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딸들인 30대의 조카들을 만나면 누나일 뿐임에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부모인양 늦둥이 남동생(고1)을 걱정한다.

 

그리고 얼마나 예뻐하는지…. 내가 볼 땐 웃자란 키에다 깡마르니 뭔가 엉성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없는 데다 얼굴에는 청춘의 다이아몬드가 초롱초롱해서 징그럽기 그지없건만 그녀들은 유치원생 예뻐하듯이 토닥인다.

 

"그렇게 실속 없이 예뻐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저 애를 위해서 누나들이 할 일이 뭔가를 생각 해봐."

"진정으로라면 어떻게?"

 

그토록 예뻐하면 답이 나와도 벌써 나왔을 텐데 녀석의 누나들은 나를 만날 때면 늘 한숨이다. 아무리 예뻐해도 공부 못하는 것을 잘하게 할 수는 없는지. 글쎄, 이번 중간고사에서는 수학을 19점인가 맞았대나. 수학이라면 거의 만점 가까이 맞았던 둘째 조카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수였을 것이다.

 

"찍어도, 찍어도 어찌 그리 정답을 피해가면서 찍었는지."

"야, 갸는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는 이 고모의 피를 이어 받았나봐(웃음)."

 

수학 왕 조카의 장탄식을 듣자 푸~훗 옛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왕년의 학력고사에서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했기에 수험 당일엔 무조건 찍었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15점이었다. 좀 잘 찍어서 30점은 언감생심, 25점쯤 받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었는데 수학은 내 시험 점수로 '확률'이라는 단원의 존재를 알려줬을 뿐이었다.

 

아무튼, 10점대의 점수를 받은 전력이 있기에 막내 조카의 19점은 나로서는 200퍼센트 이해가 가는 점수였다. 그 19점은 그나마 객관식이 있는 시험에서 '확률'이라는 것이 적용되었으니 망정이지 실지의 성적은 0점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그냥 포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 포기하고 그 시간에 다른 것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막내조카는 수학은 19점 받으면서도 국어는 조금만 공부하면 90점대를 넘는다고 했다. 그러니 이 아이의 머리는 100퍼센트 인문 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점수로서 증명하는바.

 

문제는 그 많은 수학 시간을 어떻게 3년씩 견디냐 하는 것이렸다. 이 부분에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조카처럼 수학에 취미 없는 얘를 앉혀놓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불쌍하고 배우는 조카도 불쌍하고…. 그 지루하고 어이 없는 경험은 이 몸 또한 뼛속 깊이 경험해 본 것이기에 막내조카 또한 나의 전철을 밟을 것을 생각하니 애처롭다.

 

아무튼 오빠네 가족들은 중학교 3년과 그리고 이번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그래도, 그래도" 하면서 "혹시나, 혹시나"하면서 기대를 접지 않았는데 이번 19점 앞에서는 확실하게 풀이 꺾인 듯했다. 나는 막내조카가 중2 무렵부터인가 공부가 싫다면 학원비(월 20만 원)를 차라리 다른 식으로 소비하라고 누차 건의했다.

 

즉, 학원비의 절반은 저축하고 나머지 절반만 털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기차 타고, 버스 타며 타 지역을 같이 여행하라고 말이다. 1차 목표로는 가까운 남부 지방 주요 사찰들을 두루 탐방한다든가 아니면 역시 남부 지방 명산들을 두루 답사 등 견학거리는 찾으면 세고 센 것 아닌가.

 

그러면 이 누님들은 순간은 혹하나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공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학원행을 독려했다. 때문에 한 다리 건넌 내 처지에서 자꾸 강요할 수도 없어 나 몰라라 했는데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부 학원 말고 다른 학원 보내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막내가 나름 융통성(?)이 있어서 공부 스트레스를 주는 쪽쪽 다 받아 먹지는 않는다는 것. 성적도 안 오르는데 가기 싫은 학원을 꾸역꾸역 가면서 스트레스 왕창 받으며 우울해 하면 보는 사람도 애처로울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학원 잘 가는 척 하면서 요령껏 빼먹으며 가끔 영화도 한 프로 씩 땡기는 듯했다.

