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피 키드 4 - 여름 방학의 법칙 윔피 키드 시리즈 4
제프 키니 지음, 양진성 옮김 / 푸른날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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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윔피키드, 정말 재미있다! 초등 5학년인 작은 아이 반 아이들 사이에 윔피키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외국에서 살다 온 전학 온 학생이 있는데 그 아이도 영문판을 재미있다고 봄- 모양이다. 아이들이 워낙 재미있게 보니 담임선생님이 1~3권까지 사놓고 돌아가면서 보라고 하셨단다. 윔피키드 시리즈는 동화책이지만 만화를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가 환상의 복식조를 이루어 찰떡궁합을 자랑하고 있다. 그레그가 자신의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일을 일기로 적고 있는 형식의 이 책은 펼쳐진 책장 당 세 컷 정도의 삽화가 들어 있다. 검은 외곽선으로만 그려진 단순한 그림이지만 웃음도 주고 일기 내용 잘 전달하고 있어서 그림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주인공 그레그는 인물도 잘 생긴 편이 아니고, 덩치도 작고 소심하며, 착하긴 한데 그다지 영리해 보이지도 않는, 좀 짓궂게 표현하자면 찌질이~ 같은 인상을 풍기는 아이이다. 거기다 안 좋은 일들은 연달아 일어나는 머피의 법칙을 달고 사는 것 같다. [여름 방학의 법칙]이라는 부제를 단 4번째 권은 그레그가 여름방학 동안 겪는 일들을 담고 있는데, 비록 안 좋은 일들이 수두룩하게 일어나긴 하지만 여름 방학이라도 집과 학원을 오가는 것이 전부인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일들을 경험한다.

 

 

 우선 놀란 점은 방학이 자그마치 3개월이나 된다는 것!! 와~ 방학이 그렇게 길다니, 부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우리 아이들의 방학 기간을 살펴보니 40여일도 채 안 되는데 늘 그렇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것 같아서 늘 아쉽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놀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 아닌가. 그런데 그레그는 방학이 감옥체험이나 마찬가지란다. 사람들은 휴가나 방학 때가 되면 꼭 어디를 가야하고, 뭔가를 해야만 할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레그는 집에만 있는 걸-TV 시청과 게임 하기- 좋아한다. 방콕형인 나도 그렇지만 큰 딸아이도 이 부분에 절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






 우리나라 아이들과 비교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아르바이트로 자기 용돈을 벌어서 쓰는 점이다. 외국 동화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이 이웃들의 잔디를 깎아주거나 개를 산책 주는 등의 일을 하고 돈을 받는 내용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레그도 친구와 함께 돈을 -지불해야 할 일이 생기는 바람에- 벌기로 하는데 애초의 계획과 달리 용돈 벌기가 녹녹치가 않다. 그리고 올해 생일은 다행이 생일빵(?)은 없지만 선물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생일케이크도 누군가가 반쯤 먹어치워 버리는 등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게 보낸다. 그레그는 생일 선물로 강아지를 갖고 싶어 했는데, 모종의 일로 아빠가 한 마리 데려 온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는 법. 우리 집도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어서 아는데,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생이라고 늘 로드릭 형에게 당하는 것도 안 되어 보인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십대의 중학생 씩이나 되면서 수박씨를 먹으면 뱃속에서 수박이 자란다는 말을 믿다니, 순진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구분이 안갈 때가 있다. 로드릭 형을 나쁘다고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 대부분의 형들은 다 그렇지 않던가~. ^^ 그레그는 아빠와의 관계도 썩 가깝지 않은 편인데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이 자꾸 어긋나서 도리어 더 나빠지기만 한다. 그렇긴 해도 아빠와 그레그가 절대 공감하는 한 가지가 있으니, '릴 큐티'는 못 참아~.




 위의 두 장면은 마지막 장에 실린 그림으로, 그레그가 여름방학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사진 속에 담긴 장면이 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일례로 그레그의 엄마는 기념품 가게에서 조개껍데기를 잔뜩 사다가 모래 속에 묻어 놓고 동생(메니)에게 찾아보게 하고는 바닷가에서의 기념사진을 찍으셨다. (엄마들이 아이 사진 찍을 때 가끔 행하는 작위적인 설정이라고나 할까~ ^^;) 위의 사진들 속에 담긴 장면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 책을 덮자마자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는 아이, 이렇게 재미있는데 그럴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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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를 부탁해! - 크리스마스 파티 맹앤앵 그림책 5
나탈리 다르정 지음, 박정연 옮김, 마갈리 르 위슈 그림 / 맹앤앵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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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벌써 12월이라니! 11월의 마지막 날을 보낼 때만 해도 한 해가 다 가고 있다는 느낌이 덜했었는데 마지막 장인 12월 달력을 보니 연말이 다가온 것이 실감난다. 아이들에게 12월 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뭐니 뭐니 해도 겨울 방학과 크리스마스! (시험도 있겠지만 별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을 듯) 특히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는 먹음직스러운 요리도 먹고, 선물도 받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크리스마스는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생일잔치만큼이나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다. 

