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빤쓰 키다리 그림책 31
박종채 글.그림 / 키다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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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화들은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내용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요즘 나는 꼬맹이가 읽고 싶어하는 동화책보다 내가 읽고 싶어서 동화책을 선택하는 거 같으니 이거 좀 아이러니다.  물론, 얼마전 도종환 시인님의 <자장가> 성공했다.  꼬맹이 요새 그 책만 들고 다니면서 "자장~ 자장~ 잘도잔다~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이러고 다닌다.  그러니, 내 동화책 선택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며, 이책도 지금은 꼬맹이가 감을 좀 못 잡았지만, 울 꼬맹이 곧 좋아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실지 어제 저녁에 아빠한테 들고와서 읽어 달라고 하는 걸 보니,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서 너무 좋은 책이었다.
 
제목도 너무 웃겨서 조카녀석이 얼마전 다녀가면서 "이모, 내 빤쓰 이거 완전 제목 웃겨요." 이러더니, 사실 나도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확~ 와 닿아서 무조건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철수네 집의 모습은 사실 낯선 풍경이 아니고, 누나 팬티를 입고 다니는 것 또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물론, 나가 초등학교를 다닐쯤엔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하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정말 우리는 선생님께 손톱 제대로 깎았는지, 등에 때는 없는지 등등을 검사 맡았으며, 철수처럼 단체로 아이들이 속옷만 입고 신체검사를 했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따로 따로 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리면 같이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여자아이들이 조금 성숙해 지면서 남녀가 서로 따로 떨어져서 검사를 했던거 같다.  남자아이들은 대체로 속옷을 내 보여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지만, 여자아이들은 부끄러워 숨기 일쑤였고, 봉곳이 조금 가슴이 나오던 시기라 더 예민해지고 남자 선생님이 가슴둘레 재면 안돼서 여자선생님이 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신체검사 풍경이 여기 <내 빤쓰>라는 책 속의 이야기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다.
 
형이나 누나가 많다보니 막내인 철수는 늘 물려받아야 하는 처지인거다.  옷도, 책도, 심지어 속옷마져도......
그게 불평이지만 또 어쩔 수 없다.  비록 헌옷일지라도 엄마의 재봉틀만 드르륵~거치면 새옷처럼 깔끔해지고 크기도 줄여주니 그래도 철수는 불평을 심하게 않는다.  문제는 바로 막내누나가 투정을 부린다는 거다.  한창 사춘기이고 멋을 부릴 나이니 불만일 수 밖에.....
 
아무튼, 동화속을 들여다 보다 보니 초등학교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겨나 너무 좋았다.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꼬맹이는 전혀 감 잡을 수 없으니, 일단은 읽어주고 나중에 찬찬히 그때의 이야기들을 들려줘야 할 것 같다.
빤쓰, 난닝구...... 비록 일본어에서 파생돼 피해야 할 단어이지만, 추억으로 읽고 들으니 완전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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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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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좀 아득하긴 한데, 아마도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때 쯤이 아니었나 싶다.  작은 오라비가 고전문학 세트를 샀고, 그건 유리 책장에 넣어놓으면 뭔가 뽀대가 나는 그런 책이었다.  지금의 그런 양장하고는 다른 느낌.  암튼, 그 책들을 꽤나 읽어서 그때 만난게 이 <설국>과 <고도를 기다리며>등 제법 됐던거 같은데, 어린시절임에도 고전이 이렇게 멋지구나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책모임 책을 정하면서 겨울이니까 겨울정취에 어울리는 <설국>을 다시 읽어보자는 말이 나왔을때 나는 무조건 오케이, 오케이 였다.  읽은지도 너무 오래됐고, 가물거리는 느낌만 남아 다시한번 그 멋드러진 하얀나라의 풍경속으로 들어가고픈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체를 더 음미하고픈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그런데, 음...... 보통 고전은 어릴때 읽었을 때랑 커서 읽을 때랑 느낌이 다르다고 하는데, 대체적으로 좋은 쪽으로 다른걸로 아는데, 난 왜 거꾸로인거지?  어릴때는 <설국>의 감동이 엄청나게 깊이가 있었는데, 지금 읽으니 어?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냥 지지부진한 문체가 지겹게 와닿고, 대화와 대화 사이가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느낌이 옛스런 맛이 나는게 아니라, 복잡하고 어려우며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왜 이러지?  나이가 들었으니, 조금은 더 깊이 있는 책읽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왜 어릴적 읽었던 <설국>만의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첫문장에서 강렬하게 전해져 오는 그 느낌.  그게 없었다.  이상하다.  너무 기대가 컸던 걸까?  어릴적 그 강렬한 느낌을 다시 받고 싶었는데, 왜 그게 없지?

