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딸들인 30대의 조카들을 만나면 누나일 뿐임에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부모인양 늦둥이 남동생(고1)을 걱정한다.

 

그리고 얼마나 예뻐하는지…. 내가 볼 땐 웃자란 키에다 깡마르니 뭔가 엉성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없는 데다 얼굴에는 청춘의 다이아몬드가 초롱초롱해서 징그럽기 그지없건만 그녀들은 유치원생 예뻐하듯이 토닥인다.

 

"그렇게 실속 없이 예뻐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저 애를 위해서 누나들이 할 일이 뭔가를 생각 해봐."

"진정으로라면 어떻게?"

 

그토록 예뻐하면 답이 나와도 벌써 나왔을 텐데 녀석의 누나들은 나를 만날 때면 늘 한숨이다. 아무리 예뻐해도 공부 못하는 것을 잘하게 할 수는 없는지. 글쎄, 이번 중간고사에서는 수학을 19점인가 맞았대나. 수학이라면 거의 만점 가까이 맞았던 둘째 조카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수였을 것이다.

 

"찍어도, 찍어도 어찌 그리 정답을 피해가면서 찍었는지."

"야, 갸는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는 이 고모의 피를 이어 받았나봐(웃음)."

 

수학 왕 조카의 장탄식을 듣자 푸~훗 옛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왕년의 학력고사에서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했기에 수험 당일엔 무조건 찍었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15점이었다. 좀 잘 찍어서 30점은 언감생심, 25점쯤 받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었는데 수학은 내 시험 점수로 '확률'이라는 단원의 존재를 알려줬을 뿐이었다.

 

아무튼, 10점대의 점수를 받은 전력이 있기에 막내 조카의 19점은 나로서는 200퍼센트 이해가 가는 점수였다. 그 19점은 그나마 객관식이 있는 시험에서 '확률'이라는 것이 적용되었으니 망정이지 실지의 성적은 0점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그냥 포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 포기하고 그 시간에 다른 것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막내조카는 수학은 19점 받으면서도 국어는 조금만 공부하면 90점대를 넘는다고 했다. 그러니 이 아이의 머리는 100퍼센트 인문 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점수로서 증명하는바.

 

문제는 그 많은 수학 시간을 어떻게 3년씩 견디냐 하는 것이렸다. 이 부분에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조카처럼 수학에 취미 없는 얘를 앉혀놓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불쌍하고 배우는 조카도 불쌍하고…. 그 지루하고 어이 없는 경험은 이 몸 또한 뼛속 깊이 경험해 본 것이기에 막내조카 또한 나의 전철을 밟을 것을 생각하니 애처롭다.

 

아무튼 오빠네 가족들은 중학교 3년과 그리고 이번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그래도, 그래도" 하면서 "혹시나, 혹시나"하면서 기대를 접지 않았는데 이번 19점 앞에서는 확실하게 풀이 꺾인 듯했다. 나는 막내조카가 중2 무렵부터인가 공부가 싫다면 학원비(월 20만 원)를 차라리 다른 식으로 소비하라고 누차 건의했다.

 

즉, 학원비의 절반은 저축하고 나머지 절반만 털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기차 타고, 버스 타며 타 지역을 같이 여행하라고 말이다. 1차 목표로는 가까운 남부 지방 주요 사찰들을 두루 탐방한다든가 아니면 역시 남부 지방 명산들을 두루 답사 등 견학거리는 찾으면 세고 센 것 아닌가.

 

그러면 이 누님들은 순간은 혹하나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공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학원행을 독려했다. 때문에 한 다리 건넌 내 처지에서 자꾸 강요할 수도 없어 나 몰라라 했는데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부 학원 말고 다른 학원 보내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막내가 나름 융통성(?)이 있어서 공부 스트레스를 주는 쪽쪽 다 받아 먹지는 않는다는 것. 성적도 안 오르는데 가기 싫은 학원을 꾸역꾸역 가면서 스트레스 왕창 받으며 우울해 하면 보는 사람도 애처로울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학원 잘 가는 척 하면서 요령껏 빼먹으며 가끔 영화도 한 프로 씩 땡기는 듯했다.

 

그러다 꼬리가 길 경우 한 번씩 들켜서 반란이라곤 모르는 오빠네 식구들을 아연 실색케 하지만 나는 녀석의 그런 낙천성에 한 표 주고 싶어진다. 나아가 비굴하게 학원이나 '띵겨' 먹는 그런 짓 좀 하지 말고 당당하게 "부모님, 누나들 나 학원 싫소"라고 좀 외쳐주었으면.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안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인즉슨, 고교에 올라온 조카는 공부학원 말고 태권도 학원을 보내 달라고 했다는데 가족들은 들은 체를 안했다고 한다. 운동 배워 힘 쓰는 것 아닌가 불안해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게 아니고 아무래도 걔가 청춘이다 보니 에너지가 남아 돌아 그런가 본데 건실한 육체를 가지다 보면 혹 호연지기가 생기지 않을까 보내보라고 권했다.

 

나아가, 독서 계속하고 기타 학원 같은데서 기타를 좀 배우게 하면 어떨까 했지만 이 고리타분한 가족들은 '딴따라' 시킬 일 있나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딴따라는 아무나 하나. 딴따라 될 생각이 있을 정도로 기타를 튕긴다면 다른 무엇도 야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은 태권도를 배우면서, 손톱에 핏물이 들도록 기타 줄을 뜯으면서 혹, 인내, 용기 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가족들은 딴따라와 조폭만 연상했다. 휴~, 아무튼 궤도를 이탈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고 어렵다. 그러나 한번 이탈해보면 별것 아니고 단지 해방일 뿐일진대….

 

우리 다닐 때야 한번 공부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낙오자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입시 공부를 잘 따라가는 애라면 힘들어도 그냥 가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조카처럼 따라갈 생각이 전혀 없는 경우는 계속 학교와 학원 이중으로 다니게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청소년 학대다.

 

둘 다 보내며 애를 혹사 시키기보다 그중 하나는 떨쳐 버리고 대신 견문을 넓혀 주는 것이 오히려 더 조카 마음에 단비를 주는 게 아닐까. 물론, 새가슴 오빠네 가족들은 학교를 관두게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니, 소득 없는 학습학원이나 이참에 제발 좀 정리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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