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구는 모든 인간의 꿈이었다.
오래된 꿈이지만 실제 해결 방안은 몇가지로 귀결된다.
하나, 진시황처럼 불사약을 구하는 것. 이건 실패다.
둘, 신선되는 것. 이것도 검증이 되지 않았다. 부처님도 수명을 다하고 다시 태어나도록 되어 있으니.
셋, 하늘에 가서 사는 것. 이게 바로 유태,기독교적 세계관이다.
넷, 자식을 통해 이어가는 것. 이것 또한 유태적 세계관과 연관이 있고 유교적 세계관과도 연관이 있다.

여기서 영화 하나를 다시 들추어 보자.
어렷을 적 많이 보던 은하철도 999의 극장판을 보면
철이가 추구 하던 기계인간의 삶에 회의를 느낄 때 그와 맞서 싸우던
적을 해치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철이의 아버지 파우스트다.
이미 기계인간이 되어 있어서 여왕의 부하였지만 그는 끈끈한 부정을 끊지 못해
철이를 돕고 스스로는 파괴되었다.
파우스트, 왜 그 이름이었을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영원한 삶을 얻었지만
결국 거기에 회의를 품고 스스로 지상에서의 생을 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왜 파우스트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내가 처음에 거론한 영원히 사는 법 중 기계인간이란 해법은 첫번째 불사약과 유사하다.
이 방법의 약점은 한 사람이 불사가 된다면 굳이 자식을 낳을 필요도 없을 것이고
스스로만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개체를 종속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999에서 상징적으로 표현한 다른 인간의 생명에서 추출한 캡슐이 바로 그런 의미다.
한데 아일랜드라는 영화에서는 이게 바로 복제된 존재의 장기로 표현된다.
어떤 인간이 과연 다른 인간의 목숨을 대치할 만큼 값어치 있는 존재였을까?
진시황이 과연 지금 까지 살아왔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징기스칸은, 나폴레옹은... 그들의 끊임없는 정복욕 덕분에 우리는 종이 되어 살 것이다.
결국 자연은 스스로를 치유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 인간에게 수명의 제한을 준 것이다.

파우스트, 그는 어느 순간 그 깨달음 하나를 얻고 자신의 진로를 바꾸었다.
죽는 길을 택했지만 그가 죽는 것은 아닌게 아들 철이를 통해 그가 지속된다는
믿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말미에 길게 멘트가 된다.
인간은 피조물이기기 한계를 알아야 하고 죽어야 다시 사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게 바로 유태인적 세계관으로의 회귀다.

기생수라는 만화가 있다. 여기에 충격적인 메시지는 인간이 1/100로 줄어든다면
지구가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다. 왜 인간은 무엇인데 지구를 자기 껏처럼
마구 괴롭힐까? 기껐해야 수백만년전에 태어난 존재가 수십억년 영겁의 세월동안
스스로 잘 움직이고 균형을 맞추었던 이 지구를 괴롭힐까?
또 하나의 영화 우주전쟁을 보자. 더 강한 존재를 만났을 때 인간은 겸허해질 수 있는
계기 하나를 맞이 한다. 마구 쏘아대는 레이저 광선과 인간을 제물로 삼는 외계지능체에
맞서서 우리의 저항은 정당하다고 외치고 싸워나간다.
그럼 한번 물어보자. 어떻게 해서 부시의 미국은 이라크에 불덩이를 쏟아부을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슨 권리를 가지고 그들은 심판자라는 신의 영역을 넘보려할까?
입장을 바꾸어 더 강한 존재를 만나지 않고서는 그들 또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겸손함과 절제를 알 때 설득력을 기초로한 권위가 나오는 것이다.
소련에게 핵기술을 넘긴 것은 미국의 로젠버그 부부를 비롯한 주요한 핵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분명 하나의 사명감을 가지고 전 지구적 세력균형을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견제되지 않는 절대권력은 부패한다는.

아마 지금쯤 우리는 균형감각이 필요한 대목인지 모른다.
아일랜드를 보며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는
사형수의 장기가 버젓이 매매되는 현실을 보면 그리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돈이 쏠쏠히 들어오는 재미로 중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올정도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는 개판이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지만
거꾸로 의료보험 재정의 상당수는 가입자의 마지막 1-2년 수명연장을 위해 다 쓰이고 마는게
비극적 현실이다. 제 명을 알고 존재 가치를 알고 그게 다한다면 스스로 떠나는 에스키모나
유목민적 세계관이 다시 거론될 때다. 에스키모는 평생 자기의 먹이가 되었던 곰의 먹이가
됨으로써 세계와의 합치를 달성한다.

지금 현대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물으며 겸손함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지구는 너무 포화고 그 위에 존재하는 인간들 중에 정말 영원히 살겠다고 수명 연장해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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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5-08-2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함이라... 인간의 발전과 진보가 탐욕과 욕심에서 비롯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역시 겸허한 마음이 중요하죠. ^_^

사마천 2005-08-24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욕심이 핵을 만들어 스스로 모두 파괴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게했죠. 아마 지금 이라크 전쟁이 그런 사례 중의 하나가 되리라 봅니다.

가을산 2005-09-03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 안녕하세요? 클리오님 서재에 남기신 댓글을 쫓아 왔습니다.
9일(금) 저녁에 영화 번개를 대전서 가지려고 하는데, 참석 가능하신지요?
가능하시다면 제 서재에 발자국 남겨 주세요.

릴케 현상 2005-09-0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sayonara 2005-11-0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생각나는데, 999의 에피소드 중에 이런 나레이션도 있죠.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또 아들... 그렇게 생명이 이어져 가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파우스트에 관한 부분을 읽다보니 생각납니다.

사마천 2005-11-04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그 나레이션들을 떠 올리며 이 글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유태적 세계관이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