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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일본작가들의 책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읽기가 꺼려지는 작가들이 몇몇있다. 그중에서 요시모토바나나는 "N.P"라는 소설로 먼저 만나는 덕에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던 작가중 한명이다. 친구가 처음으로 추천해준 일본작가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그때는 일본작가에 대한 지식이 엄청나게 부족했던터라 "N.P"를 읽고난후 친구에게 강력하게 항의했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닐뿐더러 내가 기대한만큼의 신선한 재미와 감동이 없었고 오히려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로 나를 더 기겁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때문이었다. 친구는 "N.P"보다는 "키친"을 권했었고 "키친"은 나로하여름 요시모토바나나에 대해 새로 눈뜨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기대했던 느낌의 책이라고나 할까. 깊은 울림에서 오는 작은 감성이 요시모토바나나의 글을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후로 그녀의 글에 반해서 다른책들을 찾아 무조건 사재기 시작했었던거 같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요시모토바나나는 한권이 괜찮으면 그다음권이 나를 지치게 만드는 타입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 덕분(?)인지 나에게 그렇게 썩 유쾌하게 와닿는 작가는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줬고, 한번쯤 다시한번 그녀의 책을 들게되면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든다. 어째꺼나 내가 제일로 치는 일본작가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번소설은 읽어가다보니 타히티와 관련된 글이었다. 타히티란 섬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고갱의 인생과 깊은 관련이 있고, 아는동생 또한 늘 타히티를 꿈꾸며 사는 섬이기에 웬지 내가 많이 알고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특히나 책속에 첨부된 타히티 사진을 보며 상상 그대로의 섬을 보는듯해 반가운 마음도 컸다.
"무지개"라는 이름의 타히티에 있는 본점을 바탕으로 일본에 세워진 레스토랑에 일하는 그녀는 그곳을 너무 사랑한다. 일하는 것도 즐겁고, 그곳의 모든것이 사랑 그 자체다. 하지만, 가장 사랑했던 엄마를 잃고 정신적인 피로에 지친 그녀는 점장과 오너의 배려로 레스토랑을 잠시 쉬며 오너의 집을 돌보면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오너의 집에서 그와 마주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그의 개와 고양이를 돌보고 정원을 돌보면서 그녀는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듯한 느낌을 갖게된다. 따듯함과는 거리가 먼 집안, 남편의 사랑보다는 일과 또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사모님은 그 집안 어느곳도 따듯함으로 감싸안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아는 오너는 너무도 따스하고, 너무도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어느날, 개를 버리는 일을 계기로 좀더 가까워진 두사람. 결국 서로의 마음을 눈치채고, 오너가 처음부터 사랑했노라고 고백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지만, 오히려 그녀는 그 고백이 더 불편하다.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주위로 부터 받게될 시선과 비록 서로 사랑이 없는 부부일지라도 자신이 끼어든 불륜이라는 사실에 수긍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도피하듯 잠깐동안의 휴가를 맞아 타히티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의 풍경속에 잠기며, 그녀는 또다른 그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불륜은 불륜이다. 비록 먼저 시작은 오너의 부인이였다고는 하지만말이다. 그러면서도 서로는 이혼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심지어 부인은 다른남자의 아이를 가졌으면서도 떳떳하다. 그런사실을 남편 또한 알면서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주인공과 오너의 행동이 불륜이라고 욕하기에 앞서, 그 부부의 행동을 이해할수 없다. 서로 속고 속이는 부부사이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웬지 쿨한 느낌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건 이책이 웬지 로맨스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있다. 불륜이건 어쨌건 사랑하는 그들이 나오는데도 첫사랑을 앓고 있어 방황하는 한 소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비록 그 시절 깊고 달콤한 설레임이 표현되진 않았지만, 오너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은 첫사랑을 막 시작한 소녀의 모습이고, 떨림이다.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응원하거나, 손가락질 하는 그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들의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도, 불행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 시간의 흐름을 감상하는 기분이랄까. 조용히 강이 흘러가는데로 따라가는 흐름의 소설인거 같아, 나 역시 그런기분을 가진채 책을 덮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