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인의 시를 읽으며 눈 쌓인 거리를 가끔씩 내다본다. 시인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것인가? 언어 제조기? 시인은 천재의 영역이라고 못을 박아 얘기하는 여러 문인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한다. 

그의 언어 속에 녹아 있는 삶의 모습이 투명한 듯 하지만 보이질 않고, 내 삶도 알고 걸어가고 있는 듯 하지만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를때가 많다. 

살다보면 가끔 살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는데, 요즘이 그런 날이 아니었다 싶다. 나도 힘을 내어 무엇이든 찬란하게 이루어내고 싶다. 

 

 

찬란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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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1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잘보고 가욥^^

꿈꾸는섬 2010-03-11 11:10   좋아요 0 | URL
^^ 바람결님 어제 눈이 많이 내렸어요. 우리는 참 좋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불편했겠죠? 이제 눈 그만 와도 된다고 하나님께 얘기해주세요.ㅎㅎ

같은하늘 2010-03-1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섬님 덕분에 저도 요즘 일주일에 한권씩 시집을 빌려와요.^^

꿈꾸는섬 2010-03-12 15:05   좋아요 0 | URL
시를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이 참 좋죠. 요즘 알라딘 배송문제때문에 시도 잘 안 읽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