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 ANGST
김인숙 지음 / 북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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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쌔끈하니 이쁘다. 개인적으로 표지족한테는 이런 표지면 그냥 반한다. 물론 내가 표지에 반하는 기준은 일률적이지 않다. 어떤건 이뻐서, 어떤건 귀여워서, 어떤건 와닿아서... 그러니 내가 표지에 반하거나 꽂히는 기준은 내 맘대로 인 거다. 여튼 이 책 표지는 나를 유혹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책 소개글도 맘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소설을 그리 즐겨읽지 않는 사람으로서 뭔가 신비스럽고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자작나무 숲에서의 이야기 라는 기대감이 좀 있었던 거 같다. 호러를 기대하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미스테리하면서 스릴러가 기대되는 맛은 있었다. 그리고 처음 시작은 그러했다. 누군가 시체 두구를 차에 싣고 가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니 오오오오~ 하게 되는거다. 시작이 좋다 시작이.



어느날 곡교라는 시골의 쓰레기집인 산1번지에서 할머니가 깔려 숨졌다는 소식이 유튜브로 생방송 되고 경찰들이 출동하자 한때는 구청에서 이곳을 담당했던 정보하도 달려온다. 처음은 정보하의 시선이 좀 담겨있긴 했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고 모으기만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할머니. 엄청난 대저택을 온통 쓰레기로 채우고 치워도 한순간 다시 채워버리고 그걸 또 묵인하는 곡교의 사람들. 왠지 할머니를 묵인해 주는 듯한, 인정해 주는 듯한 사람들.

그 산1번지에는 무수한 사연과 알 수 없는 실종들, 그리고 쓰레기더미에 깔린 할머니의 죽음까지 온갖 이상한 일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갑작스레 사라진 할머니의 남편과 아들, 그리고 아들이 사고쳐서 15살에 아이를 낳은 며느리인듯 며느리 아닌 모유리의 엄마까지.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이 묘한 그 집안에서 풍기는 의문을 더 가중시키는 계기를 일으킨다. 원래 일본인 갑부가 살다가 급하게 도망가며 장애가 있는 딸만 두고 가서 그 딸의 원혼이 떠돈다는 "귀신들린 집"이라는 소문과 그들이 남기고 간 돈이 마당에 독으로 숨겨져 있어서 퍼 나른다는 소문등등. 해괴하면서도 부러움이 섞인 산 1번지.

그런 부자 며느리인 할머니는 왜 쓰레기를 모아 온 집안을 뒤덮을 수 밖에 없었을까? 과연 그 집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넘쳐나오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런 집의 손녀 모유리는 어떤 비밀을 알고 살아가는 것일까.

특히나 재개발과 맞물리며 유일한 상속녀가 되는 모유리에 대한 시선은 처음엔 "그 이상한 애"에서 "로또 맞은 애"로 애칭이 바뀌기까지 한다. 할머니의 죽음속에서 신원불상의 사람이 발견되고, 사람의 뼈가 나무밑에서 발견되며 뭔가 미스테리한 일들이 터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 계속된다.



결국 마지막으로 치달아 갈 수록 하나씩 밝혀지는 산1번지의 대저택 이야기는 저장강박의 할머니의 삶과 모유리의 삶에서 이야기들이 좀 복잡하게 얽히는 기분이다. 뭔가 명확하게 밝혀지는 게 아니라 뒷처리가 명확하지 않은 희미한 안개를 남기는 느낌?

초반의 미스테리를 기점으로 호기심을 치닫다가 마지막 안개를 이해 못한 나는 책을 다 덮고도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책에 대한 해설을 읽어도 저자의 이야기를 읽어도 내가 그냥 안개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 듯한 기분. 개인적으로 이런 모호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더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속에서 뭔가를 파헤쳐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실패한 기분이다. 이 책 말미 형사가 사건인지 사고인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듯 나 역시도 확실함을 즐기는 터라 안개를 걷지 못하고 책읽기를 마치고 말았다. 어쩔수 없지. 안개가 걷히지 않으면 걷히지 않은 그 나름으로 두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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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에게 배우는 자존감 대화법 - 개정판
문지현 지음, 니나킴 그림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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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상하게 "대화"나 "말하기"에 꽂혔다. 개인적으로 내 성격상 짜증은 겁나 내는 거 같은데 제대로 된 논리적인 대화를 잘 못하는 거 같아서 그부분에 대한 아쉬움이랄지, 뭔가 변화되고 싶은 그런거랄지.... 암튼 스스로에 대한 다름을 좀 만들고 싶어지는 거 같다. 굳이 이제와서 왜 그러냐 한다면, 그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일어난 일이라 책으로 인생사는 사람이다 보니 결국 뭐든 책으로 배우고 하는 습성이 있다.



