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서 요즘처럼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흔의 할머니가 결국 드러누우셨다. 며칠동안 물도 제대로 드시지 못했기에 더 많이 수척해졌다. 더이상은 살이라는게 남아 있지 않는 것 같다. 뼈를 뒤덮고 있는 건 오로지 가죽뿐인듯 뼈의 윤곽이 오롯이 살아있다.
며칠 못 사실 것 같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엘 다녀왔다. 이제 더이상의 기력을 회복하실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또렷한 정신은 우리가 보고 있는 몰골에 비하면 너무도 정확해서 놀랄 지경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까봐 조금은 겁도 났는데 다행스럽게도 할머니는 우리 모두를 알아보시고 손을 내밀어 잡아주길 바라셨다. 손을 잡기전에 나도 모르게 차가울거라고 단정했던 손이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고, 어디 아픈데는 없냐고 여쭤보니 아무렇지 않다고 또렷이 대답까지 하신다. 그래도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얼굴이 아니다. 머리카락도 대부분 빠져서 얼마 남아 있질 않았고 거의 가죽만 남은 할머니의 모습은 정말 보기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계신듯 아이들이 먹는 과자부스러지도 받아드시고 물도 조금씩 받아 드셨다. 죽조차 드시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위해서 오빠는 이온음료를 사왔고 그걸 조금씩 받아 드시면서 좀 더 기운을 차리시는 것도 같았다.
어떤 집은 멀쩡하게 생활하시다가 하룻밤새 운명을 달리하시는 분도 계신다는데 우리 할머니는 정말 끈질기게 이렇게 표현을 하면 안되지만 몇년새 기력을 잃었다 회복하시기를 반복하셨었다. 그런데 이번엔 기력을 회복하신다는건 도통 무리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얼마를 누워계실까를 헤아리는 것 조차 경망스럽긴 한데 마음 한편으론 다 늙어서까지 시어머니 수발을 들어야하는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벌써 다섯해전에 환갑을 지내신 엄마는 여전히 시집살이를 하고 계신 거다. 그런거 생각하면 그냥 편안히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으면 좋으련만 할머니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정말 진심인지 빈말인지 모두가 기운차려 일어나시라고 위로를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뜨악한 기분이다. 내 입에선 도무지 그런 말들이 나오질 않는다. 할머니를 위한 말이라곤 고작 '편안하게 마음을 가지세요.' '늘 좋은 생각을 하세요.' '어디 아프진 않으세요?' 가 전부이니 말이다.
어릴땐 얼른 나이가 들었으면 싶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모든게 어렵고 쉬운게 많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요새는 천천히 나이가 들었으면 싶은데 점점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렇게 나도 나이가 들겠지 생각하면 나도 삶에 애착을 아니 집착을 보이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면 마음 한구석이 먹먹하다.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훌훌 털어버리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잠시 소풍왔다 생각할 수 있을까? 내 삶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도 잘 모르는채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향해가야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그게 결국은 정해진 수순이란걸 부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가족들은 할머니를 보내야할 것 같다. 다만, 부디 편안히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단 바람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할머니, 좋은 세상으로 가셔서 부디 편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