 

그러다 꼬리가 길 경우 한 번씩 들켜서 반란이라곤 모르는 오빠네 식구들을 아연 실색케 하지만 나는 녀석의 그런 낙천성에 한 표 주고 싶어진다. 나아가 비굴하게 학원이나 '띵겨' 먹는 그런 짓 좀 하지 말고 당당하게 "부모님, 누나들 나 학원 싫소"라고 좀 외쳐주었으면.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안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인즉슨, 고교에 올라온 조카는 공부학원 말고 태권도 학원을 보내 달라고 했다는데 가족들은 들은 체를 안했다고 한다. 운동 배워 힘 쓰는 것 아닌가 불안해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게 아니고 아무래도 걔가 청춘이다 보니 에너지가 남아 돌아 그런가 본데 건실한 육체를 가지다 보면 혹 호연지기가 생기지 않을까 보내보라고 권했다.

 

나아가, 독서 계속하고 기타 학원 같은데서 기타를 좀 배우게 하면 어떨까 했지만 이 고리타분한 가족들은 '딴따라' 시킬 일 있나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딴따라는 아무나 하나. 딴따라 될 생각이 있을 정도로 기타를 튕긴다면 다른 무엇도 야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은 태권도를 배우면서, 손톱에 핏물이 들도록 기타 줄을 뜯으면서 혹, 인내, 용기 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가족들은 딴따라와 조폭만 연상했다. 휴~, 아무튼 궤도를 이탈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고 어렵다. 그러나 한번 이탈해보면 별것 아니고 단지 해방일 뿐일진대….

 

우리 다닐 때야 한번 공부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낙오자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입시 공부를 잘 따라가는 애라면 힘들어도 그냥 가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조카처럼 따라갈 생각이 전혀 없는 경우는 계속 학교와 학원 이중으로 다니게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청소년 학대다.

 

둘 다 보내며 애를 혹사 시키기보다 그중 하나는 떨쳐 버리고 대신 견문을 넓혀 주는 것이 오히려 더 조카 마음에 단비를 주는 게 아닐까. 물론, 새가슴 오빠네 가족들은 학교를 관두게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니, 소득 없는 학습학원이나 이참에 제발 좀 정리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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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85개를 5일 만에 뚝딱!

 

어린 시절, 과일을 좋아했던 나는 과수원집 딸들이 무척 부러웠다. 중학시절엔 과수원 하는 친구의 집에 갔다가 굵기가 작은 홍옥 여러 소쿠리 분량이 소여물 옆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아니, 먹는 과일이 왜 저기 있지.' 좀 작아도 사람이 먹기엔 충분했는데 소먹이로 주는 것을 보고는 그 소가 어찌나 부럽던지. 소를 주느니 나를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쑥스러워서 못했다.

 

친구 집에서는 작은 홍옥은 사과 축에도 들지 못했고 처치 곤란이라 소가 어서 먹어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 친구에게 그때 얘기를 하면 친구는 내 부러움과는 정반대의 대답을 하였는데, 듣고 보니 과수원집 딸에게도 나름의 고충은 있었다.

 

"내 사과를 안 먹고 말지. 가을에 사과 딸 때마다 무거운 사과 바구니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요즘 부모들은 자식들 일 안 시키지만 우리 때는 본전 빼고도 남게 시켜 먹었잖니? 내게 사과는 맛있는 과일이 아닌 '노동'으로 기억된다."

"아무리 그래도 내겐 니 노동이란 말이 사치로 들린다. 일 많이 해도 좋으니 사과 많이 먹고 자랐더라면…."

 

아무튼, 과일에 대한 내 여한이 자식들에게도 유전되었는지 두 아이 다 과일을 무척 좋아한다. 요즘은 과일이 철도 없이 일 년 내내 쏟아지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과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우리 가족은 나의 옛날과 다름없이 없어서 못 먹어 안달이다.

 

얼마나 과일을 많이 먹어대나 하면 참외를 15kg들이 큰 상자로 하나 사면 5일을 못 버틴다. 15kg 큰상자일 경우 보통 주먹만 한 크기의 참외가 한 85개 정도 들어있는데 우리 식구는 그것을 4~5일에 다 먹어 없앤다.

