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의 사랑

 

  버린 사랑 왼손으로 쓰네
  나는 사랑의 왼손잡이
 
 
  CLOSE UP (느리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권태로운 방 쪽으로 열려진 창문 밑 반대로 놓인 수
  화기와 쓰다만 엽서 왼쪽에 거꾸로 깎다만 사과 물끄러
  미 왼손 끝에서 덧나는 희망 보이네 물고기뼈처럼 금지
  된 그녀
 
 
  내가 희망하는 것은
  그가 아니었네 그의 사랑도
  단지 나를 향한 사랑
  위태롭게, 내가 빠져들었네
  나는 나의 노예
  나는 금지되네
 
 
  LONG SHOT (무미건조하면서 지루하게)
  길 밖으로 상실한 그녀 흘러가네 지하철을 타고 쇼핑
  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설겆이
  를 하다 뜨거운 두 손에 이마 묻네 털어내지 못한 사랑이
  발목 적시네 차가운 그녀
 
 
  내가 멀리 있네
  내 사랑 피어 혼자서 젖고 있네
  잊혀지고 싶은 나처럼 그를 잊고 있네
  나는 나의 노예, 용서하라

  詩 : 정끝별



Day Dreaming - joan ma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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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1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복사하여 여러번 거듭 읽었던 그 책이 출간됐다.

남유자, 그녀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단편 하나가 들어있는 건가?

그렇다면 분량에 비해서 책값이 좀 비싼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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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1-13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남문학선에 있는 유자약전은 40쪽 분량밖에 안되는데

이 책은 중편분량으로 개작하신 건가요. 플레져님

플레져 2005-01-1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니르바나님.

저두 학교 도서관에서 복사하여 읽었어요. 나남문학선이었나봐요 ^^

로드무비 2005-01-15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자는 목욕탕에서 물통을 엎어놓고 잔다죠?^^
무척 매력적인 주인공이었는데......
(제 기억이 맞나요?)

플레져 2005-01-16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저는 유자의 외모를 묘사하던 스피드한 문체만 어렴풋 기억나요.
읽을 때 무척 반했는뎅...^^

2005-01-19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름의 흐름




                                                                                                                                                                    마루야마 겐지

1

아직 다섯 시 밖에 안 되었는데 여름의 아침 햇살은 커튼 틈새로 강하게 뻗어 왔다. 나는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밤의 서늘함은 사라지고 차츰 한낮의 더위가 되살아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자는 것을 포기하고 이불을 두 발로 휘감아 젖히고 모기장 발치를 텄다. 눈을 뜨니 모기장의 녹색이 눈부셨다. 손을 뻗어 담배를 끌어당겼다. 아침 햇빛에 반사한 담배 연기가 보랏빛으로 변해 올라갔다. 일어나는 자리에서 곧장 피우는 담배가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했다.

집 둘레를 뛰어 다니는 아들놈들의 짧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아내가 벌써 일어나서 부엌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부엌에서 아내가 물어 왔다.
"응."
하고 잠시 후 나는 대답했다.
아이들이 모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일곱 살 난 큰 녀석이 내 목을 감고 달라붙었다. 나는 이불에 반듯이 누워 다섯 살짜리 작은애를 발바닥에 얹고 퉁겨 주었다.
"그만둬요. 모기장 해지잖아요."

아내는 들어와서 그렇게 말하더니, 모기장을 걷고 이불을 갠 후 유리문을 활짝 열었다. 나는 아이들과 창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은 짙은 청색으로 구름은 없었다. 높은 형무소의 담과 낮은 산기슭과의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희고 조용한 파도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나란히 늘어선 작은 단층 짜리 관사의 모든 것들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성급한 매미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오늘도 덥겠는 걸."
내가 말했다.
"여름 아녜요?"
아내는 털이개로 먼지를 털면서 말했다.
올 여름은 지독히 더웠다. 벌써 며칠째 비가 오지 않아 모두 바싹 말라 있어서 한낮의 더위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맥이 빠졌다.

아이가 신문을 가지러 현관으로 달려갔다. 아내는 청소를 마치고 접은 테이블을 펴놓고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내의 배를 흘끗 바라보았다. 꽤 커졌다고 생각하면서 부엌으로 가서 이를 닦고 얼굴을 닦았다. 차가운 수돗물은 기분이 좋았다. 얼굴을 깨끗이 씻고 마루에 붙여 놓은 폭이 좁고 긴 거울 속에 담긴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나를 보고 웃길래 더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또 아이들이 웃었다. 아침식사를 할 때 아내는 아이들이 먹으면서 흩뜨려 놓은 것들을 주우랴 물시중을 들랴 분주했다.

"아직 못 먹었나?"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아침은 무리예요."
"뭐든 먹어 두는 게 좋아."
"언제 낳지?"
작은 애가 밥그릇에서 얼굴을 들며 물었다. 녀석의 느닷없는 질문에 나도 아내도 어이없어 웃었다.
"인제 석 달. 눈 올 때."
"계집애가 더 좋아."
큰애가 끼어 들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내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어느 편이 좋아?"
"말하면 무슨 소용 있나."
"그저 물어보는 것 아녜요? 당신은 사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응 사내가 좋아. 허물이 없으니까."
"그래도 세 번째 아이예요. 이번엔 계집애였으면 좋겠어요."
"……"
"여보. 듣고 있어요?"
"듣고 있어."
"또 새 사람 들어와요?"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읽고 있는 신문을 위에서 넘겨다보았다. 아이들도 양옆에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들어오긴……."
나는 신문을 접었다.
"요전에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아내가 내게 물었다.
"누구?"
"친척을 세 사람씩이나 죽인 사람 말이예요. 그 왜 몸집이 큰……."
"그 녀석. 얌전히 있지 뭐."
"그래요?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죠? 아이까지 죽였죠? 지독해."
"그렇지 뭐."
"그건 사람이 아냐."
"사람이야. 이젠 나가 봐야겠어."

나는 귀찮아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상을 알리는 형무소 사이렌이 몹시 크게 울렸다. 아이들이 문밖으로 나갔다.
나는 양복장을 열고 엷은 갈색의 제복을 입고 넥타이를 목에다 걸었다. 이틀만 입으면 벌써 땀내가 났다. 아내는 옷걸이에서 바지를 벗겨 가볍게 손질해서 내게 건넸다.
"모자 쓰세요."
"집안에서부터 쓸 것 없잖아. 안 그래도 종일 쓰고 있는데."
내가 현관으로 나와 구두를 신자 아내는 커다란 흰 손수건을 접어 내 바지 뒤 주머니에 넣었다.
"조심하세요."
아내가 말했다.
"응. 그보다 당신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요."
"불편하거든 의사에게 가 봐."
"그쯤은 알고 있어요. 처음도 아닌데."
"응, 그럼 다녀올게."
집을 나서자 좁은 길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양팔에 매달렸다.
"모퉁이까지만……."
뒤에서 아내가 외쳤다. 아이들이 매달리면서 양발을 투닥투닥 흔들었기 때문에, 포장이 안 된 도로의 흙먼지가 일어났다.
"낚시 갈 때 데리고 가."
큰애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언제 한 번."
"언제가 언제야?"
"학교 다니게 되면."
"그럼 바다로 가."
"바다로 가."
"좋아, 그렇게 하자."
"언제?"
"다음다음 쉬는 날."
"다음은 왜 안 돼?"
"낚시 가야 하니까. 자 그만 돌아가. 여기까지야."
"더 갈래."
"안 돼. 돌아가."
넓게 포장된 도로로 나왔다. 차는 아직 다니지 않았다.
"멀리 가지 마라."
"응."

아이들은 다음 놀이를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는 모자를 다시 고쳐 쓰고 형무소에 이르러서야 끝나는 넓은 길을 걸었다. 아스팔트 위에는 구두며 차 바퀴 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 어제 이글거리는 태양이 아스팔트를 흐물흐물 녹인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굳어 있었다. 잔잔했던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 왔다. 길 옆 공사 중인 관사에서 목수 몇 사람이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목수들은 떠들던 입을 다물고 내가 지나갈 때까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길이 끝나고 높은 담과 굵은 문설주가 앞길을 막았는데 벽돌 문설주의 한쪽은 속을 둥글게 파내어 수위실로 쓰고 있었다.
소 내의 나무숲에서 매미소리가 들려 왔다. 붉게 녹슨 철 대문은 닫힌 채였고 도랑의 물은 몹시 더러웠다. 흐름이 멈춘 수면에는 퍼런 빛이 도는 기름이 떠 있고, 바닥에서는 끊임없이 가스가 끓어 올라오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나는 철판으로 된 이동식 다리를 건너와 수위에게 인사했다.
"오늘도 몹시 덥겠습니다."
뚱뚱한 수위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는 수위가 열어 준 작은 출입문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별세계였다. 안에는 매미가 시끌시끌한 삼나무가 수풀처럼 많았다. 하지만 수풀과는 달리 밑에는 풀 덩굴 같은 것은 전혀 없고, 나무줄기가 땅바닥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 벽돌을 깔아 놓은 낡은 길을 걸었다.

사람 소리는 없고 아는 간수조차 만나지 않았다. 이윽고 길은 밋밋한 비탈이 되면서 내려가노라면 높은 시멘트 담은 삼나무 숲에 가려진다. 그리고 넓은 운동장에 들어섰다. 운동장에는 넓고 잘 가꾸어진 잔디가 푸르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주위를 높고 가파른 둑이 둘러싸고 있는데 여기서 보이는 것이라곤 잔디와 하늘뿐이었다.

나는 오늘도 지름길로 가기 위해서 잔디를 밟고 제일 가장자리 건물을 향해 걸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쯤 왔을 때, 둑을 뚫어낸 터널에서 일반 기결수들이 우글우글 나왔다. 50명쯤 되었다. 모든 죄수의 머리가 방금 깎았는지 하얗게 빛났다. 러닝셔츠에다 헐렁한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옆구리에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세탁물을 끼고 있었다.

간수의 호루라기가 짧게 울리자 죄수들은 그 신호로 개미처럼 일제히 흩어지고, 자기 세탁물을 잔디 위에 널기 시작했다. 바람은 둑 위를 지나기 때문에 세탁물이 날아갈 염려는 없었다. 잔디의 4분의 1 정도가 세탁물로 하얗게 메워졌다. 죄수들은 그 작업을 마치더니 처음 모양으로 열을 지어, 다음 호루라기 신호에 맞춰 밭일을 하러 오던 길로 돌아갔다.

운동장을 넘어서니, 등에 땀이 나고 얼굴에서도 땀이 솟았다. 돌계단을 올라가 가시철망이 두 겹으로 둘러쳐진 사형수 전용의 벽돌 건물까지 갔다. 거기엔 나무나 잔디 따위의 쓸데없는 식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것 대신 흰모래가 건물 주위에 듬뿍 깔려 있고 그 위를 간수들이 아침저녁으로 번갈아가며 손질한다. 그밖에 막사 하나와 녹스는 것을 막기 위해 갈색 페인트칠을 한, 철골로 짠 감시탑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감시탑에는 아무도 없는 대신 차양이 달린 탐조등과 나팔 모양이 스피커가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막사에는 낯이 익지 않은 젊은 간수가 있었다. 막사는 좁고 지붕은 있어도 흰모래의 반사로 더워 보였다. 내가 다가가자 그 젊은 간수는 모자 사이에 끼웠던 손수건을 뒤로 감추고 인사를 했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몹시 덥군."
"네."
"교대는 몇 시에 하는가?"
"세 십니다."
"가장 더운 시간이군."
"네."
"항상 그런가?"
"네."
"수고하는군."
"뭐 매일 하는 일인데요."
"선풍기를 쓸 수 있게 말해주지."
"그럼 한결 낫겠습니다."
"하긴 그땐 눈이 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왜요?"
"응, 좋아. 손수건 쓰라고."
"죄송합니다."
나는 햇빛으로 달궈진 모래 위를 걸어 이 건물에서 단 하나뿐인 출입구인 작은 철문 앞에 와서 단추를 눌렀다. 조금 기다리자 네모진 감시창 뚜껑이 열리고 땀 밴 눈과 코가 나타났다. 뚜껑은 곧 닫히고 문 저편에서 열쇠꾸러미가 절컥절컥 울리더니 얼마 후 문이 열렸다.

