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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를 걷다
김수종 지음 / 리즈앤북 / 2013년 5월
평점 :
올 가을 영주를 다녀왔다.
영주의 매력은 전통문화의 깊이에 있었다.
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의 뿌리였다. 소수서원은 조선왕조의 성리학을 가르치는 서원의 효시였다.
불교와 유교의 바탕이 연달아 영주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충분히 이 고장 영주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된다.
지리적 배경을 살펴보면 소백산맥을 막넘어서 안동과 나란히 신라땅의 최일선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가장 먼저 중국으로부터 오는 문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이를 소화하며 경상도 권역으로 내려보내는 교통로 였을 것이다.
먼저 찾아가 본 곳은 부석사였다.
학교나 문화강습에서 하도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이야기를 들었기에 정말 오늘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직접 찾아 본 부석사는 과연 가볍지 않은 불교 도량이었다.
전체로 큰 절은 아니었다. 하지만 참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로부터 들어가는 입구의 산길, 하나 하나 올라갈 때마다 건물들의 모양이 달라지면서 만들어내는 시선의 다양함. 뒤돌아볼때 반대편으로 보이는 산들의 오르내리며 만드는 풍광은 정말 풍요로웠다.
무량수전,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서 시험 문제의 단골 항목이었지만 요즘에는 부근의 봉정사와 다투고 있다 한다. 건물이 서향으로 되어 있고 부처 또한 서향으로 모셔져있다. 크기도 만만치 않은데 건물과 부처 모두 국보다.
현판의 글씨는 단아하다. 공민왕이 여기까지 피난와서 써준 어필이라고 한다. 그의 학식과 마음을 직접 옅볼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몽골피가 꽤 섞인 혼혈왕으로서 그는 징기스칸의 후예지만 왕씨로서의 자각을 하며 고려를 개혁해나간 명철한 군주였다.
하지만 세가 따르지 않아 홍건적의 난을 맞아 멀리 여기까지 피난왔었다고 하니 신라에서 시작해 고려의 쇠락과 조선의 등장까지 다 내려다보는 부석사의 부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부석사의 이적은 한 둘이 아니다. 창건신화가 날라다니는 돌 마치 라퓨타를 보여주는데 우리에게는 스위프트는 없지만 선묘전설을 만들어 멀리 일본까지 보냈다고 한다. 과학의 영역인지는 모르겠지만 돌로 된 용이 바닥에 있다고 하고 후일 실학자가 와서 직접 부석을 측량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신비함을 뒤로 하고 부석사를 내려온다.
마지막까지 무량수전에서 멀리 산들이 포개져 만들어내는 풍광을 가슴에 담아 본다.
탐방 내내 안내하시는 해설사께서는 참 깊이 있는 설명을 해주셨다.
야단법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지? 밤에 불단에 모여 법회를 열고 사람들이 모이는 활동이었다고 한다.
국보와 보물의 차이도 미처 정확히는 몰랐는데 일깨워준다.
그것 뿐인가 4계절,하루 24시간 중 가장 아름답게 보여지는 부석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여주고 해설해준다. 참 대단하다는 소감이었다.
소수서원도 나름 의미 깊었다.
서원을 만든 주세붕은 작게 시작했지만 점점 키워갔다. 그가 영주에 인삼농사를 보급했다는 점도 같이 주목해야 한다. 무항산 무항심, 즉 경제적 기반을 키워야 공부하는 학당도 커져갈 수 있게 된다.
소수서원이 놓인 자리는 명당이라고 하지만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단종 복위에 나선 영주사람들(당시는 순흥부)을 세조가 몰살시킨 참혹한 공간이었다. 그들의 피가 서원 앞을 흐르는 강물에 그득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영주는 유불의 뿌리만 가진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일에도 앞장섰지만 그 대가가 비참했던 셈이다.
역사를 반추하며 걷다 보니 배가 고파온다.
지인의 소개로 간 영주의 식당의 메뉴는 갈빗살이었다.
서울에 비해 월등히 저렴한 가격, 그렇지만 산촌에서 키운 소를 바로 끌어대는 고기맛은 정말 훌륭했다. 거기에 더해 마침 봉화에서 열리는 송이축제에서 사온 송이들이 더해지고, 손님맞이로 육회를 더해주었다. 육회는 정말 지금까지 먹어본 각종 호텔이나 부페의 육회에 비해서도 월등했다.서울에서 왠만큼 해도 바닷가 포구의 활어회가 훌륭하듯이 고기도 매한가지였다. 쉽게 잊기 어려운 맛의 뿌리 또한 인심이었다. 정직함으로 수십년 장사한 주인 아주머니의 푸근한 마음이 곧 영주를 대표한다고 넘겨 짚었다. 너무 오버인가?
하나 더 하면 사과샐러드에 자꾸 손이 갔다. 영주는 사과의 대표산지로 전국 수확량의 14% 정도 차지한다고 한다. 마침 부석사 앞에서 파는 사과가 한박스에 1만원인데 깜빡 사지 못헀더니 안타깝게도 놓쳤다. 서울에서 시장을 찾아가봐도 가격은 가볍게 두배를 넘는다. 이런 둔함이라니..
영주와 지척인 안동으로 여행은 이어졌지만 마음에 깊이 한국 문화의 깊은 뿌리들이 자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