 

말그대로 눈의 나라 일본의 니가타 지방의 풍경 묘사가 절정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오묘하게 싹트는 남녀간의 애정속에 시마무라만 알고 있는 마음속의 삼각관계도 묘하게 포착된다.  그야말로 이책은 대사보다는 풍경묘사를 음미하듯 느끼면 책의 묘미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난 이번 책읽기에선 그 풍경 묘사를 음미하는데 실패한 모양이다.  자꾸만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엉뚱한 듯한 대사가 거슬리고, 전체적인 맥락이 거슬린다.

 

내가 청소년시기에 읽었던 느낌은 이런게 아니었었는데, 도대체 뭐가 잘 못 된걸까?  전형적인 일본이야기 임에도 그때는 그 풍경의 멋드러짐이 가슴 콕 깊이 박혔었는데, 이번엔 대사만 좇다보니, 아무래도 잘 못된 책 읽기가 돼 버린거 같다.  이번 재독에서 얻은건 그동안 잊어버렸던 줄거리만 다시한번 되새김질 한걸로 만족해야지 싶다.  다음번 삼독을 하게 될땐 다시 예전의 그 아련하고도 멋드러진 가와바타 야스나리만의 문체를 음미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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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도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8
미켈라 무르지아 지음, 오희 옮김 / 들녘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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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들녘시리즈를 모으고 있는터라, 나오기만 하면 일단 관심이 가고 본다.  어쩌다 만난 시리즈인데, 어려우면서도 여운을 많이 줘서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듯 싶어 되도록이면 읽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늘 볼때마다 표지도 특이하고, 제목도 특이한 소설들이 꽤 많다는 생각도 들고, 게다가 좀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솔직히 아주 얇은 편이다.  그런데, 초반 진도빼기가 엄청 힘들었다.  생소한 이탈리아 문학이다보니 단어들도 어색하고, 그 많은 사람들의 이름도 헷갈렸고, 동네이름도 헷갈렸다.  그러면서 연신 '아, 머리아파.'만 외쳐댔고, 쉽게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라서 호기심이 컷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너무 어려웠다 초반은.

 

<아카바도라>라 함은, 끝내는자, 완성하는자등을 지칭하는 말로, 흔히 안락사를 시키는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라고 한다.   그것도 역자가 알려주는 괄호속에서 알아냈지만, 어쨌거나 한단어를 알아내는 효과는 얻은 셈이다.  뭐, 그 단어 안것만으로도 일단 책 한권 읽은 보람은 느낀다. 크크

 

요즘 우리나라에도 안락사에 대한 찬,반성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고, 개인적인 입장으론 이게 옳다, 그르다를 확실히 판단못하는 회색분자(?)처럼 이경우, 저경우 찬성과 반대를 오가는 상황이라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안락사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던질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컷다.  그리고, 사실 글의 초반부에서 나는 어쩌면 보나리아의 역할 아카바도라의 의미를 파악했고, 그녀의 안락사를 시키는 일을 약간은 찬성하는 쪽에 손을 드는 편에 속했다.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해 하는 영혼의 자식 (즉, 입양아) 마리아에게 진실을 얘기하지 않으므로서, 나중에 마리아에게 어쩌면 그런일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자식에게 또한 물려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내가 보나리아에게서 돌아서는 계기가 되는건 마리아처럼 무조건적으로 아카바도라인 자신의 양엄마에 대한 반항이나 반대가 아닌, 그럴 수 있는 경우와 그러지 말아야 할 경우를 보나리아가 어겼다는 내 개인적인 생각때문이었다.

