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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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블랙유머! 고도의 풍자적 묘사!]

 

먹으로 주~욱 그어놓은 듯한 검은 테두리의 은회색 [갈라파고스] 표지에 박혀있는 문구다. 필자가 '커트 보네거트'의 이름을 들은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통해서다. 딱히 이유를 말하기는 힘들지만 필자는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에세이쪽이 마음에 든다. 뭐 그거야 별로 상관없고 어쨌거나 '커트 보네거트'라는 이름의 울림이 꽤 독특하기도 하고 '하루키'가 꽤 높이 평가하는 느낌이라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니 무슨 작품이 있는지는 당연히 모르고 그냥 서점 사이트에서 이름으로 검색해 봤는데 국내 판본 자체가 검색이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당시 제대로 검색을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렇게 넘어갔었는데 최근에 와서 마치 준비된 듯 어디선가 '펑!' 하고 튀어나온 느낌으로 [갈라파고스]의 링크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타났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검색 경로가 당췌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인데, 초기 알츠하이머인지 단순 건망증인지 그것도 아니면 명탐정 '셜록 홈즈'처럼 뇌 용량을 위해 필요한 사항은 버리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튀어나왔다. [갈라파고스]와 함께 '커트 보네거트'작품 몇 편이 같이 튀어나왔던 것 같은데 '다윈'의 [종의 기원]의 무대가 되었던 제도와 같은 이름의 제목에 끌려 선택하게 되었다. 충동 구매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만나는 책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구매하지 않는다면 어디 가서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미지의 인물이 백만년전의 현대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갈라파고스]는 뭐랄까, 좀 산만한 느낌이랄까... 정신 사납고 따라잡기 힘들다. 친절한 배경설명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면 그 산만함 뒤에 일관된 작가의 의도가 느껴진다. 그 의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을 없지만 서도. 리뷰를 두들기는 주제에 기껏 얘기해놓고 모른다고 하면 무책임한 거 아닌가? 라고 한다면 무책임한 것이겠지만, 뭐 원래 필자가 좀 무책임한 인간이니 이해하시라...아하하~(퍼퍽!ㅠㅠ)

 

어쨋거나 뭐라고 정리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작가의 의도뿐만 아니라 이야기 전반에 거쳐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과 분위기를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다. 이야기 또한 정신 없고 산만한 듯 하면서도 종국에 가서 보면 이야기는 빠진 부분 없이 하나로 완성되고 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뭔가 주저리 주저리 정신 없이 늘어놓는 것 같은데 군더더기가 붙어 있는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다. 먹을 때는 맛있지만 먹고 나면 후회되는 종류의 음식이 아니라 처음에는 좀 맛없지만 먹다 보면 맛있는, 먹고 나서도 상쾌하고 든든한 음식 같은 느낌이랄까?

 

이러한 느낌이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강해져서, 초반에는 '이게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가 중반에는 '괜찮은데'로, 종반에 가서는 '이거 대단한 작가인데'로 변한다. 조만간 그의 작품을 좀 더 읽고 싶은 욕심이 난다. 그 특유의 시크하고 유쾌한 풍자. 블랙유머. 그만의 색깔을 좀 더 맛보고 싶다. 그런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자 작가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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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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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정치나 시사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번잡하고 귀찮은 것 싫어하는 전형적인 오타쿠형 인간으로 회사 다니면서 얼마 안 되는 연봉이나마 받아가며 스스로 밥벌이 하고 있는게 가끔은 스스로도 대견할 때가 있다. 아마 필자의 집이 갑부 집이었다면 십중팔구는 집안에 틀어박혀 PC만 붙잡고 은둔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필자가 복잡하고 어지러운 정치나 시사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지금도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과거처럼 다 그렇고 그런 놈이려니 하며 외면하기 보다는 관심을 가져 보려 하는 정도일 뿐인데, 이렇게 된 원인은 워낙 이상한 현 정부가 첫째요 이 이상한 정부에 대놓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쳐대는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 때문이다.

 

필자는 '꼼수' 멤버들이 좋다. 이 이상한 정권과 이상한 세계의 한없이 우울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쾌활한 그들이 좋다. '졸라' '시팔'을 연발하면서 큰 웃음으로 이 이상한 정권에 가망 없는 맞짱을 뜨고 있는 그들이 좋다. 무엇보다 이 이상한 정권에 쫄지 않는 그들이 좋다. 주진우 기자는 '나꼼수'에 처음 합류하면서 배경에 철창이 보였다고 했다. 벌써 한명은 철창에 갔다. 남은 세 명도 코앞에서 철창이 열렸다 닫혔다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쫄지마'를 외치며 임금님 귀의 진실을 외치고 있다.

