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85개를 5일 만에 뚝딱!

 

어린 시절, 과일을 좋아했던 나는 과수원집 딸들이 무척 부러웠다. 중학시절엔 과수원 하는 친구의 집에 갔다가 굵기가 작은 홍옥 여러 소쿠리 분량이 소여물 옆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아니, 먹는 과일이 왜 저기 있지.' 좀 작아도 사람이 먹기엔 충분했는데 소먹이로 주는 것을 보고는 그 소가 어찌나 부럽던지. 소를 주느니 나를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쑥스러워서 못했다.

 

친구 집에서는 작은 홍옥은 사과 축에도 들지 못했고 처치 곤란이라 소가 어서 먹어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 친구에게 그때 얘기를 하면 친구는 내 부러움과는 정반대의 대답을 하였는데, 듣고 보니 과수원집 딸에게도 나름의 고충은 있었다.

 

"내 사과를 안 먹고 말지. 가을에 사과 딸 때마다 무거운 사과 바구니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요즘 부모들은 자식들 일 안 시키지만 우리 때는 본전 빼고도 남게 시켜 먹었잖니? 내게 사과는 맛있는 과일이 아닌 '노동'으로 기억된다."

"아무리 그래도 내겐 니 노동이란 말이 사치로 들린다. 일 많이 해도 좋으니 사과 많이 먹고 자랐더라면…."

 

아무튼, 과일에 대한 내 여한이 자식들에게도 유전되었는지 두 아이 다 과일을 무척 좋아한다. 요즘은 과일이 철도 없이 일 년 내내 쏟아지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과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우리 가족은 나의 옛날과 다름없이 없어서 못 먹어 안달이다.

 

얼마나 과일을 많이 먹어대나 하면 참외를 15kg들이 큰 상자로 하나 사면 5일을 못 버틴다. 15kg 큰상자일 경우 보통 주먹만 한 크기의 참외가 한 85개 정도 들어있는데 우리 식구는 그것을 4~5일에 다 먹어 없앤다.

 

6월 들어 벌써 두 상자를 먹었다. 아니, 5월 말일 전후에 한 상자 먹고 아직은 참외 값이 좀 비싼 듯해서 중간에 토마토 두 상자를 끼워 먹고 다시 참외 한 상자를 먹었다. 토마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 이웃들은 기겁을 한다.

 









  
과일상자. 버려도 늘 쌓인다.^^ 과일 값을 모두 합하면 78000원. 싸지요?
 
과일상자

 

"아니, 한 상자도 아니고, 토마토를 어째 한꺼번에 두 상자씩이나 살 수 있어요?"

"한 상자는 말이 상자지 너무 헤퍼서 며칠 못 가기도 하고 또 토마토 가격이 쌀 때는 달랑 한 상자 배달해 달라기 뭣해서 사는 김에 두 상자 삽니다."

"우리는 봉지로 사먹어야지 상자로 사먹으면 반도 못 먹고 결국은 버리게 돼요."

"우리는 없어서 못 먹어요."(웃음)

 

아무튼 요즘은 참외와 토마토가 당기는 계절이지만 조금 있으면 수박과 포도가 여름날의 열기를 식혀준다. 그런가 하면 그 다음은 풋사과 '아오리'가 신고식을 하기에 두어 상자 먹어 줘야 하고, 아오리를 먹고 나면 감과 빨간 사과가 나온다. 찬바람이 불면 남도의 귤이 또 우리네 미각을 꼬드기고 삼동엔 이 귤과 시원한 배와 사과를 번갈아가며 한 상자씩 비워야 한다. 일조량 적은 겨울철이라지만 우울할 새가 없다.

 

그러다 봄이 오고 대지가 꿈틀거리는 4월이면 딸기가 또 옆구리를 찔러댄다. 딸기를 얼추 먹고 나면 토마토가 나오고 큰 토마토 방울토마토 번갈아 먹고 나면 아아,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노란 참외가 지나치려는 내 발길을 붙든다.

 

사실, 오늘 점심부로 참외가 똑 떨어졌는데 사러갈까 말까하다 참아보자며 참고 있는데 갈증도 아닌 것이 배고픔도 아닌 것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데 아마도 과일이 고파서 생긴 금단 증상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금단 증상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라도 하면서 침이라도 삼키고자, 상상으로라도 좀 먹고 싶어서 말이다.(웃음)

 

참으로 고마운 과일가게 사장님 부부

 







  
단골 과일가게의 현증택 사장님. 1남 1녀 자녀들이 다 성장하여 그런지 부부가 다 인상이 여유롭다.
 
과일

 

과일을 상자째로 그것도 일주일도 안 돼서 한 상자씩 비운다면 비용이 상당하리라 짐작할 것이다. 물론 과일값으로 지출이 많다.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고기를 잘 안 먹고 외식도 거의 안 하니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호사스럽게 과일을 사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다 좋은 과일가게를 만났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한 2년 정도 되었을까. 동네 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인 이웃 아파트 후문에 어느날부터인가 노점 과일 가게가 들어섰다.

 

해서, 시장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에 어쩌다 과일을 빼먹었으면 한번씩 들르곤 하였다.  그런데 한번 두번 차츰 그곳에서 과일을 사다보니 이번엔 두 분의 후덕한 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착한 사람 밀어주고픈 게 인지상정. '이왕이면 이곳에서'하다 보니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자째로 과일을 살 때면 동네의 여느 과일 집보다 많이 쌌다. 그것은 과일을 많이 좋아하는 우리로서는 여간 생광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특별히 싸게 파는 이유가 무엇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 참에 여쭤보니 떼 오는 가격은 대동소이한데 '박리다매'를 한다고 하였다.

 

'박리다매? 아마, 과일장사로 나선 지 얼마 안 되었기에 특별히 손님 사로잡을 자신이 없어서 더 싸게 파는 것으로 전략을?'이라고 순간 생각했는데,

 

"과일장사 한 지가 그러고 보니 27년째네요."

"어머, 그렇게 오래요?"

"여기는 집사람이 하고 저는 또 다른 데 가서 합니다."

 










  
과일 옆에 따로 자리잡은 매실과 완두콩. 완두콩은 이즈음 왕창 먹어줘야. 매실을 보니 매실농축액을 담글까 말까.^^
 
매실

 

그러고 보니 오후에 그곳을 지나 칠 때면 아주머니 혼자 계실 때가 많았다. 그리고 과일이 쌌지만 상자째로 사도 하자를 별로 발견할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다 '27년' 경험이 녹아 있어 그런 것이었다.

 

아무튼, 이 단골 과일가게를 드나들면서, 이렇게 이문을 적게 보며 과일을 싸게 파는 것도 일종의 선업을 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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