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마을산책 - 당신이 몰랐던 유럽의 숨은 보석들
권기왕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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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은 소도시에서 자란 터라 어릴 때 꼭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 하면 늘 대도시였다. 도시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 남짓, 그 시간마저도 몇 발자국 가지 못해 만나게 되는 얼굴들과 인사 나누며 걸리는 시간을 포함할 만큼 작은 도시. 아마 그래서 다 자라 큰 도시로 나갈 때까지도 내 로망은 대도시 뉴욕으로의 여행이었던 것. 하지만 역시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변화무쌍. 나이 탓인지 언젠가부터 고즈넉하고 조용하고 뭔가 운치 있어 보이는 곳들이 점점 좋아졌다. 그건 아마도 내가, 지금, 대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나의 로망이었던 뉴욕에 갈 기회가 없어 가보지 못한 탓에 지금도 뉴욕이 마음 한 구석엔 자리잡고 있지만 그래, 언젠가부터 기회가 된다면 유럽 여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다닥 다녀오는 그런 여행 말고 천천히 둘러보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하려다보니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유럽 마을 산책』, 부제가 '당신이 몰랐던 유럽의 숨은 보석들'이다. 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앗! 그래 바로 이거야! 혼자 외쳤다. 왜? 첫째는 제목이었다. 유럽의 '마을', 유럽의 '도시'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것. 그리고 펼쳤을 때 보이던 사진 속의 유럽, 마을의 풍경이 내 눈을 반짝거리게 했다. 익숙한 듯 생소한 듯한 지명들이 호기심도 불러일으켰다. 안 그래도 스위스에 가겠다고, 가고야말 것이라고 매일매일 사진 들여다보고 있는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 그 풍경들과 그다지 다르진 않지만 어쩐지 고풍스러워보이는 사진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라고 괜히 중얼거리기도 했다. 

원래 여행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하두 다양하게 많이 나오는 여행책들이 많아서 무작정 읽어대던 것에서 벗어나 나름 골라가며 읽고 있는 편이다. 어떤 여행책은 저자의 에세이가 맘에 들었고 또 다른 여행책은 사진이 맘에 들기도 했고 여행지의 정보나 주제가 맘에 들어 읽기도 했다. 한데 이 책은 세 가지가 다 맘에 들었다.  

우선 마을 하나에 대한 짧은 단상과도 같은 이야기들. 살짝 허술해보이기도 뭔가 짜맞춘 듯해보이기도 하지만 그 길이가 길지 않아 이해하고 넘어가기 좋았다. 또 고르고 골라 찾은 마을이겠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그 아름다운 풍광들이라니!! 유럽은 역시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마을들이 너무 많다(저자에 의하면 그게 도시 계획을 세울 때 구도시와 신도시를 나눠 계획했기 때문이란다. 구도시에 세워졌던 오래된 건물을 훼손시키지 않는 방법이기에. 우선 부수고 다시 만드는 일에만 급급한 우리나라의 건축 계획과는 아주 판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자가 들려주는 그 마을의 산책길이나 가는 길에 대한 짧은 정보는 남발하여 머릿속을 복잡하게도 하지 않았고, 딱 좋았다. 그 중 내 마음에 들어온 프랑스의 마을 한 곳,  

<코르드 쉬르 시엘>이라는 곳이다. 지중해와 가까워 기후도 좋고 옛모습도 많이 간직한 곳이란다. "고르드 쉬르 시엘'은 그 독특한 모습으로 먼저 나를 감동시켰다. 넓은 평야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조그만 원추형 산이 홀로 솟아 있고, 그곳에는 오래된 집들이 언덕을 타고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마치 연두색 풀밭에 소복이 쌓아 올린 봉긋한 조약돌 더미와 같다고나 할까."   

프랑스어를 잘 모르지만 그 언어가 주는 아름다움이랄까, 콧소리가 섞인 듯한 말은 듣다 보면 굉장히 아름답게 들린다. 그걸 뒤늦게 깨달아 프랑스어 공부할 시기를 놓쳤지만(지금 해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다.ㅋ) 아무튼 프랑스어를 듣는 것은 내용도 모르면서 팝송을 흥얼거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저자가 말했듯이 '코르드 쉬르 시엘'이라고 말로 내뱉고 보니 꽤나 낭만적으로 들렸는데 그 뜻을 알고 나니 더욱 그랬다. '쉬르 시엘', 하늘 위에 라는 뜻을 가진, 그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코르드>에 주민들이 '쉬르 시엘'이라는 말을 붙여 지금의 <코르드 쉬르 시엘>이 된 것이라 한다. 한데 더욱 맘에 든 것은 20세기 이후 이곳으로 여행왔던 예술가와 문인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아예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더 예쁘게 단장되었다는 거다. 그 문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카뮈다. 

얼마 전에 프로방스에 관한 책을 읽은 터라 카뮈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혹,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았다면 카뮈가 <코르드 쉬르 시엘>을 방문하고는 세상에서 동떨어진 외딴 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 말이라는 "코르드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슬픔마저도……."라는 문장 때문일지도.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곳은 많다. 우리나라의 마을마을도 찾아다니다 보면 '이런 곳이 있었단 말야?' 하고 놀라게 되는데, 이 세상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많을 것인가. 비록 그곳을 직접 가보진 못하고 이렇게 다녀온 사람의 글과 사진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지만 그런들 어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그게 나만의 여행법인 거지.  

『유럽 마을 산책』덕분에 난 유럽의 마을 몇 군데를 또 내 여행 로망의 장소로 찜해두었다. 과연 이렇게 매번 찜만 하고 가기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 닫혀 있는 문을 열어 한발자국 내밀기만 하면 갈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그러므로 가야할 곳은 언제나 찜찜찜할 것.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곳을 원하는지 모르고 인생의 여행을 한다. 욕망과 후회 속에서 얽히고 방황하면서…….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동안 끊임없이 찾던 곳에 도착하였음을 깨닫게 된다. 여름날, 코르드의 어느 창가에서 여행자는 더 이상 길을 떠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코르드의 아름다움에 잠긴 여행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과 외로움에서 자유로워진다.  _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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