호리베였다.
"여어."
호리베는 내가 들어온 문을 닫고 열쇠를 빼면서 기세 좋게 말했는데 그는 언제나 쾌활했다.
"덥군."
내가 말했다.
"그래? 안에는 그렇지도 않아."
호리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모자를 벗고 땀을 닦았다.

그와 나는 서늘한 복도를 지나 간수실로 들어갔다. 나는 이 방이 맘에 들었는데 그것은 청결했기 때문이다.
다른 간수는 근무중이라 방에는 나와 호리베 뿐이었다. 강한 햇살은 두꺼운 녹색 커튼이 가로막고 있었고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새 선풍기는 부드럽게 공기를 휘젓고 있었다.

"보리차 마시려나?"
호리베가 말했다.
아직 있나 싶어서 나는 책상을 봤다.
"숙직 친구들이 남긴 거야."
"마셔볼까."
"여기다 얼음까지 있다면."

호리베는 그렇게 말하고, 푸른 비닐 보를 씌운 테이블에서 보온병을 들어 찻잔에 따라 주었다. 나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씁쓰레하고 미지근했다. 호리베는 또 한 잔 따라주고 자신도 마셨다.
"내주엔 더 위쪽으로 가지 않을래?"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낚시 말이야."
"지금 자리도 잘 되잖아."
나는 물이 절반쯤 남은 찻잔을 테이블에 놓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건 그런데 잔 것 뿐이라 재미가 없어."
"먼젓번 낚은 것 어쨌어?"
"그거? 억지로 절반은 먹었는데 나머지는 냉장고야."
그렇게 말하고 호리베도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여름엔 쉬 상해."
"벌써 상하려고 해. 자네처럼 아이들이 있다면……."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시끄러워 죽겠어."
"그래도 시끄러운 편이 나아. 또 생기지?"

"응. 세 번째야."
"좋군. 하나쯤 나 줘."
호리베는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좀 있으면 자네도 생기겠지."
"안 돼, 이젠 체념했어."
"그럼 이번에는 위쪽으로 가 볼까?"
하고 내가 말했다.
"제파리 낚시 따위론 안 돼."
"그렇게 커?"
"먼젓번에 내가 보고 왔어."
"그럼 지렁이하고 양쪽 다 준비하지."
복도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났다.

"저거 누군지 알겠나?"
하고 호리베가 나를 보고 물었다.
"글세."
"나까가와야."
"어떻게 알지?"
"저 친구는 언제나 발을 끌거든."
발자국 소리가 멎더니 문이 열렸다. 정말 나까가와였다.
"안녕하십니까?"
나까가와는 나와 호리베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제 조금 익숙해졌나?"
호리베는 싱글거리며 나까가와에게 물었다.
"네……그럭저럭."
나까가와는 낵가 따라 준 마지막 보리차를 조금씩 마시면서 대답했다.

"걱정 말라고."
호리베가 말했다.
"뭐 다른 녀석들하고 다를 것 없어. 편히, 마음 편히 가져."
"네. 그래도……."
"뭐야?"
"뭔가, 저를 보는 눈이 다른 것 같아요."
"누구와 다르다는 건가?"
"일반 재소자들 하고요."
"자네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래."
"그럴까요?"
"그럼."
하고 호리베는 말했다.
"뭐가 있었나?"
"아니, 별로."
"응, 그 녀석 말이지?"
"네."
"그 녀석이 누구야?"
내가 물었다.
"지난 번에 들어온 놈."
"그게, 뭐, 어쨌나?"
나는 아침에 아내와 그 사형수 얘기를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따위 녀석 상대하지 마."
하고 호리베는 나까가와에게 말했다.
"너무 쭈뼛하면 깔본다고."

나까가와는 그 말에는 대꾸를 않고 권총과 교봉을 들어 유리 케이스를 열고 자기 명패가 붙은 못에 그것들을 걸었다.
"나까가와, 다음에 우리와 낚시를 안 가려나?"
하고 내가 말했다.

"낚시요?"
"그래."
"하지만 전 도구도 없고……."
"상관없어. 우리 것 쓰면 돼."
"뭐 다른 것 할 일 있나?"
"아니 별로……."
"그럼 가지."
"네, 부탁합니다."
"좋아, 정했어. 아무 것도 필요 없으니까. 도시락 갖다 주지. 응? 사사끼."
호리베는 싱긋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사이렌이 울리고 멀리서 들리던 매미소리가 그쳤다. 나까가와는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딴은 약간 저는군."
내가 말했다.
"그렇지?"
나와 호리베는 의자에서 일어나 유리 케이스에서 권총을 꺼내어 장진하고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호리베는 방안의 등신대 거울을 보고 모자 차양을 매만졌다. 나는 선풍기 스위치를 끄고 방을 나왔다.
복도의 형광등은 끔벅거리며 점멸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복도의 막바지에 있는 쇠창살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열어주는 문을 지나 또 다른 문을 지났다.

"수고."
"밖은 몹시 덥지요?"
나와 호리베는 안의 간수와 짧은 인사를 주고받고 작은 소리로 간단히 인계를 마쳤다. 나와 호리베 대신에 두 사람의 간수가 돌아갔다.

이 건물은 사형수의 숫자에 비해서 넓었다. 천장은 칸막이 없는 하청으로 서쪽에 두 단씩 독방이 잇닿아 있고, 떼었다 붙였다 하는 쇠파이프로 된 계단과 아래에서 꿰뚫어 보이는 철판 복도가 있었다. 그 때문에 어디서든 한 곳에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나와 호리베는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갔다. 다른 간수는 자기의 부서에서 가만히 있었다. 나는 바로 앞 벽에, 호리베는 맞은편 막다른 벽에 등을 기댔다. 간수들은 다음 운동시간까지 할 일이 없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기도 하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눈앞을 무엇인가가 가로지르지 않는 한,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벽에 기대자 곧 눈앞이 흐릿해지고 머리 속은 멋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낚시에 대해 생각했다. 최근에는 언제나 먼저 낚시에 대해 생각했다.―그 자리는 늘 낚는 곳인데 큰 단풍나무가 있고, 조용하며 신선했다.

나는 거기서 더 상류를 떠올려 보았다. 상류로 간다는 생각은 호리베가 입에 올릴 때까지 하지 못했다. 좋아, 더 위로 가 보자. 호리베 말대로 큼지막한 게 잡힐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나까가와도 함께 가지. 자식, 갈까?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테지. 그래도 가는 편이 나아. 첫째 신선하고 심심파적이 되거든. 나까가와에게 기분전환이 필요해. 암, 기분전환이지. 역시 그 녀석이 가는 게 좋아.―

낚시에 대한 것은 그것으로 끝내고, 다음은 이번에 낳을 아기를 생각하였다.―세 번째라, 많을까? 많지. 이상 더 낳는다면 밥 먹기가 어려워. 큰놈은 이내 학교에 갈 것이고…좀 부지런히 벌어 저축한다? 지금 이대로는 안 돼. 한 달에 세 번쯤 그 당번이 돌아온다면, 특별 수당으로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그따위 사형 당번 따위는 없는 게 나은데. 아무튼 좋아. 어떻게 되겠지…….

거기서 공상은 또 낚시로 돌아왔다. 시계가 땡땡 울렸다. 그러자 당번의 호루라기 소리가 방안 가득히 울렸다. 수인들의 체조 시간이 된 것이다. 죄수들 중에 누군가 하품하는 소리와 자기 방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여럿 들렸다.
다시 호루라기 소리가 나자 간수들은 문을 열었다. 나도 담당인 이층 반쪽을 반까지 열고 바로 한가운데서 호리베와 만났다. 세 번째 호루라기 소리가 나자 죄수들이 밖으로 나왔다.

죄수들은 여름옷을 입고 뒤를 향해 자기 방문 앞에 한 줄로 섰다.
"지껄이면 안 돼. 지껄이지 마!"
"침 뱉지 말아."
간수 중의 누군가 소리쳤다. 그 소리를 호루라기 소리가 집어 삼키고 신체검사에 들어갔다. 죄수들은 자기 방문에 두 손을 얹고 허리를 굽혔다.

여름철의 이 작업은 죄수들 겨드랑이 냄새가 손에 옮아서 싫었다. 호리베가 문제의 죄수에게 낮은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다리 쪽에 탁탁 손을 대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죄수는 똑바로 문의 한 점을 응시하고 호리베가 하는 대로 맡기고 있었다. 간수들은 신체검사를 마치자 죄수를 다시 한 줄로 세웠다.

내 담당 줄은 내가 선두에 섰고, 호리베가 뒤에서 죄수들을 끼고 철 계단을 내려갔다. 처음에 나는 죄수에게 등을 돌리면 뒷머리와 등에 한기를 느꼈었다. 아래층에 다른 줄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터널의 통로를 빠져 밖으로 나왔다.

높이 솟아오른 해를, 모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거기 운동장은 일반수가 야구도 하고 럭비도 하는 넓은 잔디 운동장과는 달리, 좁은 땅을 콘크리트 담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칸을 나누어 그 모서리 부분에 감시대가 있었다. 거기서 보면 많은 죄수라 해도 혼자서 감시할 수 있었다. 오늘 감시는 나와 호리베 차례였다.

다른 간수는 한 칸에 둘씩 죄수를 집어넣고 쇠창살문에 열쇠를 잠갔다. 그들은 나와 호리베를 남기고 막사로 철수했다.
감시대의 콘크리트에 묻어 놓은 쇠 의자는 햇빛에 뜨겁게 달아 있어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모자를 고쳐 쓰고, 선 채로 감시를 해야 했다. 죄수는 주어진 저마다의 칸 속에서 멋대로의 체조를 시작했다. 셔츠를 벗고 벌거벗은 채 땅바닥에 반듯이 누워 일광욕을 하는 자, 무턱대고 이리저리 뛰는 자, 군대에서 배운 도수체조를 하는 자, 그것은 마치 보건소에 모아놓은 집 없는 개들처럼 보였다.

"조용히 해."
호리베가 소리쳤다.
죄수들은 칸막이 벽 때문에 이웃 친구가 보이지 않아서 누가 욕을 먹는 건지 몰라 일제히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죄수들은 여간 큰 소리로 지껄이지 않는 한, 간수가 일부러 자물쇠를 따고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팔을 내젓고 토끼뜀을 하면서 같이 있는 자와 중얼중얼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더운 날씨에도 잘도 움직이는군."
호리베가 말했다.
"기분전환이 되니까. 움직이는 동안만이라도 말이야."
"그런 모양이야."
"그럼."
하고 나는 말했다.
"우리들은 낚시나 하지."
호리베는 시멘트 대에 한 발을 얹고 죄수를 살폈다.
"아까, 자식 뭐라는 거야?"
하고 나는 물었다.
"그거, 젊은 간수를 깔보지 말라고 했지."