 


  우리나라야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히 준비해서 먹는 음식이 없지만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칠면조 요리가 빠질 수 없는 모양이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이기로 한 늑대, 여우, 족제비. 여우가 제일 미모로운 칠면조를 납치(?)해 오긴 했는데 집에 도착하자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다. 여우에게 잡힌 칠면조라면 고양이 앞의 생쥐 마냥 발발~ 떨어야 정상이겠지만 이 칠면조 아가씨는 뭔가 다르다! 자루에서 나온 칠면조가 집안 꼴이 엉망이라며 청소부터 하라고 엄명을 내린 것이다. 집안이 난장판인 것은 파티 준비 준비에 임하는 자세가 아니긴 하다. 손님 초대해서 맛있는 요리를 먹는 날에 청소는 기본이지~. 


 


 칠면조 아가씨는 안락의자에 떡 하나 자리 잡은 자태가 영락없는 안방마님 포스이다. 청소하는 여우가 투덜거리며 본분을 다하여 집안이 깨끗해질 무렵에 도착한 족제비와 늑대. 이들은 칠면조 요리 빼고는 다른 음식은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파티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들통 날까 칠면조가 시키는 대로 음식 재료를 구하러 갔다 온다. (배경이 눈 내린 겨울인데 새싹을 구해오는 설정은 조금 애매하게 여겨진다.) 


 


 칠면조가 요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카드놀이도 하며 멋진 시간을 보낸 세 동물은 이까지 닦고 잠자리에 든다. 와우~ 잠자리에 드니 책도 읽어 준다! 그 뒤로 여우, 늑대, 족제비는 칠면조가 시키는 대로 빨간 열매가 달린 장식용 호랑가시나무, 큼지막한 트리용 나무, 장식 줄 등을 준비하느라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한 마디로 칠면조가 시키는 건 다 열심히 해~~. 


 


 마침내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되자 칠면조는 자신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물어보고는 포도주에 익혀지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겁게 준비하며 이제껏 잘 지내온 세 동물들로서는 밤잠을 설칠 만큼 당황스러운 이야기. 새로운 친구를 어찌 구워 먹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늘 자기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주는 존재이거늘... 
-  잡아먹으려는 쪽과 잡아먹히게 된 쪽이 함께 지내게 된 <화요일의 두꺼비>라는 동화책을 보면 심술궂던 올빼미 역시 결국 두꺼비를 잡아먹지 못한다. 그게 다 함께 지내며 쌓은 정(우정이든 인정이든)때문 아니겠는가~.  



   

 그러자 칠면조는 일 년의 유예 시간을 갖기로 한다. 세 동물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 같이 지내온 정 때문에라도 잡아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게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최고의 요리를 해주는 칠면조라니, 상전으로 떠받들고 모실만 하다니까~. 그러고 보면 칠면조도 참 영리하다니까. 세 동물을 걱정거리를 해결해 주기 위해 크리스마스 파티 칠면조가 되는 것을 뒤로 미룬다고 했다지만 따지고 보면 자기 목숨을 스스로 구한 셈이지 않는가. 칠면조가 이 책에서 보여 주는,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는 당당함과 지혜로움은 우리 삶의 커다란 원동력이다. 해피엔딩의 결말과 등장 동물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함께 웃음 짓게 만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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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죠.^^
 
꿈꾸는 인형의 집 푸른숲 작은 나무 14
김향이 지음, 한호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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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인형들이 모여 있는 인형의 집을 배경으로 인형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저학년 동화. <달님은 알지요>를 비롯하여 <쌀뱅이를 아시나요>, <내 이름은 나답게>를 쓴 김향이 작가의 작품이다. 망가진 채로 오는 인형이 있으면 손질하여 새단장시켜 주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 인형 할머니는 작가가 꿈꾸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작품 속에 투영시킨 인물이다. 인형 박물관에서 동화 읽어 주는 작가 할머니로 남고 싶은 꿈을 지닌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손을 거친 인형들을 보며 창조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김향이씨는 인형을 모아 집을 꾸미고, 지금도 인형놀이를 즐긴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2007년경에 방송해서 지금까지 모아 놓은 인형이 500개가 넘는다는 내용이 있다. 

