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보우의 성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월
평점 :
바보가 한 명 나온다
일본 오시 성의 성주 노보우는 바보다.
농민들 모내기에 가서 도와주다가 아이 한테서 지적질 당한다.
이것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라고 취급받는다.
그런 오시성에 위기가 온다.
히데요시의 대군이 호조의 오다와라 성(지금의 에도)를 포위해가고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어느쪽에 설 것이냐, 어려운 결단 앞에서 오시성은 고민하고 있었다.
이 때 적군의 총대장으로 등장한 이시다 미쓰나리.
히데요시와의 만남에서 석잔의 차라는 일화도 유명하고,
행주산성에서 권율장군의 군대의 화살에 맞아 부상도 입었다.
그리고 후일 일본사의 분수령이 된 세키가하라 전투를 총 기획했다.
오락가락 이야기는 많다.
간단 요약해보면
약자지만 농민까지 끌어들여 잘 뭉쳐 싸우니 숫자로 압도하는 적도 이기기 쉽지 않더라는 것이다.
얕잡아 보았던 성의 의지력에 감탄한 공격측 장수 미쓰나리는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던진다.
적은 의리로 뭉쳤고, 우리는 이해관계에 묶여 한자리에 있을 뿐이니 어찌 이길 것인가.
이 싸움의 의미는 바보라도 의리는 있고, 덕분에 이겼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교훈을 확대시켜 보면 바보 중의 바보는 미쓰나리 자신이다.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가 야심을 드러낼 때 히데요시의 혈족들도 돌아선 상황에서 끝까지 반대로 남아서 "의"를 지킨 인물이라고 일본사는 해석한다.
자신의 철학과 비슷한 면모를 가진 성주와 농부에 대해 애정을 베푼 그의 태도는 독특했다.
결론적으로 바보는 두 명이었다. 미쓰나리를 포함해서..
아니 바보에 휩싸여 싸움에 뛰어든 무사들도 바보고 여기에 동참한 농민들도 바보다.
바보가 뭉치니 대군도 이기는 싸움 이것이 아마 기적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를 곱씹어보았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탐욕에 취해서 진정한 가치를 잊고 있다는 작가의 경고가 아닐까 하는 사념이 들었다.
바보와 같은 인간이 부족해서 나오는 문제의 대표가 아마 후쿠시마였을 것이다.
일본전력의 영악한 인물들의 활약은 결국 세상의 몰락을 만들어냈다.
한국은 또 어떠한가? 세월호는?
똑똑하다는 이들이 만든 세상의 추악한 면모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하나로 히메지 성이 대 관광지가 되엇듯이, 오시성 주변도 그렇게 관광객이 몰리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노보우에서 미쓰나리까지 바보들의 등장이 앞으로의 일본의 행보에 어떤 의의를 만들어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