"그렇게 말했다고."
"응."
호리베는 죄수들에게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젊은 간수라니 나까가와 말인가?"
"말하자면 그렇지."
"그래 놈이 뭐래?"
"별로…저렇게 보더군."

하고 호리베는 턱을 움직여 문제의 죄수를 가리켰다. 그 죄수는 체조를 멈추고 벽에 기대어, 손바닥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면서 가끔 이쪽으로 곁눈질을 했다.
"무슨 일 저지를 성싶은 얼굴이지?"
"여기서 말인가? 여기서 놈이 무얼 할 수 있지? 저렇게 째려보는 게 고작일 거야."

그때까지도 그 죄수는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맞추고 있다가 시선을 돌렸으나 호리베는 여전히 그놈을 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그 죄수는 짧은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머리의 땀을 털어 버리면서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뜨겁게 달아 오른 쇠창살을 잡고 우리를 보았다. 호리베가 문에 다가갔다.

"뭐야?"
호리베가 죄수에게 말했다.
"일 없으면 저리 가 있어."
"여기 있으면 안 되나?"
죄수가 말했다.
"그만 둬."
내가 말했다.
"왜 우릴 보나?"
또 호리베가 말했다. 다른 죄수들은 일부러 이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보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나?"
죄수는 호리베에 가까운 쪽 쇠창살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뭐? 사람도 아닌 자식이 사람이라고 무슨 아가리를 함부로 놀리고 있어?"
호리베는 되도록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사람 아닌 건 너희들이야."
죄수가 말했다.

"벌써 몇 명이나 목 매 죽였나? 응? 날 해치우고 얼마나 받지? 쥐꼬리 월급 받고서 고생 많구먼."
"그만둬, 호리베. 그냥 두라고."

호리베는 죄수를 노려보며 얼굴의 근육을 실룩실룩 했다. 그러면서 허리의 교봉에 손을 댔으나 빼어 들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호리베를 불렀다. 호리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그런 다음 죄수에게 등을 돌리고 내게로 왔다. 그 죄수는 한참 우리를 보다가 느릿느릿 제 벽에 가서 들어앉았다.

"저 자식 때는 내가 할 테야."
하고 호리베는 땀이 가신 해쓱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리 화내지 마. 아무튼 이번에 저 녀석 차례니깐."
"누구에게 들었어?"
"주임이 그러더군."
"이번 당번은 누군데?"
"나야."
"또 한 사람은?"
"놈이야."
"놈?"
"나까가와."
"벌써 시키나?"
"언젠가는 해야 되잖아. 빠를수록 좋아."
하고 나는 말했다.
"그것도 주임이 한 말이야."
"응, 전 번에 술 마실 때 그러더군."
"그게 틀림없지?"
"난 나까가와 같은 친구보다 너와 조가 됐으면 바랬는데."
"나하고 안 바꿔주려나, 자식."
호리베는 아까 그 죄수를 보면서 말했다.
죄수는 좁은 땅바닥에 조금 돋아난 풀을 한 줌 뜯어 두세 번 줄기를 씹더니 푸른 즙과 함께 침을 뱉어냈다.

"안 될 거야."
"그렇겠지."
호리베는 쥐고 있던 교봉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먼 곳에서 매미소리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들려왔다. 사형수들의 운동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리고, 쉬고 있던 간수들이 흰모래를 소리내어 밟으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2

이틀 후 그 죄수의 사형 집행 날짜가 정해졌다. 그의 면회자는 아무도 없었고 변호사도 오지 않았다. 그건 드문 일이었다.
사형수는 모두 시나 단가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그 죄수는 글을 모르기 때문에 펜을 잡지 않았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나는, 이층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이제 30분 지나면 죄수를 목욕시키는 시간이었다. 그것으로 오늘 근무는 끝난다. 내 맞은편에 손을 뒤로 꼭 모아 쥔 나까가와가 서 있었다. 오늘은 유독 더워서 가만있어도 땀이 솟아 나왔다. 나는 셔츠가 피부에 달라붙지 않게 가끔 셔츠를 잡아당겨 옷깃 사이로 입김을 불어넣었다.

나까가와는 몸을 꼿꼿이 가누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죄수가 있는 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나까가와도 눈만 돌려 그를 보고 있는 듯 했다. 아래층의 간수는 생각난 듯이 구두소리를 크게 내며 죄수들의 각방을 조용조용 훑어보고 있었다. 간수이건 죄수이건 이 더위에 모두 지쳐 있었다. 어느 방에선가 잠결에 돌아누우면서 셔츠가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맞은편의 나까가와가 약간 몸을 움직였기 때문에 내 머리는 나까가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형 집행에 처음 입회하는 간수하고 짝이 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하잘 것 없는, 간단한 일도 잘 진행되지 않기가 태반이고 그런 경우일수록 따분하고 불안한 묘한 기분이 된다.

'아무튼 좋아. 처음엔 다 그러니까. 나도 처음엔 그랬던가? 아니 달랐어. 난 태연했었지. 저렇게 허둥지둥하진 않았어. 나까가와도 차차 익숙해지겠지. 무엇을? 너는 대체 뭘 알고 있단 말인가?…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 익숙해져서 무감각해졌을 뿐.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까가와 따위와는 달라. 분명 달라. 그런 신출내기하고 같을 리 없지. 역시 난 무언가 터득하고 있는 것이겠지. 분명히 그래. 왜 나는 이렇게 따지고 드는 건가.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아무튼 나까가와를 낚시에 데리고 가야지. 그러면 기분이 개운해지겠지. 좋아. 나까가와를 데리고 가자.'

그리고는 내일 가지고 갈 낚싯대며 바늘이며 미끼 따위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벨이 짧게 울리고 호루라기가 길게 두 번 울렸다. 그러자 간수는 자세를 바로 하고 다음 동작을 기다렸다. 어느 방에서나 죄수들이 일어서는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나까가와는 이층의 죄수 숫자만큼 플라스틱 세면기를 가지러 계단을 내려갔다. 그 사이에 나는 내 담당 감방을 돌아보고 죄수가 일어나 있는지 확인했다. 예의 죄수는 정좌하고 있었는데 열기 띤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다시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간수는 문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어 감방의 문을 모두 열었다.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일제히 죄수들이 방에서 나왔다. 나는 다시 문을 잠그며 돌아가고 나까가와는 세면기를 나누어주었다. 다음에 나까가와가 저쪽에서, 내가 이쪽에서 죄수들의 신체검사를 시작했다. 나는 나까가와를 그 죄수에게 접근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하던 일을 서둘렀다.

그러나 나까가와 쪽이 빨랐다. 나까가와가 그 죄수의 겨드랑이 밑에 손을 대는 것이 보였다. 무슨 폭력적인 사태가 일어날 때의 매캐한 느낌이 순간 일었다. 푸른 세면기가 빙글빙글 공중을 날아 아래로 떨어지고 싸구려 비누가 마루를 미끄러져 가다가 마침 그때 그곳에 들어선 주임의 발끝에서 멈추었다. 주임은 위를 보고 가슴 호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요란스럽게 불었다. 그러고는 비상벨이 있는 관구실로 뛰어갔다. 그러나 단추는 누르지 않았다.

나까가와는 한 무릎을 꿇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그 죄수로부터 재차 세게 배를 걷어 채이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 움직이지 마. 그대로 있어."
간수들은 저마다 교봉을 뽑아 들고 다른 죄수들을 방 한구석으로 몰아 넣고 둘러쌌다.
"이리 오는 놈은 무조건 쏘겠다."
주임이 입구에 서서 권총을 뽑아 격발 장치를 엄지손가락으로 젖히며 말했다.
모두 훈련 때와 같았다.

나는 죄수를 밀어젖히고 좁은 통로를 단숨에 달렸다. 그 죄수는 나까가와의 권총 케이스 뚜껑에 손을 대고 있는 참이었다. 나는 교봉을 위로 높이 쳐들고 구부리고 있는 죄수의 뒷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어깨까지 울리는 반응을 느꼈을 때 죄수는 나까가와 위에 겹쳐 넘어졌다.

반사적으로 나는 한 번 더 치려고 교봉을 위로 쳐들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죄수는 뇌진탕으로 머리를 치뜨리고 두 팔을 스프링처럼 떨었다. 나까가와는 실신한 죄수를 밀어젖히고 죄수에게 차인 배를 두 손으로 움켜쥐면서 일어났다.
"수갑을 채워."
하고 나는 나까가와에게 말했다.

수갑만은 나까가와가 채우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까가와는 눈의 초점을 잃고 해쓱한 얼굴을 푸들거릴 뿐 움직일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엎어져 있는 죄수의 손을 뒤로 돌려 놓고 수갑을 꼭 채웠다.
"전원 방으로 돌아가라. 목욕은 중지다."

주임은 권총을 가죽 케이스에 밀어 넣고 뚜껑을 닫으면서 말했다. 간수는 급히 죄수들을 감방으로 돌리고 자물쇠를 잠갔다. 감방으로 다시 돌아온 죄수들은 불만의 소리를 지르고, 감시창에 들러붙어서 바깥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간수들은 자신들이 맡은 자리로 돌아가고 주임은 계단으로 해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괜찮나? 상처는?"
주임은 나까가와에게 물었다. 나까가와는 아래를 내려다 본 채 머리를 저었다. 입을 열면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성싶었다. 그리고 발끝에서부터 떨기 시작하면서 전신으로 퍼져갔다.
"괜찮습니다."

내가 대신 대답하고 나까가와의 어깨에 손을 얹었더니 그는 흠칫 몸을 사렸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나까가와의 얼굴을 보았다. 입에서 피가 흘렀다.
"이 자식 어떻게 할까요?"
나는 의식을 되찾은 죄수의 수갑을 잡고 주임에게 물었다.
"조사실로 끌고 가."
주임이 말했다.
"바보자식. 이런 짓을 하면 날짜가 연기되리라 생각하나 보지?"
"하지만 저 먼저번 자식은 연기되었죠?"
하고 내가 말했다.

"그거, 그땐 자식이 다쳤기 때문이지. 그것도 사흘 뿐이야. 이 놈은 다친 데가 없으니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나까가와 너도 함께 가자."
주임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그 죄수의 등을 밀어 계단을 내려갔다. 나까가와는 조금 쳐져서 뒤따라 왔다. 그때 벨이 울렸는데 야근 조의 친구들과 교대할 시간이었다. 입구를 나서자 호리베가 다른 간수들과 함께 들어섰다.

"무슨 일 있었나?"
호리베는 세 사람을 재빨리 훑어보면서 내게 물었다.
"그랬어."
하고 호리베는 고개를 떨군 죄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까가와를 때렸어."
"왜?"
"모르겠어."
"괜찮아?"
호리베가 나까가와에게 말했다.
"아무렇지 않아."
내가 대신 대답했다.
"다행이군. 낚시는 어떻게 할거야."
"가야지. 먼젓번처럼 늦지 마."
"어김없이 갈 테니깐."
"그럼 내일 보자. 이 자식 데려가야지."

나는 호리베와 헤어져 죄수의 팔을 잡고 복도로 나섰다. 뒤돌아보니 호리베가 죄수를 때리는 손짓을 하며 소리 없이 웃어보였다.
세 사람은 복도에서 좁은 콘크리트 통로를 건너, 창고 같은 조사실로 들어갔다. 이 방에 온 기억은 횟수를 헤아릴 만큼 밖에는 없는데 그때 일 같은 건 다 잊고 있었다.

