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요즘 내가 현준이에게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니었나 되돌아보았다. 

유치원에 보내면서 내 마음과 다른 것들, 그리고 너무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매달려서 정작 내가 현준이의 마음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건 좋은 이웃의 조언에서 비롯된거다. 

엄마와 떨어져 있기 싫은 마음을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실망감으로 애둘러 표현하는게 아니냐는...... 

생각해보니 나도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유치원 보낼 준비로 바쁘고, 유치원 끝나면 놀이터에서 조금 놀고, 또 이웃형과 놀고, 집에 와서는 저녁준비하고 집정리하고 저녁먹고나면 현수랑 현준이랑 둘을 상대해야하니 현준이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건성건성 물어보고 대꾸했던 것만 같아 현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마침 현수가 먼저 잠이 들었고, 잠깐 낮잠을 잔 현준이에게  

엄마 : 유치원에서 뭐 할때 재미있어? 

현준 : 공부할때가 재미있지. 

엄마 : 무슨 공부? 

현준 :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그런거 하는게 재미있지. 

그 뒤로 현준이는 끊임없이 얘기했다. 오늘은 수영을 했는데 차렷하고 발목 돌리고 손목 돌리고 머리 돌리고 허리 돌리고 다리 돌리고 눈은 손으로 꾹 누르고 물에 들어갈때는 계단으로 조심조심 내려가고 그랬지. 재미있었는데 너무 조금밖에 안해서 재미없었어.(3시에 끝난다길래 2시50분에 내려갔는데 이미 옷을 갈아입고 원장실에 있었다. 시간개념이 없는 유치원......그래도 참아야지)  

엄마 : 어제 그림 그리기 재미있었어? 

현준 : 어, 나비 그렸는데 동그라미를 그려서 얼굴을 그리고 몸통은 길쭉하게 그리고 날개는 크게 두개 그리고 아래에는 작게 그려. 그럼 나비야. 나는 엄마, 아빠, 현수 나비 그렸어. 많이 그렸어. 

그 뒤로 현준이는 재잘재잘 계속 떠들어댔다. 그만 잘까? 하고 물으니까. 엄마, 한가지만 더 얘기해도 돼? 그런다. 

현준 : 엄마, 그런데 현준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때 엄마 호랑이가 어떻게 했다고 그랬지? 어슬렁 어슬렁 와서 엄마 잡아 먹으려고 그랬어? 

엄마 : 아니, 엄마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대문을 활짝 열었는데 안개속을 헤치고 커다란 호랑이 한마리가 엄마한테 걸어왔어. 

현준 : 겁 안났어? 

엄마 : 어, 무섭진 않았는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 그런데 호랑이가 엄마한테 덥석 안기더라구. 그러고나서 현준이를 낳았지. 그걸 태몽이라고 그러는 거야. 

현준 : 현수는 무슨 꿈 꾸었는데? 

엄마 : 현수가 엄마 뱃속에 있을때, 아빠랑 현준이랑 엄마가 집에 있는데 호랑이 한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우리 집으로 들어왔지. 내쫓으려고 했는데도 안나가고 안방에 앉아서 우리를 보고 씩~~웃더라. 

현준 : 그 호랑이도 안 무서웠어. 

엄마 : 무섭긴 귀엽고 예뻤지. 현준이도 호랑이가 좋다고 그랬어. 

그 뒤로는 팥죽할멈과 호랑이, 호랑이와 곶감의 호랑이에 대한 얘기를 줄줄이 늘어 놓았다. 그러고도 잠이 오지 않는지, 빨간머리앤, 미래소년코난, 바람돌이, 은하철도999, 엄마찾아삼만리, 보물섬, 만화영화주제곡을 줄줄이 불러댔다.(가끔 텔레비전에서 본 것들인데 제대로 본적도 없는 만화영화주제곡을 엄마가 불러주는 귀동냥으로 배운 것을 이제는 제법 잘도 부른다) 

그러고도 한참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했다. 