 

6월 들어 벌써 두 상자를 먹었다. 아니, 5월 말일 전후에 한 상자 먹고 아직은 참외 값이 좀 비싼 듯해서 중간에 토마토 두 상자를 끼워 먹고 다시 참외 한 상자를 먹었다. 토마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 이웃들은 기겁을 한다.

 









  
과일상자. 버려도 늘 쌓인다.^^ 과일 값을 모두 합하면 78000원. 싸지요?
 
과일상자

 

"아니, 한 상자도 아니고, 토마토를 어째 한꺼번에 두 상자씩이나 살 수 있어요?"

"한 상자는 말이 상자지 너무 헤퍼서 며칠 못 가기도 하고 또 토마토 가격이 쌀 때는 달랑 한 상자 배달해 달라기 뭣해서 사는 김에 두 상자 삽니다."

"우리는 봉지로 사먹어야지 상자로 사먹으면 반도 못 먹고 결국은 버리게 돼요."

"우리는 없어서 못 먹어요."(웃음)

 

아무튼 요즘은 참외와 토마토가 당기는 계절이지만 조금 있으면 수박과 포도가 여름날의 열기를 식혀준다. 그런가 하면 그 다음은 풋사과 '아오리'가 신고식을 하기에 두어 상자 먹어 줘야 하고, 아오리를 먹고 나면 감과 빨간 사과가 나온다. 찬바람이 불면 남도의 귤이 또 우리네 미각을 꼬드기고 삼동엔 이 귤과 시원한 배와 사과를 번갈아가며 한 상자씩 비워야 한다. 일조량 적은 겨울철이라지만 우울할 새가 없다.

 

그러다 봄이 오고 대지가 꿈틀거리는 4월이면 딸기가 또 옆구리를 찔러댄다. 딸기를 얼추 먹고 나면 토마토가 나오고 큰 토마토 방울토마토 번갈아 먹고 나면 아아,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노란 참외가 지나치려는 내 발길을 붙든다.

 

사실, 오늘 점심부로 참외가 똑 떨어졌는데 사러갈까 말까하다 참아보자며 참고 있는데 갈증도 아닌 것이 배고픔도 아닌 것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데 아마도 과일이 고파서 생긴 금단 증상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금단 증상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라도 하면서 침이라도 삼키고자, 상상으로라도 좀 먹고 싶어서 말이다.(웃음)

 

참으로 고마운 과일가게 사장님 부부

 







  
단골 과일가게의 현증택 사장님. 1남 1녀 자녀들이 다 성장하여 그런지 부부가 다 인상이 여유롭다.
 
과일

 

과일을 상자째로 그것도 일주일도 안 돼서 한 상자씩 비운다면 비용이 상당하리라 짐작할 것이다. 물론 과일값으로 지출이 많다.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고기를 잘 안 먹고 외식도 거의 안 하니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호사스럽게 과일을 사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다 좋은 과일가게를 만났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한 2년 정도 되었을까. 동네 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인 이웃 아파트 후문에 어느날부터인가 노점 과일 가게가 들어섰다.

 

해서, 시장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에 어쩌다 과일을 빼먹었으면 한번씩 들르곤 하였다.  그런데 한번 두번 차츰 그곳에서 과일을 사다보니 이번엔 두 분의 후덕한 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착한 사람 밀어주고픈 게 인지상정. '이왕이면 이곳에서'하다 보니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자째로 과일을 살 때면 동네의 여느 과일 집보다 많이 쌌다. 그것은 과일을 많이 좋아하는 우리로서는 여간 생광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특별히 싸게 파는 이유가 무엇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 참에 여쭤보니 떼 오는 가격은 대동소이한데 '박리다매'를 한다고 하였다.

 

'박리다매? 아마, 과일장사로 나선 지 얼마 안 되었기에 특별히 손님 사로잡을 자신이 없어서 더 싸게 파는 것으로 전략을?'이라고 순간 생각했는데,

 

"과일장사 한 지가 그러고 보니 27년째네요."

"어머, 그렇게 오래요?"

"여기는 집사람이 하고 저는 또 다른 데 가서 합니다."

 










  
과일 옆에 따로 자리잡은 매실과 완두콩. 완두콩은 이즈음 왕창 먹어줘야. 매실을 보니 매실농축액을 담글까 말까.^^
 
매실

 

그러고 보니 오후에 그곳을 지나 칠 때면 아주머니 혼자 계실 때가 많았다. 그리고 과일이 쌌지만 상자째로 사도 하자를 별로 발견할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다 '27년' 경험이 녹아 있어 그런 것이었다.