 

삶의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어도, 미치도록 죽고싶어도 그건 어쩌면 미쳐가면서도 세상에 순응해가면서도 극복되어지는 젊은이의 삶이 아닐까?  그걸 굳이 보나리아가 결정해 줬어야 했는가?  비록 그녀의 아픈폐부를 찌르면서 애원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녀의 선택이 잘 못 되었다고 본다.  그 젊은이를 절망에서 구해주려고 했어야 했으며, 그러고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에서 그가 죽고자 원한건 어쩌면 한 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젊은이에게 앞으로의 기회를 빼앗은 셈이 돼 버린거다.  그래서, 난 보나리아의 선택에 실망했고, 안락사에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서 버렸다.

 

그리고, 마리아와의 마지막 또한 뭔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나리아는 마리아에게 자신의 아카바도라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 때문에 죽지 못하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자신이 아카바도라였다는 사실에 그녀는 한점 부끄럽거나 잘 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듯 한데, 이야기는 또 애매하게 맺어져 버려서 뭔가 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아무튼, 안락사라는 복잡한 사건을 이야기 하다보니, 나도 얘기가 제대로 정리가 안 될 정도로 뭔가 깊이 있는 고민과 생각이 교차하는 책이었다.  어떤 것에도 확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 책이었지만, 그만큼 느끼는 바가 크기도 했던거 같다.  안락사 과연 있어야 하는 것일까? 없어져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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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강아지에게 도넛을 준다면? 담푸스 그림책 7
로라 누머로프 글, 펠리시아 본드 그림, 이형도 옮김 / 담푸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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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하하하하, 그야말로 이 동화책은 유쾌한 동화책이다.  읽으면서 혼자 얼마나 킥킥댔는지 모른다.  알다시피 요즘은 꼬맹이보다 내가 동화책을 더 좋아하는 지경이다 보니, 맘에 드는 동화책이 생기면 꼬맹이보다는 내가 더 신나서 들뜨고 난리다.  덕분에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도 들지만, 일단 우리 꼬맹이에게 미안하긴 하다.  좀 제대로 읽어줘야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거다.  사실, 또 꼬맹이가 글밥이 많은 동화책같은 경우는 그다지 안 좋아하는 경우도 있어서, 나는 좋아도 꼬맹이는 싫어하는 경우가 다반사.  약간 코드가 조금씩 안 맞다보니, 일단 내가 읽고 꼬맹이 책꽂이에 꽂아주면, 맘에 들면 들고와서 신나게 읽어달라고 한다.  얼마전에 읽은 "자장가"가 바로 그런경우다.  억지로 읽어주기 보다 내가 읽고 책꽂이에 꽂아뒀더니, 어느순간 읽어달래서 운율맞춰 신나게 읽어줬더니 그뒤부턴 심심하면 그 책을 들고온다.  "엄마, 자장자장 해주세요~" 이러면서.  어쨌거나, 우리 꼬맹이는 대체로 글밥이 많은 동화책을 싫어한다는 거다.  읽어주려면 일단은 글밥이 적은 동화책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이 동화책은 사실 우리 꼬맹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글밥도 별로 없는데다 그림체도 귀엽다.  게다가 내용도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오오오~좋다를 외쳤는데, 웬걸? 아직 우리 꼬맹이는 현재까진 반응이 없다.  역시 아이의 감성을 파악하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어쨌거나, 이 동화책은 사실, 제목보면서 응? 강아지가 도넛을?  그리고 어떻게 된다는 거야?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다 오호~하는 감탄이 나왔다는 거다.  만약, 만약 말이지.  당신이 강아지에게 도넛을 준다면 어떤일이 일어나겠는가?  이 동화책에선 도넛을 줬을 경우를 가정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도넛을 주면, 주스가 마시고 싶어질 것이고, 주스가 마시고 싶어지면, 사과를 따야할것이고, 사과를 따려면 등등등...... 이야기가 끝이 없이 마구마구 처음 시작과는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그게 너무 웃기고 재밌다.  결국, 야구를 하는 강아지가 나오기도 하고, 홈런을 치기까지 한다.  물론, 이야기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잃치 않고 다시 강아지는 도넛을 먹은 경우로 다시 돌아오지만 말이다.  말도 안되는 상상들이 더해져서 얘기의 재미를 더한다.  오~ 좋구나 이 책.  웃기고 재밌구나 이책.  우리 꼬맹이도 이 책의 재미를 느낄날이 있을거라는 확신을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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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요리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권남희 외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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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일본소설에 요리책이 대센가 보다.  그리고, 거기에 힐링이 더해지는 것 또한 유행인가 보다.  사실, 일본소설엔 음식에 대한 힐링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많이 들어가는 편이고, 그런 책을 대할때마다 내 마음마져 힐링이 되는거 같아서 은근 나도 이런 책을 좋아한다.  얼마전에 읽은 "꽃아래 봄에 죽기를"이 그랬고, "한밤중의 베이커리"가 그랬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라는 책 역시 그런 의미로 좋아한다.  왠지 음식과 함께 하면 마음이 따듯해지고 마음마져 훈훈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나.

