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만화성경 - 성경 66권을 단숨에 한 권으로 읽는
아킨.시쿠 지음, 강주헌 옮김 / 위즈덤로드(위즈덤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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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신앙의 첫걸음이 성경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할 때의 믿음의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며, 삶 속에서 그 말씀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항상 말씀을 듣기와 읽기를 강조한다. 말씀을 풀어주는 설교를 경청하고 또한 스스로 성경을 읽을 때 믿음이 자라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신자라면 영의 양식인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며 행하기를 생활화해야 하는데, 문제는 성경을 꾸준히 읽어내기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구약과 신약, 전체 66권, 1189장, 31173구절-이라는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내용 또한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특히 초신자에게는 생소함까지 더해져서 성경을 통독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어지는데 이 책은 그런 점을 보완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된 것 같다. 보다 쉽게 성경에 접근하도록, 그래서 아예 성경 읽기를 포기하는 사태를 막아보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것인가 보다. '만화'라는 표현수단은 '쉽게'접근하는데 좋은 매체이다.   

 

그러나 성경을 각색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쉽게'한발짝이라도 다가설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열의는 가상하지만 자칫하면 잘못 해석되거나,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소소하게 성경과 합일되지 않지 않는 부분이 잦았다. 아무래도 만화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성경을 이해하는 돕는 방편이다. 무오한 것은 성경 자체일 뿐이다. 이 사실을 단단히 기억하며 보조적인 수단으로 본다면 이 만화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만화를 이용하여 쉽게 읽혀지고, 빠르게 성경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게 하며, 어떻게든 성경과 친숙해지는-그런 객관적인 소득이 없는 책은 아닌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에 별로 호감을 받지 못했다. 먼저는 내가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때문일 것이고, 이 만화의 그림풍이라고 해야하나, 펜 터치가 너무나 강렬해서 적응하기 어려웠다. 일본만화에 익숙한 우리 눈에 영국사람들의 만화라서 그런가? 그림이 낯선 듯해서 찾아봤더니 아킨과 시쿠가 영국사람이었다. 추천사를 쓴 어떤 분은 '기독교 만화는 부드럽기만 하다는 선입견과 달리, 매우 힘 있고 강한 펜 터치가 인상적'이었다는 분과 달리 나는 좀체로 그 만화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힘 있고 강한 표현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섬뜩하고 날카로웠다. 어쩌면 내가 기독교 만화는 부드럽기만 해야한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그렇지 인물의 표정은 인물의 성격에 맞게 어느 정도 그려야 할 텐데 신랑 신부인 이삭과 리브가의 얼굴은 무슨 음모를 꾸미는 악당들처럼 사악하고 음흉한 웃음을 흘리고 있어서야.. 원! 모세고 뭐고 대부분의 인물이 뱀이나 사단과 구분이 안 되는 섬뜩한 표정과 이야기 진행도 스팩터클하게 전개되다 못해 너무 거칠게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간까지는 오타나 잘못된 표현(예를 들면, 32쪽의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에게 축복을 내리면서'라는 부분에서 '축복'이라는 말은 잘못 된 표현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내리시는 분이지, 복을 빌어주는 분은 아니시다. 하나님이 누구한테 복을 빈다는 말인가? )이라도 있으면 출판사에 말해주고 싶어서 정독하며 읽었지만 끝내는 후딱 읽어치우고 말았다. 만화 그림풍도 갈 수록 거슬리고, 안 해도 될 각색으로 첨가된 부분(예를 들면 75쪽의 '고맙소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겠소. 그런데 동산에 뱀을 몇 마리 풀어놔야겠소. 물론 뱀은 정탐꾼이고,동산은 여리고를 뜻하는 것이오'라는 부분, 성경의 중요사건 위주로 빠르게 전개시켜 단시간에 성경전체적인 윤곽을 그리게 해준다는 이 책의 장점과도 위배되는 부분이다. 왜 성경에도 없는 저런 대사를 넣었을까? 뱀과 동산이 어딨다고?)들이 내게는 방해거리였다. 그리고 번역자 강주헌씨 번역이 무성의하게 느껴졌다. 또한 이 분은 아무래도 기독교인이 아닌 것같다. 성경은 머리로만 받아들이는 책이 아니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책이다.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초고의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하나님의 영감이 부족한 이야기 전개였다.