 

아무튼, 이 단골 과일가게를 드나들면서, 이렇게 이문을 적게 보며 과일을 싸게 파는 것도 일종의 선업을 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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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단>에 의하면 캄보디아에서는 우물하나 파는데 우리 돈으로 50만원 든다고 하였다. 50만 원 짜리 우물 하나를 파면 약 500여명의 사람들이 전염병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물을 먹고 사용할 수 있다고.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 사막의 어디에서는 물 한 통(큰말통)에 우리 돈으로 15원인가 하는 것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어느 단체인가 ‘100원으로도 도울 수 있습니다.’라고 하던데 정말 사막에서는 우리 돈 100원이면 물을 여러 통 살 수 있을 것이었다.

 

<여행 생활자>의 유성용은 4000미터가 넘는 중국 고산지역을 여행하면서 추울망정 물 걱정은 없던데. 왜냐하면 물이 고프면 그냥 눈을 뭉쳐 즉석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으면 되었기에 말이다. 그 눈 다 쓸어다가 사막에 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무튼, <환경재단>에 의하면 전 세계 65억 인구 중 ‘11억 명’은 물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연간 ‘2000만 명’은 수인성 전염병으로 고생을 하고 매일 ‘4500명’의 어린이들이 오염된 물을 먹어 사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목포 같은 도시는 해마다 갈수기에는 물 부족으로 애를 먹던데...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내가 처한 환경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나마 평소에 쓰는 물이라도 좀 절약하면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진다.

 

물 절약, 아주 쉬워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느끼겠지만 요즘 아파트의 수압상태는 정말 좋다. 좋다 못해 너무 세다. 화장실은 물론 앞뒤 베란다 모두 찬물 더운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가 하면, 세탁기 수도꼭지 따로 화분용 수도꼭지 따로 등등 필요한 곳에 수도꼭지는 언제나 대기중이다.

 

‘주인님, 언제든 틀어주세요.’

 

그러나, 이러한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보편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다들 당연하다 생각하기 쉬운데 11억 물 부족 사람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 경우, 고맙다는 생각은 항상 하지만 물을 알뜰살뜰 쓰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내 나름으로 절약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수압을 조절하여 물줄기를 약하게 해서 쓰는 것이다. 이 수압조절은 수도꼭지에서 즉석으로도 할 수 있지만 매번 쓸 때 마다 그렇게 하려면 귀찮아지기도 하기에 보다 편리한 대책(?)이 필요하다.

 

어떻게? 즉, 보통 화장실 세면기 밑이나 부엌 싱크대 밑을 열어보면 두 개의 타원형 ‘수압조절나사’가 있다. 하나는 온수 다른 하나는 찬물이다. 때문에 수압을 조절하려면,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한번, 냉수 쪽으로 한번 틀어서 각각의 수압을 조절하면 된다. 간단하다.   그렇게 한번 조절을 해놓으면 매번 수도꼭지를 들어 올릴 때 ‘살짝 들어 올려야지’ 신경 안 써도 되기에 훨씬 수월하다.

 







  
왼쪽은 온수 오른쪽은 냉수
 
물절약

물론 처음에는 의욕이 앞서 물줄기를 너무 약하게 해 놓았다가 답답해서 다시 올리기도 하는데, 몇 번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더도 덜도 말고 딱 알맞은 물줄기를 찾게 된다. 희망하는 물줄기야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여하간 크게 줄이든 작게 줄이든 물을 절약할 수 있음은 확실하다.

