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를 못할 정도로 머리숱이 많았던 나는  
나날이 엉성해져가는 남편의 정수리를 보며 
할 수만 있다면 내 머리카락을 나눠 주고 싶었다.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좀체로 살이 빠지지 않는 나는 
먹어도 먹어도 살 안 찌는 체질인 남편에게 지겨운 내 살덩이를  
뭉텅 덜어주는 시늉하며 장난쳤지만 속으로도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랐다. 

 

요즘 남편은 체력이 많이 후달리는지 전에 없이 잠을 많이 잔다. 그래서 남편의 잠든 얼굴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왜 늘 잠든 모습을 보는 쪽인지 때때로 억울하단 생각이 든다. 내가 세상 모르고 잠 들었을 때 남편도 나처럼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까?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쓰다듬어 줄 때 나처럼 연민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런 일은 잘 없었지 싶다. 항상 내가 나중에 잠들고 새벽엔 동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우리가 함께 잠 자기 시작한 이래로 내 수면 시간은 하루에 4시간 남짓할 만큼밖에 안 되니 나는 그에게 잠자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적다고 할까. 그리고 그에겐 불면의 밤이 없다는 것도 이유다. 나는 머리만 닿이면 곯아떨어지는 사람이지만 아주 가끔 날밤을 꼬박 새는 적이 있어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잠든 얼굴을 세밀화로 그릴 듯이 눈으로 새기며 무료한 밤을 보내곤 한다. 깨어 있을 때와는 다른 잠든 얼굴, 그 얼굴은 한없이 순하고 유약하여 눈물이 핑 돌만큼 연민이 느껴진다. 그쯤에서 꼭 나는 내 손발이 다 닳아도 좋으니 이들에게 아낌없이 다 주고 싶다는 다짐이라도 왈칵 하게 된다. 그렇게 내 가족들은 잠 자는 얼굴로써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먼 나의 가슴 깊은 어디쯤에서 갸륵한 헌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면 나는 내 목숨을 남편에게 좀 나눠 주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생물학적인 나이로 그와 나는 일곱 살 차이가 난다. 그리고 통계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7년은 더 오래 산단다. 그러면 자그마치 십사 년이라는 세월을 할머니가 된 나는 혼자 살아야 된다는 말이다. 물론 둘 다 중도하차하는 일 없이 평균 수명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다.  

 

아버지가 가시고 첫 명절을 맞았다. 엄마는 아버지의 병원 바톤을 이어받기라도 하는지 혼자 되신 후로 계속 병원 신세를 지셨다. 복사뼈 부근에 사소한 염증으로 시작한 것이 장장 일곱 차례의 수술을 받게 했고 평소 앓던 신장병은 회복을 더디게 했다. 우울증이라고 병명을 붙이긴 했지만 엄마는 매사에 삶의 의욕이 없어 보인다. 그것이 오래토록 엄마를 병원에 묶어두는 화근이 분명하다. 자라면서 나는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이성적이며 의지가 강한 분이 또 있을까 싶었는데 그 엄마는 온데간데 없고 걸핏하면 눈물 바람이고 하루 하루 목숨을 이어나가는 일을 괴로워 하신다. 남겨진 사람의 고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낙엽처럼 바스라지는 장모의 몰락을 보는 것이 사위의 눈에도 안타까운가 보다. 내가 내 목숨을 당신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소리를 했을 때, 어이없어 하거나 핀잔이나 줄줄 알았더니 남편은 "그러자"라고 순순히 응수했다.  

