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전2권 세트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설악산을 찾아갔다. 단풍이 보고 싶었고 멀리 속초 너머 동해안 바다도 보고 싶었다.
정상적인 산행이라면 한발 한발 발을 디뎌 좁은 길을 따라 한계단 한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그런 수고가 벅찬 아이들을 끌고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다보면 또 다른 해법이 주어진다.
바로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산은 그렇게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한번
올라가볼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이 책은 하나의 세계를 다룬다. 많은 돈이 오가는 거대한 기업 그곳은 패션의 왕국이다.
왕국의 영주의 앞으로 다소곳이 서게 된 촌에서 올라온 소녀 그녀는 낯선 이방인이지만
권력에 가까이 함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
비서라는 자리는 마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자신의 힘을 최소한으로 들이고
자신의 시선을 한껏 올리게 된다. 유명인의 전화를 받게 되고 많은 돈을 들여 값비싼 물건을 사고
덤으로 화려한 옷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등 다양한 일을 접하게 된다.
반면 대가도 분명 있다. 일중독인 영주의 생활 패턴에 따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의 말을 반복하기 싫어하기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일처리를 해야만 해서 초긴장
상태에 놓인다. 심지어 화장실 갈 시간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고생에도 구박이 쏟아질 때, 가장 고통스러울 때 그녀의 선임 비서는 "나는 즐겁다", "나는 즐겁다"를
끝없이 되뇌이게 된다. 참고로 나도 똑 같은 상황에 놓인 비서 한분을 알고 있다.
명문대의 좋은 학과를 졸업한 재원이었지만 비서직으로 입사하게 되어 자신의 기대만한 일이 주어지지
않아 힘들어한 그녀의 PC화면에서 똑 같이 "나는 즐겁다"라는 스크린 세이버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커피 심부름에 잡일까지 더해서 관리부장의 구박도 있었만 이런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길은 열려있었다. 우선 그녀는 자신의 상사인 사업부장에게 올라오는 대부분의 리포트를 읽었다.
명분은 사업부장을 이해한다는 것인데 이것만큼 귀한 훈련 기회도 드물다. 더해서 자기 자리에서
목에 힘주고 앉아있는 팀장님들이 막상 자신보다 윗사람 앞에서 어떻게 비굴해지고 평가 받는지
참 모습을 잘 보게되었다. 이는 일종의 권력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 결국 그녀는 일반직으로 전환할
기회를 잡은 후 여자로서는 드물게 괜찮은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어려울 때 마다 자신이 정말로 어려워 "나는 즐겁다"를 들여다보아야만 하던 때를 기억하면 다시 힘이 났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또한 늘 자신을 다독거리며 힘을 낸다. 그녀의 시각을 바꾸게 된 큰 계기는 구박이 너무나 심해서 울면서 찾아간 사무실의 다른 지인과의 대화였다. 돈이 몰리는 곳 거기에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왕국의 영주 또한 무엇인가 대접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것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징징대기만 한다면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을 제대로 이해하기로 결심했다. 촌닭 같은 모습에서 패션의 세계로 한걸음씩 들어서는 그녀에게 영주는 조금씩 인정의 눈길을 보여준다. 응 이제 처음 보다는 낫군 하는 듯한 그런 눈길을.
그 과정에서 이름없이 아무개라고 불리던 그녀는 어느새 정식 full name을 불리우고 정말 잘 했을 때 fine이라는 말도 듣는 등 한걸음씩 나아간다. 옷이 화려해짐과 함께 말이다.
자신이 놓인 공간, 그 세계를 이해해감은 일종의 앎의 과정이다. 이는 자신의 상사에 대한 거부감이 옅어지면서 그럴수도 있구나 하는 공감이 늘어가는 것이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영주 또한 반대의 앎을 보여준다.
사브리나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사브리나는 대기업주의 운전사 역할을 하는 아버지를 두고 있다. 그 아버지도 제법 큰돈을 모았는데 방법은 뒷자리에서 오가는 주인의 대화를 옅듣고 주식 매매를 한 덕분이었다.
실제 미국에서 집꾸미기로 유명한 마샤 스튜어드의 내부자 거래 매매 사건에서도 비서가 남자친구와 함께 주식을 따라 매매했다. 약간 시야를 넓히면 한국의 공무원들이 땅 사는 곳이 족족 개발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주인공 또한 자신의 일에서 얻어지는 여러 부산물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즐기게 된다.
일종의 선순화으로 즐김은 성취를 낳게 되고 여기에 더해 영주의 격려가 반응으로 오게 된다.
그런 격려는 더욱 큰 희생을 유발하게 된다. 선비가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듯이 여자는 화장을 끊임없이 고친다. 주인공은 그렇게 자신의 일에 몰두해나간다. 아마 그것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해간다.
승리에는 꼭 좋은 것만이 따라올 것인가? 천만에 말씀. 내가 쓴 글 중에 성공한 커리어우먼은 스타벅스를 좋아한다는 제목을 붙인 것이 있었다. 요지는 여자가 커리어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기희생을 해야 하고 특히 일터에서 긴장을 높이기 위해 독하디 독한 스타벅스 커피에 푹 빠진다는 것이었다. 참 이 논리의 역은 무조건 진리가 아니니 너무 오해하지 마시라. 커피 좋아한다고 다 성공하면 나도 커피 마시러 가겠다.
하여간 이 작품 내내 보여주는 영주의 손에 들린 커피의 모습은 내 생각과 딱 똑 같은 장면이었다. 여기에 하나의 작은 비극이 나타난다. 사회를 보는 눈이 올라가면 남자를 보는 눈도 올라가게 된다. 반대 또한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