 주인공은 유명한 미국 아역 배우인 셜리 템플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인형으로, 벌거숭이에 머리는 헝클어지고 할퀸 자국 투성이에 발가락이 부러진 상태로 인형 할머니에게로 온다. 할머니는 인형의 집에 진열된 인형 극장에 인형들로 동화책 속의 한 장면을 연출해 놓았다. 이곳에 있는 인형들이 매일 밤마다 이야기 극장에서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인형공장 아가씨가 넣어준 종이돈에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 선녀 인형. 외국으로 입양된 울보 존의 친구가 되어 준 꼬마 인형. 노예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 주릴리의 여정을 함께한 릴리. 

 말없이 이쁜이, 꼬마 존, 검둥이 인형 릴리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셜리 템플 인형은 할머니에 의해 예전 모습을 되찾자 용기를 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인형들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상대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통해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일깨워 준다. 본문 뒤에 이야기에 등장한 네 인형의 실제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 인형들이 작가의 손에 오기까지의 사연을 인형 별로 들려준다. 인형으로 동화 속 한 장면을 꾸며 놓은 광경을 찍은 사진과 셜리 인형을 손질한 과정도 곁들였다. 독자가 인형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과 인형 본을 첨부해 놓았다. 

 눕혔다 세웠다 하면 눈꺼풀을 깜~박이는 인형-이런 인형을 처음 선물 받고 얼마나 신기해했던가-, 보들보들한 털의 촉감이 너무 좋아 자꾸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는 곰 인형(을 비롯한 각종 동물 인형), 늘씬한 체형에 길고 곧은 금발머리가 매력적인 바비 인형,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조심스러운 사기 인형... 자주 가지고 놀다 보면 머리도 헝클어지고, 표면에 때도 타고, 잘못 다루어 어느 한 곳이 부서지기도 하면서 점차 주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어느 놀이터에 남겨지거나, 쓰레기 통속으로 버려지는 것으로 비운의 운명을 마감하는 인형들.... 어쩌면 운이 좋은 몇몇 인형들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여 다시 사랑받으며 살다 갔을지도.

 버림받고 상처받은 인형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유년 시절에 늘 곁에 두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좋은 벗이 되어 주었던 그 인형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한결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머물러 주었던 인형들이 새삼 그리워지게 만든다. 어디 여자 아이들만 인형에 대한 추억이 있을까. 남자 아이들도 어렸을 때 곰인형 같은 거 하나쯤은 품고 자거나 데리고 다닌 적이 있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인형을 떠올릴지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면 아이가 종종 실밥이 뜯어진 인형을 가지고 와서 꿰매달라고 하곤 하는지라 나도 우리 집 인형들에게는 인형 아줌마 정도는 되는데~. ^^*

 일전에 학교 알뜰바자회에 갔다가 막내가 가지고 놀만한 인형을 두어 개를 사가지고 왔다. 실밥이 뜯어진 부분이 조금씩 있기에 수선을 하여 깨끗이 빨고 말려서 아기에게 주었더니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해한다. 어느 집 아기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을 그 인형들이 이제 또 다른 아기에게 사랑받는 친구가 되었으니 모쪼록 우리 집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만 쌓아가기를~.

- 김향이 동화사랑 : http://www.kimhyange.com/

사족 : 나를 거쳐간 인형들을 생각해 보다가 문득 딸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투리 천들을 모아 내가 일일이 손바느질로 꿰매서 만들어 주었던 인형이 생각났다. 검은 실을 꼬아 양 갈래로 머리를 심고, 서툰 솜씨로 옷까지 두어 벌 만들어 주었었는데... 언제 없어졌는지, 혹은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것이기에 -아이들보다 나에게- 더 각별했는데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쉽다.(더구나 아이들은 어떤 인형인지 기억나지도 않는다고 하니...) 나중에 아이들 선물로 하얀 웨딩드레스나 꽃무늬 원피스 같이 멋진 옷을 입은 인형들이 몇 개나 생겼지만 내가 만들었던 인형만큼 큰 애정을 주게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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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티는 다 알아 그림책은 내 친구 20
애널레나 매커피 지음, 앤서니 브라운 그림 / 논장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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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거나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낄 때, 혹은 삶의 한 켠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면 그런 상황에 놓인 현실을 벗어나 지금과는 다른 삶을 그려 보게 된다. 상상 속에서의 내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고, 모두가 행복하며, 멋진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공상을 즐기고 있는 순간에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행복이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 마음이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애드벌룬만큼이나 커다랗게 부푼 마음이 두둥실 떠올라 구름 위에 내려 앉아 그 정점에서 내내 머무르고 싶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런 순간을 길게 허용하지 않는다.  

