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의 문제 진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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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처음으로 읽어보는 우리나라 추리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단편으로 몇 편을 읽어보기는 했었지만 한권을 통째로 읽어보기는 확실히 처음이다. 작가인 '도진기'는 현직 판사라고 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찌 보면 법조계에 몸담고 있으니 추리소설과 어울리지 못할 바도 아니지만 왠지 특이한 느낌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미스터리나 스릴러물에서 법조계 경력의 작가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변호사 정도로 아직 판사 경력의 작가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것도 현직 판사라니.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기대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순서의 문제]는 7편의 중단편 추리소설의 모음집이다. 꽤나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느낌인데, 뭐 필자가 전문가는 아니라서 무엇을 기준으로 추리소설을 분류하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개인적인 구분방식으로 [셜록 홈즈] 시리즈와 같이 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건의 트릭과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중심이 되면 전통으로 느끼고 그 외에 나머지는 그냥 나머지 미스터리 소설이 되는 식이다. 필자도 멋지게 이건 이래서 이런 유고 저건 저래서 저런류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워낙에 귀찮은걸 싫어하는데다 모자란 뇌용량은 먹고 사는 문제만 채우기에도 벅찬 현실이니 어찌하랴. 아무튼 필자가 읽은 [순서의 문제]는 사건과 트릭이 중심이 되는 제법 전통스러운 추리 소설의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 '히가시노 게이코'의 [명탐정의 규칙]을 재미있게 읽고 리뷰를 쓴 일이 있는데, 관련해서 알라딘 '카스피' 님으로부터 본격 추리 소설의 트릭의 고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에 추리 소설이 활발하게 번역되고 출간되는 과정에서 트릭이 고갈되는 현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책 [순서의 문제]의 일곱 단편을 읽으면서 왠지 익숙한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작품에 사용된 트릭들이 콕 찝어서 이전 어느 작품에 나왔다고 골라낼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한번은 본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표절이나 도용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그저 비슷한 느낌정도랄까. 여러 장면에서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독창적이거나 기발함, 신선함 같은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이야기는 추리소설답게 다소 억지스러운 상황이나 해석이 없잖아 있지만 재미는 있다. 트릭과 풀이가 중심인 전통 추리물에서 대체로 어디서 한번은 본 듯한 트릭들이 배치되어 있음에도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진구'와 '해미'라는 두 캐릭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전통적인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행동하는 '진구'의 캐릭터는 꽤나 매력적이다. 정의나 준법 같은 말에는 시큰둥하다가도 '보수'라는 말이 나오면 눈이 반짝이는 '진구'와 이에 찰떡궁합처럼 붙어 다니며 특유의 사교성과 행동력으로 사건을 물어오는 그의 애인 '해미'. 이 두 주연 캐릭터가 살아 움직임으로 해서 어떻게 보면 평범한 작품들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모 추리 만화에 등장하는 천재 소년과 행동파 소녀 커플과도 살짝 오버랩 되는 느낌이라서인지 읽는 동안 만화를 보는듯한 경쾌함과 즐거움 또한 느낄 수 있다. [순서의 문제]와 함께 [나를 아는 남자]라는 장편도 같이 출간되었는데 이 또한 '진구'가 주인공으로 '진구' 연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해서 SF 작가들은 힘들다. 그런데 힘든 것은 SF 작가만은 아닌 모양이다. 앞서간 선배들의 발자취로 온통 뒤덮인 운동장에 새로운 발자국을 찍어야 하는 추리작가들도 힘들다. 추리 마니아는 고사하고 팬이라고 하기에도 살짝 모자란 필자 수준에서 새로 출간된 작품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을 정도니 '트릭의 고갈' 문제가 우리에게도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히가시노 게이코'의 말처럼 좀 더 생각하고 쓰지 않아서 일까? 다소 안일한 소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나라의 추리문학도 좀 더 활발하게 움직여서 일단 많은 작품을 출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리도 누구네처럼 '트릭의 고갈'같은 배부를 불평도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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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마지 워쩌!
표윤명 지음 / 가쎄(GASSE)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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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윤명 작가의 [갈마지 워쩌!]는 충청도 예산의 갈마지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혼란과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뒤돌아보고자 그려낸 것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인간의 탐욕, 권력에 대한 욕망, 돈과 여자에 대한 갈망, 그리고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살아나고자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 이러한 것들로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라고 일단은 소개되어 있다. 문고판의 구분을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작고 아담한 사이즈로 서문이나 추천평등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본편의 소설만 들어있어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좋다.

