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기상. 뉴스를 들으며 샤워.
8시 아침 뷔페 먹었음. 생각보다는 괜찮은 동서양 혼합식 뷔페. 이곳 싱가폴에서도 일본인 관광객의 맹위는 대단해서 어설픈 모밀국수와 미소 된장국이 제공됨. 먹을 수 있는 한 많이 먹음.
9시 시티 투어 시작. 또다시 버스여행 시작. 수박겉핥기 식으로 리틀 인디아, 멀라이언, 차이나 타운, 보타닉 가든 둘러봄.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채였고, 가이드 스스로도 밤에 둘러보기 더 좋다고 말함. 아침 댓바람부터 썰렁한 이대앞 거리에 풀어놓은 중국인 관광객의 모습이 겹쳐짐. 나도 그 꼴이다. 그래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파악하기에는 괜찮았음.
리틀 인디아의 경우, 많이 쇠락하여 지금은 잘사는 인도인들은 다 빠져나가고 가난한 이들만 모여있는 듯 보였다. 한 나라에 인도사람, 중국사람, 말레이지아 사람이 섞여 있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했으나 대부분의 노동일은 피부가 까만 인도계 사람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싱가폴이 선진국이라고는 하나 빈부격차가 꽤 있는 듯이 보이며, 상류층 사람들은 마치 서양인처럼 생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동양인처럼 생활하는게 영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분명 아시아인데, 그들이 공식언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서양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서인지 오히려 서양 관광객들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그들은 고급 호텔에 묵고, 서양식 바에서 술을 마시며, 동양적인 색채도 느낄 수 있는 싱가폴을 매우 즐기는 듯 보였다. 싱가폴 국민이 아무리 서양인 흉내를 내도 그들의 영어발음은 본토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며, 그들의 피부는 엄연히 검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국가를 설립한지가 40년도 채 안되었다고 하니 세월이 더 지나면 완벽한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런지도. 지금은 그다지 학력이 높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나 노인의 경우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특히 값싼 음식점 주인 아저씨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해 음식의 사진을 보고 그냥 고르는 수 밖에 없었다.
싱가폴에서 재미있었던 점 또하나는 정말 많은 나라의 다양한 인종이 싱가폴에 모여든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색다른 언어가 들려오고 피부색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 버스에 올라탄다. 다만 일본 사람들은 언어문제 때문인지 개인여행을 하거나 일본인 가이드가 딸린 자기네 끼리의 패키지 관광을 했다. 다른 아시아국가에서 놀러온 이들은 대개 가족단위로 제법 부유해 보였으며, 여행경험이 많지는 않은듯 몹시 흥분된 모습이었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의 경우 나이든 노부부가 많았으며, 그 나이에 함께 여행다니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젋은 커플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는 사실(것들 모두 미혼인듯 했는데, 대체 집에는 뭐라 그러고 왔을까). 그리고 젋은 한국인들은 서로 마주치는 걸 아주 싫어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거기까지 가서 또 한국인이야 하는 기분. 근데, 미국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만나니 아주 반가워했다. 우리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건가?
1시 보태닉 가든에서 투어 버스를 타지 않고 자유롭게 산책함. 우림 나무속을 다닐 땐 다람쥐와 딱다구리도 볼 수 있었으며,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나무들에 위압감도 느낌. 남편은 모기에게 습격당해 남은 여행내내 고생함. 시내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가까울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과 공원이 있다니 참 부러웠다. 정원 정자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으니 부러울 게 없는 기분.
2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호텔 맞은편의 현지인 푸드 코트에서 점심. 이번엔 실패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매콤해보이는 국수를 골랐으나 역시 실패. 전형적인 현지 음식을 골라 코코넛이 섞인 묘한 국물에 거의 익히지 않은 조개를 씹고, 매우 역겨운(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음) 향이 나는 야채를 씹고 나니 더 이상 먹기가 어려웠음. 남편이 고른 완탕은 괜찮았음. 3달러씩 6달러 들었으니 아주 싸다. 점심 먹고 이름도 모르는 열대 과일을 후식으로 먹음. 이곳 푸드 코트에는 음료수와 조각 과일만 파는 곳이 있어 입가심 하기에 아주 좋다. 점심을 먹고 나니 갑자기 강한 바람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짐. 그치길 기다렸으나 완전히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아 빗속을 뚫고 호텔로 뛰어옴. 비는 계속 그치지 않고 저녁무럽까지 이어짐.
