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친구에 목말려있던 현준이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인 친구사귀기에 나섰다. 같은 단지에 현준이 또래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들 놀이터에서는 도통 만날 수 없었으니... 

어제 현준이와 다른반이지만 같은 단지에 살고 있는 5세 남자아이, 이제 5일정도 얼굴 보고 엄마들도 인사 나누고 하니 그 애 엄마가 우리집에 놀러오고 싶단다. 그래서 잠깐 들어가자고 했는데 그 아이의 막무가내 행동에 현준이와 내가 너무 놀랐다. 남의 집을 자기집처럼 생각하며 물건을 함부로 다루고 친구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물론 다섯살 남자아이가 얼마나 예의를 차리겠느냐만 자기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발로차고 현준이 물건을 마구 빼앗고......결국 그만 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가려고 신발신고 있는 아이에게 "너희집엔 언제 놀러갈까?" 했더니, "오지마, 안돼. 싫어!" 그렇게 말을 한다. 그말에 속으로 너무 잘됐다 싶어서 "그래? 그럼, 너도 이제 현준이네 놀러오지마." 그렇게 대응해주었다. 그 아이가 돌아가고 난 다음 현준이 " 욕심부리고 함부로 하는 애랑은 놀기 싫었어. 엄마." 그런다. 내가 너무 미안해서 현준이 꼭 끌어안고 다음부터는 예쁜 친구들이랑만 놀자고 말해주고 미안하다고 했다. 

오늘은 내가 조금 늦게 데리러가서 어제 만났던 아이와 다시 만나진 않았다. 그런데 교실에서 나온 현준이 얼굴이 너무 안좋아보였고, "엄마, 너무 보고싶어서 울었어." 한다. 유치원 앞에서 꼬치꼬치 캐묻는게 싫어서 집에 데려가 물어보려는데 녀석이 놀이터에서 놀고 가잔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놀려주고 또 옆라인에 살고 있는 6살 형이랑 놀고 싶다길래 그집에 잠시 들러 놀다왔는데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현준이가 아침에 조금 울고 점심무렵 하도 울어서 점심도 못먹었단다. 그 이유는 선생님도 잘 몰랐다며 현준이 상태를 물었는데 미처 현준이랑 유치원 얘기를 하지 못했고 아침에 가기 싫어하는걸 보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나서 콧물이 너무 심해 병원에 다녀오고 배가 고프다길래 우선 밥을 먹였다. 그러고 작은아이랑 씻겨서 잠자리에 눕혔는데 갑자기 한다는 말이 "엄마, 나, 유치원 가기 싫어." 그런다. "왜, 오늘 무슨 일 있었니?" 하고 물으니까 그제서야 "챙피해서 죽을 것 같아. 유치원에 가기 싫어." 그런다. "친구들이랑 안 좋은 일 있었니?" 했더니 점심먹기전 손을 씻고 있는데 한 아이가 손을 비스듬히 세워 손등을 때렸단다. 그래서 울기 시작했고 그래서 점심을 먹지 못했단다. 그 아이에게 맞아서 울었는데 그게 너무 챙피하고 그래서 죽고 싶단다. 그 얘기를 듣는데 속이 많이 상했다. "현준아, 친구들은 여러 아이들이 있어. 그럴땐 '하지마. 때리는 건 나빠. 내 몸에 손대지마.'하고 말해주자고 엄마, 아빠가 얘기했줬어지? 기억 안났어?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엄마 말대로 '하지마'하고 큰 소리로 말하자." 그랬더니 "그게 말이 잘 안나오고 엄마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엄마가 없으니까 말을 못하겠더라구."하더라. 아직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쌓이지 않았을텐데, 그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선생님에게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억울한 마음에 계속 울어대기만 했던 것 같다. 그 상황을 떠올리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하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저렇게 상황에 부대끼며 살아가는거라고 생각하며 참았고 말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 선생님께 쪽지로 남겨 내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현준이가 아이들 속에서 너무 여리기만 할 것 같아 조금은 조바심도 나고 안달도 난다. 그래도 현준이가 스스로 깨우치고 단단하게 영글기를 기다려야할 것 같아 조심스러워진다. 

오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낮동안 제대로된 관심을 주지 못해서 현준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아직 제대로 말로 표현해내지 못해서 안타깝고, 선생님과의 신뢰관계가 아직 생겨나지 않아서 불안하고, 거칠고 함부로 행동하는 드센 아이들 속에 여린 아들을 내놓고 자꾸 상처를 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현준이가 이틀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하니까 더 가슴이 아프다. 부모가 되었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싶은게 자식의 상처가 아프지는 않을까 덧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졸임을 해야한다는 것을 오늘 새삼 느낀다. 

현준아, 힘내. 엄마, 아빠가 너의 버팀목이 되어줄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게. 하지만 너 스스로가 깨고 나오지 않으면 세상 구경을 할 수가 없어. 좀 더 튼튼하고 강인해졌으면 좋겠어. 몸도 마음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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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3-1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 정말 많이 서러웠겠네요. 우리 예린이도 친구들하고 저런 일 있을때 대놓고 말을 잘 못하는지라 속상한적이 있었어요. 근데 가만히 있지 마시고요. 선생님한테 바로 얘기하셔야 할 듯한데요. 그 애가 다른 아이한테도 그럴 수 있고 그렇다면 저맘때는 선생님이 잘 타이르면 또 말을 잘 들을때기도 하니까요. 아이들이 부모품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가는게 참 만만치 않습니다.

꿈꾸는섬 2009-03-11 23:05   좋아요 0 | URL
현준이 유치원 가방에 메모를 남겼어요. 내일 전화통화하기가 오전에 바쁘실 것 같아서요. 그 아이에게 현준이에게 사과시켰으면 좋겠다고 했고, 잘 다독여달라고 뭐 그런 내용의 메모를 남겼으니 내일 선생님께서 잘 해결해주시길 기다려야죠. 참 속이 상하네요. 엄마, 아빠가 없는 상황이라 더 서러웠던 것 같아요. 점점 심지가 굳은 아이로 자라기만을 기다려야죠.ㅠ.ㅠ

마노아 2009-03-12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가 세상 속에서 부딪히고 여물어 가는 과정이네요. 안타깝고 또 애틋한데, 이 글을 먼 훗날 현준이가 보게 되면 엄마가 보여주는 그 애정에 참 뭉클해 할 것 같아요. 현준이 파이팅이에요!

꿈꾸는섬 2009-03-13 00:16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해요. 고마워요^^

水巖 2009-03-1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어릴때 생각 나는군요. 교실 밖 복도에 엄마가 안 보이면 안절부절했던 그 시절...
왜 그렇게 섪고 외롭던지.

꿈꾸는섬 2009-03-13 00:17   좋아요 0 | URL
수암님,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죠. 그 외로움을 선생님과 친구들이 채워주길 바라는데 그게 아직은 너무 무리인가봐요. 세상에 너무 일찍 내보낸 건 아닌가 그런 걱정이 조금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