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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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그동안 못 잔 잠을 다 자기라도 하듯 늦게까지 쿨쿨 잤다. 정오가 넘어서야 부스스 일어나고도 한참을 이불 속에서 전날밤에 읽다 만 책을 읽었다. 최진영 작가의 신간이다. <끝나지 않는 노래>

 

그녀의 첫 장편이었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얼마나 흥분하며 읽었는지, 세상에 이런 독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구나, 했었다. 그런 까닭에 최진영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책장부터 펼쳤더랬다. 역시 이번에도 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몹시 꿀꿀해졌다. 크리스마스엔 좀 행복하고 즐거운 책을 읽어야 했는데, 이 책은 그렇질 못했다. 오히려 눈물이 났다. 뭐 이래. 이 작가는 왜 이런 소설을 쓴 거야. 그리고 왜 하필이면 해피 크리스마스라는 이런 날에 내가, 슬픈 여인들의 이야기를, 읽게 만든 거야. 괜히 툴툴거렸다.

 

<끝나지 않는 노래>는 이전 시대와 지금, 여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 어머니, 딸과 며느리. 그녀들의 이야기다. 그녀들이 행복한 삶을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살을 에는 듯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그렇지도 않다. 동하의 말처럼, 오히려 '더 좆같아졌지.' '씨발, 세상 좋아지긴 개뿔'

 

두자, 딸이었다가 어머니였다가 할머니가 된 여인. 태어나자마자 여자란 이유로 일만 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따라 혼례도 올리지 못하고 시집살이를 했다. 여자의 적은 여자,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또 죽어라 일만 했다. 잠시 남편과의 사랑도 있었지만 찰나였다.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여자란 존재는 무엇이기에 남자들의 그늘에서 그토록 모질게 당하면서도 당하는 줄 모르고 살았을까. 또 그렇게 어머니에게, 시어머니에게 당했으면서도 제 딸에게, 며느리에게 되물림 해야만 했을까. 그게 그들만의 사랑이었을까.


"다 내 업보라.

콩 껍질을 손가락으로 툭 누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옛적엔 다들 그렇게 살았지. 세상 좋아진 요즘에야 자기 자식 귀하다고 무엇이든 최고로 해주겠다고 난리들이지만...... 두 년한테 역정만 내고 일만 냅다 시키고, 수고했다, 미안하다 말 한만디 안 하고 살았어도 그게 어디 내 탓이겠나.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는데. 지들이 사랑도 못 받고 자랐다고 생각하는 것 모양 내도 그래 살았는데..... 자식이 어디 사랑으로 크는가. 밥으로, 돈으로, 세월로 크지.

그랬구나, 할머니.

그래, 그래 살다 보이......

텅 빈 방에 앉아, 두자는 버릇처럼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늦게 먹은 시루떡 때문이지, 쓴물이 목구멍을 타고 자꾸 올라왔다."


'자식이 어디 사랑으로 크는가, 밥으로, 돈으로, 세월로 크지.' 라는 두자의 말은 틀렸다. 자식이 아니라 여자다. 여자가 한 사람의 객체로 인정받기보다는 마당의 나무만큼의 관심도 받지 못하던 그때. 아무리 그땐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 나은 줄 알았지만 한 세대가 흘러도 그때의 여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봉선과 수선. 얌전히, 그 이전 세대와 다르지 않은, 여자다운 수선은 그렇다치고 반항을 하고 자유롭게 살겠노라 발버둥을 치고서도 결국은 똑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봉선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살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는가. 자유롭게 살겠다고 뛰쳐나갔으면 최소한 수선과 다르게는 살았어야 하는게 아닌가. 인생이 뭐 이래. 왜 다들 그러고 살아야만 하는 건데.. 마치 내 언니들이 겪은 일인양, 흥분하며 씩씩대었다. 읽으면서 내내 속상했지만. '옛적엔 다들 그렇게 살았'단다. '당연한 줄 알'았단다.


그래, 그땐.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란 게, 결국은 지금보다 덜 고생하고 덜 힘들게 살 수 있도록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보퉁이 하나 안긴 채 시집보내는 것이라면. 그것도 사랑일 것이다. 엄마보다는 덜 일하고, 엄마보다는 덜 구박받고, 엄마보다는 그래도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 뱉을 수밖에 없는 말, 아아 제기랄, 딸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마지막, 은하와 엄마들과의 통화 내용을 읽으며 눈물이 나왔다. 최진영 작가, 독하다. 세 번째 책은 부디 행복했음 좋겠다. 주인공 모두. 부디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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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12-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본 최진영 작가는 참 귀여운 얼굴이었는데, 작품은 하나같이 만만치않네요.
저도 <당신 곁을~>을 재밌게 읽은 독자로서 이 책도 읽어야겠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readersu 2011-12-27 10:26   좋아요 0 | URL
진짜, 작품마다 사람의 감정을 마구 뒤흔들어놓아요.
좋아하실 거예요. 마음 아파하면서(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지만, 그럼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