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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없이 남김없이
김태용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을때, 우리과 선배가 내게 이것 저것을 물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하는 말이 "넌 참 모던한 놈이구나." 하더라. '모던하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았지만 그게 그래서 어떻다는거지?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고, 가끔 내가 만나는 책이나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선호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서 '아, 난 참 모던하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한참 대두되었던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거론되던 책이나 음악 그리고 영화들에 대해 상당히 재미없어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매력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말이다.
책이 온 날부터 틈만나면 이 책을 붙잡았지만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작가의 의도대로 언어에 구멍이 났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소설이라는 장르의 개념을 넘어선 소설을 읽는 일은 정말 힘에 겨웠다. 게다가 툭 던져놓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표현,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를 고민하며 뿌리, 근본, 기원, 근원......뭐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막연한 생각만 나열될뿐, 도저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찝찝함을 안고 계속 책을 읽었다.
서사의 줄기가 없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잔인하고 참혹한지 작가는 알까?
어지간하면 작품의 뒤에 실리는 해설이나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을 읽지 않고 서평을 쓰려고 하는데 이 책은 중간쯤 읽다가 지쳐 작가와의 인터뷰 글을 읽었다. 솔직히 인터뷰도 짜증이 확 솟았다. 그래, 너 참 잘났다 싶었다. 문학이라는 테두리에서만 가능한 소설의 형식을 파괴한 소설을 쓰고 싶었단다. 오히려 시였다면 좋았겠단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자신은 시를 쓸 생각이 없고 소설을 쓰고 싶었단다. 언어의 구멍을 내고 싶었단다. 그래, 정말 언어에 구멍이 났다. 그 많은 구멍들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이해도 되지 않았다. 정말 차라리 개들의 언덕으로 뛰어 올라가 주둥이가 돌아간 개의 주둥이를 치고 싶어졌다.
이 소설은 인물과 사건, 사물만이 존재한다. 그, 그녀, 미파, 뭐, 개, 냉장고, 의자, 책상, 카레, 음경, 음문, 약방, 지하도, 매트리스......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사가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사의 줄기는 모두 동강나 있었다. 마치 컬트 영화를 보듯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나쁜피>를 떠올렸는데 작가의 영감이 <나쁜피>에서 나왔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역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아서 내내 불편하고 욕지기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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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뭐 쏟아지는 얼굴을 붙잡고 보아도 여자애로 추측되는 얼굴은 없어 심히 낙심하여 내가 왜 이 마을에 다시 돌아오고 싶어 했는지 다시금 알게 되면서 돌아서 마을회관을 빠져나오려던 찰나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하체가 잘린 소녀가 몸을 질질 끌며 나에게로 다가오며 뭐뭐뭐 소리를 내기에 좀 똑바로 말할 순 없니, 라고 다그치자 다시금 뭐뭐뭐거리며 피를 토해내기에 도저히 들어줄 수 없어 누군가의 머리를 들어 어쩌면 내가 찾던 소녀일지도 모를 소녀가 입을 다물 때까지 머리통을 갈겨주고 나선 이미 죽어가고 있는 자를 죽이는 것은 살인인가 아닌가 하면서 나의 못돈 버릇 중의 하나인 쓸데없는 사유에 다시금 사로잡힌 자신을 타이르며 쉬엄쉬엄 걸어 나와 마을 입구를 지나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입술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장승이 나를 보며 기괴한 웃음을 웃기에 나 역시 살육의 공모자처럼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야비하고 비굴하고 께름칙하고 잔인한 웃음을 내보려 노력했지만 나는 칼새처럼, 침을 질질 흘리던 개처럼, 하체가 잘린 소녀처럼, 뭐뭐뭐 소리만 낼 줄 알게 되었던 것이다.(15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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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말의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분의 리뷰도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도저히 읽어내기 싫은 문장으로 가득 들어찬 글의 조합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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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는 바다로. 나는 바다로 가서.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약 두알을 씹지.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약 두악을 씹지도 못하고 빨아 먹으며. 나는 바다고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약 두알을 씹지도 못하고 빨아 먹으며. 나는 바다로 가서 바라던 바를 달성하는 자를 원망하지 않지만 이라고 쓰고 나서는 약 두 알을 씹지도 못하고 빨아 먹으며 체리가 그려진. (생략) (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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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나는 정말 힘에 겨웠지만 이 글을 쓴 작가는 신이나서 썼을 것만 같았다. 소설의 형식을 파괴하고 시작과 끝의 경계도 없이 이리저리 독자를 개 끌고 다니듯 다녔으니 말이다. 이리저리 끌려 다녔더니 몸도 머리도 많이 지쳤다.
결국 한가지 인정하고 싶었던 건 작가의 오만한 천재적 자질이라는 것인데, 1930년대의 이상이 발표했던 말도 안되는 시들에 대한 경외심이 오늘에와서야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김태용이라는 작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못났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약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