정신과 의사에게 배우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내가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듣기도 잘하시지만 조곤조곤 말씀도 잘하셔서 이런 분들에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면 좋을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공황n연차)

이 책에서 여러 사례를 들어 내담자와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신 것들에서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와 닿는 부분도 있고 나랑 안 맞는 부분도 있고.... 모두 옳은 말씀이고 좋은 말씀이지만 내 사례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

부부사이, 연인사이, 일반적인 사이, 자녀와의 사이 등등 많은 관계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속에서 대화를 어떻게 잘 해야 하고 이어 나가야 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니 쉽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부분이 많았다.

특히 대화를 잘 하는 방법은 듣기가 우선이라는 점은 누누히 들어왔던 부분이지만 정신과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뭔가 더 잘 와닿는 느낌. 그리고 부정적인 말을 앞세우기 보다 긍적적인 말, 나를 개체로 이야기해서 상대를 설득하는 말등 어떻게하면 상대와의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나갈 수 있는지 쓰여있어 나름 도움을 받긴했다.



물론 내 자존감이 이 책 하나로 올라오지는 않겠지. 어쩌면 또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복습하는 느낌으로 써 내려간 터라 엄청 새로울 건 없었지만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말버릇들을 좀 더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긴했다.

어쩌면 나는 대화법이 아닌 다다다다다다 거리며 상대를 쏘아 붙이는 말들을 잘하고 싶었던 착각을 가졌던게 아닌가 싶다. 그게 대화법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런 대화법에 대한 욕구를 가졌던 거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반성도 했네. 나의 그런 무작위식 직선적인 대화법에 대해서.... 좀 더 차분하게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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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도 100권 읽기 목표를 못 이루고 말았다. (젠장할~!! -_-;;)

드라마 덕질을 좀 한 이후로 기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 따지고보면 딱 이정도가 늘 나의 한계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그냥 100권은 늘 꿈이었던 거고.. 몇년 좀 이룬다 싶었지만 그건 TV나 영화보며 딴 짓 안하고 책만 팠을때 이루어졌던게 아닌가 싶다. 요새는 TV도 별로 안 보는데 책 진도 안나가네..

74권 읽기에서 2025년은 마무리.

그래도 뭐 고나마 이룬게 있다면 집에 있던 책을 600권 정도 정리한 거.. 그걸로 위로를 삼아야 할 듯.

지금은 또 잠시 주춤하고 숙제 책 하며 쌓이고 있는데 올해도 작년처럼 책을 왕창 정리할 수 있는 한해가 되길..제에발~~~~~

그러고보니 2007년부터 기록해서 이제 드뎌 2000권을 넘기는 건가? 그것보다 더 읽은 거 같은데 각 잡고 기록 시작한걸로 하니 이제서야 겨우 2000권 넘기는 게 됐다. 그럼 이 목표도 새로 새워볼까?

죽기전에 만권은 읽을 수 있겠뉘~~???



역시 소설이 압도적.. 에세이도 나름 그럭저럭 읽었고.. 역사도 좀 늘었다. 여행, 동화, 시, 자계, 요리, 육아는 이제 손 놨다. 그러니 저걸 이제 기타로 합쳐야 하는데... 이 그래프 3년만 더 쓰고 저 카테고리는 없애야 겠어.

요리고 육아고..이제 뭐..딱히.. 내 손을 떠난 걸로..ㅋㅋㅋㅋㅋ

아주 그래프가 멋지다. 소설과 기타에 치중된 삶이여.~

뭐 어쩌겠누. 세월따라 그리고 내 재미에 따라 읽는거지. 이제 책은 그냥 내가 즐기는대로 따라 가련다.



2022년 드덕의 세계로 들어선 이후부터 빌빌거리는 내 책 읽기. 그전엔 백권 나름 수월하게 넘기기도 했었는데.. 요 몇년을 반성한다. 아깝잖아~!! 많은 책 못 읽고 흘려버린 세월이...

