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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이대환 지음 / 현암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거인의 삶을 쉽게 평가하기는 어렵고 이곳저곳에서 느낀점만 나열하려고 한다.
고베 대지진이 났을 때 나는 야 이때야 말로 포스코가 떼돈을 벌 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태준은 내 예상과 달랐다. 과거의 보은을 위해 일본 재건에 협력하겠다는게 그의 메시지였다.
대부분 국민 감정과 다르게 왜 그랬을까? 거기에는 일본에 대한 인식의 깊은 차이가 존재한다.
이 책을 보면 박정희에 의해 여러차례 일본으로 파견되어 했던 일들 대부분은 돈이나 기술을 구하는 것이었다. 기술 하나 장비 하나 구하기 위해 수십번도 더 머리를 숙이고 사무실로 찾아가고 사정해야만 했다.
이제 세계적 기업으로 대성장한 포스코지만 분명 그 시작을 만든 일본의 도움에 대해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협정에 의한 배상금의 정부 가로채기에 대해서 가장 많은 빚을 진 기업은 포스코다. 미국이나 유럽의 어느 기업들도 한국의 제철소 건립을 믿지 않고 돈을 대지 않을 때 일본의 배상금을 전용하여 이 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피로 얻은 돈을 귀하기 쓰기 위해 박태준은 남달랐다. 누구의 압박에도 절대로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았다.
덕분에 대만을 포함한 개도국 제철소 중에서 가장 원가가 낮았고 이는 수년만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과잉투자에 따른 불황을 이겨내며 지배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나랏님을 위하겠다는 명목으로 정치자금 요구와 인사청탁에 굴복했다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귀한 돈을 가지고 잘 써야 했기에 자신만큼 열심이지 못한 부하들을 보면 여지없이 지휘봉이 머리나 어깨죽지로 날라갔고 심하면 조인트가 막바로 올라갔다. 포항공대를 만들 때 교수들 지망이 저조하자 농담삼아 조인트가 두려워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중국의 등소평이 일본에 와서 제철산업을 보면서 이런 기업 하나 만들어달라고 하자 답이 박태준이 없어서 안된다였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한국인으로서 프라이드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제2제철소 건립과정에서 부지선정을 놓고 경제부처와 장기간 쟁투한 것도 유념할 대목이다. 전두환을 둘러싼 관료들의 압박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교묘하게 피해갔다고 한다. 마지막에 전두환의 승낙을 받아낸 것은 당시 정부가 추천한 아산만 지역에 대한 고위 공무원들의 땅투기 실태를 투서로 올린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이걸 보더니 전두환 왈 공무원들이 심하구만 광양으로 하지라고 결정했다는게 전설이다. 살인마지만 이런 대목에서는 정확한 결정을 했다고 보여진다. 지금 노무현 정부의 주요 경제관료들이 물러나는 사유가 땅투기가 1위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폭등과 이러한 비리 경제관료 임명과 상관관계가 없을까 묻고 싶다.
도대체 살인마 보다도 못한 경제실적을 내면서 민주화 운동의 프라이드만 강조한다는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김영삼 시절 박태준은 일본에 유배된 상태였다. 당시 그의 생활비를 일본정부가 보조했다는 점은 인맥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오랜 공을 들인다는 일본인들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반면 김영삼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발언으로 한일관계를 최악으로 몰고간다. 그 보답은 IMF 위기를 맞아서 일본에 돈 빌리러간 한국대표단을 맞는 냉냉한 태도로 돌아온다. 말은 입에서 나가기 쉽지만 주어 담기는 어렵다. 자존심 세우겠다는 말 몇 마디는 좋지만 실력이 따르지 않으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를 처다보면서 끌끌대는 박태준의 독백들이 우리들의 그 고난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씁쓸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당시 박태준을 관리했던 일본의 세지마 류조는 전두환의 특사를 맞아서 80년대 초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에 100억불이 넘는 지원을 하게 만든 사람이다. 그들이 돈이 없어서 당시에 지원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이런 부분을 보면 우리가 극일 하기위해 넘어야 할 벽이 정말 높구나 하는 아픈 마음을 가지게 한다.
그런면에서 최근 일본에 대해 던져지는 노무현의 직설적 화법이 과연 김영삼 시절의 우를 다시 하는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말 극일을 하는 길은 제2의 삼성전자와 포스코를 만들어 일본을 꺽는 것이다.
그 때까지는 꾸준히 실력을 닦아야 한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칼빛을 감추며 꾸준히 칼날을 가는 것이 말 몇마디 던지는 것보다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박태준의 정치적 삶은 생각만큼 화려하지는 못했다. 우직하게 접근했던 그의 태도에 비해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은 훨씬 노회했다. 심지어 분당 건설과정에서 바다에서 퍼온 모래가 걱정되어 청와대를 갔지만 그래서 어쩌냐하는 대답의 무책임함에 질려버렸다고 한다.
박태준의 삶 모두에 공감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빼고 한국 산업의 세계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찬찬히 보면 배울점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마구 부풀어 오르는 부동산을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분양가 공개는 한사코 거부하는 노무현, 청년들에게 취직은 알아서 하라고 꾸중하는 여당 실세 유시민등을 쳐다보고 있자면 죽은 독재자 박정희를 살리는 게 바로 그들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