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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의 피카소 - 예술과 사랑을 열정으로 불사른 생애
김원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화가 한명을 놓고 그려낸 책으로 꽤 훌륭하다고 평하겠다.
읽는 과정이 재미있었는데 하나는 소설가 답게 생동감 있는 문체를 통한 묘사였고
다른 하나는 풍부한 그림 사진과 함께 미술에 대한 저자의 지식이었다.
저자가 미술가도 지망했었다는 점이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피카소라는 인물은 너무 잘 알려져 있기에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서 그림속의 모델들이 실제 삶에서 피카소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많이 알게되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현대판 카사노바에 비유할 정도로 피카소는 많은 여자와 깊은
관계를 가졌다. 애정표현 잘 못했다가 정신병자로 취급받은 고호 보다는
환락가에서 살면서 그들의 깊은 우수를 그려낸 로트렉에 가깝다.
하지만 둘 보다는 당대에 성공을 해냈고 너무나 부유하게 살았다.
괴테가 70줄에도 소녀에게 사랑 고백했듯이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은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성과의 관계가 무엇을 만드느냐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연애가 안될 때는 그림도 안되었다고 한다.
어떠한 여성에게도 피카소는 잠시 머물렀다가 떠났다. 냉정하게.
하지만 그 여인들은 작품속에 남아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아마 더 이상
아름답게만 그리기 어렵다고 느끼면 떠났을 것이다.
피카소를 만난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게 만드는 대목이다.
소멸하는 존재인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은 교회에 기부하는 것과
예술가를 통해 그림을 남기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초상화 한점 그려달라고
돈다발 싸들고 오는 여자들에 비해 피카소의 연인들은 행운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하이든이 평생 하인으로, 모짜르트가 돈에 궁핍 겪으며 살던 것에 비해
동시대 후반부의 베토벤이 비교적 넉넉한 생활과 명성을 얻은 것에 비교할 만하다.
예술에 있어서 독창성은 매우 중요하고 이를 이루어내기 위해 현실과 비타협하면서
일정한 긴장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누가 맞고 안맞고 여부는 결국 일정한
시간의 흐름에서 판결이난다. 자신이 맞았지만 시대가 너무 늦게 알아준 고호,르느아르 등에
비하면 일찍 알아주고 이를 오래 누린 피카소는 행복하게 살았던 행운다.
격동기에 살면서 정치적 행동을 제법했던 피카소의 모습은 게르니카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으로 미군의 전쟁참여를
비판했는데 오랜시간 당사자인 한국에서는 금기였다.
냉정하게 따지면 피카소를 반공법 위반으로 잡아다가 기소해야 하는데 말이다.
카라얀하면 껌뻑죽는 한국사람들도 그가 한국정부를 맹비난 했다는 사실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헌신가 희생에 눈물 흘리며, 그리고 그들을 받아준 독일정부의 관대함에
높이 칭송하면서도 왜 더 이상 독일정부가 한국사람을 받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얼마전 신문에 박사학위자의 미국출신 비중이 너무 높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모두가 다 한가지 사실 동베블린 사건으로 한국유학생이나 윤이상과 같은 저명 인사를
납치해서 간첩단으로 몰아붙인 것에서 비롯된다.
분단국가에서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간첩은 늘 필요했고 사상적으로 자유로운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중앙정보부의 괜찮은 먹이감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칭송하는 사람들 모두는 가끔 자신이 피카소를 보안법으로 처벌하라고 외치는
사람과 동일시 되는게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그렇게 주장한다면 서양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의
보안법은 여전히 위세를 부린다. 폐지를 공약했음에도 한발짝 못나가면서 핑계나대는 열우당이나
아직도 목 매다는 한나라나 사실 매한가지 바보들이다.
책에서 이야기가 멀어졌는데 읽는 내내 즐거웠다는 점으로 충분한 평이 된다고 주장하고 싶다.
예전에 박홍규님의 고흐에 대한 글이 괜찮아서 주변에 많이 권했는데 이 책은 한걸음 이상
더 나아가 서양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준다고 주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