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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ㅣ 밀레니엄 북스 14
버지니아 울프 지음, 신현규 옮김 / 신원문화사 / 2003년 3월
평점 :
버지니아 울프라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을 떠올릴 것이다. 내게도 버지니아 울프는 강인한 페미니스트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디 아워스 라는 영화에서 만난 울프는 너무나 병약하고 예민한 존재였다.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런 강인한 여자의 모습이 아니라 남편에게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살다가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약한 여자였다.
그녀를 영화속에서 만나고 나서 그녀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그녀의 작품을 만나기 전에 그녀가 알고 싶어 버지니아 울프 전기문을 읽었다. 그녀의 시대에 여성이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삶을 의미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글을 썼으나 늘 남성작가들의 비판을 받았으며, 그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항상 자신의 글이 실패할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녀를 페미니스트로만 규명하는 것은 그녀의 재능을 축소, 제한하는 행위이다. 그녀는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뛰어난 문학적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여성이었기에 여성으로서의 문제의식을 더 날카롭게 가졌을 뿐이다. 그녀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재능은 당대에도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신경증적인 예민함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다면, 그녀의 삶이 그렇게 중단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소설이 전개되는 새로운 방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기존의 소설처럼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내면을 오가며 단 한나절의 시간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클러리서 댈러웨이의 시선이 서술되다가 어느 순간에 피터 월쉬의 시선으로 바뀌는 식이어서 정신을 차리고 읽지 않으면 대체 이게 누구의 시선인지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소설을 읽는데 2주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책이 너무 두꺼워서도, 시간이 너무 없어서도 아니고, 이유는 단 하나 이 책이 내게 거의 수면제와 같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다니면서 짬짬이 볼만한 책은 아니었다(의식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겠는가!). 따라서 책을 읽으려면 맘잡고 집에서 정식으로 읽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 드러누워 읽게 되는 수가 많았다. 그 다음은 너무 뻔하다. 2페이지 쯤 읽고 나면 의식이 몽롱해지고, 자세를 바꾸어 정신을 좀 차리는가 싶더니 4페이지 정도에 도달하면 나도 모르게 책이 손에서 툭 떨어진다. 그 때쯤 되면 책이고 뭐고 아예 내려놓은 채 달콤한 잠속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이야기에 특별한 줄거리가 없으니 다음 내용이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고, 문장이 간결하거나 시원스럽지도 않고, 끝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자기가 본 것,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중얼거리니 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완독을 목표로 거의 오기로 책을 읽었다.
그러나 특별히 흥미로운 스토리가 아니라고 해서 감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한 등장인물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클러리서, 피터 월쉬, 셉티머스의 모습은 우리 각자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여러 모습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클러리서 댈러웨이의 파티에 대한 강한 의욕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녀는 몹시 떠들썩하게 파티에 집착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매우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마치 매일매일 비슷한 삶을 사는 우리가 작은 이벤트에 매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파티 후에 밀려올 공허함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번잡스러움이 측은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의 뛰어남은 그 어떤 빼어난 문장을 쓰지 않으면서도 등장인물에게 독자 스스로를 이입시켜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의 감정을 공유하도록 하는데 있는 건 아닐까.
비록 졸면서 읽기는 하였으나 다 읽고 나니 그녀가 최초로 사용했다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것도 직접 체험하였고, 그것에 대해 뭐라 지껄일 수도 있게 되었다. 이제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으니 그녀의 다른 작품에도 시선을 돌려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