4시 센토사 관광 시작. 다시 버스타기 시작. 센토사 섬은 침략에 대비해 요새로 세워졌다는데 일본군이 다른 쪽으로 쳐들어와서 전혀 그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함. 최근들어 관광지로 탈바꿈. 센토사 섬에 들어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탔음. 비가 와서 전경을 완전히 즐기지 못함. 나비 박물관에 가서 한국에서도 관심없는 나비를 의무적으로 쳐다봄. 그나마 비가 와서 나비들이 살고 있는 정원에도 가지 못함. 나비 박물관에 딸린 곤충박물관에서 역시 관심없는 각종 벌레들을 봤음. 다만 엄청나게 큰 열대 바퀴는 매우 인상적임. 나비 박물관 다음으로 언더 워터 월드에 감. 우리 나라 아쿠아리움과 다를 바 없으나 섬에 있어서 바닷물을 맘껏 쓸 수 있어서 그런지 물도 깨끗하고 물고기 상태도 좋았음. 또 머리위까지 수족관으로 채워져 있는 부분이 한국 아쿠아리움보다 넓었음. 그러나 별로 신기하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몹시 신기해 함. 언터워터 월드관광이 끝나고 가이드 아줌마에게 속아서 가이드 아줌마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끌려가서 맛없는 돼지고개 덮밥을 먹음. 난 대부분 먹지 못하고 콜라로 배채움. 역시 난 멍청이야 생각함. 저녁먹고 싱가폴에 왔다면 꼭 봐야 한다는 분수쇼를 구경함. 음악과 영상과 레이저가 어우러진 쇼는 그런대로 재미는 있었으나 머스트 시까지는 아는 듯. 그러나 이번에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적임. 아무래도 서울은 최첨단 도시인듯 하다. 아님 내가 너무 냉소적인건가.
9시 호텔로 복규. 마지막 밤을 놓칠 수 없어서 시청에서 MRT(지하철)를 타고 싱가폴 강(래플스 팰리스 역)으로 이동함. 처음으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봄. 천천히 따라하기만 되는 무인 판매대가 있어서 쉽게 티켓을 구입했다.. 티켓을 반환하게 되어 있어 각 티켓마다 1달러의 보증금이 붙어있으며 내린다음 다시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었다. 싱가폴 지하철은 노선이 2개 밖에 안되서 이용하기가 쉬웠고 지하철 역이 아주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특이한 것은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매번 탈때마다 긴장해야 했다는 사실. 덕분에 사람들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지만 나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 속도에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또한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이 없어서(내가 눈치 못챈건지도) 그냥 기다리다가 열차가 오르면 탑승한다는 점도 특이했다. 그리고 평지가 대부분인듯 지하철 역에서 얼마 내려가지 않으면 열차를 탈 수 있었다.
Boat Quay에서 배를 타고 싱가폴 강위를 달리며 도시의 야경을 구경했다. 일제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현대의 마천루들이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싱가폴의 야경은 정말 멋지고 로맨틱했다. Clark Quay에서 배를 내려 강변을 걷다가 강가 노천 카페에서 현지 맥주인 타이거 맥주를 마셨다. 한강과 달리 싱가폴 강은 폭이 좁고 주변이 바로 도심이어서 강변음식점들이 아주 많고 강가에서 저녁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강에서도 이런 밤문화를 즐길 수 있으면 좋을텐데... 싱가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모든 것들은 너무 거대하다.
맥주를 마시고 면허를 가진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시청으로 되돌아왔다. 싱가폴은 모든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바가지 쓸 염려도 없고, 사기치는 사람도 없어 여행하기 맘 편했다. 밤에 자전거에 달린 의자에 나란히 앉아 차도를 달리는 기분도 아주 좋았다.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층이었는데 맨날 달려서 인지 바짝 마른 몸에도 크게 힘겨워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관광객이 많은 만큼 인력거의 숫자도 많아서 크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11시 호텔 도착. 시청역에 도착해서 밤거리를 좀더 쏘다니다가 갑자기 밀려드는 피로에 호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쉽기만 한 싱가폴에서의 두번째 밤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