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이런, 이런! 이렇게 위안을 주는 말이 다 있었네. 사람들의 호감이 다 제각각이니 설마 나를? 하며 겸손을 떨지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적어도 한 사람 쯤은 나를 첫사랑으로 바라봤을 확률, 확률적으로 가능하겠다. 아흐, 심심한 위로가 된다.^^

 

<시사인> 236호에서 김세윤씨가

 

"보고 나면 술 좀 당길 거다. '기억의 습작'을 틀어놓고 후우~괜히 한숨 한번 쉬게 될 거다. 이 아저씨들아!"

 

라며 목 놓아 부르짖었기에 아저씨는 아니었지만 호기심 급상승하여 <건축학 개론>을 보게 되었다.

 

 

 

어느 날, 통 기억에 없는 삼십대의 여인이 동창이라면서 승민의 일터에 나타나 반가운 척을 했다.

 

 
  
늙은~

"그런데 누구세요?"

"건축학 개론 같이 들었던 서연이야. 음대의..."

 

그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승민, 용건을 물었다.

 

"내가 살 집을 지어줘."

 

그리하여 승민(엄태웅 분)은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첫사랑 서연(한가인분)의 집을 짓게 되었다. 건축의 건자도 모르는 의뢰인에게 일일이 설명과, 때로는 설계변경까지 들어주며 집을 지어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 티격태격 두 사람은 과거의 추억과 만나게 된다.

 

승민이 보통의 서른 중반에 비해 조금 더 싹아 보였다면 서연은 역시 여느 보통의 서른 중반에 비해 얼마간은 복부인의 느낌이 났다. 그간의 삶에 대한 쓸쓸한 반증인 듯 한쪽은 수수했고 다른 한쪽은 도도했다. 그러나 늙은 현재의 그들과 달리 젊은 날의 그들은 풋풋했다.

 

어린 승민(이제훈분)과 서연(배수지 분)이 워낙 청초해서 그들을 바라보자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늙은 우리 모두 저마다 그런 한때가 있었을 터인데 영화완 달리 증명할 방법이 없네.~

 

아무튼 이 영화는 없던 첫사랑도 생각나게 하는 영화이다. 또, 비단 첫사랑이 아니어도 청춘의 한때를 스쳤던 이런저런 얼굴들, 다들 잘 살고 있으려나? 있겠지? 문득 안부가 궁금해지는 그런 영화다.

 

나는 무엇보다 뜬금없이 빛바랜 순댓국 집 전경이 가슴을 후렸다. 승민 엄마(김동주 분)의 억척스런 성정을 보자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그런 정서, 우리네 시장 통의 일상이었다.

 

작은 물건 하나 사면서도 사는 사람은 다만 일 이 백 원 혹은 일 이 천원이라도 깎아야 직성이 풀렸다. 장사꾼은 장사꾼들대로 일지감치 가격을 올려 불러 놓고는 깎아주는 척, 이러면 밑지고 파는데 하면서 오만 생색을 다 내었다.

 

그 속엔 유쾌한 시끌벅적함도 있었으나, 때로는 사소한 일에도 고성이 오갔다. 내 가족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악다구니 좀 쓴들 어떠리. 목소리 큰사람이 제일. 때로는 손님이 왕.

 

그렇게 억척으로 아끼고 모아서 결국에는 또 자식에게 다 헌납하고 자신은 그제 것 살던 대로 하루세끼 풀칠만 겨우 하면서 쪼그랑 할망구로 살다가 가고 말.... '백 말'이 필요 없는 승민 엄마의 그 자글자글한 주름과 푸석이는 머릿결에서 지난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이 겹쳐져 짠하면서도 고맙고 아름다웠다.

 

  
젊은~

 

 

청춘 남녀라면 어린 승민과 서연에 감정이입이 될 것이다, 라고 쓰려다 문득, 흐미, 지금은 21세기 아닌가. 스마트폰으로 시공에 구애받지 않고 카카오 톡을 날리는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혹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아빠, 그리고 엄마! 그 시절엔 다들 그런 식으로 연애 했나벼? 푸훗~아이구, 답답해. 쯧쯧. 뭘 그리 끙끙 앓고 난리야.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오케이?"

 

하지 않을까 몰라.

 

때문에 이 영화는 지금의 청춘보다 한때 청춘이었던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무게에 낭만은 개뿔! 혹은 그날이 그날인 지루한 일상의 배 나온 아저씨들, 혹은 독 오른 아줌마들.

 

일단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술보다 더 위로가 되는 친구가, 젊은 날의 한 때가 거기 있음에 모처럼 고개를 끄덕끄덕, 알싸한 추억의 순간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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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3-2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 정말 스맛폰에 카톡에 지금 세대의 친구들은 그런 애틋함을 잘 모를지
몰라요. 아주아주 오래전 지금처럼 폰도 없고 삐삐도 없을 때 제게도 대단한 사건이
있었지요. 연락이 안 되니 약속장소가 어긋나도 서로 어쩔 도리 없이 어긋날밖에요 ㅎㅎ

폭설 2012-03-29 09:08   좋아요 0 | URL
어머, 대단한 사건? 살짝 궁금해지네요. ㅋㅋ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나만이 아는 은행 적금통장처럼 든든한...^^ 세련된 영화도 아니고
곳곳에 하자가 보이는데 누구에게나 있을 첫사랑에 대한 공감을
자아내게 한게 흥행요인인듯하네요.^^

너무 흥행해도 감독이 차기작에 부담을 갖지 않을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