조사실은 곰팡이 냄새가 지독했고, 창문이 없어서 무더웠다. 나는 거기 하나뿐인 의자에 죄수를 앉혔다. 아직 아까의 일격이 가시지 않아 죄수의 동작은 느렸다. 세 사람은 침묵을 지키며 기다렸다. 땀이 솟았다. 나까가와는 가끔 생각나듯이 고르지 못한 숨을 크게 몰아 쉬었다.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죄수들을 목욕시키는 모양이었다. 그때 복도에 구두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고 주임과 서류를 가진 얼굴이 작은 담당관 한 사람이 들어왔다. 우리를 그 담당관에게 소개했다. 그러고는 주임은 방안을 둘러보고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 주임은 어디선가 파이프 의자를 하나 갖다가 담당관을 앉게 했다. 담당관은 앉았다가 곧 일어나더니 자기 손으로 의자를 죄수 앞까지 끌어다 놓고 고쳐 앉았다.

"어떻게 된 거야?"
담당관은 나까가와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얻어맞았습니다…느닷없이."
"왜?"
"……"
"자네가 자극적인 말이라도 했나?"
담당관의 말은 심문조가 되었다.
"아무 말도……."
"안 했단 말이지. 그럼 어떻게 했다든지."
"별로."
"아냐?"
"네……."
"사사끼라고 했지? 자네도 보고 있었나? 그래."
담당관은 펜을 만지작거리며 내게 물었다.
"네."
"나까가와군이 말한 대론가?"
"그렇습니다."
"이 놈을 잡아 누른 건 자넨가?"
"네.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뭘로?"
"교봉을 썼습니다."
"때렸나?"
"그렇습니다."
"어디를 때렸나?"
"여깁니다."

나는 나의 뒷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두들겨 보았다. 담당관은 목을 늘여 수그리고 있는 죄수의 같은 장소를 보았다. 그 부분의 짧은 머리털은 약간 헝클어졌지만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이상 없음이라…권총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나? 아니면 도망치려고 하든지?……"

담당관은 카본을 끼운 엷은 서류에 펜을 끼적여 가면서 물었다. 그때 주임이 머리를 세게 흔들며 부정하라는 신호를 내게 보냈다. 담당관은 그것을 못 보았다.
"아니 그런 짓은 안 했습니다."
하고 나는 똑똑히 대답했다. 그렇게 말한 나는 나까가와의 오른쪽 허리를 보았다. 가죽 케이스 뚜껑이 열려 있어서 방아쇠가 내밀어져 있었다. 담당관도 그것을 흘끗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죄수가 돌연 얼굴을 쳐들고 허리를 반쯤 들면서 담당관을 향해 소리쳤다.
"엉터리 수작 말아. 난 도망치려고 한 거야. 권총도 빼려고 했잖아? 자식들, 너희들 뭐가 재밌단 말이냐, 응? 개자식들, 달려들어 나를 잡아 죽여서는 무슨 소득이 있냐 말이야."
나는 죄수의 어깨를 눌러 제자리에 앉혔다.
"너에게 묻지 않았어."
하고 담당관이 소리치는 죄수에게 조용히 말했다. 죄수는 담당관을 노려보고 어깨를 뿌리쳐 내 손을 털어 버리고 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럼 별다른 목적이 없었군요."
"그렇습니다."
주임은 담당관 뒤에서 말했다.
"나까가와군의 상처는?"
"대단찮습니다."
"그럼 여기 도장 찍고."
담당관은 다 쓴 서류에다 카본을 빼고 그것을 내밀었다. 나와 나까가와와 주임은 호주머니를 뒤져 인감을 꺼내 거기에 눌렀다.

"돌아가도 좋소."
하고 담당관은 나와 나까가와에게 말하고 다른 새 서류에 카본을 끼웠다. 나는 나까가와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복도를 막 돌았을 때 죄수의 큰 소리가 들렸는데 이내 조용해졌다.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천장의 선풍기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나까가와는 그대로 소파로 가서 앉았고 나는 모자를 벗고 권총을 선반에 얹은 다음, 창 쪽으로 가서 커튼을 활짝 열었다. 해는 떨어져 가는 참이어서 빛이 방 깊숙이 뻗어 왔다. 매미소리는 멈추고 대신에 쓰르라미가 울기 시작했다.

"이런 일도 있는 거야."
나는 바깥 경치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나까가와 쪽을 보지 않고 나의 책상까지 가서 서랍을 열어 새 담배를 꺼내 손톱으로 따서 입에다 한 대 물었다. 연기가 온몸에 돌았다.
"피울래?"
담배를 나까가와에게 주자 나까가와는 조금 머리를 숙여 그것을 받아, 수그린 채 뻐끔뻐끔 피웠다. 재가 마루에 툭툭 떨어졌다. 나는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잊어버려."
나는 말했다.
"낚시 갔다오면 잊어버리게 돼."
나까가와는 대답 없이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불을 끄고 갑자기 일어났다. 그리고는 화난 듯이 장비를 풀어 선반에 얹고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봐, 내일 낚시 잊지 마라."
나는 나까가와의 등에 대고 말했다.

"…먼저."
문이 찰칵 닫혔다. 나까가와의 저는 듯한 끄는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나는 문으로 가다가 다시 소파로 돌아와 두 번째 담배를 천천히 피워 물었다. 한참동안 그러고 있었다.

잔잔한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시계를 보고 일어나 선풍기 스위치를 끄고 방을 나왔다. 둑의 터널을 지나 운동장 잔디밭으로 나왔을 때 해는 넘어가는 참이어서, 하늘 반쪽은 불타서 새빨개졌다. 잔디밭 저쪽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거뭇하게 보였다가 곧 삼나무 숲으로 숨어버렸다. 나까가와 같았다.

탐조등이 천천히 선회하고 거대한 빛의 원이 둑이며 수풀을 핥으며 지나갔다. 문간에 죄수들이 만든 나무 의자며 책상을 나르는 트럭이 몇 대 있었다.
집 앞에 이르자 아들놈들이 뛰어나와 내 양팔에 매달렸다.
"돌아오셨어요."
아내가 부엌에서 말했다. 두 아들놈들은 내 모자를 서로 뺏으려고 법석을 떨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수돗물로 얼굴을 씻고, 옷을 벗어붙이고 몸을 닦은 다음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당신, 바다에 데려다 준다고 애들에게 말했어요?"
저녁식사 때 아내가 말했다.
"응."
"아직 무리 아니에요?"
"왜?"
"파도가 거세서 위험해요."
"안 그래. 잔잔한 곳을 알아."
나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괜찮아요?"
"괜찮아."
"그래요?"
아내가 말했다.
"그래 언제 데려다 줄 거예요?"
"내일, 내일."
하고 아이들은 밥알을 튀기면서 떠들었다.

"내일은 안 돼. 낚시하러 가니까."
"또 가세요? 얼마 전에 갔다 왔잖아요."
하고 아내가 말했다.
"응, 또 가기로 했어."
"그렇게 그게 재미있을까?"
"그럼, 해보지 않고는 몰라."
나는 말했다.
"도시락 두 사람 것 만들어 줘."
"왜요?"
"나까가와도 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사람?"
"응."
"젊은 사람은 낚시 같은 거 안 좋아할 것 같은데요?"
"내가 권했어."
"왜요?"
"그냥."
"바다는 언제 가요?"
또 아내가 묻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돌아보았다.

"화요일에 갈까?"
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특별휴가가 있어."
이번에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럼 월요일에 있어요?"
"응."
"이번엔 누구예요?"
"응, 누구든지."
아이들은 방바닥에서 헤엄치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날 밤늦게 잠에서 깼다. 아내가 현관에서 누군가와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모기장을 걷고 옷을 고쳐 입었다. 남자 목소리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현관에 나가보니 나까가와가 와 있었다. 그는 몹시 취해 있었다.
"당신 만난다고 막무가내에요."
아내는 나를 보고 숨을 돌리며 말했다.
"아, 사사끼씨 저 그만두겠습니다."
"뭘?"
하고 나는 말했다.

"뭘? 뻔하지 않습니까? 이 지긋지긋하고 더러운 직업이죠. 정말 더러워."
술 냄새가 현관 가득히 퍼졌다.
"아무튼 올라와."
하고 나는 말했다.
"큰 소리 내지마. 애들이 깨겠어."
나는 나까가와를 뒤에서 안아 끌어올리고, 아내는 그의 신발을 벗겼다. 나는 그대로 나까가와를 끌고 가려고 뒤를 보니, 언제 깨어났는지 아이들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아내가 허겁지겁 아이들을 방으로 데리고 갔다.

"에이 참, 여보 물 갖다 줘."
아내가 부엌에서 컵에다 물을 가져 왔다. 나까가와는 그것을 단숨에 마시다가 목에 걸려 셔츠를 흠뻑 적셨다.
"전 그런 일 못해요."
"왜 그런 일이야."
"전 사람을 죽일 수 없어요."
"좀 조용히 해."
나는 말했다.
"사람을 죽인 건 놈들이야."
"그럼 사사끼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겁니까? 아무 것도 안 느낍니까?"

"그렇지 않지만……."
"그럼 왜 그만두지 않으시죠?"
"어떤 일이든 쉬운 게 있나?"
"아뇨, 사사끼씨는 아무렇지 않은 겁니다. 그 일에 취미가 있으시죠?"
"취미라니."
나는 약간 화가 났다.
"안 되겠어요. 전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전 너무 마음이 약해요. 겁쟁이죠."
"그런 건 아냐."
"아니 전 겁쟁이예요."
"여기 근무할 때 소장의 훈시 들었지?"

"그건 옳았어요. 소장 얘기는 옳아요. 그건 저도 알 수 있어요.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신성한 직업이라고…하지만 저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아무래도 무리예요."
"자넨 너무 취했어. 돌아가 자."
나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나까가와의 얼굴을 들게 하려고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때서야 나까가와가 울고 있는 것을 알았다. 훌쩍일 때마다 굵은 눈물 방울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나까가와는 띄엄띄엄 무슨 소린지 중얼거리며 꽤 오래 어린애처럼 훌쩍거렸다.

"나까가와, 이봐."
하고 나는 말했다.
"월요일은 호리베와 바꿔. 내가 주임에게 말할 테니."
"하지만."
나까가와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충혈 되어 있었다.
"괜찮아. 그 다음 일은 생각 마라. 아무튼 이번은 쉬어."
"그러나……언젠가는……."
"그렇게 싫다면 나중에 천천히 얘기해 보자고. 오늘은 그냥 가서 자."

나까가와는 부은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났다. 취기가 가신 듯한 얼굴이 창백하게 보였다.
나까가와는 현관에서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내일 낚시 잊지 마라."
하고 나는 말했다.
"……."
"그때 얘기할 테니깐."
"……."
나까가와는 구두를 신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달이 보였다.

"조심히 가세요."
아내가 말했다.
문이 닫혔다. 곧 나까가와가 토하는 소리가 났다.
"가서 돌봐주지 않아도 될까요?"
"괜찮아. 그냥 둬."
"무슨 일 있었어요?"
"대단한 일 아냐."
"그래요?"
하고 아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낚시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누구?"
"나까가와씨 말이에요."
"그럼. 나까가와 도시락도 싸 줘."
"알았어요."

나까가와가 돌아가는 기척이 들렸다. 보통 때보다 더 발을 저는 것 같았다.
아내는 현관문을 잠그고 나는 방에 들어가 나까가와가 마신 컵을 부엌에 가지고 가서 수도꼭지 밑에 놓고 세게 물을 틀었다





3

이튿날, 나까가와와 호리베가 와서 우리는 낚시를 갔다. 나까가와의 얼굴은 숙취로 해쓱해져 있었다. 나는 호리베에게 어제 저녁 일을 말하지 않았다.
호리베는 낚시도구와 도시락 말고도 맥주 몇 병을 종이가방에 넣어 가지고 왔다.

