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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그런 책이 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고 그래서 많은 찬사와 명성을 얻는 작품이어서 선뜻 읽기가 망설여지고 과장을 하자면 좀 두려운 작품들이 담긴 책들이 있다. 주제가 예사롭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문제작들도 있다. 그런 거장들의 책들을 읽기가 두려운 것은 많은 다수의 독자들이 검증한 작품이기에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읽지 못할까봐 망설여지고 너무 작품 속 이야기에 심취하여 마음의 감정이 흔들리게 될까봐 멈칫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몇년 전 개정판으로 '더 리더'가 나오기전에 책을 구입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못 읽고 있다. 내가 좀 더 깊이를 느낄 수 있을 때 읽어볼래, 또는 난 지금 그런 중후한 이야기 속에 빠지기에는 감정이 아니야 하면서 계속 미뤄두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남자'를 먼저 읽게 되었고 완벽하게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글 속에 심취하게 되었다. 6편의 각기 다른 사랑의 밝음과 어둠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는 사랑을 화려하게 치장하지도 초라하게 하지도 않으면서 '사랑' 그 자체를 보여주며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묵직하고 먹먹하게 만든다.
6편의 사랑이야기는 독일역사를 맞물려 개인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 '소녀와 도마뱀'에서는 아버지 서재에 걸려있던 그림 '소녀와 도마뱀'을 보면서 자란 한 소년이 청년이 되어 그 그림을 물려받게 되고, 그림 속에 숨겨져 있던 아버지의 과거사와 그림의 과거를 알게 되며 아버지가 집착했던 그 무엇인가가 자신의 삶을 똑같이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앞으로 나아기 위한 청년의 심적 갈등을 독일의 과거사와 현재를 이어가며 보여준다.
'다른 남자'는 아내가 암으로 고통스럽게 죽은 후 아내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남편은 자신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알지 못했거나, 알고 있었어도 무시했던 아내의 다른 모습을 다른 남자의 시선 속에서 발견하게 되고 그를 직접 만나러 가는 이야기이다. 아내인 척하면서 편지를 쓰는 남편의 모습과 다른 남자를 찾아가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또 다른 작품은 가장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인 '청완두'가 있다. 성공, 명예, 돈, 여자 등 모든 것을 다 가진 한 남자가 있는데, 그는 결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 집 살림을 하면서 세 명의 다른 삶을 즐긴다. 그러다 그의 삶의 조각들의 엉키기 시작하면서 그의 추락은 시작되고 세 명의 여자들의 현실적인 반란이 시작되어 남자를 궁지에 몰아넣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젤 관심이 갔던 것은 여자들의 복수가 아니고 그 남자의 심리상태였다. 항상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삶을 꿈꾸고 연기했던 그의 마음과 마지막 부분에서 상황판단을 빨리 내리고 자신의 삶에 순응하는 장면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었다. 만약 나였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마도 나 역시 그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외에 '외도', '아들', '주유소의 여인'도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좋은 작품들이었다.
이젠 '더 리더'를 읽을 자신이 생겼다. 작가가 보여주는 글의 흡입력을 믿고, 절제된 사람과 사람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잘 표현한다는 사실에 매혹되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힘든 삶을 살아왔고 전쟁을 치른 아버지 세대와 자식들의 삶을 과거와 현재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변화된 삶을 꿈꾸는 자들과 일상의 평온함에 안주하려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은 삶의 묵직함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정체되어 있는 삶에서 일탈을 꿈꿀 수 있게도 만드는 책이라 마음에 들고 꼭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 세월이 더 흐른 후에 읽었을 때의 느낌은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