 

2009.1.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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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감사 -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전광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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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성경이 만든 사람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등을 집필한 전광 목사의 별명은 '감사 목사님'이다. 그가 글쓰는 작업실도 '감사 글방'이고 글방 앞 그늘을 드리운 쉼터인 느티나무 이름도 '감사 나무'로 지었다. 이 책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입으로 감사함을 고백할 때 일어나는 풍성한 은혜에 관한 실화들을 묶어 놓았는데 그 내용들은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할 때 감사할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기적도 낳는다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이 책을 전통차를 마시듯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주길 바란다는 당부를 서두에 밝혔지만 책이 그리 어렵지 않고 활자크기도 크고 행간의 간격도 늘씬늘씬해서 금새 다 읽혀져서 어쩔 수 없다. 책을 들면 '누구에게 선물하면 어울릴까?'라는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은 크리스찬 누구에게라도 선물해도 될 것 같다. 초등학생부터 중고생. 또 연세 지긋하신 분. 또는 병원에 입원한 환우에게 문병갈 때...등. 삽화 색채도 밝고 예쁘다. 활자도 행간의 간격도 시원스럽다. 책 내용만큼이나 전반적인 편집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많은 사례 중에서 오프라 윈프리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의 감사기도를 메모한다. 가난한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 컸으며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세에 출산한 미혼모에 마약 복용, 107kg의 뚱뚱한 몸매의 지독히도 불행했던 그녀가 신앙으로 변화된 친아버지와 재회하면서 지옥같은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녀는 성경을 읽으며 점차 변화되어갔다. 그녀가 하루도 빠지지않고 감사 일기를 쓰는데 하루 동안 일어난 일 가운데 다섯 가지 감사 목록을 적는 것이라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의 어느 날의 감사 목록> 

1.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았던 저의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5.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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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9-01-22 21:06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아..그런데 책이 좀 쉽습니다. 초등학생과 연세 지긋하신 분들을 다 아우를 수 있는 그런. 별점이 셋밖에 안 된다는 점도 참고하시고..에.. 뭐..어렵다고 좋은 책은 아니지요^^; 리뷰에도 말씀드렸지만 저자는 오래오래 두고 음미하면서 읽길 바랐지만 저는 책을 쥐고 서너시간만에 다 읽어버린, 그러니까 이 책은 머리보다는 역시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틀림없습니다.

감사는 가슴에서 우러나는 것이니까요^^

늘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곳간 원리 - 크리스천의 부자원리
앨 잰들.밴 크로치 지음, 김성겸 옮김 / 홍성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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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신명기 28장 8절

 
   

 

이 말씀은 내가 우리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빠트리지 않고 인용는 구절이다. 또한 '열심히 해라, 최선을 다해라, 그리하면 나머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혜로 채워주신다, 하나님 은혜가 임하면 네가 손 대어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일상 속에서 힘 주어 말 한다. 이렇게 날마다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구절을 만나니 반가웠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이 말씀 한 구절을 온전히 다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고 어느 한 부분은 등한시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창고'부분. 내가 의도적으로 소홀히 했다기 보다는 '창고'또는 '곳간'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곳간은, 나에겐 막연한 의미였다. 실제 현실생활에서 내 재산을 쌓아두고 긴요하게 꺼내 쓸 수도 있으며 나를 부요하게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대상이라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공간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앨 잰들 목사와 밴 크로치의 하나님 말씀을 토대로한 믿음과 경험과 주장을 읽어나가면서 곳간이 하늘나라의 저장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도 주시겠다고 약속한 그 복을 받아놓는 공간임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일 하고 돈을 벌었다. 믿음으로 심는 일에도 힘에 넘치도록 했다. 낭비와 사치를 부린 적도 없으며 오히려 알뜰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지, 이 가난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것도 모자라 우리 아이들한테도 대물림되는 것은 아닌지, 내 맘 한 구석에는 그런 답답함도 없잖아 있었다. 지금까지 내 행보가 어그러짐 없이 믿음으로 성실히 살아왔음과 뿌린 믿음의 씨앗들이 그저 '언젠가'는 복으로 돌아오겠지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불에 타 없어질 이 땅의 영화 따위엔 관심 없이 헐벗고 주릴 지라도 오로지 속사람이 살찌워지는 것으로 만족해야하는가보다라고 포기하기도 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내게 곳간이 없다. 내 곳간을 마련치 못한 이유는 전적으로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은지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깨닫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잘못 배웠다-함은 결혼했을 당시 시부모님은 저축하고 재태크하는 것을 일종의 '투기'로 생각하는 잘못된 신앙관을 갖고 계셨는데, 이것은 유교 문화권 속에서 철두철미하게 성경적 사고로 변환되지 못한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교의 미풍양속 청렴결백은 우리 민족 깊숙히 육체적 가난을 미화시키는 왜곡까지 일으켰다. 그저 '내일 일은 난 몰라요~'하며 오늘 내 주머니 돈을 홀랑 털어 헌금하고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 잘 믿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셨다. 그 분들이 저축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공중의 새들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이에겐 그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리란 말씀을 진정으로 믿고 실천하고 싶어하셨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분들은 적지도 않은 세개의 교회당을 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일평생을 청교도적 삶을 살다 가셨다. 아울러 찢어지는 가난도 영광의 과업으로 남겨두셨다. 남편은 가난한 성장기도 모자라 결혼하면서 그 짐을 짊어지고 왔고, 착하기만했던(이건 어리석은 것과는 분명 다르다. 그때 나는 정말 착했다) 나는 시집 살림과 시동생들 공부 바라지를 '요즘 여자들같지 않게'큰 불평없이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에 복을 주셔서 그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나를 위해,우리가족을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곳간을 마련하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록 사치나 낭비나 엉뚱한 곳으로 돈을 흘린 건 아니지만 나는 버는 대로 다 썼고 남은 건 거의 없었다.   