 

아직, 수압조절나사의 존재를 모르신다면 한번 봐 주시길. 뭣이라, 다들 안다고요? 그러면 죄송(머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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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06-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고 있긴 했는데^^ 문제는 제가 죽으라고 줄이면 가족들이 죄다 풀어놓는다는 것. 이거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폭설 2008-06-11 11:27   좋아요 0 | URL
광화문 컨테이너 처럼 용접을 하세요.ㅋㅋ..^^

Arch 2008-06-21 01:38   좋아요 0 | URL
ㅋㅋ 이 댓글 이제 봤어요. 용접 기술 좀(굽신 굽신)

깜소 2008-06-1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직접 수도꼭지에서 하는데 남들이 뭐라 그래요~ㅋㅋ 장난하냐는둥 쪼잔하다나 뭐래나..ㅎㅎ 남자라서 그런 소릴 듣는건지 원~ 아끼자는데 남녀가 뭔 상관인지~ 반갑습니다^^

폭설 2008-06-11 11:29   좋아요 0 | URL
물부족 다큐 같은 것 할때 같이 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물통 두개씩 들고 왕복6시간을 걷곤 하던데...
 

요즘 들어 큰애는 부쩍 엄마는 직장 안 다니냐며 수시로 나를 약 올린다.

 

"엄마가 그랬잖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되면 회사에 다니겠다고. 정 갈 데 없으면 햄버거 집 시간제 일이라도 해라."

"야, 그런데서 이렇게 늙은 아줌마를 써 주간?"

"그게 안 되면, 공장에라도 가라. 하다못해 밤을 깎던가."

"야, 주부의 노동가치가 얼마인 줄 아니? 백만 원이 넘어야."

 

"체, 엄마가 무슨 노동을 한다고 그래.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지. 밥은 밥솥이 해주지. 그깟 설거지 조금 하는 것 가지고. 우리 핑계대지 말고 빨리 돈 벌러 가라."

"하여간 그 애비에 그 아들 아니랄까봐. 내 오기로 일 안할 거야. 흠!"

 

그러나, 내 '적'은 이 아들만이 아니다. 다들 나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다. 지난 10년까지는 육아문제가 있으니 다들 봐주었는데, 10년을 지나니 아군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다들 한소리씩 한다.

 

= 큰언니: 니도 인자 좀 벌어야 되는 것 아니가? ㅇㅇ이(언니 큰딸)는 10여년 주부생활 접고 요새 병원(간호사) 다시 나간다.

 

= 친정엄마: 앞집 아무개는 지 차 하나 따로 몰고 다니며 가스검침 하는 일 한다더라. 주말 쉬고, 사람 부딪힐 일 없어 편하다 카던데.

 

= 조카1: 우리 학원 옆 반 선생님도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가자 바로 학원 강사 다시 시작했대. 

 

= 조카2: 돈은 안 벌어도 좋으니 뭔가 '뽀대나는' 일을 장기적 안목을 갖고 시작 해봐.

 

= 올케언니: 내가 고모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겠다. 왜 노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사실 결혼 초엔 나도 육아를 얼추 벗어나는 10년쯤 지나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또,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남들처럼은 못 벌어도 남들의 반만이라도 벌면 나로서도 성공 아닌가.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10년 지나면 그 때 봐서 뭐든 시작해야지 했다.

 

그런데 막상 10년이 지나고 보니 10년 전에 생각했던 것들이 다 하기 싫어졌다. 낭창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직장생활보다 새로운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 새로운 것들이 내가 생각해도 철딱서니가 없기는 없다 싶다.

 

예를 들면 귀농한 한 친구는 이 봄 차 밭에서 열흘 일해 30만원을 벌었다고 하였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얼마나 부러운지. 그처럼 나도 내 인생의 한 달 쯤은 차를 따서 돈을 벌고 싶은 것이다.

 

"차 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 그래도 할매들은 얼마나 잘 따는지. 다른 젊은 사람들은 한나절 따고 다 나가떨어지는데 그래도 나는 열흘을 버티니 기특하다 카더라."

"부럽다야. 나도 언젠가는…."

 

