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있는 법을 설명 하기 전에 그렇지 했다고 후회하는 사람의 고백을 들어 보자. 아래 내용은 이문렬씨의 <젊은 날의 초상>,민음사  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개의 단락이다.

 

책에 대한 턱없는 갈망 - 모든 것에 대해서 그러하지만,갈망은 항상 갈망을 낳기 마련이었다. 나는 무모하리만큼 열심히 읽었지만,읽으면 읽을 수록 도서관의 서가에는 그만큼 많이 읽어야 책들이 늘어났다.  발단은 나와 맞아떨어질 같으면서도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 전공 때문이었다.

어쨌든 입학한 석달도 안돼 독서는 완전히 전공을 벗어나고 말았다. 나는 무슨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과목 과목의 책들 사이를, 강의실과 강의실 사이를 배회했다. 학구와는 거리가 글자 그대로의 배회였다. 왜냐하면 언제나 내가 읽고 있던 것은 개론서였고, 내가 마치 분야를 알았다는 듯이나 다른 분야를 기웃거릴 대조차도 실은 입문의 단계를 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렇게 읽은 피상적인 지식의 단편들은 약간 고급한 교양이나 찻집 같은 데서 동년배의 감탄을 사기에는 훌륭해도 대신 독서범위를 더욱더 무한정하게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항상 책에 대한 갈망으로 허겁지겁하였지만 느는 것은 새로운 갈망뿐 결국 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아는 바보였다. 

 

나는 떠벌이기 시작했다. 신과 인간에 대해 도덕과 가치에 대해 그리고 세계와 존재에 대해.실제로 처음에는 녀석의 얼굴에서도 전날 내가 만났던 여러 길동무들의 얼굴에서와 마찬가지로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그걸 확인하고 나는 열심히 계속했다.

그런데 - 시간이 갈수록 녀석의 표정은 담담해져 갔다.

<중략>

참고 참았던 녀석의 웃음소리와 거기에 자극된 기침소리가 함께 어울려 나에게 그렇게 들려왔을 뿐이었다

<중략>

하이데거는 콜록,콜록, 잘못 이해되고,콜록, 일상언어학파는 전혀 읽지 않은 것이 ... 분명하지만, 콜록,콜록,콜록 ..... 186

 

그래, 나는 권의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또한 탐구였다고 말할 있는가. 가슴에 불타고 있던 것이 진정한 이데아의 광휘였을까. 아니었다. 아니었다. 소년의 허영심으로, 목로주점의 탁자를 위하여, 어쭙잖은 숙녀와 마주 앉은 다방의 찻잔을 위하여 읽었을 뿐이다.

 

번째 단락은 대학을 들어서자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책이라는 바다에 빠져 버린 부분이고 다음 단락은 길가다 만난 사람에게 철학 이야기를 늘어놓다 아주 혹독한 비웃음을 사는 이야기다. 마지막은 자신의 헛된 독서에 보낸 시간들을 절망 어린 탄식을 늘어놓으며 반성하는 장면이다.

소설을 읽어 보면  이문열 씨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한계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그의 책을 권이라도 읽은 사람들은 넓은 지적영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해박함과 남과 다르게 있는 색다른 시각 등에서 놀라움을 참지 못한다. 권의 책이라고 감히 말하는 것에도 나타나는데 그의 독서는 엄청나게 광범위하였을 것이다. 문학에 관한 도서 목록이 시경과 일리아드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아도 결코 다이제스트 독서물이나 비평적 지식의 짜집기에 만족하지는 않았을 같다.모든 분야에서 개설서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자조하는 그이지만 자신의 독서의 범위를 나름대로 넓게 잡았고 특히 문학에 있어서는 남다른 노력을 같다.

결국 좌절을 느꼈다는 것은 모든 분야에 걸쳐 다르게 구축된 두터운 지식도 전문가와 대화하기에는 보통사람의 넓은 지적 관심 밖에 되지 않았다는 데서 느낀 실망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문열씨도 자신의 문학을 세계화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해 적이 있는 같다. 그럴 지금 시대의 넓은 독자를 가진 밀란 쿤데라 같은 작가와 은연중에 비교해 보지는 않았을까? 밀란 쿤데라의 글에서 느껴지는 해박함은 니체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톨스토이,성경 등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아예 영역을 넘어 베토벤의 음악까지 인용하는 자유로움에서 비롯된다. 서구의 명저라는 책을 보면 백년 동안 읽힐 같지는 않은 그냥 수십 동안 분야에서 좋은 읽을 거리로 남을 같은 책들에서도 헤겔,마르크스,칸트,톨스토이 등과 같은 대사상가의 저서와 이론이 자유롭게 인용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저술되어진 책들에서는 이와 같이 고전을 넓게 구사 경우가 매우 드물다. 한국의 문화 내지 학문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취득하는데 한계를 가지게 되는 이유는 역으로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하는 고전의 수용에서 그만큼 취약했다 점이  원인으로 작용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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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3-1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울고 싶습니다 사마천님이 인용하신 이문열이 쓴 그 부분, 저도 읽으면서 무력감에 싸였던 적이 있습니다 실은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전 비교적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아빠가 늘 제 독서열에 대해 경고하곤 합니다 저 많은 책을 그저 글자만 읽는 게 아니냐, 대체 몇 %나 소화시켰다고 생각하느냐... 저도 그저 관심의 폭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넓혀 가지만, 정작 제대로 읽은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이야 그저 교양인의 독서 정도로 한계를 짓고 있지만, 과연 어떻게 책을 읽는 것이 제대로 읽는 것인지, 한숨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marine 2005-03-1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제가 이 글 좀 퍼갑니다 ^^

사마천 2005-03-1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대목읽으면서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올바른 독서법이라는 문제는 늘 어렵죠. 모티머의 독서법이라는 책을 한번 보시기를. 평생 도움이 많이 됩니다.

marine 2005-03-1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