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 -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제국의 왕관을 놓고 벌이는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
제임스 롬 지음, 정영목 옮김 / 섬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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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기가 더 힘들다.

알렉산더는 화려한 전투의 승리로 제국을 만들었지만 그 유산을 지켜가는 일은 더 힘이 들었다. 알렉산더가 죽었을 때 자식은 어렸고, 장군들은 드셌으며 명확한 통치를 위한 규칙은 없었다. 이제 막 정복으로 통일된 세계는 각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 <알렉산더>는 그의 사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 스크린에 짧은 주석을 달아 놓는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울부짖는 박트리아 출신 록산느, 마케도니아에 남아 계속 신하의 불충을 호소하는 어머니 등의 모습이 나온다. 결국 이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신하들에 의해 죽게 된다. 왕의 자손은 존중 받는 것이 아니라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되어 철저히 말살되게 된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위업이 거기서 끝은 아니다. 영화의 내러이터는 프롤레마이오스가 맡고 있다. 알렉산더의 친위대였던 이 마케도니아인은 오래 오래 남아 저 멀리 캐사르를 유혹하게 되는 크레오파트라의 직계 조상이다. 잘 관리한다면 제국은 잘 유지될 수도 있었다.

무엇이 제국을 갈라지게 만들고 어떤 이들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이 책은 잘 서술하고 있다. 장군과 왕실의 후예들, 이들이 서로 이어지고 갈라지면서 벌이는 사건들이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주인공은 약간 의외의 인물이다. 그리스인으로 알렉산더 대왕의 서기였던 에우메네스가 주인공 역할을 한다.

그는 또 다른 책의 주인공이다. <기생수>라는 일본 만화의 작가가 그린 <히스토리에>의 주인공이다. 대부분 난생 처음 들은 인물이지만 그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에우메네스는 널리 알려진 왕공도 아니고 전쟁 영웅도 아니면서 영웅전에 자리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자체가 이 책의 내용에 잘 설명되어 있다. 오히려 <영웅전> 보다 훨씬 치밀하고 자연스럽게 시대와 사건을 이해시켜준다.

책을 다 읽고 덮어가면서 나의 머리에는 다시 한번 알렉산더가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점이 각인되어 갔다.

전쟁만을 잘 치른 싸움꾼이 아니라 그는 제국의 건설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싸움터에서 보여준 순발력과 용기 특히 문제해결력은 정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마케도니아에서는 왕이었지만 이집트를 방문해서는 신이 되고 페르시아에 이르러서는 공정한 대왕이 된다. 일종의 가면 쓰기 행위라 정통 그리스인들은 변절자라고 비난했지만 대왕의 생각은 깊었다.

앞서 이야기한 프톨레마이오스가 오래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신격화를 통해 이집트에 필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알렉산더가 보인 모범을 따라간 셈이다.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나 그리스와 달리 원래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제국이었다. 이 영토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 포용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정복과 피정복이 아니라 두 문명이 만나고 섞이는 변증법적인 승화가 일어나야 한다. 페르시아 공주와의 결혼, 페르시아인을 포함한 다국적 군대 만들기 등은 모두 거대한 비전을 향해 가는 대왕의 노력이었다.

이렇게 모아진 힘은 다시 서방으로 뻗어가 로마와 페니키아를 정복하려고 준비되었다. 아마 대왕이 10년만 더 살았어도 아시아와 유럽을 모두 아우르는 더 큰 제국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제국에서는 신민들이 서로 존중하고 섞이고 자유롭게 소통되는 후일 로마가 전성기에 만들어낸 거대한 공동 생활권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알렉산더가 거인이었던 만큼 그의 후계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난장이를 넘어서기 어려웠다. 가까운 친위대의 장군들은 몇몇 흉내를 보였지만 실제 잘 되지는 않았다. 알렉산더와는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갔지만 약간의 상황 차이를 읽어내는 미묘한 능력에서 그들은 난장이었고 실패하게 된다. 이렇게 탈락해가는 장군들 아래서 새로운 실력자들이 올라선다. 대표적인 인물이 안티고노스와 셀레우코스였다. 이들 모두 왕조를 만든 창업자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그럼 에우메네스는 무엇을 했는가? 원래 그리스인이었던 그는 왕조를 지키는 최후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했다. 안락한 타협의 길을 계속 거부한 그는 끝까지 왕조의 통합을 통한 알렉산더의 유산 승계라는 이상을 위해 헌신했다.

그 과정에서 미약한 힘을 꾀로 극복해간다. 명장을 상대로 기발하게 승리를 거두기도 하고 패배한 다음에는 작은 요새에서 미래를 준비한다. 용기의 최고가 아니라 꾀로 승리하는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 같은 모험가인 셈이다.

그러다 때로는 탑에 갖힌 공주를 만나기 위해 멀리서 말을 타고 오지만 안타깝게도 공주는 같이 떠나기를 거부한다. 장면 하나 하나가 거의 소설 수준의 삶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역사적으로 어린 후계자가 신생국가를 물려 받아 지속 된 경우가 드물다. 예외적인 인물이 삼국지의 주인공 제갈량이었다. 제갈량 이후의 대부분의 중신들은 어린 후계자를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삼국지의 나관중이 제갈량을 치켜세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에우메네스 또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보인 헌신과 이상은 그야말로 알렉산더 대왕의 충직한 후계자였다고 시간이 갈수록 인정된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서까지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산을 오르는 일은 땀도 나고 힘도 들지만 하나 더 생각을 해야 한다. 말을 타고 세상을 정복할 수는 있어도 말에 탄채 다스릴 수는 없다. 난세에는 평세를, 전쟁에서는 평화를 생각해나가야 진정한 위업을 이룰 수 있다.

알렉산더의 영광,위업,이상과 함께 그의 실패를 통해 새로운 배움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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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9-0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알렉산더」에서 가우가멜라 전투 장면이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개인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트로이」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사마천님^^

사마천 2016-09-03 12:22   좋아요 1 | URL
저자가 대단한 스토리텔러더군요. 학자이면서도 이렇게 스토리 잘 끌어가는 경우 드물게 보았습니다. 너무 쉽게 읽혀서 감탄했습니다. 그리스 세계에 관심이 많으시던데 이 책의 주인공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

겨울호랑이 2016-09-03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사마천님께서 소개해 주신 도널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너무 잘 읽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한 그리스 세계의 반격이 기대되네요^^: 항상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사마천님 즐거운 토요일 오후되세요^^

사마천 2016-09-03 13:37   좋아요 1 | URL
도널드 케이건 책 대단하죠. 좋게 읽으셨다니 아마 이 책도 재밌고 유익하시리라 믿습니다. 겨울호랑이님의 그리스 철학 공부 보여주셔서 저도 도움 많이 받습니다. 항상 넓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