내일 아침엔 유치원에 새로 들여온 닭이 알을 낳았는지 확인해보자고 약속했고, 그 뒤로 개는 알을 낳는지, 고양이는, 까치는, 고래는, 계속되는 질문에 엄마도 잘 모르는 건 내일 책 찾아보자고 약속하고 다짐하고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두시간을 넘게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다보니 현준이가 엄마와 얼마나 많이 얘기하고 싶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무심했던 나의 미안함을 현준이가 알기는 할까. 현준아, 정말 미안했어. 내일부터는 좀 더 세심하게 너에게 정성을 다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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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3-18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가 오늘밤 달콤하게 잘 것 같아요. 꿈꾸는섬님도 굿나잇이에요~!

꿈꾸는섬 2009-03-18 22:07   좋아요 0 | URL
어젯밤엔 정말 잘 잔듯 유치원에 선뜻 따라나서고 닭장에 가서 알 낳아 놓은 것도 보고 병아리는 언제 나오나 궁금해하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유치원 건물로 들어서려니까 거부하더라구요. 오늘은 목놓아서 울더라구요. 엄마따라 집으로 가겠다고......유치원에 있기 싫다구......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건가 싶더라구요...

무해한모리군 2009-03-1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게까지 안주무셨네요.
호랑이라 너무 멋져요.. 제 태몽은 새끼돼지 세마리가 엄마 손가락을 물었다든데 ^^
전 지덕미를 갖춘 딸아이가 태어날 꿈이 었다고 평하고 엄마는 성질내미 고약한 딸을 낳을 꿈이었다고 평합니다 ㅋㅎㅎ
현준이는 참 다정한 어린이인거 같아요 ^^ 동생은 오빠가 유치원에 가서 심심해서 어찌지내나요?

꿈꾸는섬 2009-03-18 22:08   좋아요 0 | URL
잠이 잘 안오네요. 현준이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가 아닌가싶기도하구요. 정말 어떻게해야할까 싶어요.

2009-03-20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水巖 2009-03-18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가 분리불안에서 벗어나 이제 잘 적응하게된것 축하합니다. 이제야말로 성장하는거죠. 짝짝짝 -

꿈꾸는섬 2009-03-18 22:09   좋아요 0 | URL
수암님 말씀대로 잘 적응한 것 같진 않아요. 오늘 아침에도 어마어마하게 울어댔거든요. 다음해에 보내볼까도 생각하고 그 다음해에 보내볼까도 생각하게 되는데 또 여기서 그냥 멈추는 것도 잘못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엄마 마음도 갈팡질팡하네요.

2009-03-18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09-03-18 22:18   좋아요 0 | URL
제게 많은 위로가 되는 글이에요.^^ 현준이가 적응을 잘 하며 일주일을 보냈는데 한 친구에게 맞고 그날 점심을 못 먹었고, 엄마에겐 혼이 날까 말도 못하고 그러다 4시쯤 선생님 전화받고 알았죠. 그래도 쉽게 입을 열지 않다가 잠자리에서 주저리주저리 얘기해서 전후상황을 파악한거구요. 그런데 다음날 또 아이가 점심을 먹지 않고 왔는데 원장은 생활 잘했고 밥도 잘 먹었다고 얘길해서 그날 예정대로 도서관에 다녀오고 아이를 이리저리 데리고 돌아다녔는데 도시락이 설거지해서 보낸 그대로라 너무 놀랐어요. 그걸 확인하고 바로 전활했더니 선생님 이제 막 전화를 하려던 참이라고...너무 기가 막혔어요. 아이가 거부를 해도 흔적은 남아 있어야했고, 정말 먹이지 못했다면 제가 아이를 데려가는 시점에 알게 해줘야하는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아이가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울때도 그저 그치기만 기다리면 안되는게 아닐까요? 이런저런 제가 다 보지 못한 상황을 제 마음대로 상상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했고, 그래서 제가 서운한건 이틀동안 아이가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도 제대로 연락하지 않은 담임선생님에 대한 서운함이 컸는데 그때부터 현준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더라구요. 그래도 그것도 넘어야할 산이려니 생각하며 보내고는 있는데 좀 전에 잠꼬대로 "엄마 보고싶어 이이잉~~~"하며 울더라구요.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이걸 어떻게 한달을 채워서 기다려야하는건지, 아니면 여기서 주저앉아야하는건지 고민고민하고 있었답니다. 조금 늦게 사회에 나간다고 문제되진 않겠지라는 생각도 들구요. 내년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기도하구요. 내년에도 힘들면 후년에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아직도 엄마는 갈팡질팡 하네요. 흔들리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상처를 줄까 싶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