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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언제였던가? 좀 아득하긴 한데, 아마도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때 쯤이 아니었나 싶다. 작은 오라비가 고전문학 세트를 샀고, 그건 유리 책장에 넣어놓으면 뭔가 뽀대가 나는 그런 책이었다. 지금의 그런 양장하고는 다른 느낌. 암튼, 그 책들을 꽤나 읽어서 그때 만난게 이 <설국>과 <고도를 기다리며>등 제법 됐던거 같은데, 어린시절임에도 고전이 이렇게 멋지구나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책모임 책을 정하면서 겨울이니까 겨울정취에 어울리는 <설국>을 다시 읽어보자는 말이 나왔을때 나는 무조건 오케이, 오케이 였다. 읽은지도 너무 오래됐고, 가물거리는 느낌만 남아 다시한번 그 멋드러진 하얀나라의 풍경속으로 들어가고픈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체를 더 음미하고픈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그런데, 음...... 보통 고전은 어릴때 읽었을 때랑 커서 읽을 때랑 느낌이 다르다고 하는데, 대체적으로 좋은 쪽으로 다른걸로 아는데, 난 왜 거꾸로인거지? 어릴때는 <설국>의 감동이 엄청나게 깊이가 있었는데, 지금 읽으니 어?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냥 지지부진한 문체가 지겹게 와닿고, 대화와 대화 사이가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느낌이 옛스런 맛이 나는게 아니라, 복잡하고 어려우며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왜 이러지? 나이가 들었으니, 조금은 더 깊이 있는 책읽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왜 어릴적 읽었던 <설국>만의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첫문장에서 강렬하게 전해져 오는 그 느낌. 그게 없었다. 이상하다. 너무 기대가 컸던 걸까? 어릴적 그 강렬한 느낌을 다시 받고 싶었는데, 왜 그게 없지?
말그대로 눈의 나라 일본의 니가타 지방의 풍경 묘사가 절정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오묘하게 싹트는 남녀간의 애정속에 시마무라만 알고 있는 마음속의 삼각관계도 묘하게 포착된다. 그야말로 이책은 대사보다는 풍경묘사를 음미하듯 느끼면 책의 묘미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난 이번 책읽기에선 그 풍경 묘사를 음미하는데 실패한 모양이다. 자꾸만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엉뚱한 듯한 대사가 거슬리고, 전체적인 맥락이 거슬린다.
내가 청소년시기에 읽었던 느낌은 이런게 아니었었는데, 도대체 뭐가 잘 못 된걸까? 전형적인 일본이야기 임에도 그때는 그 풍경의 멋드러짐이 가슴 콕 깊이 박혔었는데, 이번엔 대사만 좇다보니, 아무래도 잘 못된 책 읽기가 돼 버린거 같다. 이번 재독에서 얻은건 그동안 잊어버렸던 줄거리만 다시한번 되새김질 한걸로 만족해야지 싶다. 다음번 삼독을 하게 될땐 다시 예전의 그 아련하고도 멋드러진 가와바타 야스나리만의 문체를 음미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