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티는 다 알아 그림책은 내 친구 20
애널레나 매커피 지음, 앤서니 브라운 그림 / 논장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현실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거나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낄 때, 혹은 삶의 한 켠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면 그런 상황에 놓인 현실을 벗어나 지금과는 다른 삶을 그려 보게 된다. 상상 속에서의 내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고, 모두가 행복하며, 멋진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공상을 즐기고 있는 순간에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행복이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 마음이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애드벌룬만큼이나 커다랗게 부푼 마음이 두둥실 떠올라 구름 위에 내려 앉아 그 정점에서 내내 머무르고 싶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런 순간을 길게 허용하지 않는다.  

 <특별한 손님>에 이어 애널레나 매커피(안나레나 맥아피) 와 앤서니 브라운이 함께 만든 그림책. (소개글을 보니 애널레나 매커피가 이언 매큐언의 아내라고!) 큼지막한 왕관을 쓴 커스티는 레이스가 드리워진 근사한 공주 침대에 누워서 무엇을 하며 하루를 신나게 보낼지 궁리를 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아침 먹고 학교에 가라는, 자명종 소리보다 시끄러운 엄마의 목소리가 커스티를 현실로 끌어낸다. 



 지저분한 얼룩이 있는 식탁보 위에는 그다지 먹을 마음이 들지 않는 맛없는 음식이 차려져 있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의 커스티를 괴롭히는 존재, 머리 양 쪽을 리본으로 묶어 뿔처럼 삐죽 솟은 노라의 머리 모양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스탠드, 책, 컵, TV, 벽에 걸린 그림, 식탁보의 얼룩, 건물이 그려진 파인애플 그림과 그 옆의 검은 그림자들 속에서... 현실의 삶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노라가 얼마나 큰 존재감으로 커스티를 짓누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내 눈에는 선생님의 머리 뒤에 있는 칠판에 그려진 두 개의 가느다란 선마저도 노라의 머리 모양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커스티는 새하얀 식탁보 위에 -아이들 눈높이에서- 온갖 군침 도는 음식들이 즐비하며, 그런 파티를 엄마 아빠도 함께 즐기는 아침을 그려 본다. 주변에는 색색의 풍선들이 두둥실 떠다니고 흥겨운 음악소리까지 곁들인 흥겨운 파티 같은 아침을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학교에 가며 자기를 놀리던 노라 넬슨도 커스티가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탄 인력거를 끄는 신세이다. 청색 계열의 동양풍의 청자 접시 같은 느낌을 살린 그림을 들여다보면 뽀빠이, 네스호 괴물, 악어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글에 집중하느라 그림은 대충은 훑어 넘겨버리는 것은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 곳곳에 숨겨 놓은 여러 장치들을 찾는 재미를 놓치게 되는 지름길! 



 
 현실에서 엄마는 작은 슈퍼마켓에서 일하러 다니며,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실업자인 아빠는 저녁이면 연장 창고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조이스 리틀 여사에게도 멋진 모습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근사한 꿈이 있다. 그렇다, 엄마의 이런 꿈을 커스티는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커스티가 상상하는 아빠의 과학실 풍경은 볼거리가 가득하다. 그림 구석구석을 세세히 살펴보면 깃털, 날개, 프로펠러, 나르는 양탄자와 빗자루, (커다란 귀로 나는) 코끼리 점보 등 하늘을 나는 여러 가지 것들로 자유로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양 쪽 페이지에 각각 교실 풍경이 실려 있는 그림인데,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그림인 것 같아도 세세하게 비교해보면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책장에는 아이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수업을 받는 평범한 교실 풍경인 반면 오른쪽 책장을 보면 주변의 온갖 사물들이 비슷한 모양의 다른 사물로 바뀌어 있다. 커스티의 책 모양, 창문 밖 풍경, 그림 속을 탈출한 동물들, 노라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지구본.  그리고 앤서니 브라운하면 저절로 연상되는 동물, 고릴라까지! 




 커스티가 꿈꾸는 세상과 현실은 그림과 문체에서도 확연히 구분된다. 커스티가 접하는 현실은 단조로운 문체로 들려주며 평번한 일상을 담은 그림이 책장의 2/3정도를 채우는 크기인 반면, 커스티가 꿈꾸는 것들은 사각틀 안에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한 알파벳 대문자 글자와 더불어, 커스티의 말투와 책장  가득 세밀하게 그린 그림으로 구체화했다. 이런 차이점들이 커스티의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 책을 본 아이들이 그 알파벳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했는데, 원작에서 해당 쪽 첫 문장의 첫 영문 글자가 아닐까 짐작해 봄.




 다만 이 그림들도 테두리 선 안에 갇혀 있지만 노라 넬슨이 변한 두꺼비가 빵~ 터지는 순간 그림 양 옆의 사각틀도 함께 열린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떤 틀에도 갇혀 있지 않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커스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목이 실린 내지에 보면 호랑나비 애벌레 그림이 있는데, 단지 장식으로 그려 놓은 것이 아니고 마지막 장에 커스티가 탈바꿈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과 연관되어 있다. 작고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그 안에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나비를 감추고 있는 애벌레처럼 자신 안에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근사한 내가 잠재되어 있음을 커스티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공상을 즐기는 커스티에게서 가끔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하는 내 모습-빨간 머리를 빼면 모습도 비슷한 듯-을 보는 것 같다.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자신이 꿈꾸는 삶과 일치하지 않는 일상은 때때로 답답하고, 서글프거나 두렵기도 할 것이다. 잠시나마 현실을 뒤덮고 있는 무거운 덮개를 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 공상을 통해 얻는 자유로움과 행복감은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