 

내가  남편에게 목숨 반쪽을 덜어주고 싶은 것은 위에서 말한 '갸륵한 헌신'의 발로라기 보다는 혼자 남는 것이 두렵다는 얄팍한 계산속이 더 비중이 클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남편은 내 목숨을 기꺼이 받는 일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 나무가 소년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낌없이 주는 것이었다면 받는 것도 사랑이다. 아아, 그러나 다 부질없는 망상이다. 머리칼 한 줌도, 살 한 덩이도 서로 떼어줄 수 없는 것이 사람인데 어떻게 목숨을 떼어주고 말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이렇게 꽥 소리 지른다. "십사 년은 어쩔 수 없다고 쳐. 대신 그 보다 더 긴 세월을 혼자 두게 하면 정말 당신은 책임의식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일어나서 우리 등산가자 응?"20110915ㅁㅂㅊㅁ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11-09-15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는 꼭 저보고 더 오래 살래요. 아무래도 내가 더 '실무'가 능하다나? 마누라 장례치를 자신 없다는 그 말이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고. ㅋㅎㅎ

진주 2011-09-15 22:18   좋아요 0 | URL
그건..저도 자신 없어요. 우리가 어쩌다 벌써 그런 걸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을까요? 자, 불로초 한 뿌리씩 나눠 드릴 테니 이리 오세요~ㅋㅋ

프레이야 2011-09-15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가시고 어머님이 염려했던 것보다 많이 안 좋으시군요.ㅠㅠ
많이 쓸쓸하고 힘드신가 봐요. 시간이 더 가야 씩씩해질 수 있으려나요.
그동안 진주님이 마음으로 더 보살펴드려야겠군요. ㅠ
제 친구 시어머님도 그런 경우였는데 처음엔 우울증이 심해서 한동안
병원도 다녔어요. 지금은 잘 사시는데 그래도 속으론 힘드시겠지요.ㅠ

진주 2011-09-16 17:12   좋아요 0 | URL
원래 엄마 건강이 더 나빴어요. 신장이 안 좋아서 투석도 하시거든요.
아버지 가시고 나니까 몸도 마음도 형편없이 나약해져 버리셨네요....
우린 벌써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우리 엄마는 그 옛날에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 세련되고
지혜롭고 의지가 강한 분이셨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 전혀 볼 수 없어요.

오늘도 짬을 내서 고속도로 쓩~~달려가서 고기 사드리고 왔어요^^
예전엔 채식만 하셨는데 입맛도 변하는가봐요.
안창살 1인분-맛있게 드셨어요.


프레이야 2011-09-16 21:42   좋아요 0 | URL
몸까지 그러시니 더욱 약해지시겠지요.
고기가 몸에 안 좋다고 가리는 분 많지만
적당히 먹어줘야 될 것 같아요. 힘도 내시고요.
진주님 어머니에게 참 잘하시네요. (칭찬해드리고 싶어요^^)

라로 2011-09-1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진주 2011-09-16 17:16   좋아요 0 | URL
넓고 좋은 친정집은 비워두고
엄마는 병원에서 살고 계셔요.
띵똥~하고 초인종 누르면 엄마 아버지가 반갑게 맞아주시던.....(울컥) 그런 친정이 너무나 그립네요. 아이들에게도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야 좋은 외가가 될거예요. 그쵸?

울보 2011-09-1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이 빨리 툴툴 털고 일어나서야지,,추석날 시누가 시어머님에게 엄마는 혼자 되면 못살거라고 그러니까 엄마가 먼저 돌아가셔야 한다고 하더군요,,아버님에게 의지하시는게 많은 어머님을 보고 있으면 가끔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 무섭기도 해요, 저또한 옆지기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데,,저도 옆지기 담배 끈게 하고 함께 운동도 열심히 해야 겠어요,,

진주 2011-09-16 17:39   좋아요 0 | URL
오늘도 가서 재활치료 열심히 잘 받자고 살살 달래고 왔어요 ㅎㅎ
일단은 저 발이 다 나아서 맘대로 다닐 수 있어야 이웃 할머니들과 놀러도 다니고 그러겠죠. 엄마도 이젠 아버지 없이 사는 재미를 배워야 해요..
울보님은 부군이랑 나이 차이 얼마 안 나시죠?

2011-09-16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8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