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이라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2026이라니. 비현실적인 과학공상영화속의 년도 속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여고시절, 2030년대는 내 나이 60대인데 그때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고는 했는데.... 이제 머지 않아 내눈으로 그 모습을 확인하게 생겼다.
지나온 세월이 꿈만 같다. 올해는 우리나이로 59세. 29세때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떠날때의 떨리던 마음이 어제처럼 느껴지는데 그것이 벌써 30년전이라니. 그사이 두아들은 28세 25세가 되었다. 남편은 명예퇴직후 몇년을 더 연장받아서 아직은 아침마다 출근을 하니 확실한 퇴직의 상실감은 유예중인것 같다.
나는 육아와 약간의 알바와 주부연한 삶을 살면서 30년을 보냈다. 어찌보면 별 풍파가 없었지만 사회속에서 치열한 삶은 살지 못했다. 이제 자식들도 다 성인이 되었으니 나도 이제 뭐라도 좀 하면서 살아야 되는게 아닌가. 그러나 서리 내리는 나이에 무언가 새로운 시작이라니 언감생심이고 그저 지난 30년이 그랬듯 개인적인 추구와 자연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동반한 채 조용히 살아가겠지.
2025년 봄은 산티아고가 있어서 특별한 한해였다. 지난 12월은 꿈에 그리던 차마고도를
걸어볼수 있어 감사했다. 몇년전만해도 나에게 있어 차마고도는 거의 꿈이었는데 이제는 추억의 한순간으로 남게 되었다. 나이가 드니 성격도 변하는것 같다. 변하는 내 성향을 순간순간 들여다 본다.
새해이니 늘 그랬듯 여전히 소박한 꿈들을 꾸어본다. 산티아고를 다녀온후 듀오링고앱으로 작심 6개월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를 하다 지금은 겨우 출석만 이어가는 중인데 다시 시작해야겠다. 돈만내고 별로 보지 않던 넷플릭스를 오랜만에 클릭해보니 언어지원이 많이 풍성해져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외국어 공부를 할수있는데... 그게 참 어렵고도 어렵다.~~ ㅎㅎ
거북이 처럼 엉금엉금이라도 멈추지 말고 공부해야겠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모국이 하나 더 생기는것과 마찬가지 인것같다. 차마고도 가서 독학 중국어를 마음대로 해보는데 통하니 짜릿했다.
산티아고 순례기도 정리중이다. 800km를 걷기만 했을 뿐인데 그 걸음걸음마다 감사함 마음이 이니 묘하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은 52% 도전했다. 작년에 60프로 달성하자 맹서했건만 못했다. 올해는 70%까지는 확실히 올리자고 다짐해본다.
냉동인간의 산티아고 순례기 3
오랜만의 유럽, 긴 비행의 시작(출발, 경유 그리고 도착)
부산 김해공항 출발
2025년 3월 30일. 나답지 않게 1년을 준비하여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여정의 그 첫발을 떼었다. 부산 김해공항에서 출국은 오후 5시 40분이었지만 1시간20분 정도 걸리는 공항에 가기위해 오전 11시 30분, 시간을 넉넉히 잡고 집을 나섰다. 혹시나 무슨 변수라도 생길까봐 일찍 출발했는데 교통 흐름이 좋아 일러도 너무 일찍 도착하여 공항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김해 공항은 한산하였다. 국적기가 아닌 중국 항공사를 선택했기에 중국 비행기 안 풍경은 어떨지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다 나랑 같은 상해항공에다 상하이를 경유해서 스페인 마드리드를 가는 스페인 교포여성(이하 마드리드 언니)을 만나 잠시 얘기를 하다 긴장감이 해소 되었다. 좌석이야 다르다 해도 비슷한 연배의 한국인과 같은 항공기를 타고 상하이 푸동공항까지 같이 가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위안도 잠시 첫 발권 수속 시작부터 가슴이 철렁하였다. 입출국 공항을 편도로 달리 끊은 것이 문제였다. 부산 김해공항에서 출국하여 상해 푸동공항을 경유하여 파리샤를드골 공항에 무사히 내리는 것이 나의 1차 목표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건이 필요했다. 김해공항의 상해항공사 직원은 내 비행기티켓을 발권하기에 앞서 샤를드골공항에서 스페인 땅까지는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즉, 파리에서 스페인국경을 넘는 교통수단의 티켓이 있어야 발권이 된다고 하였다. 지갑을 뒤져 샤를드골공항에서 ‘비아리츠(BIQ)공항’ 행 비행기티켓과 생장피드포르(Saint-Jean-Pied-de-Port)행 기차표 복사본을 찾아 직원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은 프랑스에서 프랑스로 이동하는 거잖아요. 프랑스에서 스페인 국경을 어떻게 넘으실 건가요?