 

처음에는 70년대 급변하던 시기 우리 아버지 세대의 혼란스럽고 신산스러운 삶을 잘 그려냈을 거라는 기대에 읽게 되었는데 결과만 얘기하면 기대만은 못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전원일기] 풍이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구두쇠 땅 부자와 대학까지 나온 성실한 농꾼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아가씨에 겉바람만 들어서 기타만 퉁기는 청년까지, 농촌 드라마에 나올법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문제는 전체적인 이야기도 [전원일기]같은 옴니버스 드라마처럼 전개된다는 것이다. 단편 모음이나 시리즈라면 이게 별 문제가 안 되겠는데 이게 전체 한 편의 소설이라는 것이 문제다. 하나의 줄기로 이야기가 쭈욱 흐르지 못하고 뜬금없이 몇 달을 훌쩍 넘어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하고 어떤 배경이나 복선도 없이 뜬금없이 큰 사건이 뿅 하고 튀어나오기도 하는 식이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보니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대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해 집중도가 떨어진다. 작품의 큰 줄기는 이른바 '떴다방'이라는 당시의 부동산 투기에 당하는 이야기와 그나마 주연급으로 봐 줄 수 있는 성실한 청년 '경민'의 삼청교육대 사건이 가장 큰 줄기인 것 같은데, 부동산 이야기는 유야무야 대충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게 임팩트 없이 대충 처리되어 버리고 아무런 복선도 없이 뜬금없이 튀어나온 '경민'의 삼청교육대 이야기도 별다른 충격이나 감동도 없는 앞서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소개된 삼청교육대 이야기의 재판일 뿐이다. 게다가 좀 어이없는게 등장인물들 중 서울서 내려온 '신상무'나 복덕방 사장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충청도 토박이라 아주 진한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는데 유독 '경민'과 그의 연인 '은히'만은 또박또박 서울말을 쓰고 있다. 주연급인데다 둘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충청도 사투리로 전개되면 맥이 빠질 것 같아서 그랬을까? 작가만이 알 일이겠으나 결국 마무리는 두 사람의 결혼으로 끝을 맺게 되는데, 어려운 가운데도 희망이 있다는 종류의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결말이 아닐까 하는데 이마저도 그저 상투적이고 어설픈 느낌일 뿐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오락물이라면 별 상관이 없겠으나 [갈마지 워쩌!]에서 이야기 하는 문제는 그렇게 가볍게 다룰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내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깊은 성찰과 고민 없이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써내려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력이 그리 가볍지는 않은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좀 더 완성된 작품이 나와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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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개봉한 [맨 인 블랙 3]를 보고 왔다. 원체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평소에는 평일 오전 시간대에 주로 영화를 봤었는데 회사를 옮기면서 남들처럼 빨간 날 놀게 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 보게 되었다. 이제 필자도 일반적인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뭐 그런 사정이야 어찌됐건 전보다는 여유가 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 달 영화표를 써먹긴 써먹어야 되겠다 싶어서 무슨 영화를 볼까 뒤적거리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스노우 화이트 더 헌츠맨]이 눈에 띄었다. [트와일라잇]은 그저 그랬지만 '벨라 스완'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만은 제법 인상적이었던 편이라 그녀가 주연을 맡은 [스노우 화이트 더 헌츠맨]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문제는 요즘 미드와 영화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그림 동화의 리메이크라는 게 복불복 하는 느낌이 좀 있어서 고민하던 중 [MIB3]가 딱 눈에 들어온 것이다. SF팬으로서 MIB 팬으로서 그리고 윌 스미스토미 리 존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고민할 이유가 없는 영화다. 선택에도 영화를 감상할 때도 이렇게 고민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라면 마다 할 이유가 없다.

