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이순원 지음 / 세계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이순원의 성장과정을 소설이라는 옷을 입힌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작가가 한 해 일찍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13살에 중학생이 되는데 이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저는 사춘기란 말예욧!"하는 소릴 무슨 엄포같이 쏘아대긴 하지만 13살이 되었건, 14살이 되었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야만 진정한 사춘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되돌아보면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만큼 아름다운 시기가 또 있으며, 또 그 시기만큼 불안하고 우울하던 때가 있었는가 싶다.  몸은 벌써 성인만큼 자랐으나 아직 덜 야문 정신세계를 소유한, 그래서 그 둘의 격차만큼 혼동스럽고 땅끝까지 추락하고 암울하고 이유모를 저항심에 기존 세대에게는 무조건 반항하고 싶었던 그 때를, 지금의 나는 그때를 그래도 '아름다웠다'라고 꼬투리를 지으련다.

책 속의 주인공 정수의 사춘기의 시작은 "검정필"이라는 별명에서부터 시작된다. 산골짜기 촌동네서 서울S대학을 진학하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 형을 둔 가난 농부의 둘째 아들-웬만큼 잘 해서는 부모님의 눈에 뜨이지도 않는 그래서 억울한 정수이다.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두메 출신이지만 또래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무거운 콘사이스를 들고 다니고 "문교부 장관의 이름 아는 사람있나?"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판권란에 씌인 <문교부장관 검정필>을 냉큼 보곤 "검정필입니다"라고 하는 외쳐 망신을 당한다.  이렇게 누구나 잠재된 의식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부터 사춘기의 문이 열린다.

14살,  15살을 지나면서 사춘기의 평범한 남학생이 겪는 신체적 변화를 경험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가 여자이고, 남자형제가 없이 자라서 인지 많이 놀라기도 했다. <몽정기>같은 영화만 봐도 알 수있지만 남학생들은 여학생들보다 훨씬 성에 집착하는 것 같다. 나는 중2 남학생들과 이 부분을 함께 공부할 때 내가 왜 이 책을 골랐는지 원망스러울만큼 민망했다. 나와는 정반대로 학생들은 아주 좋아했지만 말이다. 팀 중에 책을 죽으라 안 읽는 녀석이 있었는데 이 책은 무려 대여섯번 통독해 오는 놀라운 기록을 갖기도 했다. "너, 특정 부분만 열심히 읽었지?"하며 호통치니까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16살, 17살을 지나면서 강력한 일탈을 감행한다.  공부가 業인 학생이 공부가 싫다고 때이르게 돈벌이에 나선 것. 요행으로 대관령 고랭지 배추농사에서 큰 돈을 벌어 하기싫은 것(공부, 부모의 간섭)은 안 하고 하고싶은 것(어른행세?)을 맘껏 한다. 이 책이 실화를 근거로 한 자전적 소설이 아니었다면 이 대목이 너무 우스꽝스런 설정이 아니었을까마는 작가의 실제담이니 아이들은 한마디로 "우와~~~!!"하며 동경했다.

18살, 19살 껍데기만 어른인 체 하던 정수가 소년다운 순수한 "꿈"을 상기해 내곤 자신을 바른 길로 키우길 원하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 학교로 복학하며 이야기는 끝을 낸다. 정수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수의 미래는 작가 이순원의 발자취이다. 그는 죽어도 안 가겠다는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나이 50을 바라보는 글쟁이로 자식을 기르며 이땅에 살아가고 있다.

나는 모든 책이 반드시 문학성이 높고, 교양이 풍부하며, 바르고 반듯한 교훈을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학생들로 하여금 다소 불온한 사고를 부추킬 수 있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장도 매끄럽다거나 세련되었다기 보단 온통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찬 장난끼 어린 것들이다. 그러나 학생들 가방 속에 교과서나 사전같이 반듯한 책도 들어 있으면서 만화책이나 로멘스 소설책도 끼어 있는 것 처럼 교훈일색의 훈장님글 보단 이런 소설이 아이들 마음을 시원스럽게 뚫어 주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치곤 실제생활과 거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한달 바짝 열심히 공부하니까 전교 1등도 무난하게 되는 것은 밤늦도록 학원에 매달리고도 석차 몇 등을 올리기가 힘든 요즘 아이들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느껴지고, 책을 불 지르고 집을 뛰쳐나가 농사를 짓는 것, 그리고 농사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루는 것이 그렇다. 아무리 요행이 따랐다치더라도 큰 규모의 농사에 덤벼들 수있는 그런 여건 자체가 보편적인 설정은 아니다. 그리고 돌아오고 싶다고 아무 일없듯이 받아주는 부모와 학교..이런 부분들을 보면 오히려 주눅이 들기 쉽상이다. 공부 잘하고 갖출 거 다 갖춘 학생이 탈선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소외감을 느끼고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 때문에 아이들이 가출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엉뚱한 독자들은 "이순원은 역시 잘 난 놈이야."라는 이상한 결론을 도출할 우려도 조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질풍노도의 사춘기 애들에게 잘 읽혔다고 생각한다. 정수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일탈의 기쁨을 체험하고 그가 마지막에 깨달았던 걸 책을 덮을 땐 자기걸로 소화해 폭풍을 잠재울 지혜를 마련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사춘기로 접어들 두 아들을 키우는 내가 읽은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20세라는 강을 건너서면 사춘기의 일을 몽땅 잊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들이 어떤 것에 집착하는지,그들이 얼마나 좌절하고 슬퍼하는지,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레테의 강물을 마셔버린 나같은 어른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조그만 숨통이라도 열어 둘 수 있다면 책값은 본전을 빼고도 남는다.

2005. 5. 14.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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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1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문열의 레테의 연간줄 알았어요 ㅠ.ㅠ;;;

날개 2005-05-1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거 부모들이 봐야할 책 아닐까요?

인터라겐 2005-05-14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빨리 읽어야겠어요.... 이 밀린책들을 언제 볼런지...지나친 서재질은 해로워요..ㅋㅋㅋ

진주 2005-05-1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의 레테의 연가라고 할까요? ㅎㅎㅎ
날개님, 머스마를 키우는 사람은 사춘기 전에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러게요..지나친 서재질로 건강과 독서가 위협을 받고 있으니..원..^^; 그래도 인터라겐님은 책 많이 보시잖아요^^

stonehead 2005-05-16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저도 아들 녀석만 둘이랍니다.
저...둘째는 딸 낳기를 고대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또 아들이...허허! 제 복에 공주님은 무슨?
근데 둘째 녀석이 흡사 딸 처럼 행동을 하더군요.
빨래도 거들어 주고, 김장도 거들어 주고...
큰 녀석은 믿음직해서 좋고, 둘째 녀석은 애교만점이라 좋고...

가출이나 그외 일탈된 행동들은 대개 둘째가 하더군요.
성서의 탕자의 예를 굳이 들지는 않더라도 둘째들이 좀 그렇지요.
영이가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랍니다.

진주 2005-05-16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들이 둘이라도 아들이 좋아요. 아들 편애 증상이 좀 심각하지요? 제가 종가에서 딸로 태어나 좀 서럽게 자라서 그런가봐요.
우리 영이도 다분히 둘째기질을 갖추고 있어요. 그래서 큰 애가 안 하던 예기치 못한 행동을 자주 해서 제가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예요.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