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만났던 최영미 시인의 시는 어느새 중년으로 흘러가고 있는 내게 마음에 와닿았다. 며칠 읽었던 <도착하지 않은 삶> 또한 내 마음에 꼭 와닿는 것들이 있었다. 나도 어느새 중년이 되어가고 있구나.....라는 씁쓸한 마음도 함께 들었지만 시를 읽으며 누구의 삶이라도 마찬가지였을거라는 위로를 함께 받았다.
어느새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코 눈에 밟힌 신록이 얼마나 청정한지.
눈을 뜨고도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병 안에서 허망하게 시드는 꽃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으로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나나타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
얼음처럼 낯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아침인지......저녁인지......
天地間에 곡예하듯
사반세기를 흘려보내고
게으른 생애가 지나가고
내 뺨에 닿는
차가운 아침의 칼날.
얼음처럼 낯선
지금 이 순간.
아이에게
빨강 노랑 초록
색종이를 접어
너는 무얼 만드니?
조각배 비행기 새 다이아몬드......
그래.
접을 수 있을 떄
실컷 접어라.
펼칠 수 있을 때
실컷 펴쳐라, 네 꿈을
머지않아 어른이 되면
함부로 펼치고 접지 못하리니.
청개구리의 후회
가지 말라는
길을 갔다
만나지 않으면 좋았을
사람들을 만나고
해선 안 될
일들만 했다
그리고 기계가 멈추었다
가고 싶은 길은 막혔고
하고 싶은 일은 잊었고
배터리가 나갔는데
갈아끼울 기력도 없다
나는 시를 쓴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혀를 깨무는 아픔 없이
무서운 폭풍을 잠재우려
봄꽃의 향기를 가을에 음미하려
잿더미에서 불씨를 찾으려
저녁놀은 너와 함께 마시기 위해
싱싱한 고기의 피로 더럽혀진 입슬을 닦기 위해
젊은 날의 지저분한 낙서들을 치우고
깨끗해질 책상서랍을 위해
안전하게 미치기 위해
내 말을 들지 않는 컴퓨터에 복수학 위해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움을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