뭐 책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만.. 우리 같은 책 덕후들에겐 아까운 시간인 게야.

그동안 나 뭐한거뉘? 2022~2023년은 드덕과 또다른 덕질에 좀 빠졌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월에서도 허덕이었다니... 나 너무 놓았네 몇년. 그니까 올해는 책태기 없이 꾸준히 책덕으로 빠져보자~!!

이넘의 책태기 올때 극복이 젤 문제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 헤어나오는 길이 두세달 갈때가 있어 문제임.



작년 그래프 보며.. 올해를 좀 계획해 본다. 역시 1~3월까지는 바짝인게야..

4월부터 9월까지 느슨해지는 달을 좀 조심해야겠다. 슬럼프 빠지지않게 조절을 잘해야 하지 않나 싶다.

오히려 젤 짧은 2월에 확 솟은 저 그래프 뭐임?

올해는 좀 고루고루 빛나는 그래프가 되길 바라며...

허접한 2025년 책 읽기 자각 타임 끝.

1년치라고 정리를 하긴 하는데 늘 정리할때마다 그래프 허접할쎄.

2026년에는 더 즐겁게 독서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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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유어 달링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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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일단 제목에서부터 그리고 띠지에서부터 이미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때 가장 완벽해진다." 라는 이상한 문구가 있으니 내가 스포 하는 건 아닌걸로.. 게다가 제목도 <킬 유어 달링> 이니...... 스포는 아닌걸로.

피터 스완슨이라고 하면 솔직히 두말하면 입아플 정도로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한테는 유명한 작가 아니련가. 많이 만나보지 못했지만 (쌓인책들에 치여) 그의 글을 읽고 와~ 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껏 왜 이 작가가 여자인 줄 알았을까? 이번참에 사진보고 알았네. 그동안 피터 스완슨 책을 너무 많이 건너뛰었던건가. 대체로 읽다보면 여자의 심리묘사를 너무 잘하는 거 같아서 그냥 나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작가가 여자인 줄 착각했었던 거 같다. 외국 이름이야 뭐,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리기 천지고.....



이 책은 특이하게도 결말을 먼저 보여주고 과거형으로 올라가는 형식을 취했다. 톰과 웬디, 이름만 들어도 너무 미국스럽고 흔한 느낌이 드는 주인공들. 하지만 뭔가 아기자기 이쁘게 잘 살거 같은 이름인데도 불구하고 이 둘 부부는 서로가 냉랭하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듯한 느낌. 특히 알콜에 찌들어 살며 바람피우는 걸 낙(?)으로 즐기는 대학교수 톰. 언제나 웬디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늘 자신을 경멸하는 듯한 차가운 느낌을 발견한다.

웬디는 예전 시를 잠시 쓰기도 했던 작가이기도 하지만 톰의 느낌대로 자신의 남편을 좋게 봐줄래야 봐줄수가 없다. 언제든 죽이고픈 마음이 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늘 알콜에 쩔어있고 처음 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친해지고 기억을 깜빡깜빡하는 남편이 불안하기만 하다.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사고가 그냥 사고가 아닌 안해도 될 말을 해서 자신들의 죄를 퍼트릴 것만 같은 조바심. 그의 입을 막아야 한다.

과연 도대체 이 부부의 비밀은 무엇인가? 어떻길래 두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경멸하듯 하면서도 또한 같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건지...... 과거에 결국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다.

결국 거꾸로 길을 따라가다보면 그들이 저지를 일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하지만 웬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이 너무 많구만. 물론 톰도 가장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에 늘 술에 찌들어 제정신으로 살아 갈 수 없는거지만.....

서서히 가정이 깨져가는 모습과 과거 서로가 서로를 못 잊어 하던 모습이 대비되며 결국 그들의 죄의 댓가가 이런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이 들기도 한다.



후반부 갈 수록 그들의 죄도 죄지만 특히나 마지막 웬디 고등학교 이야기에서 뭔가 띵~하는 느낌이 왔다고 해야할까. 톰은 모르는 완벽한 비밀. 엄마와 이모만 아는 비밀. 나는 오히려 그 부분이 더 충격적이었던 거 같다.