결국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건 정성이 가득한 음식이 함께 하면서 스르르 녹아내리는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비슷한 류의 책이 나와도 나는 그저 감사하고, 고맙다.  언제 읽어도 마음 따듯하고 좋으니까.

 

이책 역시도 결국 그런의미이긴 한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이제껏 만난 음식 힐링 소설중에서 가장 짧은 단편을 지니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얼마되지 않은 페이지 수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그리고, 어떤건 사실 요리라고도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콩 27알을 볶은건 요리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크크.

 

제일 처음 단편을 읽고, 응? 하고 너무 몇장 안되서 끝나길래, 어라? 연작 소설인가 부다 했다.  그런데, 아니다.  진짜 짧은 단편인거다.  그 짧은 단편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오호~  새해 신년맞이 대 청소를 시작으로 하는 이야기에서부터 크리스마스 겨울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일년 사계절을 전부 체험 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실, 난 읽으면서도 그게 사계절을 다 도는건지 어떤건지도 몰랐다.  워낙 이야기들이 짧게 짧게 이어지니, 뭔가 이야기가 될만하다 싶으면 끝~이 되어 버리는 판국이니, 그냥 요리에 따라 읽는 맛에 열중했다고 할까?  그런데, 다 읽고 권남희 역자의 이야기를 읽고난 그때서야 아하~ 했다는 거다.  나도 참 책을 뭐 대충 읽은것도 아닌데, 왜 그런것들을 캐치하지 못했을까나?

 

음식이나, 간단한 콩 한쪽으로 마음이 치료되고, 상처받은 곳을 보듬는 건 좋은데, 사실 다른 힐링 소설들에 비해 그 여운이 짧은건 정말 책 내용이 한편한편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 여운을 간직하려고 할라치면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왠지 뭔가 마무리가 안된느낌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소개하는 음식들은 나름 따라하기도 쉬워 어려운 레시피가 아니래도 후다닥 해 먹을 수 있는거라 그런점은 좋기도 하다.  그리고, 커피한잔은 음식으로 치지도 않으니까.  짧디 짧은 이야기를 음식으로 풀어낸 작가의 필력은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뭔가 좀 아쉽다.  역시 얘기가 마무리 되지 않은 개운치 않은 느낌이랄까?  그런 기분이 드는것 또한 사실이다.  짧아도 너~무 짧아 주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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