 <특별한 손님>에 이어 애널레나 매커피(안나레나 맥아피) 와 앤서니 브라운이 함께 만든 그림책. (소개글을 보니 애널레나 매커피가 이언 매큐언의 아내라고!) 큼지막한 왕관을 쓴 커스티는 레이스가 드리워진 근사한 공주 침대에 누워서 무엇을 하며 하루를 신나게 보낼지 궁리를 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아침 먹고 학교에 가라는, 자명종 소리보다 시끄러운 엄마의 목소리가 커스티를 현실로 끌어낸다. 



 지저분한 얼룩이 있는 식탁보 위에는 그다지 먹을 마음이 들지 않는 맛없는 음식이 차려져 있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의 커스티를 괴롭히는 존재, 머리 양 쪽을 리본으로 묶어 뿔처럼 삐죽 솟은 노라의 머리 모양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스탠드, 책, 컵, TV, 벽에 걸린 그림, 식탁보의 얼룩, 건물이 그려진 파인애플 그림과 그 옆의 검은 그림자들 속에서... 현실의 삶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노라가 얼마나 큰 존재감으로 커스티를 짓누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내 눈에는 선생님의 머리 뒤에 있는 칠판에 그려진 두 개의 가느다란 선마저도 노라의 머리 모양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커스티는 새하얀 식탁보 위에 -아이들 눈높이에서- 온갖 군침 도는 음식들이 즐비하며, 그런 파티를 엄마 아빠도 함께 즐기는 아침을 그려 본다. 주변에는 색색의 풍선들이 두둥실 떠다니고 흥겨운 음악소리까지 곁들인 흥겨운 파티 같은 아침을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학교에 가며 자기를 놀리던 노라 넬슨도 커스티가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탄 인력거를 끄는 신세이다. 청색 계열의 동양풍의 청자 접시 같은 느낌을 살린 그림을 들여다보면 뽀빠이, 네스호 괴물, 악어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글에 집중하느라 그림은 대충은 훑어 넘겨버리는 것은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 곳곳에 숨겨 놓은 여러 장치들을 찾는 재미를 놓치게 되는 지름길! 



 
 현실에서 엄마는 작은 슈퍼마켓에서 일하러 다니며,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실업자인 아빠는 저녁이면 연장 창고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조이스 리틀 여사에게도 멋진 모습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근사한 꿈이 있다. 그렇다, 엄마의 이런 꿈을 커스티는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커스티가 상상하는 아빠의 과학실 풍경은 볼거리가 가득하다. 그림 구석구석을 세세히 살펴보면 깃털, 날개, 프로펠러, 나르는 양탄자와 빗자루, (커다란 귀로 나는) 코끼리 점보 등 하늘을 나는 여러 가지 것들로 자유로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양 쪽 페이지에 각각 교실 풍경이 실려 있는 그림인데,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그림인 것 같아도 세세하게 비교해보면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책장에는 아이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수업을 받는 평범한 교실 풍경인 반면 오른쪽 책장을 보면 주변의 온갖 사물들이 비슷한 모양의 다른 사물로 바뀌어 있다. 커스티의 책 모양, 창문 밖 풍경, 그림 속을 탈출한 동물들, 노라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지구본.  그리고 앤서니 브라운하면 저절로 연상되는 동물, 고릴라까지! 




 커스티가 꿈꾸는 세상과 현실은 그림과 문체에서도 확연히 구분된다. 커스티가 접하는 현실은 단조로운 문체로 들려주며 평번한 일상을 담은 그림이 책장의 2/3정도를 채우는 크기인 반면, 커스티가 꿈꾸는 것들은 사각틀 안에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한 알파벳 대문자 글자와 더불어, 커스티의 말투와 책장  가득 세밀하게 그린 그림으로 구체화했다. 이런 차이점들이 커스티의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 책을 본 아이들이 그 알파벳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했는데, 원작에서 해당 쪽 첫 문장의 첫 영문 글자가 아닐까 짐작해 봄.




