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의 추억을 놓고 전문비평가들이 오리엔탈리즘을 알려면 이 영화를 보라고 매도하는 견해를 보았다.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의 시각으로 자신들이 바라보고 싶은 동양에 대한 이미지를 가져가는 의미라고 한다면 이 영화도 어느 정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배우가 게이샤로 나온다거나 영어를 써서 만든다는 등도 그렇고 원작의 소재가 미국인의 눈으로 씌여진 소설이라는 점도 원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하나 묻고 싶은 것이 같은 동양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는 일본을 잘 알고 있는지 하는 점이다. 그 척도로 일본에 대해 한국에서 나온 책이 일본어 혹은 타언어로 번역되는 경우가 있는가를 제시하고 싶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어령씨를 제외하고 몇이나 될까? 답은 꽤 회의적이다.
차라리 남북문제가 이슈가 될 때마다 늘 등장하는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나 게이오 대학의 오코노미 마사오 교수 정도 되는 전문가도 보유하고 있다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은 무엇일까? 가깝기에 자기 이해에 따라 더 왜곡되어 보는 면이 많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영화의 주제가 된 게이샤에 대해서도 이 주제에 대해 한국에서 나온 연구서가 있나? 아니면 한국의 유사한 존재였던 기생에 대해 재미는 차지하고 게이샤 만큼 깊이를 가지고 연구하거나 서로 비교해본 작품이 있을까? 그러한 책들이 일본에 팔리고 서구에 소개될만큼 깊이와 흥행성을 가지고 있나? 아마 답은 시원치 않을 것 같다.
게이샤=기생=창녀라고 등식을 만드는 사람조차 보았는데 이는 우리 스스로 눈에 편견을 씌우는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에 불과한 현상이다. 한국에서는 도자기 분야에서 조상들이 만들어낸 성과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본의 작품들은 단지 조선의 도공들이 끌려가 만든 것으로 가볍게 치부한다. 하지만 해외 박물관을 보면 일본 도자기에 대한 대접이 높으면 높지 절대로 낮지는 못하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는 장인에 대한 대우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사회 시스템의 차이가 원인이었다.
공병호가 자기 책에서 표현한바를 빌리자면 조선에서는 관리들의 수탈 때문에 가장 좋은 도자기는 일부러
파괴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재주를 가진 사람을 대접한다면 더 많은 재주꾼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반대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조선의 기생 중에도 시대를 넘어 작품을 남긴 존재들이 있다고 한다. 허준이 푹빠졌고 자신과 대등하게 교류했던 이매창 등 역사적 인물들은 분명 있지만 이들이 계승되지는 못했다.
반면 일본은 재주에 대해 합당하게 값을 쳐주는 노력을 한다. 이건 인정하고 배워야 할 점이지 그냥 가볍게 보고 넘길 주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게이샤라는 문제 하나를 놓고도 처녀성을 팔아야 하고 첩으로 살아야 한다는 페미니즘 차원의 비극도 고려해야 하지만 돈 없는 집안의 여자가 사회적으로 자신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는 그 나름의 생존방식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인들의 차가운 시각도 이해가지 않는 점은 아니지만 정 오리엔탈리즘이 문제라면 한국에서 그런 주제를 담아 훨씬 보편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 될 것 아닌가? 이 작품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투덜대기 보다는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가를 논하는게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