우리는 더운 햇살 속을, 형무소에서 떨어진 정류장까지 걸어가서 거기서 버스를 탔다.
손님이 많이 탔지만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자 모두 내려버리고 아기를 대바구니에 넣어 등에 진 할머니와 우리들 세 사람만 남았다. 대바구니 속의 아기는 목을 좌우로 빙빙 돌리며, 우리 세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보기도 하고 창 밖으로 보기도 했다.

남자 안내원이 창문을 모두 열었다. 느릿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왔다. 버스는 큰 다리를 건너고 그 강을 따라 많은 커브를 돌아 상류로 향했다. 더 이상 오르지 못할 곳까지 와서 대숲을 깎아낸 자그마한 광장에서 버스는 멎고 우리는 내렸다. 버스는 곧 선회해서 먼지를 피워 올리며 돌아갔다.

햇살은 아직 다 퍼지지 않았고, 사방에서 매미와 새가 울고 있었다.
호리베를 선두로 우리는 대나무 숲길을 빠져 작은 언덕을 하나 내려갔다. 아래는 강이 소리내어 흐르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강을 따라 좁은 길을 걸었다. 모두 흠씬 땀을 흘리고 셔츠는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늘 호리베와 같이 낚는 장소에 닿았다. 바위에 키 높은 풀이 우거지고 커다란 단풍나무가 가려서 시원한 해 가리개가 되어 있었다. 나와 호리베가 앉은 장소에는 풀이 누워있고 불그스레한 담배꽁초며 빈깡통이 흩어져 있었다.

"늘 여기서 낚지."
내가 나까가와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렇습니까?"
나까가와는 그렇게 말하며 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꼼꼼하게 훔치고는 푸르고 잔잔한 수면을 그윽이 들여다보았다.
"위쪽으로 가지."

호리베가 말하고 우리는 또 걸었다. 이제는 더 길은 없었다. 풀의 높이는 허리까지 차고 군데군데 뱀 딸기가 발갛게 달려 있었다. 나는 가까운 딸기를 줄기에서 꺾어 손바닥으로 터뜨렸다. 손바닥은 붉은 즙으로 물들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오래 남았다. 앞장서서 가던 호리베가 무슨 그루터기 같은 데 걸릴 때면 맥주병이 잘칵잘칵 부딪쳤다.

강폭이 꽤 죄어든 곳에서 강변으로 내려섰다. 큰돌이 데굴데굴 굴러 있고, 그 중 큰 바위가 강 한가운데까지 뻗어나가 그 위가 펑퍼짐해 있었다. 거기서 낚기로 결정했다. 낚시도구와 도시락을 먼저 던져 올리고 우리는 바위를 타올랐다. 바윗덩어리는 뜨겁게 달아 있었다. 나는 밀짚모자를 벗고 땀을 닦았다. 호리베는 가지고 온 맥주를 마개를 열어서 한 병씩 나눠 마시게 하였다. 미지근해서 맛이 없었다. 호리베는 남은 맥주를 낚싯줄로 묶어 강바닥에 담가놓았다.

"있나?"
하고 내가 물었다.
"있어, 있어. 봐."
호리베는 강물로 몸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푸르게 흐린 바위 그늘에 커다란 송어가 원을 지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선두의 한 마리가 방향을 바꾸면 다른 놈들도 일제히 방향을 바꾸고, 그때마다 은색의 배가 번쩍번쩍 빛났다. 더 깊은 곳에는 커다란 놈이 몇 마리씩 모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쏘가린가?"
호리베는 자기 도시락을 펼치면서 말했다.
"아닌가봐."
"그렇겠지."
"하지만 큰데? 제파리 낚시로는 어림없겠어."
"음. 안되겠군."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푸른 웅덩이 저편에 허옇게 거품 진 급류가 있고 피라미가 여러 마리 올라왔다. 호리베는 커버를 벗기고 낚싯대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너무 서둘지 마라."
하고 나는 말했다.
"점심 먹지."
"먹으면서 낚을 거야."
나는 작은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그 중 하나를 나까가와에게 주었다.
"이거 미안합니다."
"괜찮아. 독신인데."
나까가와는 꾸러미를 풀고 주먹밥을 한 움큼 베어먹었다.

호리베는 낚싯밥을 매다는 일과, 식사를 엇바꿔 가면서 가끔 크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큰 소리내면 모두 도망치잖아."
"도망쳐도 곧 돌아와."
"죄수처럼?"
하고 내가 말했다.
"우리 죄수는 안 돌아오지."
호리베의 농담에 나까가와가 싱겁게 웃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장소를 잡고 줄을 드리웠다. 바위 위는 뜨거웠지만, 상류 쪽에서의 미풍과 물소리가 땀을 식혀주었다.
나는 지렁이가 든 깡통을 그늘에 놓고 낚시찌에 시선을 모았다. 바늘 끝에 꿴 지렁이가 물을 빨아들이며 붉게 꼼지락거리니 송어들은 그리로 몰려들었다.

가장 먼저 나까가와가 낚았는데 작은 야마메였다. 나까가와가 바늘을 서투르게 뽑아서 야마메의 입이 찢어졌다. 호리베는 그것을 바구니에 던져 넣고 남은 낚싯줄로 잡아매서 뒤쪽의 얕은 물웅덩이에 담가 놓았다.

"재미있나?"
호리베는 나까가와에게 말했다.
"네."
"이번엔 훨씬 큰 놈을 겨냥해."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줄을 올려 찌를 높이 고쳐 달고 깊은 곳에 있는 큰 놈을 겨냥했다. 움직이지 않고 있던 야마메는 먹이가 가까이 오자 확 흩어졌다 곧 다시 조심스레 모였다.

그 중 가까운 한 마리가 지렁이를 쪼기 시작하니 흰 찌가 움칫했다. 그러다 찌는 갑자기 가라앉고 줄이 당겨졌다. 그 중 한 마리가 바늘을 물고 요동치고 다른 놈들은 재빨리 달아났다. 나는 바늘이 턱에 단단히 물리는 것을 확인한 후 대를 짧게 쥐고 천천히 크게 몇 바퀴 돌려 족히 힘을 뺀 다음 그물로 건져 올렸다.

그것은 20센티미터는 됐다. 야마메는 손안에서 퍼덕퍼덕 움직이고 가는 은색 비늘을 남겼다. 호리베가 바구니를 끌어올려 내게 보여줬다. 나까가와가 낚은 것에 비하면 꽤 커 보였다.
"제법 큰데."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큰데요."
하고 나까가와도 말했다.

"그렇군."
세 사람은 잠시 말없이 두 마리의 야마메를 바라보았다. 작은 야마메는 흰 배를 절반쯤 내보이며 찢어진 입을 뻐끔대고는 천천히 엎어졌다.
한 시간쯤 걸려 서른 마리쯤 낚았고, 바구니는 주둥이까지 가득 찼다. 그 다음부터는 별로 낚지 못했다.
"맥주 마시지."
하고 내가 말했다.
"그래, 마시자."

호리베는 낚싯줄을 당겨 바위에 부딪치지 않게 살며시 강바닥에 맥주를 끌어올렸다. 많이 차가워져 있었다. 세 사람은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이봐, 호리베."
하고 내가 말했다.
"뭐야?"
"내일 우리 차례야."
"알아, 설치던 놈 말이지?"
"응."
"연기 안 됐나?"
"그야, 그런 일 때문에 연기되면 우리가 죽어나지."

"그래서?"
"나까가와와 바꾸지 않을래?"
하고 나는 말했다.
호리베는 나와 나까가와를 번갈아 보았다. 나까가와는 자기의 푸른 찌를 보고 있었다. 상류의 수풀에서 뻐꾸기가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게."
호리베가 말했다.
"그리 생각할 것 없어. 그런 건 낚시하고 같은 일로 생각하면 그만이야. 둘 다 낚는 일이니까."
나까가와는 일어났다.
"어딜 가나?"
"저쪽에 가서 수영하렵니다."
나까가와는 급히 바위를 뛰어내려 강변의 상류로 달려갔다. 호리베가 웃었다.

"웃지마 호리베."
"하지만 우습잖아?"
"뭐가?"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웃지마."
하고 나는 말했다.
"자식 민감하다고."
"그만두지. 무슨 일 있었나? 그 후에?"

하고 호리베가 물었다. 또 웃고 싶어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나까가와가 잔뜩 취해 가지고 집으로 왔던 일을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안 돼."
호리베는 맥주병을 맞은편 언덕으로 힘껏 던지면서 말했다. 병은 언덕까지 닿지 못하고 급류의 끝에서 거품을 내고, 파문을 짓고, 이내 물살이 삼켜 버렸다.
"그만두겠느니 어쩌느니 하는 거야."

"나까가와가? 정말인가?"
"그런 것 같애."
"주임은 뭐라고 할까?"
"그런 일이 있었으니 죄수와 간수의 거리랄까, 흐려졌다는 이유는 어때?"
하고 내가 말했다.
"딴은."
호리베가 말했다.

"하지만 주임은 억지로 그에게 시킬지 몰라."
"왜?"
"나까가와의 성격을 이런 기회에 고쳐주려고 말이야."
"그럴 수 있겠지."
먼 곳에서 깊은 웅덩이에 나까가와가 물에 잠기는 것이 보였고 놀란 할미새가 흰 꼬리로 탁탁 물장구를 치면서 하류 쪽으로 날아갔다.
"신경 쓰이게 하는데."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응, 그렇더라도 바꿔 줘."
"그렇다면."
"놀리지 말고."
"알았어. 바꿔 주지."
하고 호리베는 말하고 맥주병을 야마메가 무리 진 곳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야마메는 확 흩어졌다. 나는 큰 소리로 나까가와를 불렀다. 뻐꾸기 소리가 멈추었다. 나까가와는 강에서 올라와 옷가지를 옆구리에 끼고 모래 위를 달려왔다.

"바꿔주겠대."
나는 바위 위에서 나까가와에게 말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괜찮아."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직접 하는 거야."
"네."

나까가와는 바위 위로 옷가지를 던져 올리고 벗은 채로 기어 올랐다. 몸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햇빛에 달은 바위에 떨어져 차례로 말라갔다.
"이봐 나까가와."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
"놈들이 한 일 생각해 본 일 있나?"
"…살인이죠."
"그렇지."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우린 무고한 자를 벌하고 있는 게 하냐. 놈들은 인간을 죽인 거야. 그것도 살아있는 인간을. 그 현장을 본 적 없지?"
"…없습니다."
"그만둬. 호리베."
하고 나는 말했다.
"누구나 내키지 않을 때가 있는 거야."

"그야 그렇지. 특별한 일이니까. 하지만 나까가와, 내일의 그 녀석은 아이까지 죽였다는 걸 알아 둬. 이층에서 콘크리트 길바닥으로 떨어뜨려 죽인 거야. 두 발을 잡고."
"놈들은 인간이 아니야."
하고 내가 덧붙였다.

"형상은 사람이지만. 어떤 우수한 기계라도 많이 만들다보면 반드시 불량품이 나오잖아. 그 불량품을 어떻게 하나? 버릴 수밖에 없어. 사람도 이쯤 많고 보면 마찬가지야. 불량품을 그대로 쓸 수는 없는 거야."
나까가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곧 그만두었다.

"이런 얘기 그만두지."
나는 조금 많이 지껄였다는 생각이 들어 쑥tm러워졌다.
"아무튼 내일은 내가 하지."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좀 더 고기를 낚지."
"응."
"저……."
하고 나까가와가 말했다.
"그만 얘기해."
하고 호리베가 막았다.

