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의 왕들은 권한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 이덕일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정 집단에서 리더의 권한이 강해지게 되는 큰 이유는 외적의 위협이다.
밖에 적이 오면 안에서 싸우던 것을 멈추고 힘을 모으기 위해 일사분란한 지도체계를 만든다.
말많고 평등하게 살자고 논쟁하며 모든 것을 투표와 추첨으로 결정하던 그리스인들도 전쟁때는
가장 유능한 자 밑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조선은 어떠했을까? 중국과의 관계를 사대주의로 정리해서 북방의 위협을 없앴고 일본은 아예
무시하다 보니 외부의 적을 특별히 인지하지 못햇다.
초기 혼란기에는 태조와 같은 유능한 장군 출신이 강한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점차
성리학의 지도체계하에 사대부의 가치 중심으로 운영된다.

서양 역사를 보면 중세에는 왕권이라는게 미미 했다. 국가의 지배자라기 보다는
여러 봉건영주들의 대표라는 의미가 강했는데 이러한 역학관계가 바뀌는 것은 상업의 발달과
연관이 깊다. 새로 자유를 얻은 상공인들이 지역과 농업, 특권에 의존하는 봉건영주 보다는
자신들에게 새로운 권리를 부여할 수 있고 상업적 영역을 통합하여 제공할 수 있는 왕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 등 여러나라는 왕권이 신권을 누르는 절대주의로 접어드는데
루이14세 시대의 프랑스가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조선에서는 상공업의 발달은 매우 억제되었다. 열하일기를 보며 조선과 청의 문물을 비교해보면
꽉 막힌 폐쇄되고 낙후된 사회가 바로 조선의 모습이었다.
지배층으로 자리잡은 사대부들의 힘은 매우 커서 왕을 갈아치운 일이 여러차례 나타난다.
세조의 등장은 차지하더라도 연산, 광해 모두 사대부들의 힘에 의해 밀려났다.
이렇게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반정 이외에도 때로 은밀히 뒤에서 이루어지는 모살이 많았다고 한다.
그 주체는 왕 혹은 왕비와 같은 궁궐의 내부자일수도 있지만 외부의 사대부 당파가 적극적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왕으로서는 역설적으로 당파를 이용해 정권을 강화하기도 한다. 숙종이 수차례 환국을 통해
자신의 왕권을 높이는 것이 그러한 예로 나온다. 원래 정치학의 이론을 보면 로마의 divide and control이나
중국의 이이제이 등과 같이 집단을 나누어 서로 경쟁하도록 만드는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참고로 현대의 기업경영에서도 그렇게 분할 관리가 유효하다가 충고하는 경우를 나도 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부여하지 못했기에 농민과 상공인들을 끌어들이지 못한
조선 왕들의 리더십은 말기까지 계속적으로 사대부의 싸움만 유도하는 것 이상을 넘지 못햇다.

이 책은 여러 왕들의 애매한 죽음들에 대해 논하며 당시 시대적 배경과 원인을 체계 있게 분석해서
재미있는 말로 풀어낸 역작이다. 한편 한편 마다 드라마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이덕일씨의 주장 중 하나는 장희빈 보다 훨씬 파란만장하게 살았기에 역사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가치가 있는 존재가 이조의 아들 소현세자라고 한다. 아마 역사책에서 효종의 북벌을 통쾌하게 느끼며
배워왔던 세대들에게는 사대주의로 귀결된 소현세자의 행태에 공감이 적었겠지만 다시 보면
그의 넓은 세계관이야말로 조선의 방향을 세계사와 보다 긴밀히 통합할 수 있었다는데 아쉬움을 느낀다.
또한 천주학에 대한 관심은 사민평등을 보다 일찍 가져올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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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6-01-2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 읽고 리뷰를 쓰고 있는 책입니다. '장미의 이름'같은 어설픈 팩션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더군요. 교훈도 있고.

사마천 2006-01-2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씨 글솜씨가 잘 발휘되었죠. 저는 정약용 형제를 다룬 책이 좋더군요. 생동감 있게 시대상을 그려내셔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혹 장군과 제왕도 보셨나요? 희망 리스트에만 올렸는데.

sayonara 2006-01-25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씨 책은 거의 다 읽었는데... 위의 두 권은 아직 보관함에 있습니다.

사마천 2006-01-25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읽고 꼭 좋은 글을 남겨주시기를 ^^
고선지 장군을 다룬 사람은 많은데 제왕으로 평가받는 이정기를 다룬 글은 거의 없습니다. 삼국사기에 약간 비치지만 거기 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sayonara 2006-01-28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기... 한때 네이버 지식인을 흥분하게 했던 그 '제왕' 이정기의 이야기군요. '해신'같은 허풍이 아닌 진실한 기록이길 바랍니다.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ㅎ

사마천 2006-01-2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설일까 아니면 역사일까 경계선을 누비는데 어떨런지 모르겠네요. 원래 역사가 소설과 유사한 면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