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하고 잔잔한 영화다. 워낙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원작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라 스토리는 탄탄하다.
단 소설로 제법 되는 분량을 압축시켜 스크린에 담다 보니 인물들의 묘사에 필요한 장면들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원작이 1800년대 초반 영국에서 작가의 주변에 실존했던 세계를 묘사했는데 특히 심리적인 부분을 잘 다루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 면모들을 살리려고 감독은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주인공 리지의 약간 도발적인 말투를 고려해서 배우의 외모를 선정했다고 보여진다. 당대 사회는 여자들에게 꽉 짜인 규범을 부여했다. 여자는 결혼이 지상의 과제고 이를 위해서 요조숙녀로서 갖은 기예를 닦고 얌전히 집에 틀어박혀야 한다. 때 되면 사교계에 나와서 얌전을 떨고 돈많고 신분 좋은 남자를 잘 찍어야 한다. 이런 딸들을 위해 막대한 지참금을 지불해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돈돈돈. 어디에도 돈 이야기 뿐이다. 남자들은 수입이 얼마인지를 가지고 평가 받고 여자들은 반대로 가져갈 수 있는 지참금에 의해 평가 받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리지의 집은 아예 딸에게는 상속권도 없고 덕분에 지참금도 거의 없게 되니 최악의 상황이다. 얼굴은 조금 이쁘다고 하지만 나이도 이제 꽉 찼다. 20대 후반의 나이는 아마 지금도 노처녀 취급을 받을 것인데 당시라면 어떠했을까 굳이 어렵게 상상해보지 않아도 뻔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고 진정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이다. 안락함은 충분히 보장되는 교구 목사님의 사모님이 되는 것도 가볍게 제껴버린다. 덕분에 어머니와 의절(?)하게 되지만 이게 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걸 보여주는게 작가의 의도다. 영화 장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청혼을 과감히 거절하고 도망가는 리지와 쫓아가는 어머니의 장면에서는 뒤뚱뒤뚱 걸어가는 오리의 모습이 보이고 아버지를 만날 때 하늘을 날아다니는 백조의 모습이 비추는데 이를  보고 내 머리에 미운오리새끼가 떠 올랐다면 너무 오버인가?
리지가 원하는 것은 결코 돈과 지위는 아니었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을 갈망했기에 그녀에게 남다른 인연이 다가올 기회가 된 것이다.
그녀의 강점 중 하나는 독서에 대한 열정이다. 저자의 모습이 얼마간 오러랩되는 이미지인데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테레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서는 남과 다르다는 표식이 된다. 아마 알라딘의 서재달인들이 반가와할 대목일 것 같다. 어쨌든 독서의 결과는 우선 자기 가치관의 확립이다. 견고한 기반을 바탕으로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표현할 수 있다. 모두가 요조숙녀인척 할 때 당당하고 생동감 있는 그녀의 모습은 군계일학으로 보일수도 있다. 물론 역으로 어머니의 눈에는 주제 넘는 천방지축이지만. 어차피 그녀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볼 수 있는 존재는 단 한사람이면 충분하니까. 
하지만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다. 의견이 분명하지만 그 의견을 확립할 때까지 너무 빨리 나간다. 덕분에 상대방에 대한 견해를 빨리 확립하는데 때로 그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 오만한 다이시에 대한 그녀의 견해가 편견으로 밝혀지는 과정이 바로 소설의 백미다.

소설의 맥은 신데렐라에서 온다. 분명 영국은 지금도 신분이 나뉘어진 나라다. 귀족은 귀족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자신의 문화를 유지한다. 반명 혁명의 전통을 가진 프랑스나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국가사회주의 전통을 가진 독일은 이러한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런 나라에서 지참금 없는 나이든 노처녀가 영주가문과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센세이널 한 뉴스다. 사회가 나뉘어 있는 한 그 경향은 꺽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 드라마의 적어도 80% 이상이 신데렐라 이야기인 것을 보면.

어쨌든 이 작품의 가치는 등장 인물의 심리에 대한 치밀한 묘사다. 연애편지에 담긴 글귀 하나 하나가 표현하는 심리의 변화, 무도회를 비롯한 수 많은 만남을 통해 이리저리 뒤바뀌어 가는 젊은 연인들의 마음을 읽어가는 작업은 꽤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잡자 날을 새워가면서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옛날 작품이라 해도 공감이 가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후속타가 이어지는데  에서 여주인공 맥 라이언은 이 책을 수십번 읽었다고 한다. 그 영화 또한 기본 골격은 오만과 편견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나왔던 후아유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이렇게 뻔히 결말을 아는 소설을 가지고 만든 영화를 볼 필요가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고 독서가 넓은 사람의 머리속에도 당대의 풍습을 넓은 대지와 아름다운 성곽에 담아 내기는 어려울 따름이다. 영화는 그렇게 시각적인 면을 통해 독자의 상상을 교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거기에 더해서 클래식의 선율과 우리가 교육받은 미국식 영어와는 다른 말투에서 오는 거리감까지 선사해준다.

굳이 영화에 더해서 사족을 달자면 마지막에 두 연인이 보여주는 사랑놀음은 원작에는 없다. 원작은 사랑은 여전히 형식적인 모습들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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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6-03-25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멕 라이언 나오는 영화 이름이 안 보이네요. 안녕하세요? 가끔 들어와 님의 날카로운 식견에 감탄하고 돌아가던 독잡니다. 앞으로는 가끔 질문도 하겠습니다.

사마천 2006-03-2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u've got mail인데 썼다고 기억합니다만 없네요. 쩝.
심술님 반갑습니다. 종종 뵐께요.

릴케 현상 2006-03-2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 싶네요

사마천 2006-03-2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소 같은 영화입니다. 영국의 대지와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리고 착하고 바쁜 젊은 연인들 ^^

릴케 현상 2006-03-2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봤삼^^ 동의

사마천 2006-03-2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결국 영화 보시게 만들었군요. 축하드립니다. 늘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