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초대 대통령은 왜 이승만이고 북한은 김일성이었을까?
김구는 박헌영은 왜 경쟁에서 밀렸을까?

답은 어학이다.

당시 남한의 지배 권리는 미국이 행사했고
이승만은 미국의 프린스턴 박사다.

북한의 지배자 결정은 스탈린이 김일성과 박헌영 둘을
놓고 최종결정했다고 한다.
이때 시베리아에서 활동해서 소련말을 잘하는 김일성이 더 눈에 들었다고 한다.

어학은 단순히 말솜씨만 늘려주는 건 아니다
그 나라 문화의 이해를 통해 관련 사람들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교류가 많은 나라일수록 어학이 발달하게 된다.
네덜란드와 같은 상업국가의 전통이 있는 곳일수록
다국어 취득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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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maker 2005-05-1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은 어학이다." 반은 맞는 의견입니다. 반은 아니죠. 왜냐면 그 당시 영어잘하는 사람이 지도자 중에 많지는 않았지만 여운형선생도 계셨고, 김규식선생도 계셨습니다. 미국은 처음에 김규식선생을 대통령으로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승만이 되고 말았죠. 권력욕의 화신이고 과거청산이 이지경이 된 원흉이죠.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이승만의 과오가 무척 큽니다. 너무나도 엄청나죠.

사마천 2005-05-18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승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평화보다는 전쟁을 화합보다는 분열을 가져왔죠.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사탕수수 노동자인 동포를이 모아준 돈으로 워싱턴 들락거리며 닥터 리, 프레지던트 오브 코리아를 말하기 좋아했죠. 그래서 조직 만들 때마다 프레지던트 안넣어주면 임시정부에 송금해주던 돈 차단시켰습니다.
어쨌든 어학 더하기 거의 최초의 미국박사라는 건 엄청난 무기였죠.

rainmaker 2005-05-20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렇죠^^ 워싱턴 대학교 학사/하버드 석사/프린스턴 박사/우드로 윌슨과 사제지간이면서 친구...지금 봐도 엄청난데 그 당시라면 정말 대단했겠죠.
임정에서도 자기 우두머리 안 시켜주면 나가버린다고 엄포놓기 일쑤...미약하긴 하지만 독립운동한 것은 인정해야지만 그것마저도 자신의 권력의 사다리로 이용하더군요.
사마천님 글들과 올리신 책에 대한 소감등이 큰 도움이 됩니다. 회사생활하시는 분이라 역시 다른 글들과는 격이 다르더군요. 종종 들러서 좋은 정보 얻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