'네 창고에' 복을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내 곳간이 없다면 어디에 받을까. 그런 의미에서 올해 아이들의 곳간을 만드는 작업을 즉각 착수하기로 했다. 정기적금 구좌를 각각 개설했다(나와 남편을 위한 곳간도 곧 마련할 것이다).


/사실, 이 통장 사진 한 장이면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치 않다. 책을 읽고 행동으로 바로 실천하게 하는 힘은 아무 책이나 다 있는 게 아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지나치게 미국식'이라는 점이다. 다소 영어식 어투의 문체도 그렇고 책 전반의 미국식 사고방식들도 서걱거린다. 물론  저자들이 미국 토박이니 미국 냄새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암만봐도 역시 이방인에게 생경스럽다. 그 중에서 놀란 것은 목회자가 성직 외에도 일반 직업을 겸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목사 부인이(여기선 '사모'라고 하지만)옷가게를 경영하는 것도 이상하게 보였다. 우리나라였다면 엄청 믿음없는 목사가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부인도 그러한대 하물며 목회자 본인이 다른 직업을 겸한다는 건 어쩌면 면직조치가 되는 상황이 아닌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목사안수 받을 때 일평생 다른 직업을 겸하지 않겠노라고 선서를 하는 것으로 아는데...아무튼 나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까 그렇지도 않을 걸 보니 심히 적응이 안 되었다. 한국의 목회자와 부인만 다른 직업을 겸업하지 않는가? 그러면, 성경에서 해답을 찾아봐야 하는데.. 내딴에 관련구절을 찾아봤으나 모르겠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누구든지 알려주면 정말 좋겠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성경적 물질관에 대한 조명이 좀 더 넓고 균형이 맞았으면 싶다. 오로지 받을 복을 쌓을 곳간, 넘쳐나는 물질적 복에만 촛점을 뒀지 그 물질을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써는 방법에 대해선 약하다. 모은 다음엔 어떻게 해야하지? 우리는 그저 모으기 위해서 복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듣고 배웠던 한국교회의 복에 대한 개념도 너무 영적인 부분으로만 치우쳤듯이 이 책은 그 부분이 약한 것 같다. 

/2009.1.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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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9-01-2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교 말씀 중에 '무량대복'이라는 말이 있어요.
쌓아두고 지키려 애쓰며 살지는 않아도, 필요할 때 내가 필요한 만큼 주어지는 복을 일컫는 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를 위한 복이 우주에 무량하게 쌓여있어서 내 대신 보관하고 있다는 의미로 저는 해석했습니다.
살아보니 정말 저 무량대복을 가진 사람이 최고인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단, 욕심이 많은 사람을 결코 가질 수 없는 복이기도 하지요.^^
님의 착함과 요즘 여자들 같지 않은 뒷바라지가 꼭 빛을 볼 날이 올거예요.
똑같이 비가 내려도 풀은 풀만큼, 나무는 나무만큼, 저수지는 저수지만큼, 웅덩이는 웅덩이 만큼의 비를 저장하듯 님의 착한 마음이 품은 복의 그릇은 무량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아이들의 적금 통장이 무량대복을 키우는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주 2009-01-22 18:39   좋아요 0 | URL
참 좋은 말씀이시군요^^ 고맙습니다~
 
내려놓음 -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 이용규 저서 시리즈
이용규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6년 3월
구판절판


