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옷을 죄다 꺼내 장롱에다 정리를 한 후
비워진 투명 정리함에 간절기 옷들을 하나 둘 담고 있다.
며칠 날씨가 초여름 같아서 마음이 바빠져 버린 탓에
그럴 여유도 컨디션도 아닌 상황임에도 억지를 쓰듯 그러구 있다.
수납공간에 여유가 없으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쁘고 어수선하다.
그 공간에 자유로울 만큼 넉넉한 수납공간을 가진 현실이 어디 흔할까마는..
박스에 넣을 옷들은 일단 세탁을 거쳤고 건조되는 순서대로 반듯하게 갠 후
지나치게 각을 잡아 박스에 넣으면서 생각했다.
진짜 성질이 드러우면 팔자가 고생스럽다고
못말리는겠는 어떤 부분의 결벽증이 조금 짜증스러워졌다.
어차피 박스에 넣어졌다가 계절이 돌아와 다시 꺼내면 접혀진 부분 때문에
세탁을 거쳐야 할 옷들인데 너무 지나치게 각을 잡고 앉았구나 싶은..
몸도 피곤하고 잠도 자야겠고 무엇보다 몹시 귀찮고..
담배를 한대 피고 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대충 척척 개어서 대충 박스에 쌓아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상자를 다시 엎어 그렇게 넣었던 옷들을 꺼내 다시 각을 잡기 시작했다.
우습기 짝이 없지만 나는 생각했다.
이 옷들을 입을 계절이 돌아오기도 전에 혹시나 내가 비명횡사라도 하거나
교통사고라도 당해 장기입원이라도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그럴 경우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이 옷상자를 열지도 모른다는 생각(-_-;;;)
그게 뭐 어때서라는 건 나도 이성으로는 안다.
그건 가끔 타고 가던 택시나 버스가 급정거를 하면서 끽 소리를 낼 때
내가 제대로 깔끔한 속옷을 갖춰 입었는가가 즉각적으로 먼저 떠올라버리는 경우와 같아서
참으로 하잘 것 없고 중요치 않은 걱정이라는 것도 안다.
이래서 나는 늘 걱정이 팔자이고
이래서 나는 늘 사서 고생이고
이래서 나는 늘 앓느니 죽지만..
어쩌랴.. 생긴대로 마음 편한대로 몸이 좀 고달파도 그렇게 살아야지..
그런데 이렇게 이런 종류의 걱정이 늘어진 사람이
어째 이렇게도 메모와 잘라놓은 스크랩, 일기장 따위의
마음을 들키고도 남을만한 종이 조각들은 아무 곳에나 함부로 꽂아두며
말끔히 처리하지 못하는지..
불가사의..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