 

독수리 오형제를 대신하여 지구를 지키는 맨 인 블랙의 사고뭉치 '제이'. 이번에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간다. 덕분에 늙은 '케이' '토미 리 존스'는 완전 조연으로 빠지고 젊은 '케이' '조슈 브롤린'과 지구를 위협하는 악당 '짐승 보리스'를 잡기 위해 좌충우돌 에이리언 헌팅을 하게 되시겠다. 늙은 '케이'와 다르게 말도 잘하고 감정도 풍부한 젊은 '케이'. 과연 과거의 무엇이 '케이'를 변하게 했고 '짐승 보리스'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무엇보다 과연 이번에도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필자는 항상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볼 때마다 현재가 과거의 원인이 되는 타임 패러독스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꺼림직 했었는데, 얼마 전에 [1,2,3 그리고 무한]이라는 책을 읽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이 휘어질 수 있다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어 이번 MIB의 시간 여행은 다행히 그리 거슬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서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가 신선할 리는 만무하다. MIBSF라는 장르에 기발한 상상력의 다양한 외계인들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여기에 능청스러운 익살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윌 스미스''토미 리 존스'의 연기가 결합해 정말 재미있는 영화로 나와 줬는데 이런 MIB도 세 번째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맥이 좀 빠진 느낌이다. 시리즈로서는 드물게 3편 모두 같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일관성 있는 분위기를 이어간 듯하지만 초기의 신선함과 기발한 상상력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워낙 특수효과 기술이 발전한 영화계에서 MIB 초기의 화려한 느낌을 기대하기는 무리겠지만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에서 나오는 신선함이 전작들에 비해서 기대에 못 미친것은 아무래도 아쉽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시리즈 영화는 언제는 1편이 높게 평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SF 영화에서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를 자리매김하고 있던 [맨 인 블랙] 시리즈가 힘을 잃고 평범한 블록버스터가 되어버린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언제나 SF 영화라면 환영이지만 이렇게 본 시리즈의 정체성을 잃고 맥 빠진 영화가 될 바에는 나와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냥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로서의 포인트가 없지는 않지만 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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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26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3D로 만든것이 아닐까요? 근데 3D효과는 확실히 나남유??

휘오름 2012-05-27 21:46   좋아요 0 | URL
아..저는 그냥 일반으로 봐서..3D는 잘 모르겠네요..^^;
 
1,2,3 그리고 무한 - 칼링가 상 수상자 대표작 김영사 모던&클래식
조지 가모브 지음, 김혜원 옮김, 곽영직 해제 / 김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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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그리고 무한]은 빅뱅이론의 창시자 조지 가모프가 수학과 과학의 기본 개념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가? 우주의 생성 원리는 무엇인가?'에 대해 일반 대중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 목적으로 쓴 책이다. 총 4부로 나누어진 책은 1부와 2부에서 수 체계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여 3부, 4부의 미시우주와 거시우주를 본격적으로 이야기 한다. 물리학의 기초적인 전체지형도를 그릴 수 있게 하여, 현대물리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기 전 기초필독서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지닌다.

 

어디에서 그리고 무슨 내용으로 만났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필자는 '조지 가모프'의 이름을 들어봤다. 평소 SF를 좋아하다 보니 기초 과학에 대한 개념을 SF를 통해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 편인데, 이런 SF 소설이나 영화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삼 대학이라도 가서 전공 강의를 수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반교양의 수준에서 좀 더 기초 과학의 개념을 배울 수 있는 책을 찾던 중에 예스 24 리뷰어 클럽에서 서평 이벤트로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신청하였는데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필자는 이 책 [1,2,3 그리고 무한]의 내용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리뷰어 클럽 내에 '난쏘공(난해한 책을 향해 쏘아지는 공격적인 리뷰)'란이 있는데 필자의 기준으로 이 책은 '난쏘공'에 분류되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이것은 책이 어렵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필자의 수준이 문제인듯 하다. 책 자체가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로 쓰여졌고 실제 독자의 평도 쉽고 술술 읽힌다는 평인데다 직접 읽어본 느낌도 여러 재미있는 일화들과 함께 저자가 손수 그린 많은 그림들까지 더해서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는듯 한데 왠지 필자는 전체 흐름을 매끄럽게 타지 못하고 계속 겉도는 기분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특히 중고 수준의 간단한 공식들이 등장할 때마다 고등학교 때 수학하고 물리공부를 좀 열심히 할껄 하는 후회가 마구 밀려든다.