'주님,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 없이는 음성을 듣고 분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 일단 말씀해보세요. 들어보고 좋으면 그대로 하고요. 제 생각이 더 나으면 그때 봐서 절충하지요'라는 자세로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백지 수표에 서명해서 그것을 주님께 넘겨드리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분별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15쪽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가장 좋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이다.-17쪽

믿음은 내가 익히 아는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도하심을 따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그런 길을 선택해 나아가는 것이다.-34쪽

우리는 때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때 양심의 가책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양심은 우리가 신뢰할 만한 출처가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몽골에서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의 양심에 따라 누군가에게 돈을 주어 속고 또 관계마저 깨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114쪽

솔직한 내 심정은 주어버리는 것이 마음 편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분을 보고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지 않는 것이 주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기도했다.
"베풀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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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비타민
송길원 지음 / 해피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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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간혹, 개그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럴 때 나는 그 사람이 위대해 보이기도 하지만 십중팔구는 갑갑증이 생겨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TV나 영화를 거의 못 보는 내가 유일하게 챙겨서 보는 프로그램이 '웃기는'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내 하루를 돌아보면 소리내어 웃는 시간이 한 번도 없이 24시간을 버틴 적이 너무나 많다. 미소는 간간이 있을지라도 박장대소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뗄뗄 구르며 웃을 일은 어지간해서 잘 없다. 내가 그렇게 진지한 인간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웃찾땡이니 개그땡이니 하는 각종 개그 프로그램은 재방송이라도 찾아 보는 편이다. 무슨 비타민 챙겨 먹듯이 서너 개의 방송사가 만든 개그 프로그램을 섭렵하면서 웃는 내 형편이 이렇고 보니, 개그 프로그램이 경박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위대할 수 밖에. 그 사람들은 다소 인위적이고 유치한 개그 따위를 보지 않고서도 웃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만약, 혼자만의 비법으로 웃음(또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에게서 심한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사람이 어찌 곧이 곧대로, 바르고 고운 말만 쓰면서, 탈탈 털어 버릴 말은 하나도 없는 알곡 같은 말만 하고 살까. 그게 무슨 재민가?

예수쟁이.

예수쟁이라는 이미지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에 대해 나는 늘 불만이다. 교회 밖에서건 교회 안에서건 신실한 기독교인라면 진지하고 과묵하여 온몸이 약간의 '경직'의 경지까지 이른  모습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근엄함'은 유교적인 분위기이다. 유교가 기저에 깔린 우리나라 풍토에 기독교 문화가 접합되면서 예수쟁이가 웃는 건 경박하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신실한 신앙인에게 그런 절제되고 진실한 면모가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그에게서 웃음까지 빼앗는 건 가혹하다. 깔깔거리고 웃거나, 우스갯소리나 일삼는 것을 '거룩함'과 위배된다고 생각해선 안 될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우리는 회개의 비통스런 눈물이나 진실한 기도의 모습과 비례하여 깃털보다 더 가볍고 종달새처럼 노래하며 들꽃보다 더 밝은 미소와 조잘거리는 시냇물의 기쁨과 호탕하게 파도치는 웃음이 일상 중에 나타날 것이다. 한마디로 기독교인들도 맘놓고 좀 웃어제껴야 한다는 말이다.

기독교 내에서 가정사역자로 명성을 날리는 송길원목사와 '웃음'에 대해 비스무레한 생각을 하는  내가 기특스럽다(ㅋ). 그는 건강을 위해 비타민제 복용을 강조하다가 문득 정신적인 행복을 위한 비타민을 발견하여- 마음의 비타민은 웃음이다- 이제 행복을 주는 웃음비타민의 홍보요원이 되었다.

이 책엔 여러가지 '웃기는'예화들이 짤막짤막하게 한 페이지 단위로 실려 있다(물론 이미 아는 이야기도 좀 있다). '거룩'이라는 낱말을  아직도 곡해하면서 '거룩 거룩' 하게 인상을 구기실 장로님들이 있다면, 당장 여기 있는 유머를 이용해보면 어떨까. 제 아무리 진실하고 깊이있는 메시지도 마음문이 닫힌 상태이거나, 조는 상태에서는 한 알도 그 밭에 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문을 열고 졸음을 쫒아 내는데는 행복 비타민이 꽤 효과있다. 일상 중에서도 행복비타민이 충분하면 그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수월해지고 분위기가 좋아진다.

예화 중에 하나, ㅋㅋ
영어를 배운 노부부가 일상 중에 영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외출에서 돌아온 할아버지가 '딩동~'벨을 울리자, 할머니가 영어로 묻는다.
할머니 : Who꼬?
할아버지 : Me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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