날이 저물 때까지 수십 마리 낚았다. 큰 것은 배를 째고, 손가락을 넣어 창자를 꺼내어 강물에 헹궈 아가미에 잔 대를 꿰었다.
광장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가니 마지막 버스가 막 뜨려는 참이었다.


4

오늘은 아침부터 구름이 두껍게 깔리고 비가 올 것 같았다.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애들은 아직 자고 있었다. 간밤에 나는 두서너 번 잠이 깼던 일이 생각났다. 당번 날은 언제나 그랬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면도하고 세수를 했다. 손가락에서 고기 비린내가 나 힘주어 문질러도 가시지 않았다.
아내가 막 세탁한 바지와 셔츠를 내주었다.

"비 오겠죠?"
나 혼자 먹는 밥상머리에서 아내가 말했다.
"그럴 것 같아."
"왜 그러세요? 기운이 없어 보여요."
"뭐가?"
"낚시가 고단하셨던가 보죠?"
"잘 잤는데."
"그럼 좀 더 드세요."
"응 됐어. 차나 한 잔 줘."
"내일 정말 갈 거예요?"

"어딜?"
"바다요."
"응."
"진짜?"
"약속했잖아."
"저는 집 지킬게요."
"당신도 함께 가."
"저도 가고 싶어요. 하지만 이런 배를 하고."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튀어나온 배에 손을 얹었다.

"어때? 가끔 햇볕 쬐는 게 좋아."
"그럴까?"
"그럼 아기한테도."
"그럼, 가겠어요."
"그렇게 해. 나 혼자선 꼬마 둘을 감당 못해."
"그렇군요. 도시락을 준비해야겠어요."
"맥주도 준비해 줘. 작은 병이면 돼."
"애들이 좋아할 거예요."
"그럼, 처음 헤엄쳐보니까."

나는 차를 마저 마시고 셔츠와 바지를 입었다. 풀을 먹여서 기분이 좋았다.
"갔다 올게."
"우산 안 갖고 가세요?"
아내는 현관에서 몸을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괜찮아, 가까우니깐. 와도 곧 그칠 거야."
"그래요. 조심하세요."
"응."

구름은 차차 짙어져서 밖은 헤질녘 같았다. 아직 어느 집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있지 않았다.
큰 길로 나섰을 때, 새 죄수를 실은 후송차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문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시오?"
"네, 안녕하십니까? 오늘입니까?"
뚱뚱한 수위가 유리창 저편에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지나치려고 하는데,
"수고스럽지요."
하고 수위가 말해서 돌아다보니 입을 묘하게 일그러뜨리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잠자코 쪽문을 지나 삼나무 수풀 속을 걸어갔다. 반소매라 썰렁했다.
운동장에 나서니 멀리 잔디밭 쪽을 호리베가 걸어가고 있었다. 사이렌이 울렸고 동시에 여러 건물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나는 뜀박질로 호리베를 따라잡았다.

"여어."
호리베가 돌아보며 말했다.
"서두르자."
호리베와 나는 빠른 걸음으로 운동장을 지나 둑의 터널을 빠져 나왔다.
처형실로 이어지는 하얀 길은 대빗자루 자리가 깨끗이 나 있다. 우리는 그대로 대기실로 가서 말끔히 준비를 했다.

"오지?"
하고 호리베는 담뱃재를 떨구면서 커튼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동안 안 왔으니까."
"하지만 안 좋은데, 이건."
"이런 날엔 쉬면 좋은데."
"그러게 말이야."
하고 호리베가 대꾸했다.
"빨리 끝냈으면 좋겠는데."

문이 열리고 주임이 들어왔다. 오늘은 주임도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 사나이가 그렇게 하니 꽤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나까가와는 어찌 됐지?"
주임은 호리베를 보고 내게 물었다.
"사정이 좀 있어 바꿨습니다."
"그래? 음 좋아."

주임은 그렇게 말하고 나와 호리베에게 새 것인 순백색의 장갑을 건넸다. 주임은 우리가 장갑을 끼고 단추를 챙길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장갑은 여느 때보다 빡빡했다.
"그 자식 어쩌고 있습니까?"
호리베가 주임에게 물었다.
"자식이라고? 오늘은 그렇게 부르지 마."
주임은 정색을 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다른 일로 바삐 방을 나갔다.

"자식 상당히 설친 모양인데."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그런 것 같군."
우리는 준비를 한 채 밖을 보기도 하고 낚시 얘기를 하기도 했다.
"온다."
굵은 빗방울이 유리에 부딪쳐 소리를 내며 줄을 긋듯이 흘러 내렸다. 방의 벨이 짤게 세 번 울렸다.
우리는 방을 나와 갈라진 곳을 모르타르로 메운 복도를 걸어갔다.
"수고하십니다."
야근 간수가 우리를 맞았다.

"놈은?"
나는 간수에게 물었다.
야근 친구들은 밤새껏 그 죄수가 울부짖었다고 말하며 쓰게 웃었다.
"다른 독방으로 옮겨주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주임에게 말했더니 그냥 놔두래서."
"왜?"
"상처라도 생기면 날짜가 늦어진다고 생각한 거지."
"그렇군."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다른 녀석들 잠 못 잤겠군."
"네, 약간 소동이 있었죠. 빨리 죽여 버리라고."
"굉장했겠군."
내가 말했다.
"뭘요. 대단할 건 없어요. 기껏 문이나 두들기는 거니깐. 독방과 다름이 없죠."

하고 간수는 말하고 붉게 충혈된 눈꺼풀을 비비며 통로를 차단하고 있는 쇠창살문에 자물쇠를 잠갔다. 그러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가끔 다리를 바꿔 꼬는 간수의 구두소리 뿐이었다. 이럴 때 나는 방마다 죄수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그것도 옛날 일이고 지금은 그따위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안 했다.

그 전의 방들은 몹시 더럽고 만원이고 당번이 한 달에 세 번이나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은 간수가 늘고 죄수는 줄었다.
빗줄기가 대단한지 지붕이 몹시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제대로 오는군. 모처럼의 양복이 말씀 아니게 됐어."
호리베가 갓 지급된 새 바지를 잡아당겼다.

"응 나도. 오늘 입은 건데."
"왜 저기까지 복도를 안 만들까?"
"그럼 흠씬 젖지 않아도 되는데."

하고 나는 말하고 처형실까지 하얗게 쓸린 50미터즘의 길을 머리에 떠올려보았다. 일반 재소자의 아침식사 시간을 알리는 두 번째 사이렌이 울렸다. 많은 걸음 소리가 나고 통로 저편에서 사람들이 떼를 지어 걸어왔다. 선두는 키가 큰 소장이고 그 옆에 단단한 주임의 어깨가 보였다. 그 뒤엔 세 명의 담당관―가운데는 나까가와가 그 죄수에게 맞았을 때 조서를 꾸민 녀석이 따르고 있었고 맨 마지막에 목사가 있었다.

목사는 질이 좋은 흰 천에 싸여, 게다가 보통 사람 두 배는 넉넉히 되는 체격이어서 아주 엄해 보였다. 호리베는 뚱뚱한 목사의 신체를 몹시 싫어했다. 나도 기름진 목사의 얼굴을 좋아하지 않았다.
목사는 나와 호리베의 흰 장갑을 보고 오늘 당번을 알아보자 여자 같은 웃음을 보내왔다.

"저 뚱보."
호리베는 눈치 채일 정도로 외면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러지 마."
이 목사는 5년째로 앞선 어떤 목사보다 오래 되었고 게다가 거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두 특별히 늘어놓은 나무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처형이 있는 날은 어느 방에서나 죄수들은 모두 일어나 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숨죽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비는 점점 세차갔다. 주임은 그 말을 소장에게 했다. 소장은 앞을 본 채 주걱턱을 내밀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30분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와 호리베는 그 죄수의 방을 보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의자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전기 시계의 장침이 미끄러지고 12시를 가리켰다. 호루라기는 불지 않고 주임은 손을 들어 2층에 있던 나와 호리베에게 신호했다. 동시에 모두 의자에서 일어났고 목사는 성경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젊은 간수가 오동나무 상자에 든 희고 얇은 솜옷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계단을 올라와 우리들 있는 곳까지 왔다.

나는 열쇠 꾸러미에서 열쇠를 골라 쥐고 그 죄수의 감방 앞에 섰다. 목사의 중얼거림이 다가왔고 소장은 호리베 바로 뒤에 와서 멎었다. 담당관이 비켜서고 목사가 앞에 나섰다. 나는 문에 몸을 수그리고 열쇠구멍 뚜껑을 젖히고 열쇠를 찔러 넣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돌렸지만, 찰칵하고 큰소리를 냈다. 호리베가 문을 밀자 모두 안을 보았다.

죄수 특유의 냄새와 바깥 조명이 흘러나왔다. 쇠창살 창문으로 바깥에서 오는 비가 선명하게 보였다.
죄수는 머리를 배에 감추고, 닳아빠진 담요에 싸여 있었다. 나는 호리베와 함께 구두를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죄수가 크게 몸을 뒤집었다. 담요가 그대로 몸에 감겼다.

소장은 관계관에게서 서류를 받아들고 그것을 보며 죄수의 이름을 불렀다. 죄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주임이 내게 눈짓했다. 담요가 미끄러지고 죄수의 얼굴이 드러났다. 무척이나 멍청해 보였다. 호리베는 뒤에서 죄수의 팔을 걸어 죄어 누르고 한 번 휘둘러 눈을 뜨게 했다. 죄수는 온몸을 떨고 절반쯤 뜬눈으로 나를, 다음에 부릅뜬 눈으로 모두를 보았다.

나는 지체없이 수갑을 채웠다. 죄수는 끌어안고 있던 호리베를 뿌리치려고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진정하시오."
목사가 죄수 앞에 서면서 말했다. 호리베가 죄수를 일으켜 세웠다. 오동나무 상자가 열리고 차곡차곡 개켜진 순백색 옷과 띠가 내 놓여졌다.

"자신이 입을 수 있겠나?"
하고 주임이 죄수에게 말했다. 죄수는 잠자코 그것을 내려다보고 그러고는 뒷걸음질쳤다. 지금까지 죄수마다 다 그랬다. 호리베가 뒤에서 죄수의 양어깨를 누르고 그 사이에 나는 왼손의 수갑을 풀어 주었다. 죄수의 내의는 간밤에 바꾼 것이어서 희고 청결했다. 몸은 운동부족 때문에, 발달되어 있던 근육도 꽤 부드러워져 있었다.

나는 죄수의 팔을 한 쪽씩 꺾어 소매를 꿰어 줬다. 마지막으로 띠를 꼭 죄고 원래대로 수갑을 양손에 채우니 준비는 이것으로 끝났다. 그 사이 목사는 줄곧 죄수 앞에 벽처럼 서서 가끔 성경을 넘겨가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소장의 신호로 해서 모두 방을 나섰다. 선두는 소장, 다음은 목사, 그리고 죄수 양옆으로 나와 호리베, 뒤에 주임과 세 명의 담당관이 따랐다. 엇바꿔 다른 간수가 빈방을 치우러 들어갔다. 우리는 거기서 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여럿이 옮기는 두서 없는 바자국 소리가 천장까지 닿았다가 지붕을 두들기는 빗소리와 더불어 퉁겨져 내려왔다. 어느 방에선가 기침소리가 들리고 맨 마지막 담당관이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계속됐다. 쇠창살 문 앞에 남은 간수가 정렬하여 행렬을 전송했다.