“걸어서 갑니다. 45일을 걸어서 순례하고 마드리드를 통해 귀국할 예정입니다.”
“걸어서 간다고요?”
“예. 프랑스 국경지역에서 하루정도 걸어가면 스페인 땅이에요.”
직원은 재차 프랑스에서 스페인 땅 넘어가는 열차든 버스든 증빙이 되는 티켓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직원이 너무 단호해 보여 떠나기 전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하늘이 노랬다.
“프랑스에 불법 체류할 생각 하나도 없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역인 생장피드포르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코스중의 하나라 프랑스를 잠시 거쳐 갈 뿐이에요. 그곳으로 향하기 위한 비아리츠 공항 행 비행기 표도 있고 기차표도 있는데 안 되나요?”
“프랑스에서 프랑스로 이동하는 것 말고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이동하는 티켓이 필요해요.”
“아, 그것은 ‘걸어서’ 간다고요. 걸어서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고요. 산티아고 순례라고 들어보시지 않았나요? 걸어서 분명히 갑니다.”
산티아고 순례를 가겠다며 열심히 준비한 지난 1년이 출발도 못해보고 막히는가... 발에 물집 같은 거 없이, 여타 아픈 것 없이 완주하겠다며 집 앞의 486m 산을 가뿐하게 오르고 강변을 10킬로미터 이상씩 달렸다. 20층 계단 오르기 5~10회 혹은, 걷기 2만보 이상, 헬스장 트레드밀 7킬로 이상 등을 번갈아가며 하루에 한두 가지씩은 꼭했다. 그렇게 요란을 떨며 1년을 준비했는데 그냥 돌아가야 된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김빠진 맥주 곱하기 100배, 1000배 김빠질 일이었다.
잠시 후 완고하게 안 된다던 직원은 너무도 쉽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그러면 증명서를 한 장 써줄게요.”
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직원은 긴 내용이 적힌 서류 상단에 영어로 ‘이 사람은 걸어서 프랑스 국경을 넘는다.’는 말을 붉은 볼펜으로 적어주었다. 나는 그 종이를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접어 지갑에 넣었다. 비행기도 못 뜨고 나의 순례가 막을 내리는 줄 알았는데 천만 다행이었다.
짐 검사를 하고 출국대기를 하면서 여분의 배터리도 있고 해서 배터리 걱정 없이 폰을 사용하였다. 그러다 잔 여량이 50프로 이하라 충전을 하려는데 갑자기 충전이 되지 않았다.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폰에 충전기를 꽂으면 충전이 되고 있다는 표시가 떠야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폰이 고장인지 배터리가 불량인지 충전기 선이 문제인지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다. 불안이 엄습해왔다. 만약 폰이 고장이라면 폰 없이 순례를 해야 하는 건가 생각을 하니 또 아득하고 막막했다. 폰 공 기계를 가지고 올까 생각하다 마지막에 까먹은 것이 생각났다. 다음부터 개인 여행 시에는 여권 복사본과 함께 휴대폰 공 기계는 필수임을 뼈에 새겼다. 공항 안 어디서 배터리 혹은 충전기를 산다는 말인가.