 

책으로만 보자면 두툼하면서도 단단하게 잘 짜여진 양장으로 멋스럽다. 양장이라면 이렇게 나와 줘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내용 또한 위상 기하학, 4차원 세계, 상대성 이론, 원자화학, 핵물리, 엔트로피, 유전자, 진화, 우주론등 과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저자의 지식을 기반으로 수의 개념부터 공간, 미시우주, 거시우주로 점차 확장되는 식으로 전반적으로 논리적으로 진행되고 무엇보다 저자가 손수 그린 수많은 그림들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50여 년 전에 쓰여진(1948년 초판 1961년 개정판) 책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출판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알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500여 페이지의 잘 빠진 양장의 정가가 1,4000원이니 가격까지 착하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우수한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인 필자의 문제다. 이번 주에 직장을 옮기게 된 필자의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핑계해 본다. 조만간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한 번 느긋한 마음으로 도전해 보리라 마음먹으며 부족한 리뷰를 마무리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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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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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OBS 특별기획 프로그램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에서 우리 근대의 변화상을 담은 여섯 가지 주제를 골라 엮어낸 책이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 중에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 거시적 관점과 어떤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시대상을 파악하는 미시적 관점이 있다고 했는데 [이토록 아찔한 경성]은 전형적인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한국의 근대화는 일제 강점기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한홍구 교수님의 [특강]에서 교수님 자신이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서는 원로급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만큼 실제적으로도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우리의 근현대사에 깊이 접근하는 것에 일종의 터부가 있었음을 농담 섞인 말로 표현하신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런 프로그램과 책이 나와 주는 것은 그만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는 TV 방영분중 총 6가지 주제를 정리해 놓았는데 살펴보면, 1부 '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당시의 여러 광고를 보여주며 그 시대의 소비문화를 엿볼 수 있다. 2부 '대중음악으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당시에는 어려운 노래였다는 트로트의 기원과 변천사를, 3부 '사법제도로 본 근대의 풍경'은 사법제도를 통해 일본의 수탈 중심의 식민지 사관을 잘 보여주며 나아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식민지식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4부 '문화재로 본 근대의 풍경'은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삶을 위주로 문화재의 수탈과 환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고, 5부 '미디어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신문, 라디오를 중심으로 당시의 언론 환경과 문화 그리고 일제에 이용당한 이야기들을, 마지막 6부 '철도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철도가 놓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의 애환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광고와 사법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의 수많은 광고 사진들과 문구들이 상당히 재미있게 느껴졌을 뿐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심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법 제도 편은 단순이 일본의 수탈을 목적으로 한 식민지 사관뿐만 아니라 일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작용이 지금에 사법 시스템에까지 이어져 우리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미디어, 신문과 라디오라는 언론 매체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려던 목적 때문에 억압받고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언론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는 듯 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느낌이랄까.

 

기본적으로 TV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어서 였는지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는 반면 아무래도 차근차근 순서대로 문제를 짚어나가고 서술해 나가는 느낌보다는 핵심만 요약해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라 다소 아쉬웠는데 각 챕터 말미에 '역사토크 만약에'를 통해 문답형식으로 여러 가지 역사적 가정을 통해 이러한 부분들이 보완된 느낌이었다.

 

'비용'을 이야기할 때는 '이익'을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 분명 일제 강점기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용에 이익이 따라가듯 일제의 근대화에 대한 공을 이야기 할 때는 우리가 지불한 '비용'또한 함께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책의 서두에 실린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느리게'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리가 좀 더 '빨리' 배우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이토록 아찔한 경성]같은 책과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와 같은 다양한 관점의 역사 프로그램들이 많이 만들어 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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