밖은 예상했던 대로 심한 비였다. 먼 곳 수풀도 운동장의 잔디도, 둑의 건물도 빗속에 풀려 있었다. 주임은 우산을 펴 죄수의 뒤에서 씌워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젖는 도리밖에 없었다. 아까까지 말끔히 쓸려 하얀 모래가 고르던, 사형실로 가는 길은 굵은 빗발에 수없이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길을 교대로 끼고 가는 히말라야 삼나무에서는 황록색의 물방울이 쉴 새없이 떨어졌다. 흠뻑 젖은 참새가 이 나무 저 나무 날아다니고 짹짹거렸다.

나는 죄수의 왼팔을 잡고 걸었는데 죄수의 옷을 통해 딱딱한 뼈다귀의 느낌, 체온, 맥박이 잘 감지되었다.
행진은 어지러워짐 없이 계속 되었다. 이 비만 없었다면 지금까지 가장 순조롭게 된 경우와 그리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하긴 그때 죄수는 병으로 매우 쇠약해져 죽어 있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길 중간쯤 이르렀을 때 죄수는 갑자기 팔에 힘을 주어 잡고 있던 우리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소용없는 줄 알자 목을 치뜨리고, 무릎을 꿇고 걷기를 그만두었다. 죄수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땅바닥을 향해 무언가 되풀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행진은 완전히 멎었다. 하지만 아무도 줄을 떠나지 않았다. 나와 호리베는 서로 낯을 번갈아 보며 호흡을 맞춰 단숨에 죄수를 잡아 일으켰다.

"자."
목사가 죄수에게 말했다.
"진정하고 기운을 내요. 조금만 더 참아요."
갑자기 죄수의 어깨가 처지고 발걸음이 휘청거리면서 나와 호리베의 팔에 체중을 실었다. 모든 사람의 모자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세게 고개를 흔들어 모자에 맺힌 빗물을 털었다.

다시 행진은 시작되었다. 길이 끝나고 처형실이 있는 원형 건물에 다다랐다. 그곳 지붕 추녀는 휘어 있었고 백색, 흑색, 그리고 금빛이 조금, 이렇게 세 가지 빛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 왼쪽에 충분히 시간을 들여 닦아낸 대리석의 높은 위령탑이 있었다.

돌계단을 몇 개 올랐을 때 죄수는 옷자락을 밟아 뒤로 넘어졌다. 그래서 나와 호리베도 굴렀다. 주임이 맨 먼저 죄수를 일으켰다. 상처는 없었다. 호리베는 더러워진 자기 바지를 보고 다음에 나를 보더니 입을 비죽거렸다.

우리는 처형실 앞에 섰다. 검게 나뭇결이 내비치는 희고 두꺼운 문에 박혀있는 둥글고 커다란 금빛의 장식 못이 모든 사람을 비쳐 담았다. 소장은 잠시 거기 서 있었다. 소장은 늘 그렇게 했다. 그리고 소장이 물러나자 주임이 앞으로 나서서 양손을 크게 벌려 문을 밀었다. 기름이 잘 먹은 문은 소리를 내지 않고 내 쪽으로 겹쳐지면서 활짝 열렸다.

방안에는 백과 흑의 막이 둘러쳐지고 가운데 흰 천을 깐 영단이 있었다. 그 저편에 처형실이 있는데 지금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고 문이 잠겼다. 영단에 켜진 여러 개의 굵은 촛불이 약한 공기의 움직임에도 흔들리고 그때마다 갖가지 그릇들이 번쩍였다. 파도 모양으로 비가 흐르는 천장의 좌우로 두 개의 둥근 창에서도 빛이 띠를 이루고 흘러들었다.

나와 호리베는 영단의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죄수를 앉혔다. 모든 사람의 바지에서 물이 떨어져 마루에 괴었다. 누군가가 잔 기침을 했다.
"얼굴을 드시오."
목사가 죄수에게 말하자 그는 얼굴을 조금 들고 가장 가까운 촛불의 화염에 시선을 멈췄다. 목사는 거구를 천천히 회전시켜 영단을 향했다.

그리고 마술사처럼 몸의 어디에선가 자색 띠를 꺼내 거기다가 진득거리는 입술을 댔다가 자신의 목에 걸어 앞으로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가슴에 십자를 그었다.
펼쳐진 성경을 한 손에 들고 목사는 늘 읽는 대목을 읽었다. 그것은 늘 하는 대로의 같은 말로써, 길고 여자 같은 목소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 문구의 첫 대목을 외고 있었다.

비는 아직 거칠게 지붕을 두들기고 있었다. 가끔 빛나는 번개가 천장을 밝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둥도 섞였다.
목사의 설교와 기도는 계속됐다. 문을 뒤로 선 세 명의 담당관은 같은 거무스름한 여름옷을 입었고 오른쪽의 남자는 손수건으로 어깨의 빗물을 말끔히 닦아내고 있었다. 한가운데 있는 담당관은 서류가 든 검고 얄팍한 가방을 소중하게 부여안고 있었다.

주임은 팔을 뒤로 모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어깨 폭이 넓어 보였다. 소장은 꺼부러진 턱을 내밀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목사의 말끝마다 일일이 끄덕이고 눈물이 글썽해져서는 코 언저리를 만졌다. 소장은 늘 그러는 것이었다. 호리베는 직립부동 자세였고 나는 가늘고 긴 꽃병에 꽂힌 철 이른 자색의 국화를 보고 있었다. 그러는데 죄수의 무릎 사이에 놓은 수갑이 싸늘하게 짤깍짤깍 울리시 시작했다.

목사의 소리가 가늘게 이어졌고 어느 사이엔가 끝 대목에 이르고 있었다. 목사는 희고 매끄러운 옷을 날리며 십자를 긋고 달콤하게 아멘을 외고 천천히 죄수를 향해 돌아섰다.
"이제 당신이 저지른 죄는 모두 사라졌고 당신은 하나님 곁, 천국으로 가는 겁니다.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두려울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하고 목사는 말하고 두툼한 반지가 끼워진 퉁퉁한 오른손을 죄수의 어깨에 조용히 얹었다. 수갑이 부딪치는 소리가 갑자기 멎었고, 죄수의 어깨 근육이 조금 움직였다. 내가 그 어깨를 누르려고 했을 때 죄수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목사의 발치로 넘어졌다. 반사적으로, 그리고 정말 의외로 재빨리 목사의 무거운 몸은 뒤로 물러났다. 그 때문에 목사의 손에서 떨어진 성경책은 영단의 초를 하나 넘어뜨리고 마루로 떨어졌다. 호리베는 교봉을 쳐들었으나 주임이 그 팔을 잡아 멈추게 했다.

죄수는 마루에 괸 물방울 위를 기면서 돌아갔다. 그러나 제 무릎으로 옷자락을 밟고 모로 쓰러진 채 그대로 거기 웅크려버렸다.
나는 죄수의 수갑 사슬을 잡고 호리베는 두 발을 안아 끌어서 그가 앉았던 의자에 도로 앉혔다. 죄수의 등은 검게 더러워지고 마루는 끌린 자리만큼 빨리 말라갔다. 목사는 또 아까 같이 여자웃음을 지었고 몸짓은 나비 같았다.

"입 놀리는 걸 그만둬요. 고함도 지르지 말아요. 두려울 것 없으니까. 자 진정하고, 지금부터 내 하는 대로 당신도 따라 외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당신의 죄는 사라지고, 천국에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목사는 이 장소 밖에서는 사용할 것 같지도 않은 짧은 문구를 외기 시작했다. 그러나 죄수는 그것을 따르지 않고 공포 때문에, 시선을 고정시킬만한 물건을 찾아 눈알을 좌우로 빨리 움직였다. 목사는 관계치 않고 계속해 중얼거렸고 그대로 곧 끈났다.

"그러면."
하고 목사는 말했다.
"당신 손을 여기 얹어요. 그리고 아멘 이라고만 외는 겁니다."
목사는 무슨 가죽으로 된 검은 커버의 성경을 죄수의 눈앞에다 바싹 내밀었다. 호리베는 집게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을 써서 죄수의 수갑 사슬에 걸어 성경까지 쳐들어 주었다. 이런 따위 재치 있는 솜씨로 따지면 간수 중에서도 호리베 뿐이었다.

"……아멘."
말 끝에 목사가 말했다. 그리고 죄수를 보고 재촉했다. 죄수는 잠시 가만있더니 입 끝을 움직여 아멘 이라고 했다. 그러나 입 안이 말라 있어 소리는 나지 않았다.
찌익하고 성격의 가죽 밀리는 소리가 나고 죄수의 손이 무릎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사슬이 짤깍짤깍 울렸다. 소장이 앞에 나서고, 목사가 물러났다.

"무슨 남길 말은 없는가?……아무 말이든 좋아."
소장은 형식대로의 말을 신파조로 말했다.
그러나 죄수는 듣고 있지 않았다.
"피우겠나?"

또 소장이 말하고 담배를 내밀었다. 죄수는 눈으로만 소장의 눈을 뿌리치고, 잠깐 망설인 다음 두 손을 뻗쳐 그것을 받아 절반 가량이나 깊숙이 입에 물었는데, 담배는 젖지 않았다. 주임은 촛대에서 초를 뽑아 그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죄수는 연거푸 연기를 빨아들여 심하게 캑캑거렸고 담뱃재는 잠깐 사이에 마루에 너저분하게 흩어졌다.

"한 대 더, 어때?"
소장은 새 담배를 내밀면서 말했다.
죄수는 아직 절반이나 남은 담배를 버리고 새 담배를 입가에 걸쳤다.
주임은 또 초를 갖다 댔으나 빨아 당기지 않아 담배 끝은 검게 그을렸다가 이내 꺼졌다.

"인제 됐어."
하고 소장이 말하니 주임이 나와 호리베에게 언제나 하는 신호를 했다. 나는 방을 칸막이하고 있는 흰 커튼을 열었다.
처형실은 어둡고 천장의 가장 높은 곳에 갓을 씌우지 않은 전구가 하나 켜 있었다. 나와 호리베는 죄수의 팔을 잡고 안에 들어갔다. 모두 들어가자 커튼을 닫았다.

죄수는 거의 걸으려고 하지 않고 끌리는 대로 발을 끌었다. 그리고 처형대의 계단을 보자 갑자기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죄수는 목쉰 소리로 무엇인가 외쳤다. 그 높은 소리는 원형의 천장에 닿아 울렸다. 나는 대를 올려다보았다. 거기까지 이 죄인을 올려 보내야 했다. 나무계단을 호리베가 수갑을 잡고 먼저 오르고 나는 무슨 소린지 고함을 지르면서 오르려 하지 않는 죄수의 엉덩이를 힘껏 밀었다. 위에 올라가기까지 죄수는 두어 번 발을 헛디뎠다. 그때마다 나와 호리베는 손잡이에 매달려야 했다.

죄수를 처형대 중앙에 세웠다. 나는 오물과 공포감을 없애기 위한 검은 두건을 죄수의 머리에 푹 씌우고 끈을 죄었다. 일순간, 죄수의 움직임과 고함이 멎었다. 그 틈에 호리베는 죄수의 발치에 쭈그려 앉아 채이지 않도록 얼굴을 옆으로 비키면서 조리개가 달린 부드러운 가죽끈으로 두 발을 묶었다. 순간, 죄수는 두 발을 차 지르면서 머리를 세게 내두르며 외쳤다. 큰 소리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기에 똑똑히 들렸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몇 번 반복해서 외치고, 다른 이름이 생각나면 그것도 부르고, 죄수는 아는 이름 모두를 불렀다. 그 가운데는 여자 이름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죄수와 같은 성을 가진 여자 이름을 연이어 불렀다.
나는 내가 조바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천장의 도르래에서 늘어져 내린 삼 밧줄의 고리를 급히 잡아내려 그것을 죄수의 목에다 걸었다.