상하이 푸동 공항에서 경유
수심을 가득 안은 채 어쨌거나 김해공항에서 나의 비행기는 17:40분 출발하였고 19:30분 경유지인 상하이 푸동공항 무사히 안착하였다. 이제 환승이 문제인데 하필 비행기 앞자리에 앉아 일찍 나오고 보니 뒤를 졸졸 따라만 가는 일이 불가했다. 그래서 트랜스펄(Transfer) 글자를 찾다가 사람들이 줄서서 대기하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뭔가 그쪽은 아닌듯한 느낌이 들어 안내직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 나보다 나이가 연상인 듯한 여성분(이하 독일 언니)이 한국말로 환승 어떻게 하는지 나보다 더 불안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그 목소리가 너무 반가웠다.
“우리 같이 찾아봐요.”
긴장이 일시에 해소되었다. 긴장되는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나는 독일 언니와 함께 공항 직원에게 환승 경로를 확인받으며 계속 앞으로 전진 하여 기내 수화물 심사대까지 도착하였다. 수화물 검사 장소에 도착하니 과거 패키지여행 때 환승 또한 기내 수화물 검사부터 다시하며 시작했던 게 생각이 났다.
다시 한 번 더 배낭과 보조가방을 검색대에 통과시켜야 되는데 내짐을 심사하려던 찰나 공항 검색대 컴퓨터가 작동이 잘 안되었다. 직원은 당황해하며 이리 두드리고 저리 두드렸고 다른 직원은 검색대위의 내 짐바구니를 다시 뒤로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는 계속 컴퓨터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나는 어머나! 내 지갑, 내 여권이 계속 검색 바구니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 심히 불안하였다.
배낭이야 옷과 생필품뿐이니 없어진다 해도 그만이지만 여권과 지갑은 앞으로 펼쳐질 내 45일의 생명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남의 나라 물품 심사대에서 뭔 일이야 없겠지만 내 마음만이 공연히 불안하고 안달이 났다. 그래서 내 물건이 있는 지점에 눈을 떼지 않고 있는데 잠시 후 직원이 옆 검색대로 옮겨가라고 하였다.
바디랭귀지를 썩어가며 ‘마이 백?’을 말하니 직원은 손짓으로 가방도 그 쪽 검색대로 옮긴다는 시늉을 하였다. 옆 검색대로 옮겨가자 뒤쪽 검색대의 잠긴 문도 열려 내 짐이며 내 짐 뒤에서 검색을 대기하던 승객들도 옆 검색대로 옮겨와 다시 줄을 썼다. 이번의 컴퓨터는 정상 작동 되었고 내짐이 나왔다. 먼저 나와 있던 마드리드 언니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놀란 눈으로 지켜보았고 독일 언니는 검색대 통과한 언니의 노트북을 한 번 더 검사한다며 되돌리는 바람에 다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금방 되돌려 받았다.
과거 패기지로 푸동공항을 몇 번 이용했지만 그때는 그렇게 게이트가 많고 넓은 줄 몰랐는데 이번에 제대로 구경했다. 나는 134번 게이트 마드리드 언니는 120번대 그리고 독일 언니는 22번 게이트였다. 독일 언니와는 숫자의 차이가 상이하여 우선 독일 언니네 게이트를 먼저 찾았다. 길이 아주 길었다. 독일 언니는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딸네 집에 간다고. 나이는 60대 중반인데 보다 젊었을 때는 여동생이랑 렌터카를 빌려서 유럽여행을 많이 하였다고.
“세상에는 용자가 그 얼마드뇨? 그 용기 제가 삽니데이.”
진심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딸이 독일에 살고 있는 큰 딸을 만나러 또 가는지. 뿐인가. 상하이에는 둘째 딸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바야흐로 딸들의 전성시대, 코리아우먼의 전성시대를 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22번 게이트 찾아 항공편명과 비행시간을 확인한 후 여기서 기다리시면 된다하고 우리는 돌아 나왔다. 게이트 위치가 워낙 달라 마실을 오갈 처지는 아니었다.
