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이 시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하고 나왔다. 그랬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대학을 나와야만 하는 사회이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야할지 잘 모르며 당황해한다. '허둥대며'라는 말이 콕 와서 박혔다. 

오늘 처음 송경동 시인을 만났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의 거친듯 부드러운 언어에 매료되었다. 

참으로 멋진 사람이구나, 싶다. 

   
 

고등어 있어요 싼 고등어 있어요
저물톀 "떨이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내가 아직 질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가두의 시> 중 (13쪽)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절규의 시가 있고, 그것을 사랑한다는 시인, 정말 멋지구나. 

내일 다시 차분히 앉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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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0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를 읽고 참 좋았습니다.

꿈꾸는섬 2010-02-01 15:07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정말 좋은 시가 많아요.^^

같은하늘 2010-02-02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 시군요. 좋아요.^^

꿈꾸는섬 2010-02-03 05:25   좋아요 0 | URL
ㅎㅎ같은하늘님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0-02-0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경동 시인~ 기억해 둘게요. 시집도 챙겨보고 싶네요~

꿈꾸는섬 2010-02-04 20:55   좋아요 0 | URL
삶의 진솔함이 묻어 있는 시집이에요. 시인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시라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더라구요. 보면서 눈물도 좀 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