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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위안페이 평전 - 시대보다 먼저 ‘현대 중국’을 준비한 위대한 지식혁명가
후궈수 지음, 강성현 옮김 / 김영사 / 2009년 4월
평점 :
조카가 몇년전 중국이라는 나라에 1년간 유학을 하고 온 후 중국어에 관심을 가지길래 옆에서 지켜보다가 이상하게도 난 어학보다는 그들의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조카에게 이것저것 들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의 숨은 힘이랄까? 예전 우리나라를 자기들의 작은안방처럼 여겼던 막강함에 호기심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우리가 그들에게 굽신거리거나 하지않치만 그 넓은 땅덩어리와 그 많은 인구가 막강한 힘이자 권력임을 내세우는 그들이 위협적인 존재인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의 힘이 무조건적인 인구와 넓은 땅뿐인지 관심을 가지다보니, 중국이라는 모든것에 흥미를 느낀것 같다. 하지만, 매체에서 접하는 중국외에 다른 각도로 접근을 한다거나 알게되는건 사실 드문일인 듯 하다. 어쩌꺼나, 중국에 대해 알고자 하는 지금의 시기에 중국인물에 대한 평전은 그야말로 나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비록 그의 이름 한번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 생소함에 웬지 모를 기대감이 깊어진 느낌이었다.
"차이위안페이" 이 사람의 이름을 중국인들에게 거론하면, 하나같이 열변을 토한다고 한다. 우리나에선 마치 우리가 도산 안창호 선생에 대해 알고있듯이, 이들은 "차이위안페이"라는 인물에 대해 존경과 감사를 나타낸다. 게다가 실상 우리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룩 업적에 대해 정확히 둘러 말하기 어렵지만, 중국인들은 그에 대해선 눈을 반짝이며 얘기할 정도는 된다고 하니 그가 중국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수 있을듯 하다.
혁명가이자 교육가라고 할수 있는 차이위안페이는 선하지만 삐쩍마른 체질에 그야말로 어찌보면 허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덕에 자신이 좋아했던 여인의 집안에선 그와의 결혼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총명했던 그는 비록 주입식 교육으로 공자나 맹자를 줄줄 외워 과거시험을 치뤄야하는 현실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청나라 말기 한림원의 과거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고 앞길이 창창한 벼슬자리에 오를수 있게되자, 그제서야 결혼을 반대하던 여자집안에서 중매를 넣고자 했으나, 이미 혼인한 몸이었던 그를 놓친 안타깝고도 우스운 일화도 전한다고 하니, 사람을 겉으로 평가해선 안될 일인 것이다. 어째꺼나 그런 꿈같은 미래가 열렸지만, 정작 벼슬에 오르고보니 그가 느끼는 건 부패한 관리와 정부뿐이었다. 그런모습에 환멸을 느껴 과감히 사직을 하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조금씩 조금씩 혁명가로 변모해가기 시작했다. 그의 인품이 훌륭함에 주위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고, 그런연유로 독일, 프랑스, 미국 유학은 물론 베이징대학 교장과 교육부장관등 교육에 관련된 자리에 앉게된다. 부패하고 썩어가던 베이징 대학을 새로운 혁명의 요람으로 태어나게 함과 동시에 진정한 교육의 현장으로 만들기위해 많은 개혁과 혁신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학교들을 설립하고 청이 멸하고 새로운 중화민국의 사상이 싹트는 혁명의 시기에 공부와 함께 미술과 음악 발전을 위해서도 힘쓰는등 다방면에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런와중에도 쑨원과의 교류는 물론,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청정부에 반항하며 저항할때 그들의 편에서서 도운다. 사회적으론 존경받는 교육자이자 혁명가였고, 사적으로는 자신의 아내와 평등함을 지닌 온화한 남편이었다.
그의 사후 집한채가 없어 그토록 아끼던 책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청렴했으며, 남들을 위해 베풀기만 했는지 알수 있을 정도였다.
차이위안페이는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 청이 망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겨나기 시작할 혁명의 시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쑨원이나 루쉰등과 많은 교류를 하며, 새로운 중국의 문화기틀과 교육기반을 다진 사람이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갖춘 청렴한 인물이기도 했다.
500여페이지를 자랑하는 평전이었지만, 그의 업적들을 읽어나갈수록 그가 중국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낄수 있을 정도였다. 생각보다 책이 잘 읽히는 덕분에 지루한 평전이지만 금방 읽을수 있었다. 너무 많은 업적을 남긴터라 일일이 열거하기도 버겁고, 솔직히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부분들이 많치만 그가 없었으면 현재의 중국교육 또한 없을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알지 못한 인물에 대한 새로움을 알고자 한다면 역시 평전만 한게 없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