피터 스완슨의 이름답게 책 읽기 후루룩 잘 읽혔다. 어쩌면 이 책은 다 읽고나서 혹여 재독하게 되면 뒤에서 부터 읽어도 제대로 이야기를 맛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왠지 그렇게 좀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마지막 결론을 알고 읽는 거지만 어차피 이 책을 시작할때 결말을 아는거랑 뭐가 다를까. 거꾸로 읽는 맛도 나름 쏠쏠할 거 같다. 기존 그의 글에 비해 스릴감은 좀 떨어졌지만 역시 시간 순삭 잡아 먹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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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 조선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의 애도문 44편 AcornLoft
신정일 지음 / 에이콘온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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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전해내려 오던 말 중 하나가 남자는 세상에 태어나 세번 운다는 말이 었던 거 같다. 지금은 뭐 그런 택도 없는 말을 하나 싶지만 조선시대 사대부에서는 진짜 그러했을 거 같기에 전혀 택도 없는 말은 아닌 듯 하다. 간혹 지금도 그런 고리타분한 말을 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반박한다. 물론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고....

기쁨에도 눈물이 나고, 슬픔에도 눈물이 나는 일이 보통 일이고 눈물로 정화되고 순화되는 감정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럼으로 나누어지는 아픔을 치유하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은 그런 감정들을 고이고이 가슴속에 묻어 뒀어야 하니 지금 생각하면 감정적으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들이 사랑하는 자식, 아내, 형제, 자매 그리고 아끼던 친구나 스승을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빠져 글을 지어 올린 애도문이라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전 정약용 전기를 읽고 그가 형의 죽음에 엄청난 아픔을 드러낸 글을 봤었는데 그런 글들이지 싶지만 눈물보다 더 절절한 애도문들이 무려 44편이나 된다하니 누구의 글이고 어떤 이들을 애도했는지 궁금했었다. 게다가 내가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글도 볼 수 있을 거 같아 그 자체를 알아가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것의 반은 성공한 거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총 4장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이 자식을 먼저 앞세운 부모로서의 단장적인 아픔이요 2장이 아내를 보낸

애통함이고 3장은 형제, 자매를 보낸 비통함 4장은 친구나 스승을 보낸 이들의 제문이거나 시문이었다.

전체적으로 비통하고 애통한 마음들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는데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애끓음은 읽으면서도 안타까움이 앞섰던 거 같다. 특히 어린시절 마마 같은 병으로 8남매를 낳아도 반 이상 살아남기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터라 자식이 먼저 죽는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다. 특히나 아끼던 막내를 보내는 마음이 절절했던 이들이나 유배나 타지의 발령으로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소식만 전해들어야 하는 선비들은 하나같이 애통함이 곳곳에 묻어났다.

2장의 부인에 대한 애정은 생각보다 의외였다. 너무 격식만 갖춘 양반들의 부부사이만 보다보니 그리움과 절절함이 지금의 사랑에 비해 덜하지 않아 이런 표현도 서슴없었구나 싶으니 새롭게 느껴졌다고 할까.

아무튼 여러사람들의 글이 있어 워낙 유명한 사람인 정약용, 이덕무, 윤선도 같은 분들의 글도 있었지만 전혀 몰랐던 분들의 글도 있어서 그 분들의 간략한 소개글도 괜찮게 읽었다.



유일하게 여자분 한분이 쓴 애도문이 있었다는 건 좀 아쉬웠다. 애도문이 많이 있었다하더라도 조선시대엔 남자들의 글에 비해 여자들의 글은 대체로 전해져 오지 않았을 터니 그럴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깊은 아픔과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성품을 말하기도 하고 절절한 감정적 표현이 실리기도 하고 애도문을 쓴 사람의 성향이나 기리는 분들이 어떠한지에 따라 글들이 달라지는 것이 각각 개성 깊은 44인(중복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만의 글을 간접적으로나마 소소하게 느낀 계기가 된 듯하다.

흠향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 찾아보니 <흠향(歆饗)은 조상이 제상에 차려진 제사음식을 받아들이는 행위로 정의됩니다. > 이런 뜻이었구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감으로 짐작은 했지만 일부러 찾아보기까지 했다.

결국 이런 애도문보다 서로 살았을 때 잘하는게 최고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을 잊지 않고 기리고 있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돌아가신 사람들을 기리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들을 이렇게 기림으로서 그 깊었던 애정을 간직하고 기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도문만 읽다보니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소소한 계기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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