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364일 블랙 로맨스 클럽
제시카 워먼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간만에 종일 책만 읽었다. 오늘 읽은 책은 <열일곱, 364일>, 선착순으로 받은 신지가토 다이어리가 같이 왔다. 500쪽에 가까운 책. 생각 같아서는 반나절이면 읽지 않을까, 했는데 하루 종일 읽었으니 꽤 시간이 걸렸다. 보통 독서의 습관이 이 책 읽다가 저 책 읽다가 정신없이 다독을 하는 편인데 이 책은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시작하고선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른 책을 잡질 못했다.  

이 책이 끌린 것은 이 홍보 문구 때문이다. 

"넌 아니? 내가 왜 죽었는지……"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오고 가며, 사랑과 삶,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로맨틱 스릴러!" 

과거, 현재, 죽음. 더불어 로맨틱이라니! 각자의 취향이겠지만 이런 소설 참 좋아한다.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왔다갔다하는 이야기. 내가 겪어보지 못한 미래 이야기나 잊고 있었던 과거로의 여행이 주제가 되는 픽션들. 근데 이 소설은 조금 다르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비밀의 문을 통하지 않는다. 죽음이다. 죽음이 중심에 있다. 죽은 후에 되돌아보는 ‘나’의 과거라고나 할까.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는 인생. 그 인생들을 찾아가는 셈이다. 

우선 이 책, "블랙 로맨스"란다. 로맨스 소설이면 로맨스 소설이지 블랙 로맨스는 뭐람? 하다가 뒤쪽의 설명을 읽어보고 알았다. 무슨 뜻인지. 그것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나저나 로맨스 소설을 읽어본 게 언제였나. 정말 오래 전이다. 로맨스 소설이라는 걸 알고 나니 인물들의 배경이나 캐릭터에 대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로맨스 소설하곤 역시 좀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블랙 로맨스”인가? 암튼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은 읽고 나면(재밌게 낄낄거리며 다 읽고 나서 말이지) 에이, 유치해. 했었는데 이 책은 그 유치함은 없다. 미스터리 형식이라서 그럴지도. 그렇다면 매우 흥미로운 로맨스 소설. 블랙로맨스 맞다. 

아무튼 “블랙 로맨스”란, 이런 거란다. 

"로맨스라면 흔히 떠올리는 소재나 플롯 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를 다룬 신선한 소설,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기반으로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
"기존의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깨는 개성 넘치는 작품들로, 시대를 초월한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만을 선정했다. 추리, 호러, 스릴러, SF, 판타지, 역사, 좀비 등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에 로맨스라는 양념이 덧붙여진 종합선물세트" 

다 얘기해버리면 재미없으니까, 책 소개에 나오는 정도의 내용을 말하자면 이렇다. 주인공인 리즈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답게 부잣집 딸이다. 외모 역시 눈부시다. 남자친구도 멋지다. 친구들 역시 죄다 부잣집 아이들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선생조차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 여기까진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의 배경이다. 한데 그런 대단한 소녀 리즈가 열여덟 생일을 앞두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렇다. 로맨스 소설에 ‘죽음’이 등장한다. 물론 로맨스 소설에 죽음이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왠지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멋진 외모를 가진 남녀가 사랑을 하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그런 달콤 쌉싸래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죽어버리다니. 이건 뭐지? 싶다. 근데 '내'가 '나'의 시체를 본다. 헉, 뭐야! 그럼 ‘나’는 죽은 걸까, 살아 있는 걸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깨닫기는커녕 죽었지만 살아있는(!) 리즈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자살을 했는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건지 아무것도 모른다. 황당해하는 리즈. 나라도 어이없겠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은 더욱 아닌 리즈. 그녀 앞에 일 년 전에 뺑소니에 치어 죽은 소년 알렉스가 나타나면서. 얜 또 뭐지?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동네에 살지만 그 둘 사이에는 전혀 친분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삶이 달랐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잣집 딸.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왕따까지 당하는 알렉스. 그는 왜 리즈 앞에 나타난 걸까. 알렉스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 둘이 죽어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리즈 스스로 그걸 찾아야 한단다. 기억나지 않는 과거. 죽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알렉스는 리즈의 과거와 현재에 동행한다. 그리고 그 둘의 연관성과 과거의 기억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기억을 찾으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좀 놀랍다. 소설에서 리즈는 말한다.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게, 죽음은 먼 세상의 이야기다. 다들 알다시피, 십 대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에 대해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우리 엄마를 데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소녀들은 그런 것을 잊지 않는다."고. 알고 보니 리즈는 상처투성이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열일곱, 364일》의 주인공은 고등학생이다. 물론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생활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십 대는 통한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나온다. 왕따와 흡연, 음주. 아직까지 마약을 다루는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없겠지만 좀 더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마약 판매상도 가능한 일인가 보다. 또 그런 고등학생들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부모의 불륜과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까지,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는 십 대의 이야기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제 삼자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누구나 '나'였을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제 삼자가 되어 '나'를 바라볼 때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삶, 어이없는 행동들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제 삼자가 되어 그때의 ‘나‘를 바라보니 말도 안 된다. ’내‘가 저런 아이였단 말인가? 정말?! 이 소재는 매력적이다. 나도 어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 삼자가 되어 나의 행동을 바라보고 싶다. 잘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나도 죽으면 나를 볼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한데 죽고 나면 뭔 소용일까. 그럼에도 돌아보며 후회하고 용서를 비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몰라. 미신적이지만 귀신으로 살지 말고 편히 쉬라는 의미. 어랏, 너무 깊게 들어갔나;; 

아, 그리고 어린 녀석의 순정이 대단하더라(-.-). 첨엔 그럴 리가, 했는데 역시 로맨스 소설이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이 정도는 되어야만 사랑이고 로맨스다. 

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도 놓치지 않는다. 중간 중간 나오는 부자 부모님을 둔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 읽는 책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기본이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스콧 피쳐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  

책을 덮고 떠오른 또 하나, 세상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 잘 나가든 아니든 남들이 나를 우습게보든 말든. 내가 중심이었을 때는 모든 행동들이 다 이해되니까. 그래서 아무리 아니꼬운 부잣집패거리들이라도 알고 보면 다 '좋은' 친구들이라고 리즈는 변명한다. 왕따를 시키거나 마약을 팔거나 음주에 흡연을 하더라도 말이지. 내 중심에서는 그렇다는 거지.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단 맘에 들지 않는 한 가지, 인생이 구만리 같은 아이들을, 아무리 소설이라도 죽여 버리는 것, 난 왜 이런 게 싫지. 더군다나 결론을 보자면 죽음도 끔찍한데 죽임이라니. 그럼에도 좀 자극적이긴 하지만 《트와일라잇》 좋아하는 울 조카, 좋아할 것 같다. 넘겨줘야겠어! 소설이잖아. 그것도 블랙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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