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이 책의 한글판 제목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았다. 안 그래도 요즘 편협한 사회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데다가 젊은 세대들의 우울증, 불안증,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있었기에 바로 도서관을 검색해 책을 찾았다. 영문판의 제목은 <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로 coddling은 너무 애지중지하는 걸 뜻하니 과보호를 의미하는 것일 텐데 안 그래도 요즘 헬리콥터 부모니, 제설기 부모 (snowplow parents)니 하는 말로 과보호하는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나 역시 과보호의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입장인지라 솔깃한 마음에 바로 빌렸다.
앞부분에서 저자들은 미국 사회에 퍼져있는 세 가지 나쁜 생각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비진실(Untruth)은 다음과 같다.
- 유약함의 비진실: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
-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늘 너의 느낌을 믿어라.
-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 삶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사이의 투쟁이다.
(이 부분은 책 소개 글에서 빌려왔다)
첫 번째인 유약함의 비진실은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두 번째 감성적 추론의 비진실도 내 느낌을 항상(여기에 방점이 있다) 믿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저자의 지적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려는 순간 microaggression 이야기가 나왔다. 혹시 마이크로어그레션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도 계실 수 있어 이제오마 올루오의 <인종토크>에서 마이크로 어그레션을 설명한 부분을 발췌했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소외받고 차별받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같은 소수자들이 수시로 겪어야 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모욕과 수모를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할 인종적 마이크로어그레션이란 유색인에게 가하는 수모와 모독을 말한다. 이건 그저 귀찮고 거슬리는 일이 아니다. 당신이 '열등하다'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반복 주입시킴으로써 심리학적인 피해까지 입히는 현상을말한다. 마이크로어그레션에 반복 노출되는 유색인은 고립감을 느끼고 자신이 틀렸거나 가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돌발 상황에서 마이크로 어그레션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경계심이 높아지고 불안장애나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p. 219)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소외받고 차별받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같은 소수자들이 수시로 겪어야 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모욕과 수모를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할 인종적 마이크로어그레션이란 유색인에게 가하는 수모와 모독을 말한다. 이건 그저 귀찮고 거슬리는 일이 아니다. 당신이 '열등하다'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반복 주입시킴으로써 심리학적인 피해까지 입히는 현상을말한다. 마이크로어그레션에 반복 노출되는 유색인은 고립감을 느끼고 자신이 틀렸거나 가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돌발 상황에서 마이크로 어그레션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경계심이 높아지고 불안장애나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p. 219)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런 거다. 흑인 남성이 지나가는데 가방을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기는 여성, 상점에 들어갔는데 멕시칸 여성을 계속 주시하고 있는 직원, 영어를 잘하는 동양인에게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사람임) 너 영어 잘한다. 혹은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고 묻는 것(트럼프가 예전에 바로 이런 식으로 했다가 한국계 학생에게 한 방 먹었다. 이런 질문은 너의 생김새를 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구나. 이런 의미가 있다) 흑인 승객을 태우지 않고 지나가는 택시, 취향이 고상하네요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가 내포되어 있음.) 이런 것들이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가해자가 일부러 상처를 주거나 모욕감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좋은 의도에서 칭찬이거나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서 하는 행동일 때도 있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이런 행위에 의해 위축되고 방어적으로 되며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의도하지 않은 것은 어그레션 (공격)이 아니라고 한다. 네??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하면 그 일이 준 영향은 아무 상관없이 괜찮은 건가요?? 의도보다 영향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가 문제라고 하면서 이런 마이크로어그레션을 당했을 때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 행동을 한 사람에게 '네가 나쁜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거 알지만 그건 이러이러한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라고 말해줘야 한단다. 그래야 어쩌고 하고 개소리를 하는데 열이 확 올라왔다. 왓?? 뭐라고??? 물론 이런 일을 당해서 기분이 나쁘고 상처받았을 때 그걸 끌어안고 괴로워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미친 x 하고 툭 털고 일어나는 방법을 연마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피해자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이고 피해자가 선택할 일이다.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고치려 하는 게 아니고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듯 모든 것을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일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다니? 저자는 백인 남성이기 때문에 이걸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는 네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사람들에게 찬찬히 이야기해 주면 해결될 거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버클리에서 일어났던 밀로 야노풀로스(이아노풀로스? Milo Yiannopoulos) 연설 저지 시위의 예를 든다. 이 밀로 야노풀로스는 아는 분은 알겠지만 여성 혐오, 이슬람 혐오, 인종차별들의 발언으로 악명 높은 놈이다. 그가 2017년 2월 버클리 대학에서 강연을 하려 하자 반발한 학생들의 시위가 격렬해졌고 폭력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물론 나는 폭력에 반대한다. 그런데 이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나의 대학 때가 떠오른다. 당시에도 언론은 대학생들이 시위하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폭력에 중점을 두고 비난하지 않았던가. 폭력을 휘두르고 관계없는 사람을 다치게 한 시위대를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혐오 발언으로 선동하는 놈의 강연을 그것도 대학에서 열다니?? 물론 대학에서 한쪽에 치우친 이야기만 들어야 한다면 그건 잘못이다. 하지만 양쪽의 의견을 듣는게 아니라 단지 중립적으로 해야 한다며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람들도 데려와 듣는 게 옳은 일인가? 트럼프 시대가 되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혐오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고, 가짜 뉴스를 마구 퍼뜨리는 데 이것들도 역시 표현의 자유니까 괜찮다는 말인가? 그 말로 인해 사람들이 다치는데?? 말은 폭력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모욕은 그냥 떨쳐버리고 무시하면 된다고??
앞부분부터 엄청 화가 났는데 끝까지 다 읽었다. 물론 저자들의 지적이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자유롭게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 아이들을 과보호하는 부모와 학교,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대학 행정부, 아이들의 SNS 사용에 대한 지적 등은 일리가 있고 우리가 바꿔가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거 보려고 끝까지 읽었다)도 딱히 새로운 것은 없었고 책이 전반적으로 내용이 반복되고 (매번 챕터가 끝날 때마다 요약도 해 준다) 몇몇 사실과 극단적인 예를 가지고 일반화를 시키는 오류도 많았다. 쓰다 보니 다시 화가 나서 제대로 논리적으로 쓸 수가 없었고, 지적하고 싶은 부분들도 뒤늦게 생각났지만 다시 책을 들춰보기 싫어 여기까지만. 한마디로 이 책을 설명하자면 특권을 가진 나이 든 백인 남성이 '요즘 애들은 말이야'라고 하는 꼰대의 분위기로 가득한 책.
서재에 책을 넣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한글책은 종이책과 전자책이 연결되어있어서 전자책을 넣고 글을 써도 같은 책이면 종이책에서 검색해도 나오는데 외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외서는 종이책, 전자책 뿐 아니라 하드커버, 페이퍼백, 오디오 북 등등 종류가 많은데 이것도 같은 책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을까?
까먹기 전에 <The 57 Bus>에 대해 쓰려했는데 벌써 가물거린다. 흑
북플에서는 가지런하게 나오는데 왜 서재에서는 책이 들쑥날쑥하게 되는 거지?
올리브 키터리지는 한글로 읽어도 좋았다. Olive, Again의 한글판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