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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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해보는 육아에 일단 책부터 파고 들었다. 여러 육아서를 읽으며 아이 키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 아니 착각했다. 육아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일부 책들은 자기 자랑, 그들만의 이야기, 엄마의 자기계발서 수준이라는 느꼈고 허무했다. 이 책을 읽으니 왜 그랬는지 알겠다.  출산, 육아를 준비하는 엄마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아이 키우는 건, 나 하나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 역시 공식처럼 정해진 방식도 없다. 그러니 자녀소유의 개념을 벗어나, 일류대학 보내는 것을 좋은 교육을 했다는 것에서 벗어나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p104 옛날 사람도 아닌 사람들의 옛날식 산후조리 방법은 무모했다. 대부분이 틀린, 아니 틀렸다기보다는 의미 없는 처방전에 집착했다. 돌봄이 가족관계에서 벌어지니 등장하는 언어들은 투박하다. 아내는 모든 인과관계의 양방향에 다 존재했다. 자신이 몸이 아플 때는 어른 말을 듣지 않은 결과로 분석되었고, 아이가 아플 때는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 되었다. 


p123 과거와는 다른 걱정거리가 생긴 상황에서 그저 주워들은 정보로 아이를 기를 수 없다. '우리 아이 스마트폰 사용 지도 방법'을 휴대폰도 없었던 시절에 육아를 한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없다. 요즘처럼 요구하는 것이 많은 세상에 '아이는 알아서 큰다'는 식의 방임형 육아는 그 쓴맛을 톡톡히 볼 뿐이다. 


p124 사회구조를 따질 목적이 애초에 없는 육아서는 자기계발서가 철저히 개인에게 책임을 묻듯이, 부모의(주로 엄마의) 역할을 강조 또 강조한다. 오직 부모가 변해야만 아이도 변한다는 전제하에서만 기승전결이 전개된다. 머뭇거리는 부모들을 위해 책은 충격 요법을 쓴다. '지금 이대로 아이를 방치하면 큰일 될지도 모르는데 내버려 둘 건가요?' 지금 즐거움을 선택했다가 나중에 이름도 없는 대학에 가서 취업 안 된다고 징징거리지 말라는 자기계발서들의 협박과 닮았다. 


p126 '스킨십이 많으면 좋다'는 것에는 전제가 있다.  아이가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부모로부터 일상적으로 느껴야 그 연장선에서 목욕이라는 도구가 시너지 효과를 낸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이는 부모들이 아이와의 수평적 소통을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하기란 무리다. 파편적으로는 아이와 좋은 추억이 있겠지만 일상의 누적된 경험은 부족하게 마련이다. 이런 가정에서 '스킬'만 흉내 내는 건 별 소용이 없고 부작용이 있을 뿐이다. 


p127 육아서는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를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런 책들을 읽은 사람들이 가정교육에 집착해도 문제는 지속된다. 이는 가정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보다 큰 '사회구조적' 측면이 육아의 현장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중산층 되기조차 버거워진 이 시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러한 요인들이 개인에게 끼치는 차이를 일일이 따지 지 않는다. 사회 화경이라는 변수를 배제한 '육아 비법'이 강조되면, 이런 비법이 무용한, 다수의 부모들을 짓주르고 있는 요인들이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다. 심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이런 육아서는 단연코 반사회적이다. 


p128 일반적으로 육아서 독자들은 뒤통수에 충격을 주는 듯한 적극적이고 깨어있는 독서를 원하지 않는다. 머리를 맞대고 무슨 이론이 옳은지를 따지는 것이 아닌 매우 구체적으로 일상의 효능을 창출될 지침을 찾는다. 그래서 성 불평등이 만연한 이 사회를 깨자가 아닌, 그런 불평등 속에서 어떻게든 행복을 찾는 방법이 더 궁금하다. 그럼 답은 간단하다.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으니 서로 인정하고 적절한 역할에 익숙해지면 된다. 육아서들은 진화생물학이나 긍정심리학을 소개한 책들의 몇 구절을 인용해 이런 식의 이해가 당연한 거라고 거든다. 이를 준수하면 가정은 행복해질지 모르겠지만 사회는 불행해진다. 


p158 저자는 "아이들은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다. 그냥 좋아서 읽는다"라고 하지만 솔직히 어른들도 책을 펼쳐 주제를 따로 기억하고 중심 내용을 별도로 요약하며 읽지 않는다. 자신의 느낌을 천천히 구체화하면서 책을 음미하는 건 독자 개인의 권한이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하지 않는 독서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기 바쁘다. 게다가 느낌이라는 추상적 지점을 한 단어로 적으라고 하니 어찌 독서가 재미있겠는가. 


p220-221 사교육 없이 사교육 이상의 결과를 내는 건 사교육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다. 공교육이 무너지지 않은 학군에 거주할 수 있는 여건, 교사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학부모로서의 관심 등을 비롯해 공부에 지친 자녀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면서'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개인의 학업 성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p231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놀이터에서 많이 놀았고 흙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지냈지만, 그 시절 땅 밟고 큰 교사들은 학생들을 오뉴월 개 패듯이 때렸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논 학생들은 이를 학대라고 생각조차 못 했다. 우리가 폭력에 예민해진 것은 놀이터를 벗어나 철저하게 개인화되었기 때문이다. 


p241 '그래도 그러면 안 되잖아'가 아닌 '그러니 그렇지'라는 추임새가 만연할수록 왕따라는 폭력의 가해자는 지워지고 이를 방관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사바나 초원처럼 약육강식의 법칙이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약하니까 당하는 거지, 억울하면 힘을 길러라'는 주변의 조언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으로 보인다. 


p244 평범한 애들조차 동조자, 무관심자, 방관자가 되어 가해 행위에 개입하고 또 이를 부정한다. 폭력에 개입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폭력의 무게감이 사라지는 역설 속에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현상이 자연스레 완성된다. 


p283 이런 마무리에 '너무 공허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만큼 우리는 '시민'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시민은 '보다 좋은 사회를 위해서 객관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이다. 자녀를 시민으로 기를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게 어떻게 '사람의 육아'라 할 수 있겠는가. 과격한 표현이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정체성을 피해 가서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당신의 자녀는 잘 자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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