 

정권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언론도 이상하다. 이상한 정권이 들어서고 더 이상해졌다. 평소에 신문과 뉴스를 보지 않는 필자가 언론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천안함' 사건 때이다. 워낙 사안이 크고 무겁다 보니 아무러한 필자라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인터넷을 뒤적이기 시작했는데 주요 신문사 사이트의 기사마다 하나같이 내용이 같았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기사가 토시하나 안틀리고 똑같은데 말미의 취재 기자 이름은 달랐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인데도 어디 하나도 집요하게 파고들거나 분석하는 기사가 없는 것이다. 그냥 정부 발표 그대로였다. 아무리 필자가 문외한이라도 기자라는 직업이 정부가 하는 이야기 그대로 받아쓰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이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때에 와서야 왜 '조중동'이 '조중동'인지를 알 것 같았다.

 

[주진우 기자의 정통시사활극 주기자] 누가 붙였는지 제목 정말 잘 붙였다. 쪽팔리게 살지 말자는 '주진우' 기자의 그야말로 활극을 담은 책이다. 자잘한 미사여구 없이 직설적이고 질박한 무사 같은 필치로 자신이 겪었던 사건과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고 있다. 기자답게 각각의 사건 중심으로 단편단편 이야기를 모아놓은 느낌이다. 이 단편단편의 이야기 배치가 들쭉날쭉해서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인스턴스한 느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기자 생활 탓에 '악마 기자'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주진우' 기자. 이상한 정권 이상한 언론이 판을 치는 이 이상한 세계에서 필자는 이런 '악마'가 좀 더 많았으면 싶다. 2002 월드컵 때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들처럼 이런 '악마' 기자가 언론을 가득 메우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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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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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10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한다. 여자 친구 둘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복역한 토비아스는 자신이 정말 살인을 했는지,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아무도 그를 반겨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레스토랑은 파산했고 친구와 가족 같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백안시 한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그에게 10년 전의 일과 무관하지 않은 사고들일 연달아 벌어진고, 결국 그는 죽은 여자 친구와 닮은 소녀 아멜리와 함께 11년 전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형사 보덴슈타인과 피아 콤비 또한 연관되어 사건을 쫒게 되고 이에 맞춘 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는 사건들... 과연 '백설 공주'의 진실은 무엇일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베스트셀러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이다. 우리말 정서로는 남자 같은 이름의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는 전업 주부다. 소개에 보면 결혼 후 남편의 사업을 돕는 틈틈이 미스터리를 집필해 자비로 출판하였다고 한다.

 

올해 초 알라딘의 '물만두 추리소설 리뷰대회' 때문에 새롭게 읽을 만한 추리 소설을 찾다가 어느 블로그에서 [라스트 차일드]와 함께 소개된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을 만났다. 책도 그때 구매하긴 했는데 이래저래 밀리다 이제야 읽어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베스트셀러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전통 추리소설에서와 같은 기가 막힌 반전이나 수수께끼가 풀릴 때의 쾌감은 비교적 덜 하지만, 다음의 이야기 다음의 이야기가 짜임세 있게 맞물려 돌아가면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특히 조용한 외곽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들어나는 마을 사람들의 친절한 얼굴 뒤편의 추악한 진실들을 통해 인간 심리의 어두운 부분을 잘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처음 이 책의 제목과 표지만 봤을 때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제목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에서 느껴지는, 그리고 음울한 하늘을 배경으로 나신의 여인이 얼굴을 꽃다발로 가리고 서 있는 표지사진에서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한 느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예상과는 달리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추악한 욕망을 이야기 하고 있어 그건 그거대로 표제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최근 들어 [밀레니엄 3부작]에 이어 [쓰리 세컨즈], 그리고 이번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까지 유럽 미스터리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이전에도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필자가 몰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최근 들어 유럽 작품의 국내 출판이 활발해 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익숙한 일본이나 영미권과 달리 아무래도 유럽의 배경과 정서는 낯선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더 신선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이미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추리 소설에도 필자는 이제야 발을 들여놓은 셈이라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기분이니 그저 즐거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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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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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녀의 실종, 아버지의 암 선고에 이어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료스케'. 애완동물 카페를 운영하며 평온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잇달아 불행이 닥쳐들고... 아버지를 뵙기 위해 짬을 내어 들른 어느 날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묶음의 머리털과 네 권의 노트. 네 권의 노트에 적혀있는 살인자의 이야기. 이 의문의 이야기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뒤바뀐 기억을 갖고 있던 '료스케'는 이 이야기가 결코 허구가 아니며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며 진실을 파헤치게 되는데...