 다만 이 그림들도 테두리 선 안에 갇혀 있지만 노라 넬슨이 변한 두꺼비가 빵~ 터지는 순간 그림 양 옆의 사각틀도 함께 열린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떤 틀에도 갇혀 있지 않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커스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목이 실린 내지에 보면 호랑나비 애벌레 그림이 있는데, 단지 장식으로 그려 놓은 것이 아니고 마지막 장에 커스티가 탈바꿈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과 연관되어 있다. 작고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그 안에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나비를 감추고 있는 애벌레처럼 자신 안에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근사한 내가 잠재되어 있음을 커스티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공상을 즐기는 커스티에게서 가끔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하는 내 모습-빨간 머리를 빼면 모습도 비슷한 듯-을 보는 것 같다.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자신이 꿈꾸는 삶과 일치하지 않는 일상은 때때로 답답하고, 서글프거나 두렵기도 할 것이다. 잠시나마 현실을 뒤덮고 있는 무거운 덮개를 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 공상을 통해 얻는 자유로움과 행복감은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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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나라 고구려의 시작 - 추모왕 이야기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2
김용만 지음, 장선환 그림 / 마루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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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시리즈의 첫 번째 그림책. 새롭게 기획된 시리즈인 모양인데, 우리 역사를 이끌어 온 인물 이야기를 당시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곁들여 들려줄 예정이라고. 이번 작품은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의 일대기를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흑백의 과감하면서도 간결한 선과 절제된 부분 채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여백의 미를 한껏 살린 동양적인 화풍으로 비움의 미학이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  역사를 취약 분야로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 제목을 보면서 '고구려를 세운 사람은 주몽인데... 추모왕은 누구지? (혹 주몽이 추모왕인가?)'라는 의문을 잠깐 가진 것을 보면 역사 지식이 어지간히 없는 모양이다. ^^*  아, 그리고 아주 어렸을 적에 옛날에 즐겨 보던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동명성왕'이라는 인형극을 방영했었다. 그 때 따라 부르곤 했던 노랫말의 일부가 아직 기억나는데, 해모수와 유화 부인의 아들을 '동명성왕'이라 칭했었다. 그래서 자료를 검색해 봤는데 동명성왕과 추모왕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글도 눈에 띄어서 좀 헛갈린다.

 이 그림책은 유화가 부여 왕궁에서 알-해모수가 햇빛으로 변해 유화를 비춰주면서 생긴-을 낳은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모수와 유화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은 아이들에게 알려주기에는 부적합한 이야기이긴 하다. ^^;) 알에서 태어난 추모가 '주몽'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활을 잘 쏘았기 때문. 즉 '주몽'은 이름이 아니라 화를 잘 쏘는 사람을 가리키는 부여 말이며, 추모왕이라는 이름은 [광개토태왕릉비문]에 나오는 것이라 하니 고구려의 시조를 말할 때는 '추모왕'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합당하다. 

- 나도 주몽을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그림책을 본 후 검색을 해보면서 이 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 책을 보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곤 하다 보니 나도 여러 방면으로 많은 공부가 되는 것을 느낀다. (역사 드라마는 재미를 위해 종종 허구적인 내용이 가미되어 오히려 역사 지식에 혼선을 주어서 되도록이면 안 보는 편임. -.-)

 재주나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 보니 주변에 시기하고 헐뜯는 이가 생기게 되고, 결국 추모는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 친구와 부여를 떠난다. 이후 홀본 땅에 이르는 여정-엄리대수를 건너는 일화-과 소서노를 만나 고구려를 세우고 비류국을 통합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후반부는 궁궐 건축, 고구려의 영토 확장에 이어 부여에서 찾아 온 아들(유리) 이야기가 짧게 언급된다. 추모왕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서인지 유리가 부러진 칼 조각으로 아들임을 증명하는 일화는 생략되었다. 

 대상 연령을 고려하여서인지 본문 글이 대체로 간결한 편이며, 어미를 '~요, ~다'를 혼합하여 써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살렸다. 본문 뒤에는 [대륙을 호령한 고구려]라는 제목 아래 고구려와 고구려인에 대한 정보, 지금도 성벽과 건물의 터가 남아 있는 오녀 산성(추모왕이 만든 궁궐)에 대한 이야기, 소서노*를 조명하는 글이 실려 있다.  
* 본문에서는 '홀본'이라는 단어를 쓰고 이 부분에서는 "졸본"이라는 단어를 썼던데, 같은 지역의 땅을 지칭한다면 표기를 통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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