독일 언니는 게이트를 찾아 안착한 것만도 감사해 5시간대기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노트북으로 영화 두 편 보면 탑승할 시간이 되는 것이라고. 여러 번 상하이를 경유하고 내렸음에도 오늘 만큼 당황스러운 적은 없었다고 하였다.
“독일에서 상하이를 경유해 한국으로만 왔지 상하이 경유로 독일 가는 것은 처음이라 그랬나 봐요.”
“저는 나 홀로 경유가 처음이라 무척 당황했는데 언니가 말 걸어 주어 바로 안심이 되었어요.”
작별인사를 하고 마드리 언니와 나는 우리들의 게이트를 찾으러 갔다. 둘이 찾으니 역시 든든했고 나의 134번 게이트와 언니의 120번 대의 게이트는 지근거리에 있었다. 마드리드 언니는 나의 게이트에 앉자고 하였다. 의자에 앉자마자 다시 폰 충전을 시도 했는데 이런 아무 일 없었던 듯 충전이 잘 되었다. 얼마나 기쁘던지. 마음의 근심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가뿐한 마음으로 마드리드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아들둘이 군대도 갔다 왔고 큰아들은 올해 졸업, 둘째는 휴학, 남편은 명예퇴직 후 재계약을 하였는데 그것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제 나는 자유다! 호호호~’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언니는 어릴 적 아버지 사업을 따라 스페인으로 이민을 와 스페인에서 자랐으며 (아 그럼에도 한국말을 너무도 잘하였다.)우연히 무슨 박람회에서 통역을 하다가 계속 비슷한 역할을 엮어나가다 뜻하지 않게 통역가이드로 쭉 살게 되었다고 하였다. 지금은 장시간의 패키지 가이드는 힘들어 못하고 ‘스페인 공인가이드’로 한 달에 2주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스페인 ‘그라나다’ 지역에서만 전문가이드로 일한다고 하였다.
언니는 또한 1살 연하의 스페인 공무원인 남자와 결혼했고 딸은 파리유학중이라고 하였다. 스페인은 전 국민이 연금이 나오는 등 복지제도가 잘 되어있다고. 외국남자와 사는 장점과 단점을 물으니 가정적인 것은 좋은데 너무 뭐든 같이 하려는 게 다소 힘든 감이 있다며 살포시 웃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처음 본 사이임에도 두 여자는 폭풍수다를 떨며 서로의 인생을 들여다보았고 사진을 찍고 전화번호를 교환하였다. 언니는 푸동공항에서 마드리드공항으로 나는 푸동공항에서 파리 샤를 드골공항으로 최종 목적지가 갈라졌다.
“순례기간 동안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해요.”
“말씀만으로도 고마워요.”
샤를 드골공항 도착
상하이에서 파리 샤를 드골 공항 까지는 장장 12시간 30분 아니 13시간 걸렸다. 유럽은 2018년 스페인 일주 후 처음이니 장시간 비행에 아주 주리를 틀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자는데 내가 제일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좌우 옆 뒤 다를 미동도 없이 꿀잠을 자는데 나는 좌로 취침 우로취침 앞으로 취침 뒤로 재껴 취침...아오! 그 말할 수 없는 불편함, 허리가 뻐근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모진 시간들이 지나고 착륙이 다가왔다. 무사착륙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고 승무원들에게 무언으로 마음을 전했다. 나 하나로 축약하자면 나 하나 김해에서 파리공항으로 데려다 주기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지 진정 새삼 고마웠다.
나만이 아니라 수많은 승객의 비행으로 확대하자면 그 적은 인원으로 각기 요소요소에서 혹시라도 업무에 잘못이라도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저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 무한 감사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이 비행 뿐 만 아니라 늘 누군가들의 조용한 움직임으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