다른 친구들은 밑에서 처형대의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소장의 심각한 체 하는 얼굴과 그 신파조의 신호를 동시에 보았다. 나와 호리베는 물러났다.
텅 하고 디딤판이 퉁겨지고, 대 위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나와 호리베는 발치에 갑자기 열린 구멍을 보고 있었다.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장과 땅을 잇는 팽팽한 삼 밧줄의 직선은 천천히 커다란 시계추처럼, 죄수의 죽음을 새기면서 흔들렸다. 그 흔들림에 맞춰 천장의 도르래가 삐꺽삐꺽 소리를 음산하게 냈다. 기름이 다 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는 디딤판이 떨어질 때 거대한 번개가 치던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떠올리고 있자니 그게 정말 쳤는지 어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규정된 시간이 끝났다.
스톱워치를 든 검시관에 이어, 목에 청진기를 맨 의사가 가죽가방을 밖에 놓고 처형대 아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삼 밧줄이 느슨해지고, 슬슬 구멍 속으로 내려가 척 늘어졌다.

일을 마치고 모두 처형실에서 나왔다. 비는 멎어 있었고 구름은 조각조각 흩날리고 있었다.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가끔 부는 바람이 히말라야 삼나무를 흔들고 물방울을 후드득 떨어뜨렸다.
나와 호리베의 앞을 어깨를 가지런히 한 소장과 목사가 천천히 걸어갔다.

"그렁저렁 괜찮은 편이었군."
"응?"
"오늘 일 말야."
"그렇게 말하고 보면 그런 것 같군."
나는 대답했다.
해가 구름 속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나와 호리베가 대기실에 가니 사복을 입은 나까가와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까가와는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어쩐 일이지?"
"사복 입고."
나는 나까가와를 보며 흰 장갑을 벗어 던졌다. 나까가와는 흰 장갑에 눈을 주더니 곧 눈길을 거두었다.
"저……."
"뭐야?"
호리베가 돌아다보았다.
"오늘로 여기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하고 나까가와는 똑똑히 말했다.

"뭐?"
호리베가 말했다.
"누가 그만 두라던가?"
"아니 아무도."
"그럼 왜?"
"제가 정했습니다."
하고 나까가와가 대답했다.
호리베는 나를 보았다. 나는 눈 줄 곳을 못 찾아 담배를 물었다.
"멋대로 라고 생각합니다만."
하고 나까가와는 말했다.
"역시 저로서는……."
"못하겠지."
하고 호리베가 뒤 구절을 달아주니 나까가와의 얼굴이 빨개졌다.

"달리 일자리라도 있나?"
하고 나는 물었다.
"별로."
나까가와가 말했다.
"지금은 없습니다. 한 번 시골로 갔다가 다시 생각하렵니다."
"그래?"
"……"
"아무튼 좋아. 다른 직업이 없는 것도 아니겠다. 젊음이란 좋군. 여유가 있으니깐."
하고 호리베가 말했다.

"도착하면 편지하겠습니다."
"음. 그러게.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네. 하지만 마음 변하기 전에 하느라 차표를 사버려서."
하고 나까가와가 말했다.
"그래?"
"그 동안 신세 많았습니다."
"뭘."
"안녕히."
"그럼."
"응."
나까가와는 방을 나갔다.

왠지 발자국 소리는 절지 않고 있었다. 나와 호리베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까가와의 얼굴 봤나."
호리베가 말했다.
"응?"
"우리들을 보았을 때 얼굴 말야."
"약간 떨고 있는 것 같더군."
"백주에 도깨비를 본 얼굴이더군."
호리베는 일어서서 내 담배를 한 개비 뽑고 테이블에 벗어던진 흰 장갑을 보았다.
"어쩐지 화가 나는데."
"나도야."
"왜 우리만 그 일을 하는 거야?"
호리베는 창가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커튼을 홱 당기며 말했다.

"아무튼."
하고 나는 말했다.
"이젠 끝났어."
갑자기 해가 구름에서 빠져 나와 눈부시게 방 깊숙이 비쳐댔다.


5

이튿날 특별휴가로 나는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가까운 바다로 갔다.
높은 모래 언덕을 오르니 바다가 펼쳐져 보이고 바다 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열에 단 흰 모래는 해안선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위를 아이들은 떠들면서 구르며 내려갔다.

"높은 파도가 굉장하죠?"
아내가 말했다.
"응."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내는 빨간 테이프를 두른 밀짚모자를 두 손으로 누르면서 물었다.
"여기는 위험해."
나는 말했다.
"더 잔잔한 곳이 있어."

나는 점심밥이 든 광주리를 아내에게서 받아들고 둘이서 아이들 있는 곳까지 모래 언덕을 내려갔다. 파도는 위에서 보았을 때보다 거대하고 높았다. 아이들은 파도가 물러가는 때를 겨냥해서 달려가, 조개며 돌이며 불가사리를 주웠다.
우리는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맨발로 물가를 걸어갔다.

파도는 모래를 타고 미끄러져 와서 무릎을 적셔놓고는 물러가곤 했다. 희게 거품 진 바닷물이 발바닥에서 물러가면, 바닥 모르게 깊이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 조금 걸어서 둘레가 바위로 쌓인 연못처럼 작은 내해로 갔다. 거기는 얕은 곳이어서 흰 바닷물이 비쳐 보이고 외해의 거친 파도도 미치지 못했다.
아내는 바위 그늘에 빨강과 흰 파라솔을 펼치고 모래 위에 넓은 비닐을 깔고 광주리에서 빵이며 주스를 꺼내 늘어놓았다.

나는 아이들과 팬티만 입고 바다로 들어갔다. 깊은 곳 모래는 싸늘하게 차가웠다. 나는 아이들과 물장난을 하면서 놀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내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나는 깊은 곳까지 헤엄쳐 가서 갑자기 잠수해 보였다. 햇빛은 바다 바닥까지 닿아 있었다.

나는 헤엄에 지쳐서 부서져 가는 부교의 뜨거운 널빤지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등을 태웠다. 아이들은 아내 곁으로 돌아가 몸의 물기를 수건으로 훔치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참 좋은 곳이군요."
하고 아내가 말했다.
"집에 있는 것보다 낫지?"
"그렇군요. 아기한테도 좋을 것 같아요."
"응."
"왜 그러세요?"
아내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냐."
"아니 당신 이상해요. 어제부터."
"그래?"
"나까가와씨 어쩌고 있어요?"
"그만뒀어."
"정말? 왜?"
"싫었던 모양이지."
"그렇게?"
"그런 모양이야."
나는 빈 맥주병을 모래 속에 파묻고 주둥이만 내놓았다. 아내가 내 셔츠에서 담배를 꺼내주었다.

나는 목에 걸고 있던 타월로 손을 닦고 담배를 한 개비 뽑아 불을 당겼다.
"그 사람에게 그 일은 안 맞는 거예요."
"뭐가?"
"당신 하는 일."
"그럼 나는 맞는단 말이야?"
"네. 호리베씨도."
"그래?"
"그럼요."
아이들이 쌓아올린 모래성으로 약한 파도가 밀려오더니 허물어뜨렸다.
"아!"
아내가 나직이 외쳤다.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하고 아내는 말했다.

"뱃속의 아기가 움직였어요."
"그래?"
아내는 수평선 멀리 보이는 흰 고깃배들을 보고 있었다.
"애들이 자라서 내 직업을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왜 그러세요? 당신 지금껏 그런 말 한 적이 없었는데."
"그래?"
하고 나는 말했다.

고깃배들이 한꺼번에 고동을 울렸다. 놀란 갈매기들이 파도 위에서 재빨리 날아올라 돌아 치면서 높이 하늘로 빨려 들어갔다.
아내가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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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1-07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다 쓰셨습니까? 휴~수고하셨네요. 일단 추천부터...^^

icaru 2005-01-0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진짜...좋은 자료네요!!!

한글로 출력해야겠다!!


플레져 2005-01-07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친한 동생의 홈피에서 슬쩍해왔습니다. 실망을 안겨드렸나요? ^^;;

운빈현님, 문학계 신인상, 아쿠다가와상을 탄 소설인데, 첫번째 소설로 알고 있습니다.

복순이언니님 ^^

2005-01-07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08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08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08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08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08 0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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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8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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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8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08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08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5-01-1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단편 읽으면서 자꾸 [그린마일]이 떠올라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요. 흠흠..;;

플레져 2005-01-1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랬군요, 판다판다~
 

  나 덤으로

 

  나, 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만 같아
  나, 삭정이 끝에
  무슨 실수로 얹힌
  푸르죽죽한 순만 같아
  나, 자꾸 기다리네
  누구, 나, 툭 꺾으면
  물기 하나 없는 줄거리 보고
  기겁하여 팽개칠 거야
  나, 지금 삭정이인 것 같아
  핏톨들은 가랑잎으로 쓸려다니고
  아, 나, 기다림을
  끌어당기고
  싶네.

 

  詩 :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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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1-07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제 기분하고 꼭같군요.


물만두 2005-01-0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시는 그렇다치고 사진은 무슨 덤인가요???

플레져 2005-01-0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눼, 만두님. 사진은 덤입니다 ^^

반디님...........ㅠㅠ

비로그인 2005-01-0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때 이 시를 다이어리 한 켠에 적어두었던 기억이 나네요.

icaru 2005-01-07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떨 땐 본편보다 보너스가 더 흥미진진한 때가 있습니다...... ^^

플레져 2005-01-0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니님은 아주 성숙한 여고생이셨군요 ^^

복순이 언니님, 맞는 말씀이십니다...ㅎㅎ

水巖 2005-01-11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또 와서 보고 퍼 갑니다.

플레져 2005-01-1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수암님 ^^
 



Daniel F. Gerhartz - Writing Home

그러니까 이 집 안에 아내라는 여자의 내면을 알 만한 것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이 집 안은 그녀가 아닌 어떤 여자가 들어와 당장 살기 시작해도 이상한 점이 조금도 없을 만큼 표준적이었다. 안주인의 냄새가 없었다. 아내와 나는 살을 맞대고 5년을 함께 살아왔다. 그런데 아내가 사라졌는데도 그녀가 간 방향을 찾아 한 발도 내디딜 수 없다면 우리가 함께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체 나는 무엇을 근거로 아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걸까.

<은희경, 아내의 상자>

******

후천적으로 유전자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여자는 점점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던 열성 유전자, 불량 유전자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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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1-06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불량 유전자님 생각나네요;;

반딧불,, 2005-01-0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대목 참 섬?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자는

어쩌면 만들어진다는 말은 맞을 지도 모릅니다.

유전인자라...아..이 열성 유전인자를 개조 해야 하는데..퍼갑니다.

Laika 2005-01-06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플레져님이 저런 이미지가 아닐까하는.....

플레져 2005-01-06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제가 저런 이미지라면.... 여기 있겠습니까..... 큭.

또 저런 이미지라해도 달리 갈 곳은 없었겠어요... ㅎㅎ

오랜만에 꺼내든 책입니다, 역시나...

Laika 2005-01-0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이미지라면 당연히 정원에 나가서 편지 쓰셔야죠....

"아줌마 여기 커피 한잔.."하면 라이카가 달려가려나? ㅎㅎ (고치지 못한 하녀병)

플레져 2005-01-0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줌마 커피 두 잔 이라고 할테니, 두 잔 타오십셔! =3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