입장을 느끼려는 것처럼 작가의 그 옛날 스페인을 다스리던 왕이 되어 생각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과 스페인에 대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미술과 문학에도 조예가 깊음을 알 수 있다. <시녀들>이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벨로스케스와 수르바란의 그림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었다. 또한 돈 키호테, 라 만차로 가는 길 부분도 정말 재미있었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돈 키호테>는 최초의 진정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현실이라는 것이 가하는 온갖 제약을 엄어서면서 상상력이 현실을 제압하는 데 있다고 한다면, 천재 세르반테스는 상상력의 위력을 딱 부러지게 보여 주었다. 지금부터 거의 4세기 전에 허구의 인물이 살았떤 집과 그 속에 있는 화덕과 침대와 주방용품을 내가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부터가 바로 상상력 덕분이 아니겠는가.(171쪽)

 
   

 산티아고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성지 순례지라고 알고 있다. 까미노를 걸으며 성 야고보가 묻혔다는 그곳 산티아고로 사람들이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걷기를 통해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일까? 성지를 찾아가다보면 깨닫게 되는 인생의 진리가 있기 때문일까?  

네덜란드의 노작가는 산티아고로 가기 전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 간다. 그리고 그곳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여행을 한다. 나는 그것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여러해에 걸쳐 쓴 글들을 단숨에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가 들렀던 곳들을 따라가며 작가의 자세한 설명을 귀기울여 듣는 재미가 솔솔한 책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책이 내게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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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2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다른 느낌의 리뷰 ^^ 네요~
올리신 글을 읽으니 괜찮은 책으로 다가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좀 해봅니다.

가을의 끝자락입니다. 꿈섬님 즐거운 날이 되시길 빌겠습니다.!!

꿈꾸는섬 2010-11-24 00:43   좋아요 0 | URL
다른 느낌...ㅎㅎ
여전히 가을인건가요?
전 요새 겨울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거든요.
바람결님도 즐거운 날이 되시길 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