 

[크리미널 마인드]라는 미드가 있다. 연쇄 살인범을 잡는 프로파일링 팀의 이야기로 아무래도 사이코패스의 심리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주가 되다보니 재미는 있어도 보다보면 왠지 어둠에 빠져드는 기분이 드는 그런 드라마다. 처음 [유리고코로]의 소개를 봤을 때 이런 종류의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예상대로 초반 수기의 내용은 담담하게 살인자의 심리를 중심으로 그려 나가는 듯 하지만 중후반 부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수수께끼와 트릭,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멋지게 풀어내는 해결사가 등장하는 본격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담백한 일본 분위기를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는 작가 '누마타 마호카루'의 솜씨에 이끌려 아주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었다. 300여 페이지의 비교적 적은 분량이지만 보슬보슬한 표지의 양장으로 꽤 아담하게 나온 데다 무표정한 단발머리 소녀의 표지 디자인도 꽤나 마음에 든다. 아쉬운 점이라면 양장인데도 책갈피 끈이 없다는 정도^^;

 

얼마 전에 처음으로 읽은 일본 추리소설이 '히가시노 게이코'[명탐정의 규칙]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읽은 단편 중에 일본 작가의 작품도 있었던 것 같지만 한 권 통째로 읽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명탐정의 규칙]'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수상 경력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일본에는 그런 상도 있는가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이번에 읽은 [유리고코로]또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이력이 있었다. [명탐정의 규칙]을 재미있게 읽은 탓에 같은 이력을 가진 [유리고코로] 또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는 게 맞을 텐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걸 보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쪽은 신뢰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트릭의 고갈이라는 추리소설계의 어려움에도 이런 좋은 작품들을 배출하는 것은 이러한 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 왜 일본 추리소설이 자주 회자되는지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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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남자 진구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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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작가, 아니 판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현직 판사님이신데 작가라고 하자니 좀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작품을 두고 판사님 어쩌고 하기도 뭐하긴 하다. 아무튼 현직 판사 '도진기' 작가의 '진구' 연작 [나를 아는 남자] 되시겠다. 사실 연작 어쩌고 하는 것은 매력적인 캐릭터인 '진구'가 주인공인 소설 [순서의 문제]와 [나를 아는 남자] 두 권을 연달아 읽은 필자 마음대로 연작이다.

 

전작에서 왈가닥 마당발 여친 '해미'가 물어다준 사건을 궁시렁 대면서도 경쾌하게 해결하던 우리의 해결사 '진구'. 이번에도 '해미'의 강권에 못이기는 척(실은 보수 때문에) 맡은 한 사내의 뒷조사 임무중 그 사내의 변사체를 발견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된 상황에서 '진구'의 진가가 발휘된다. 혐의를 벗기 위해 거리낌 없이 사건 현장을 조작하고, 온갖 거짓말을 서슴없이 해가며 진범을 찾아간다. 물론 진범을 찾는 이유는 자신이 혐의를 벗기 위해. 과연 '진구'는 진범을 찾아내고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것인가…….

 

전작 [순서의 문제]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필자는 '진구'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 자기중심적인 독특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왈가닥 여친 '해미'에 대해서는 아주 성실하며 얼핏 유약해 보이면서도 필요할 때는 대담하고 치밀한 캐릭터. 아주 독창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작품 또한 이 캐릭터와도 비슷하다. 대단히 독창적이라거나 신선한 느낌은 없으면서도 재미있다. 정신없는 속도감이나 눈을 떼기 힘들 정도의 몰입도는 부족하지만 범인은 누구고 어떻게 범죄가 이루어졌는가 하는 결말이 궁금하다. 확실히 추리소설로서는 기본에 충실한 느낌이랄까? 애매하게 '진구'의 과거가 소개되는 등 다소는 산만하고 다소는 지루한 중반이나, 주인공의 위기 때나 모든 사건이 풀리는 결말에 이르러서도 긴장감이 다소 부족한 것, 그리고 트릭의 완성을 위해 다소는 복잡하고 작위적인 상황 설정이 아쉽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설득력도 있고 심리적인 의표를 찌르는 면도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매력이라면 배경이 한국이라는 것이다. 뭐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배경이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이기 때문에 현실감이 높다. 아무리 외국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그 나라의 현실과 정서를 그 나라 사람만큼 알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서 외국의 스릴러물이나 미스터리를 읽게 되면 우리 현실에서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장면이 나와도 저 나라는 원래 저래도 되나 보다 하는 식으로 대충 납득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구'가 활약하는 세계는 우리나라이고 독자도 작가도 우리나라 사람이다. 당연히 현실감이 높다. 외국 소설에서라면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서 답답하게 멈추거나 걸려도 납득이 간다. 아마 작가도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인데 그런 현실에 묶여 좌절하지 않고 계속 새롭게 모색하고 도전해 나간다. 외국 소설에서처럼 우리 주인공이 총을 들고 범인을 쫒는다거나 아마추어 해결사 주제에 경찰과 공조 수사를 펼친다거나 하면 어이가 없으리라. 어찌 보면 이렇게 치안이 안정된 우리의 환경이 추리 작가가 이야기를 펼쳐 나가기에는 제한적인 배경이 될 수 있겠으나 작가 '도진기'는 '진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현실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멋지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진구'의 숨겨진 과거에 대해 살짝 변죽만 올린 것으로 봐서 앞으로도 '진구' 연작은 계속될 것 같은데 다음 작품에서 좀 더 재미있고 완성된 이야기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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