뿐인가. 이제 바야흐로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드니 생각나는데 '고디(올갱이)'를 잡아서도 한수익 올리고 싶다. 그런가 하면, 일당 받고 시골에 가서 양파나 마늘, 파, 부추 등을 수확하는 일을 하고 싶기도 하다.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노후를 준비해야 마땅할 텐데 이렇듯 한가한 생각들만 하니 이러다 나중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건 아닌가 가끔씩 살 떨리기도 한다. 그러나, 노후준비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현재'라는 이 순간순간을 자족하며 사는 게 곧 노후 준비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그리고, 주변을 보면 열심히 번 만큼 또 그 만큼 소비하기도 하던데 나는 말하자면 안 버는 대신 덜 쓰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둘 다 공무원인 이웃 모씨들을 볼 때면 부럽다. 그러나 가만 보면 혼자 버는 우리보다 돈타령은 그네들이 더 한다. 즉, 버는 만큼 또 이래저래 소비를 하다 보니 씀씀이가 커져서 오히려 더 쪼들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 꿈이 이렇듯 소박 찬란해도 눈치 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몇 년 더 못 버티고 직장 나가는 시늉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우선은 둘째를 핑계 대며 이 위기를 모면해 보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들아, 니 동생이 초등 3년이 되면 그땐 정말 엄마도 일을 할 거니까. 더 이상 엄마 인생 간섭마라.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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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월급. 기본급 상여금이 각각 32만5000원이고 의료보험 국민연금이 각각 9000원 등 총지급액이 93만5000원에 제할 것 제하니 84만5040원. 상여금 없는 달엔 50여만원을 받았던 기억이. 옛날엔 이렇게 살았구나.
 
월급명세서

 
우연히 책꽂이에서 옛날 책을 펼쳤다가 반가운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빛바랜 친구의 편지와 함께 끼워져 있던 그것은 다름 아닌 10여 년 전 월급명세서였다.

 

'아니 이게 언제 적 것인가?'

 
연도를 보니 1995년 3월의 월급이었다. 월급명세서는 매월 월급이 나오기 하루 전쯤 우리들에게 나뉘어 졌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그 월급명세서를 받으면 한 번 쓰윽 훑어 본 다음 아무데나 던져뒀다가 폐지정리 할 때 그냥 대중없이 버렸던 것 같다.

 

그랬는데, 오늘 발견한 것은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것이라 용케 살아 남았나보았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땐 왜 그렇게 성의 없이 살았는지. 하긴 그때는 나름 실용주의자(?)라 '일단 통장에 돈이 들어왔으면 되는 거지, 눈 여겨 본 다고 만원 한 장 더 붙는 것도 아니고'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버렸던 것 같다.

 

때문에 뜻하지 않게 살아남은 이 한 장이 너무 소중해, 신문기사 오려서 정리하는 공책에 특별히 모셨다.(웃음) 아들 녀석이 한 번만 더 약 올리면 "봐라! 엄마도 월급 타던 시절이 있었다"하면서 당당하게 말해야지.

 

10년 동안 모은 남편의 월급명세서

 








  
남편의 월급 명세서. 앞으로도 매달 빼먹지 말아야 겠다.
 
월급명세서

 

내 월급 명세서는 그렇게 천대를 했으면서도 남편의 월급 명세서는 지난 10년 동안 한 장도 버리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 두었다. 참으로 나 답지 않은 꼼꼼함을 보인 것인데 아마 계속 그렇게 벌어 오라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농담이고. 계속 모은 이유는 이다음에 자식들에게 교육 삼아 한번 써먹을 일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명세서 속에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기고 하고….

 

물론 꼬박꼬박 모으기는 해도 구체적 숫자를 들여다보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남편은 달랐다. 한 번씩 꺼내 볼 때마다 "아이 고오, 내 피 같은 돈, 도대체 세금을 왜 이리 많이 떼 가는 것이야. 의료 보험료는 왜 자꾸 오르는 것이야"하면서 열받아 했다.

 

"기부는 못해도 세금은 내야지 그렇게 아깝나?"

"니도 나가 돈 벌어봐라. 안 아까운강? 월급쟁이는 이래 뜯기고 저래 뜯기고…."

"그래도 선진국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세금은 세발의 피야."

"선진국은 많이 거둬도 공평하게 거둘 것 아냐. 우리나라는 불공평하니 짜증난다는 거지."

 

'그래도 요즘은 많이 공평해 지고 있잖아'하려다 슬그머니 말꼬리를 닫는다. 왜냐하면, 이 '왕소금'씨는 세금만 들먹이면 월급쟁이인 자신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드러내기에.(웃음) 아무튼, 우연히 발견한 옛날 월급명세서는 과거의 나에 대한 '존재증명서'이자 그 시절을 추억해 주기에 무척 반가웠다.

 

"지금 매달 월급 타시는 분들, 월급명세서 버리지 마시고 소중히 모으세요. 그러면 나중에 추억이 될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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